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재흠'''
'''鄭在欽'''

<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정재흠(鄭載欽)
<color=#fff> '''자 / 호'''
계삼(啓三) / 경암(慶菴)
<color=#fff> '''본관'''
청주 정씨#
<color=#fff> '''출생'''
1862년[1] 9월 21일
경상도 순흥도호부 수식면 가평동
(현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color=#fff> '''사망'''
1925년 3월 22일
경상북도 봉화군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재흠은 1862년 9월 21일 경상도 순흥도호부 수식면 가평동(현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1년 경북 봉화군 가평리에서 비밀결사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에 가입했다. 이후 같은 해 5월 30일 한영규(韓永奎)[2]·박병한 등과 함께 같은 면에 거주하는 홍재명으로부터 군자금 일천원을 모집하는데 참여하였다.
이후 1922년 4월 30일부터 10월 30일까지 김창선(金昌先) 등과 함께 경상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박세현(朴世鉉)·유문환(兪門煥) 등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는데 참여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혔다.
1923년 3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3년 10월 1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르다가 1924년 소위 제령 제10호에 의해 징역 7년 7월 15일로 변경되어 출옥했다. 1925년 3월 22일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정재흠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1866년생이라는 기록도 있다.#[2]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한영규와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