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민태자

 



'''당나라의 황태자
절민태자(節愍太子)
李重俊 | 이중준
'''

'''시호'''
절민태자(節愍太子)
''''''
이(李)
'''이름'''
중준(重俊)
'''부황'''
중종(中宗)
'''출생'''
? ~ 707년
1. 소개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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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당나라의 황태자이자 황족으로, 당중종의 아들이다. 시호인 절민태자는 예종이 추증한 시호이다. 이름은 이중준(李重俊)이다.

2. 생애


이중준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698년에 의흥군왕(義興郡王)으로 책봉되었다.
705년 중종이 복위한 뒤에 이중복은 위왕(衛王)으로 책봉되고 낙주목으로 임명되었으며, 좌위대장군으로 승진하고 양주 대도독을 겸임하였다. 이듬해에는 형인 초왕 이중복을 제치고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이중준이 황태자가 된 이유는 먼저 큰형인 의덕태자 이중윤이 참소를 당하여 측천무후에 의해 죽었고, 둘째 형인 이중복이 위황후로부터 참소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중준은 위황후의 소생이 아니었기에 위황후의 시기를 받았다. 게다가 위황후 소생의 안락공주도 이중준을 무삼사, 무숭훈과 더불어 노비놈이라고 매도하였다. 결국 이중준은 위황후 일파의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707년 쿠데타를 준비한다.
이중준은 이다조, 이사충, 이승황, 독고의지, 사타충의 등과 결탁하고, 좌우우림병과 천기 300명을 동원하여 무삼사와 무숭훈을 살해하고 무삼사의 무리 십여 명을 주륙하였다. 또한 성왕 이천리에게 궁문을 나눠 지키도록 하고, 자신은 위황후 모녀를 죽이려고 하였지만, 유경인 등에게 저지당하여 실패하였다. 중종과 위황후는 이중준의 부하들을 회유하여 이중준의 쿠데타 세력을 와해시킨다.
쿠데타에 실패한 이중준은 종남산으로 달아났는데, 중종이 조사진을 보내 이중준을 추격하였다. 이중준은 달아나는 도중에 결국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 이중준의 목은 장안으로 보내져, 위황후와 안락공주가 무삼사의 사당에 바쳤다. 그리고 이중준이 살해된 뒤, 위황후와 안락공주는 제2의 측천무후가 될 야심을 품고 710년에 중종을 독살했고, 당예종의 아들인 이융기(훗날의 당현종)에 의해 주벌되었다.
이중준은 예종이 즉위한 뒤에 황태자로 추증되었고, 절민태자(節愍太子)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