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쿠
1. 생애
1.1. 클럽
SC 코린치안스 역사상 가장 오래 뛴 선수이며 히벨리누, 소크라치스 등과 함께 코린치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남아있다.
그런데 그의 끈질긴 집념에 어울리는 불같은 성질머리 또한 가지고 있었다. 맥켄지에서 뛸 때 전 소속팀이던 SC 코린치안스와의 경기에선 돈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SC 코린치안스의 도서관에 침입하기도 했으며, 심판을 때려서 18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1915년엔 SC 코린치안스내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공식게임을 거의 안 뛰기도 했다. 따라서 이 때 잠시 맥켄지 대학교 소속으로 뛴 것. 그리고 종종 선수 겸 감독으로 뛰기도 했다.
1.2. 국가대표
보통 1919년 코파 아메리카의 주인공으로 아르투르 프리덴라이히를 꼽는다. 그 이유로는 최종전에서 당대 남미 최강이던 우루과이를 침몰시킨 프리덴라이히의 결승골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활약 덕분에 프리덴라이히는 대회 MVP가 되었다.
그러나 최종전 이전에 네쿠가 만든 2골로 인해 2대2의 스코어를 만들어 최종전까지 끌고 간 것이며 최종전에서 2차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프리덴라이히의 골이 터졌다. 프리덴라이히의 별명인 '''El Tigre'''는 네쿠가 없었다면 불리지 못했을 별명. 또한 이 대회에서 네쿠는 4골을 기록하여 프리덴라이히와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1.3. 은퇴 이후
1930년 은퇴 이후 잠시 친정팀 코린치안스의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이 동안에도 1년간 머물면서 한 차례 우승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2. 플레이 스타일&평가
훌륭한 기술과 끈질긴 집념을 보유했고 발이 빨랐다고 전해진다.
3. 뒷이야기
- 네쿠가 처음 커리어를 시작할 당시의 축구 선수들은 프로의 형태가 아니어서 투잡을 많이 뛰었다. 네쿠는 목수일을 했다. 하지만 코파 아메리카 우승 후 일을 빼먹었다고 잘렸다.
- 1929년 팀의 정원에 동상이 세워졌는데 축구 선수 선수로써 최초로 세워졌다고 한다. 당연히 현역이던 시절이었다.
- 맥켄지에서 뛸 때, 네쿠는 자신의 성씨인 누니스로 불리기를 원했는데, 그 이유는 코린치안스에서 뛰지 않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안토니우 호키 시타다니, 코린치안스 전 이사는 2001년에 '네쿠, 첫 우상'이라는 네쿠의 평전을 출간했다.
4. 수상
4.1. 클럽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8회: 1914, 1916, 1922, 1923, 1924, 1928, 1929, 1930(SC 코린치안스)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준우승 1회: 1915(맥켄지 대학교)
4.2. 국가대표
4.3. 개인
4.4. 감독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1회: 1937(SC 코린치안스)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