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

 



'''후주삼신(後周三臣)
李筠 | 이균
'''
'''이름'''
이균(李筠)
'''생몰 기간'''
? ~ 960년
'''본적'''
병주(并州) 태원현(太原縣)
'''국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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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주, 송나라의 인물.

2. 생애


태원 사람으로 소의절도사를 지내 954년에 북한에서 군사를 이끌고 후주를 공격하면서 요나라에 군사를 요청했는데, 거란에서 1만여 명, 북한에서 3만을 이끌고 공격하자 이균은 장수를 보내 싸우게 했지만 패하고 죽자 이균은 상당으로 도망가서 농성했다.
960년에 조광윤송나라를 건국하면서 이균은 중서령의 직위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려다가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결국 받았고 곽위의 화상을 걸고 눈물을 흘렸다.
4월에 북한의 유승균과 함께 군사를 일으키기로 하고 아들인 이수절의 만류에도 듣지 않았으며, 송나라에서 이수절에게 벼슬을 주고 이수절을 보내 이균을 막게 했지만 이균은 아들을 통해 군사를 일으킨다는 것을 전하도록 했다. 이균은 유계충을 보내 북한에게 지원 요청을 하면서 군사를 보내 택주를 공격해 성을 함락했다.
유승균으로부터 물품을 하사받자 사람을 보내 남하해서 도와달라고 요청했으며, 태평역에서 유승균을 만나 서평왕에 책봉되었고 29일에 석수신, 고회덕이 이끄는 송군에게 3만 여명이 장평에서 격파되자 이균은 택주로 들어가 농성했다. 6월에 조광윤이 직접 와서 성을 공격했고 마전의가 결사대를 이끌고 공격하고 조광윤이 뒤를 따라 공격했으며, 13일에 성이 함락되자 이균은 불에 뛰어들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