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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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전협(全協)
이명
전국환(全國煥)
생몰
1876년 1월 1일 ~ 1927년 7월 10일
출생지
경성부 방산정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방산동)
사망지
경성부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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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전협은 1876년 1월 1일 경성부 방산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6년 농상공부(農商工部) 주사(主事)를 역임했으며, 1904년 일진회에 가입해 평의원(評議員)·총무원(總務員)과 전북지부회장(全北支部會長) 등으로 활동했고 이를 바탕으로 1907년부터 1909년까지 부평군수(富平郡守)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이 시기엔 친일파 인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병합되는 과정을 지켜본 그는 국권 회복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1909년 만주 해룡현으로 망명했다. 이후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기회를 엿보던 그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뒤 세계 정세가 변화하자 정세 파악을 위해 상하이와 미주 등지를 돌아보기로 결심하고 1918년 가을 일단 국내로 들어왔다.
이후 그해 12월 상하이로 출발한 그는 상하이에 머물던 중 1919년 1월 고종이 붕어한 후 조선 민중의 독립 의지가 고조된 것을 감지하고 미주행을 단념하고 1919년 2월 귀국했다. 이후 3.1 운동이 발발하자, 그는 3월 말 최익환(崔益煥)등과 함께 대동단(大同團)을 결성했다. 이들은 3.1운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3.1운동의 경과를 통해 독립달성을 위해서는 ‘조선 민족의 정신 통일과 실력 양성’이 급선무라는데 뜻을 모았고 이를 위한 실천방안으로 대동단을 결성했다.
이들은 당시 사회 각층을 황족(皇族)·진신(縉紳)·유림(儒林)·종교(宗敎)·교육(敎育)·상공(商工)·노동(勞動)·청년(靑年)·군인(軍人)·부인(婦人)·지역구역(地域區域) 등 11개 단(團)으로 분류하고, 이를 근간으로 전국적 조직을 계획하였는데, 전 협은 동단의 조직과 재정을 총괄하며 동단을 주도했다. 그러나 1919년 5월 23일 대동단의 선전활동을 주관하던 최익환 등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에 전협은 새로운 동지를 끌어모아 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기관지 〈대동신보(大同新報)〉를 발행하면서 계속 활동을 펴나갔다.
하지만 일제 경찰의 수사망이 압박해오자, 전협은 본부를 상하이로 이전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먼저 동단의 총재 김가진을 1919년 10월 10일 상해로 망명케 했다. 그리고 의친왕을 대동단의 수령으로 추진하여 상하이 망명을 추진했으며, 국내에서 제2의 3.1 운동을 계획하기도 했다. 11월 9일 의친왕의 상하이 망명 작전이 실행되었지만, 일제 경찰의 끈질긴 추적으로 결국 의친왕 일행은 11월 11일 만주 안동역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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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경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이 일로 인해 11월 19일 일본 경찰에 체포된 전협은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1927년 7월 가출옥했으나 7월 11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전협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