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지우 다스 라랑제이라스

 

'''플루미넨시 FC'''
'''이스타지우 마누에우 슈와르츠
(Estádio Manoel Schwartz)'''

위치
브라질 히우지자네이루 라랑제이라스
(Laranjeiras, Rio de Janeiro, Brazil)
건축가
히폴리토 푸졸[1]
(Hypolito Pujol)
개장
1914년
보수
1919
좌석
18,000석 (1919)→ 25,000석 (1922)→ 8,000석 (2016)
최다 관중 기록
25,718명[2]
소유권
플루미넨시 FC
1. 개요
2. 역사[3]
3. 현재
4. 국가대표 경기
5. 여담


1. 개요


브라질 히우지자네이루에 위치한 축구장. 라랑제이라스는 위치 때문에 붙은 이름이고 이스타지우 마누에우 슈와르츠[4]가 정식 명칭이다. 마누에우 슈와르츠는 2004년에 헌정되었고 그 이전에는 이스타지우 아우바루 차베스라 불리기도 했다.
현재 플루미넨시 1군 경기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때 보수된 마라카낭에서 치러지며 라랑제이라스는 플루미넨시 산하 여자축구팀과 유스팀이 이용하고 있다.

2. 역사[5]


1904년 8월 14일에 브라질의 주들끼리 축구 시합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1905년부터 옥외 관람석이 세워졌다. 이것이 이스타지우 라랑제이라스의 첫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7월에는 이 구장에서 브라질과 엑스터 시티가 경기를 치렀는데,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이 경기가 브라질 대표팀의 최초 A매치가 된다.[6]
1915년 7월 27일에는 파울루 코엘류 네투[7]가 작사한 플루미넨시의 첫 찬가가 발표되기도 했다.
브라질의 축구 역사에서도 잊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브라질에서 처음 열린 코파 아메리카의 개최지가 이곳이었는데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 네쿠 등의 활약으로 브라질이 국제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 축구의 성지이다.
1919년에는 대형 보수공사를 시작하였고, 축구 경기 외에도 콘서트와 오페라, 퍼레이드 등을 개최할 수 있는 노블 홀도 곁들였다. 1922년경에는 25,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제법 규모 있는 경기장이 되었고, 10월에 있었던 우루과이와의 시합에서는 처음으로 라디오 중계도 시작되었다. 1928년에는 인공 조명도 설치되는 등 브라질에서 여러 혁신적인 시험을 많이 한 구장이다.
그 외에도 1922 코파 아메리카 등 국제 대회도 개최되었으며, 플루미넨시의 홈 외에도 1930년대까지는 브라질 대표팀이 이 곳에서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다.

3. 현재


2003년 이후로는 공식 경기를 열고 있지 않다. 하지만 플루미넨시 축구단의 본부가 이곳에 있고, 1919년에 지어진 노블 홀은 아직도 쓰이고 있다.
[image]
플루미넨시 본부의 스테인드 글라스
[image]
노블 홀
2014년에는 브라질 대표팀의 100주년을 기념하여 엑스터 시티와 플루미넨시의 2군 팀이 경기를 갖기도 했다.

4. 국가대표 경기



4.1.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4.1.1. 1919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브라질


'''경기일자'''
'''팀 1'''
'''결과'''
'''팀 2'''
'''라운드'''
'''관중'''
1919년 5월 11일
브라질
[image]
6:0
칠레
[image]
조별 풀리그
20,000
1919년 5월 13일
아르헨티나
[image]
2:3
우루과이
[image]
조별 풀리그
18,000
1919년 5월 17일
우루과이
[image]
2:0
칠레
[image]
조별 풀리그
8,000
1919년 5월 18일
브라질
[image]
3:1
아르헨티나
[image]
조별 풀리그
22,000
1919년 5월 22일
아르헨티나
[image]
4:1
칠레
[image]
조별 풀리그
15,000
1919년 5월 26일
우루과이
[image]
2:2
브라질
[image]
조별 풀리그
23,000
1919년 5월 29일
브라질
[image]
1:0
우루과이
[image]
최종전
35,000

4.1.2. 1922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브라질


'''경기일자'''
'''팀 1'''
'''결과'''
'''팀 2'''
'''라운드'''
'''관중'''
1922년 9월 17일
브라질
[image]
1:1
칠레
[image]
조별 풀리그
30,000
1922년 9월 23일
칠레
[image]
0:2
우루과이
[image]
조별 풀리그
12,000
1922년 9월 24일
브라질
[image]
1:1
파라과이
[image]
조별 풀리그
25,000
1922년 9월 28일
아르헨티나
[image]
4:0
칠레
[image]
조별 풀리그
2,500
1922년 10월 1일
브라질
[image]
0:0
우루과이
[image]
조별 풀리그
30,000
1922년 10월 5일
파라과이
[image]
3:0
칠레
[image]
조별 풀리그
1,000
1922년 10월 8일
우루과이
[image]
1:0
아르헨티나
[image]
조별 풀리그
14,000
1922년 10월 12일
우루과이
[image]
0:1
파라과이
[image]
조별 풀리그
3,000
1922년 10월 15일
브라질
[image]
2:0
아르헨티나
[image]
조별 풀리그
25,000
1922년 10월 18일
파라과이
[image]
0:2
아르헨티나
[image]
조별 풀리그
8,000
1922년 10월 22일
브라질
[image]
3:0
파라과이
[image]
최종전
20,000

5. 여담


  • 이 경기장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프레기뉴로 총 79골을 득점하였다.

[1]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1919년의 개보수를 맡았다.[2] 1925년 6월 14일 플라멩구와의 경기에서 기록되었다.[3] 출처[4] 마누에우 슈와르츠는 1980년대 플루미넨시의 회장이었던 인물이다.[5] 출처[6] FIFA가 인정하는 브라질의 첫 정식 A매치는 두 달 뒤의 아르헨티나전이다.[7] 브라질의 유명 작가이자 플루미넨시의 초기 레전드 프레기뉴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