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人類世 / Anthropocene
1. 개요
지질시대 중 비공식적인 시대 구분. 인신세(人新世)라고도한다.
본래 지질시대는 지구가 만들어지고부터 인류의 역사가 시작하기 전까지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1980년대 미국의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와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인류의 산업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지질시대에 포함시키고자 인류세를 창시했다. 2000년에는 스토머와 크뤼천 두 사람이 함께 기고문을 쓰기도 했는데, 이는 인류세라는 표현이 공식적으로 나타난 최초의 문서다. 이후 과학계에서 인류세라는 표현은 돌풍처럼 퍼져 나갔고, 사회적으로도 현 시대의 환경 문제를 상징하는 중요한 표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 특징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명칭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인간 활동에 의해 지구의 자연 환경에 유의미한 변화가 초래된 시기라는 것이다. 인류는 흥성 과정에서 지구의 토양, 바다, 대기에 모두 큰 영향을 미쳤고, 지구 생물들의 생태계에도 막대한 힘을 발휘하였다. 단일한 생물종, 그것도 지구 역사의 끝자락에 나타난 한 종이 그 짧은 시간 사이에 행성 전체에 이토록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 사례는 인간이 유일하다. 이렇듯 인간이 환경에 미친 영향은 지구 온난화, 해양 오염, 쓰레기 문제와 같이 인류의 존속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는 환경 문제로 돌아오고 있다. 이에 따라 스토머와 크뤼천을 시작으로 하여, 인류 이전과 비교할 때 인류 이후의 시대가 크게 달라졌다는 논거를 들어 인류 이후의 시대를 별도의 지질 시대인 인류세로 분류하자는 의견이 과학자들 사이에 나타난 것이다.
인류세는 지질시대 공식 용어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과학자들이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강한 단어이지만, 2020년 기준으로 아직 인류세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단어는 아니며 이따금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인류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을 부정한다기 보다는 지질학 기준으로 인간이 번성한 시기는 '''너무나도 짧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인간은 지구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생물종이므로, 따라서 인류의 결정과 행동이 지구는 물론 인간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세의 공식 채택 여부와는 별개로, 인류세라는 용어가 갖는 함의는 과학적으로도 의미가 클 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윤리적으로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인류세를 간단히 알아보고 싶다면 2016년 지질학회지 논문인 인류세(Anthropocene)의 시점과 의미를 참조. 9페이지 분량으로, 부담 없이 인류세의 개념, 시점 구분, 그리고 인류세라는 개념이 갖는 의미를 알아보기 매우 좋은 자료이다. 본 문서 역시 해당 논문을 많이 참조하였다.
3. 시작 시점은?
아직 비공식 지질시대인 만큼 시작 시점은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인류세의 시작 시점에 대해서는 크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의견을 들 수 있다.
사실상 인류세의 개념을 창안한 크뤼천은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시점인 18세기 후반을 제시한다. 이 부분은 19세기부터 화석연료 연소에 따른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시작된다는 의의가 있다.
인류세 연구위원회를 비롯하여 다른 과학자들은 최초의 핵실험이 성공한 1945년 7월 16일을 기점으로 잡는다. 이 핵실험으로 자연 상태로는 지구에 거의 존재하지 않던 플루토늄 등의 다양한 방사선 원소들이 지구 전역에 골고루 확산되었고 수십 년 후에는 지상핵실험이 전면금지되어 이런 원소를 포함한 예리한 지층의 띠가 생성되어 수억 년 후에도 지층의 생성연대를 매우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1] 또는 20세기의 지층의 표지화석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삼기도 한다. 플라스틱은 20세기에 발명되어 유례 없이 널리 보급되고 거의 모든 해양퇴적층에 쌓이고 있고 잘 분해되지 않아 확실하게 20세기에 생성된 지층을 구분할 수 있다. 방사능 물질이나 플라스틱, 콘크리트같은 광물 외에 전통적인 표준 화석 개념으로는 닭뼈가 거론되고 있다. 품종개량을 동원한 가축화 과정에서 화석으로도 구별 가능한 변화가 생겨났으며 가장 많이 도축되는 것이 닭이므로 닭을 표준화석으로 삼자는 주장.
미국의 기후학자인 윌리엄 루디만의 경우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시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인들의 신항로 개척 역시 인류세의 시작 시점으로 제시된다.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로 구대륙과 신대륙 간에 여러 생물군의 이동이 시작되었는데, 떨어져 있는 대륙 간에 생물군의 이동이 대규모로 나타난 것은 판게아가 분열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에 주목한 의견이다. 또한 스페인 정복자들이 옮긴 천연두 및 전쟁, 원주민에 대한 가혹한 대우로 건강 상태 악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가 급감한 나머지 경작지가 산림화된 것 역시 주목된다.
4. 용어의 전망
현재로서 인류세를 지지하는 입장은 매우 강력하지만, 공식적으로 채택될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다. 인류세 개념의 채택에 대한 반론 역시 막강한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반론은 인류세가 너무 짧아서 별도의 지질시대로 확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2] 한 예로 지난 70년간 형성된 퇴적층의 두께는 1mm 정도에 불과하다. 시작 시점으로 거론되는 네 가지 시점 모두 저마다 설명이 충분하지 못한 점이 하나씩은 있다는 것도 문제이다. 학문적 용어를 채택하는 데에는 사회적 이슈로서 중요한가보다는 엄밀성을 더욱 중시해야 하므로, 인류세의 개념에 호의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학문적 용어로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 용어로 계속해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분명 인류가 지구에 전례 없는 엄청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특히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인류세 대멸종 사태는 기존의 어느 대멸종에 못지않게 규모가 크고 멸종 속도도 빨라서, 굳이 위의 인류세 지표가 아니더라도 미래의 고생물학자들이 이 시대를 지구의 생태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시대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인류세는 2012년 UN 리우 회담에서도 인류세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등,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큰 단어이다. 특히 인류세라는 용어가 중요한 점은 지구의 미래를 쥔 인류에게 경고를 하고 행동 변화를 촉구한다는 의미에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류세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일반 대중들이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높지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
[1] 그래서 이런 방사성 원소의 존재여부를 가짜 골동품이나 가짜 미술품을 판별해내는 지표로 쓰기도 한다. 반대로 2차대전 때 침몰된 군함의 잔해에서 나온 철강 등이 비싸게 팔리기도 하는데 이들은 핵실험 이전에 제련되어 이런 방사능 물질이 섞이지 않아서 미량의 방사능에도 영향받는 정밀계측기의 제작에 쓰인다.[2] 지질학적으로 하나의 시대는 수백, 수천만 년의 시간에 해당하기도 한다. 이에 비해 현재의 지질 구분에서 마지막 기간에 해당하는 홀로세는 고작 1만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인류세를 또 다시 분리하는 것은 홀로세를 굳이 나누어야 하냐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