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
李康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인물. 자는 현주(玄胄). 이서의 아들이자 이통의 손자.
강하군 평춘현 사람으로 이병이 지은 가계에는 이강(李康)으로 기록했지만 위서 이통전의 주석이나 왕은의 진서에는 이병(李秉), 진서 이중전에서는 이경(李景)이라 기록했다.
삼국지집해에서 오중근과 노필이 의견을 제시했는데, 오중근이 이르길 홍이손의 삼국직관표의 위 진주 아래에서 인용한 세설 현원편 주 영가류 인명에 따르면 위 진주자사 이강이라고 했다.
노필이 이르길 오사감의 진서각주에 따르면 당나라 사람이 병(丙)자를 피휘해 경(景)이라 고쳐쓴 것이고 병(秉)과 병(丙)의 임금의 이름이라 이를 피한 것이라 했으며, 또한 세설 주에서 인용한 문장지, 영가류인명에서 강이라 썼기에 강과 병의 형체가 비슷해서 잘못했다고 했다.
뛰어난 재능으로 세상에 귀하게 여겨져 훗날 관직이 진주자사에 올랐다고 하며, 그가 지은 가계의 기록에 따르면 일찍이 사마소를 모시면서 3명의 장사와 알현했다. 사마소가 "관리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마땅히 청렴하고 신중하고 근면해야 하오. 이 세 가지를 수양한다면 무슨 근심인들 해결하지 못하겠소?"라고 얘기하면서 조서를 내렸다가 그 때 3명의 장사가 물러가자 "반드시 마지 못해 버린다면 어떤 것을 먼저 하겠냐고 물었다.
어떤 이는 청렴이 진실로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했으며, 이병이 질문을 받자 청렴과 신중의 도는 서로 어우러져 이루지는 것이니 마지 못한다면 신중이 가장 큰 것이 되겠다고 했다고 대답했다. 인덕있는자는 필시 용기가 있을 것이나 용기있는자가 반드시 인덕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했다. 사마소는 매우 타당한 의견이라면서 신중한 사람을 누구로 들 수 있냐고 물었다.
순의, 동중달, 왕공중 등을 얘기했지만 사마소는 그들도 신중하지만 가장 신중한 사람은 완적으로 그와 담론할 때마다 그 말이 현묘하고 심원하면서 시속의 일을 평론하거나 인물의 선악을 비평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지극히 신중하다고 했다.
이병은 항상 이 말을 기억했으며, 이를 밝혀 경계로 삼았다. 가벼이 인물을 평하거나, 사람은 일을 행함에 있어 어린 시절부터 몸을 세워 신중하야 한다 했으며 가볍게 시사를 논해서는 안되며 이렇듯 행한다면 후회할 일도 없고 재난이 닥칠 일도 없을 것이라 했다. 시호는 정(定)이다.
그의 아들은 이중으로 이중에겐 두 사람의 동생이 있었는데, 이상(李尚)의 자는 무중(茂仲)이라 하고, 이구(李矩)의 자는 무약(茂約)이라 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영가 연간에 군 태수가 되었고, 이구는 강주자사까지 올랐다. 이중의 아들 이식은 자를 경칙이라 하고, 관위는 시중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