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르 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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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1월 8일 ~1920년 10월 17일)
제라르 마티외 조제프 조르주 르망(Gérard Mathieu Joseph Georges Leman)
1. 개요
2. 생애
3. 리에주 전투
4. 평가


1. 개요


벨기에의 군인. 리에주 요새 전투를 지휘한 군인이자 자신의 조국을 구해, 벨기에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군사영웅이다.
최종 계급은 중장이다. 이 때 벨기에 군은 최종계급이 중장이었다.

2. 생애


제라르 르망은 1851년 벨기에 리에주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포병 대위출신이며 소령으로 전역했다. 르망은 리에주 태생이지만 가족들이 브뤼셀로 이주하여 르망은 거의 브뤼셀에서 일생을 보냈다. 그리고 1867년 벨기에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고 1869년 졸업 소위로 임관했다.1870년에는 보불전쟁에 참전했고 2년후인 1872년에는 중위로 승진했다. 그 후 1882년에는 벨기에 육군사관학교의 교장을 지내면서 당시 국왕이던 알베르 1세의 군사교관을 맡으며 평온하게 지내다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 2가지나 벌어진다. 하나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암살된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알베르 1세가 1914년 그를 고향인 리에주 요새의 지휘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3. 리에주 전투


당시 독일 제국슐리펜 계획이라는 계획 하에 프랑스를 조지기 위해 중립국이던 벨기에에 길을 열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만 벨기에의 국왕이던 알베르 1세는 거절했고 르망을 리에주 요새의 지휘관에 임명하면서 항복하지 말고 끝까지 저항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리에주 요새 자체는 유럽에서도 손에 꼽히던 요새였지만, 병사들의 질이 너무나 낮았다. 게다가 독일 제국군은 5만이 넘는 대군인데 비해 그가 지휘할 벨기에군은 겨우 보병 3만이 전부였다.
여기서 르망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리에주 요새의 장점을 살려 독일군이 포탄을 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요새에 오르려고 진격하는 순간 반경 50m에 들어왔을때 집중사격하고, 자전거부대를 활용하여 독일군을 기습하거나 독일군이 가까히 접근한 순간 착검돌격시키는 과감한 방식으로 독일군을 저지하며 큰 피해를 독일군에게 선사했다, 벨기에 국민과 프랑스 정부는 그의 활약에 환호했고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최고훈장인 레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물론 독일은 화가나서 르망을 제거하기 위해 첩자를 보내 암살하려했지만 실패. 하지만 제라르 르망 역시 독일군에 계속되는 공세에 결국 리에주 요새가 중과부적으로 함락됐고 포로가 되었다.
하지만 르망의 분전은 헛되지 않아 르망이 이끄는 벨기에군이 독일군을 저지하는 동안 프랑스를 포함한 연합국은 재정비할 시간을 벌어냈고 후에 영국과 미국이 참전하며 독일제국은 멸망한다. 전후 르망은 벨기에 최고의 군사영웅으로 칭송받으며 벨기에 왕국훈장, 레옹 도뉘르훈장, 스페인 무공훈장, 청나라 쌍용훈장을 받으며 영웅으로 대접받으며 지내다 1920년 69세의 나이로 벨기에의 영웅은 자신의 임무를 끝낸다.

4. 평가


벨기에에서는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영웅으로 평가되며 오래토록 벨기에 국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있는 군사 영웅이다. 하지만 이 밖에도 그와 휘하 군인들의 눈물겨운 희생덕에 연합국이 정비할 시간을 벌었고 독일 제국에 승리하는데 공을 세웠기 때문에 후대에는 그가 구 한것은 단지 벨기에 하나가 아니라 유럽 전체라고 할 수 있다. 후에도 그에게 사람들은 당신이 구한건 벨기에 하나뿐이 아니라 유럽 전체를 구한 유럽의 영웅이라며 극찬을 했다. 훗날 프랑스의 포슈와 함께 1차 대전을 상징하는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