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모(독립운동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한모
鄭漢模'''

[image]
<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903년 3월 20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현하리
<color=#fff> '''사망'''
1997년 12월 8일
대구광역시
<color=#fff> '''이명'''
정섭모(鄭燮模)
<color=#fff>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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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한모는 1903년 3월 20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현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경 태을교(太乙敎)에에 가입하였다. 태을교는 전북 정읍(井邑)에 본부를 두고 교주 차경석 이하 60방주(方柱)를 두었다. 60방주는 각자 6인조를, 6인조는 각자 12인조, 12인조는 각자 8인조, 8인조는 각자 15인조를 조직하고 6인조는 30엔, 12인조는 15엔, 8인조는 10엔, 15인조는 5엔씩을 치성비(致誠費)라는 명목으로 모집하였다.
이들은 모금한 자금으로 조선독립을 기도하였다. 태을교는 1924년 갑자년(甲子年)을 기해 일제히 조선독립운동을 한다는 계획아래 다액의 군자금을 모집할 계획을 수립해 활동하였다. 정한모는 이를 위해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금과 교인 모집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1921년 5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1921년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취소로 면소 처리되었다.#
이후 태을교 포교 활동에 전념하다 1997년 12월 8일 대구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정한모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