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1875)

 


'''역임 지위'''
[ 펼치기 · 접기 ]



'''일제강점기 조선귀족'''
{{{#555555,#aaaaaa
'''남작'''

1915년 5월 원(願)에 의한 반납
}}}}}}}}}}}}



[반납]
<colbgcolor=#062861><colcolor=#eccd7a>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조희연
趙羲淵 | Cho Huiyŏn
'''
'''이름'''
조희연 (趙羲淵)
오무라 지사부로 (大村智三郞)
'''본관'''
평양 조씨 (平壤)
'''자'''
심원 (深源)
'''호'''
기원 (杞園)
'''출생'''
1857년 (철종 7년) 5월 26일
'''사망'''
1915년 7월 20일
'''직업'''
정치가, 관료, 군인
'''작위'''
[반납]
'''주요 경력'''
군부대신
궁내부 특진관
[반납]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1. 개요
2. 생애
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개화기 대한제국개화파이자 무신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2. 생애


1857년 5월 26일 조존혁(趙存赫)의 아들로 태어났다.
1882년 별시 무과에 급제#한 뒤 을미개혁김홍집 친일 내각에 들어가 개혁을 주도하였다. 그러다 아관파천유길준, 장석주와 함께 체포 명령이 내려져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 뒤 1910년 한일병합 때 일제에게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다. 또한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에도 임명되었다.
조선총독부가 체면 유지를 위해 작위를 반납할 것을 종용했고, 결국 1915년 5월 원(願)에 따른 반납으로 자식에게 세습되지 않았다. 사망 당시에는 적십자애국부인회 조선본부 평의원으로 있었다.

3. 둘러보기





[반납] A B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