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우(독립운동가)

 


성명
조성우(趙性佑)
본관
함안 조씨[1]
생몰
1851년 7월 17일 ~ 1929년 2월 15일
출생지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나호동
(현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2][3]
추서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조성우는 1851년 7월 17일 경상도 의흥현 내화면 나호동(현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집안이 가난한 탓에 짚신을 삼아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1919년 3.1 운동의 소식을 접하고 3월 26일 의흥면 장날 사람이 많이 모일 때 만세운동을 일으키고자 결심하였고, 누구와도 협의없이 3월 25일 우보면 나호동 산골에 들어가 홀로 만세운동에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3월 26일 오후 2시 30분경에 의흥면 장터에서 미리 준비해 간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배포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수백여 명의 군중들을 독려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중 이를 탄압하는 일본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4월 5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개월형을 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고통받다가 1929년 2월 15일 별세하였다.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26세손 성(性) 항렬.[2] 함안 조씨 집성촌이다. 박배근 전 대구직할시장, 박영언 전 군위군수와 독립유공자 박무조·박승조·박필조도 이 마을 출신이다.[3] 무슨 연유에선지 수형인명부에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북면 오동리'로 잘못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