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국
伊西國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과 화양읍 일대에 있었다. 이서소국(伊西小國), 이서고국(伊西古國)이라고도 한다. 다른 성읍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서국에 대해서도 문헌에는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26 청도군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왕인 유리 이사금 때 멸망하고 그 뒤[솔이산(率伊山)·경산(驚山)·오도산(烏刀山)에 있는 세 성과 합쳐 대성군(大城郡)이 되었다고 한다. 또 《삼국유사》 권1 이서국조에 보면, 신라 제3대 왕인 유리 이사금 14년(37년)에 이서국 군대가 금성(金城), 즉 신라의 경주를 쳤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 권2에는 유례 이사금 14년(297년)에 이서국이 신라를 침공하자 신라는 대병으로 막았으나 이를 물리치지 못하였다. 이 때 홀연히 이병(異兵)이 나타나 신라병과 연합하여 이를 물리치게 되었는데, 이 이병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왕인 미추왕의 왕릉인 죽현릉(竹現陵)에 죽엽(竹葉)이 쌓인 것을 보고, 선왕이 음병으로 신라를 도운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또, 《삼국유사》 권1 미추왕 죽엽군조(味鄒王竹葉軍條)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앞에서 본 신라 제3대 유리왕 14년과 제14대 유례왕 14년의 기사 내용이 서로 비슷하면서 시대를 달리한 것은 기록 차이로 생각된다. 두 왕의 이름이 비슷한 것도 기록이 꼬였던 정황으로 보인다.[1] 이처럼 이서국의 멸망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14대 유례왕 때까지 성읍 국가로 존속해 오다가 신라에 멸망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
[1] 삼국사기에서도 "고기(古記)에는 제3대와 제14대 두 임금의 이름을 같이하여 유리(儒理) 또는 유례(儒禮)라 하였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두 왕의 이름은 서로 다른 한자로 음차했을 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