유한기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유한기
柳漢基
'''
<colbgcolor=#0047a0><colcolor=#fff> '''출생'''
1897년 1월 4일
충청남도 천안군 천안읍 읍내리
'''사망'''
1968년 6월 29일
충청남도 천안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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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유한기는 1897년 1월 4일 충청남도 천안군 천안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4년 9월 초순경 홍경식, 박정양, 이병욱(李丙旭)과 함께 중국 봉천성 흥경현에 근거지를 둔 대한통의부 단원 현익철과 협의하여 대한통의부 지부를 경성에 설치했다. 이들은 대한통의부 경성지부 명의의 인장을 조각하고 협조문을 작성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계획하였다.
1924년 9월 27일 오후 8시경 홍경식ㆍ이병욱ㆍ박정양과 함께 서울 창성동(昌成洞) 안도(安濤)의 집에서 대한통의부 경성지부원임을 밝히며 군자금을 요구하여 38원을 모집하고, 10월 2일부터 11월 7일 사이에도 3회에 걸쳐 70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0월 14일 적선동(積善洞) 이경세(李慶世)에게서 군자금 200원, 같은 달 24일에는 10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력 9월 20일 효자동(孝子洞) 남작(男爵) 김교신(金敎莘)에게서 115원, 11월 3일 청진동(淸進洞) 민용호(閔溶鎬)에게서 200원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1924년 10월 10일과 26일 전남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 삼천리(三川里)에 거주하는 고하주(高廈柱)ㆍ고광일(高光馹)에게서 군자금을 받아냈다.
1924년 10월 27일에는 충북 진천군(鎭川郡) 진천면(鎭川面) 읍내리(邑內里)에 거주하는 박승구(朴勝龜)와 충남 논산군(論山郡) 광석면(光石面) 신당리(新堂里)에 거주하는 윤희중(尹希重)에게 대한통의부 경성지부 명의의 협조문을 우편으로 보내고 군자금을 교부받으려 하였다.
그러나 1924년 11월 10일 경기도 경찰부 형사과에 체포된 뒤, 1925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 공갈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후 천안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8년 6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유한기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