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프루시안테

 


'''John Frusciante'''
'''본명'''
존 앤서니 프루시안테
John Anthony Frusciante[1]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70년 3월 5일, 미국 뉴욕 퀸즈
'''신장'''
173cm
'''학력'''
Musicians Institute(중퇴)
'''직업'''
기타리스트, 음악 프로듀서
'''장르'''
록, 훵크 록, 얼터너티브 록, 익스퍼리먼탈 록,
뉴웨이브, 일렉트로니카
'''활동'''
1988년 ~ 현재
1. 개요
2. 생애
2.1. 유년기 및 청소년기
2.2. RHCP 합류
2.3. 약물 중독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 앨범
3.2. EP
4. 여담


1. 개요


존 프루시안테는 미국의 락 밴드 Red Hot Chili Peppers의 전 기타리스트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1988년부터 1992년 그리고 1998년부터 2009년까지 활동하였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5개의 스튜디오 음반을 그와 함께 내놓았다.
프루시안테는 활동적인 솔로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11개의 솔로 앨범과 5개의 EP를 내놓았으며 그의 앨범들은 익스피리먼탈 락과 뉴웨이브 그리고 일렉트로니카 장르의 음악들을 어우르고 있다. 2015년에 프루시안테는 그의 일명 Trickfinger로 알려진 데뷔앨범 Acid House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또한 마스 볼타, 조쉬 클링호퍼, 조 랠리 등과 같은 여러 아티스트들과 같이 녹음하기도 했다.
18세의 나이에 그는 전설적인 밴드 Red Hot Chili Peppers에 들어왔으며, 1989년 앨범 Mother's Milk로 데뷔하였다. 그 다음 앨범인 Blood Sugar Sex Magik (1991)에서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프루시안테는 밴드의 엄청난 인기와 성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1992년에 밴드를 탈퇴한다. 그는 그 이후 모든 매체에서 잠적하였으며, 긴 시간동안 마약 중독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그동안 그는 Niandra Lades and Usually Just a T-Shirt (1994), and Smile from the Streets You Hold (1997)등의 솔로앨범을 발표하였다. 1998년에 그는 성공적으로 마약중독을 극복하였으며 같은 해 밴드의 보컬 앤소니 키디스의 설득으로 다시 RHCP의 일원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들의 다음 앨범인 Californication (1999)에서 그들은 1600만장의 대 히트를 거두게 된다. 그 뒤 그는 솔로앨범 To Record Only Water for Ten Days를 2001년 발표하게된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함께한 4번 째 앨범 By the Way는 2002년 발표되었다. 2004년엔 또 다른 솔로앨범을 발표하였다. 존 프루시안테의 솔로앨범에서는 RHCP에서 보여주지 않은 테크노, 일렉트릭 등의 장르를 시도하였다. 2006년에는 Stadium Arcadium을 RHCP와 함께 발표하였다. 2009년에는 조쉬 클링호퍼와 또다른 솔로앨범을 발표하였으며 그 해 지향점의 차이를 이유로 RHCP를 탈퇴하였다.
그리고 10년뒤인 2019년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공식 인스타그램으로 다시 RHCP에 복귀했음을 알렸다.

2. 생애



2.1. 유년기 및 청소년기


존 프루시안테는 1970년 3월 5일 뉴욕주 퀸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John Sr은 줄리어드 음대 출신의 피아니스트였으며, 그의 어머니 Gail 또한 결혼 전까지 유망한 보컬리스트였으며 결혼 후 존을 키우기 위해 커리어를 접게 된다. 프루시안테 가족은 애리조나 투싼과 플로리타에서 거주 하였고, 그의 아버지는 지방법원 판사로 2010년까지 일하였다. 그의 부모님은 이혼하였고 존은 그의 어머니와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에서 거주하게 된다. 프루시안테는 이탈리아 이주민의 후손이며 그의 증조부는 이탈리아 베네벤토 출신의 이주민이다.
산타모니카로 거주지를 옮긴 뒤 1년 뒤 다시 존과 그의 어머니는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하였으며, 거기서 존의 새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가 말하길 그의 새아버지가 그의 음악적인 재능을 보고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다른 LA의 많은 청소년들과 같이 존은 펑크락 씬에 물들게 되었다. 그가 9살 때는 그가 동경하던 밴드인 Germs에 빠져들었고 그가 10살 때는 독학으로 그 밴드의 모든 곡들을 카피하기 이르렀다. 그는 한손 바레코드로 모든 코드를 연주할 수 있었음에도 그가 엄청난 실력을 가진 것을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였다.
프루시안테는 제프 백, 지미 페이지, 데이비드 길모어 그리고 지미 핸드릭스 같은 불세출의 기타리스트의 곡들을 11살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프랭크 자파의 음악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몇시간동안 연주하기도 했다. 프루시안테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라는 밴드를 그의 기타 선생이 그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오디션을 볼 때인 1984년쯤 부터 듣기 시작했다.
그는 16살에 그의 부모의 허락을 맞고 검정고시를 치고 자퇴하였다. 부모의 지원에 힘입어 그는 음악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LA 내곽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는 Guitar Institute of Technology(현재 Musicians Institute)에서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곧 출석 후 수업을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 후에 곧 MI를 떠나게 된다.
프루시안테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공연을 15살 때 보았고, 그는 그와 동시에 빠르게 그들의 헌신적인 팬이 되었다. 그는 칠리 페퍼스의 기타리스트 힐렐 슬로박을 동경했으며 힐렐과 안면을 트게 되었고 힐렐의 사후 프루시안테는 힐렐의 대체자로써 밴드에 들어오게 된다.
존 프루시안테의 인터뷰에서 힐렐이 죽기 전 그와 나눈 대화를 밝히고 있다.

'''"힐렐은 내게 물었어요. "너는 칠리스(RHCP의 애칭)가 엄청 유명해지고 큰 무대에서 연주해도 그들을 좋아할 자신이 있어?" 나는 "아니요 그런 유명세는 모든 것을 망칠 거에요. 밴드로써는 좋은 일이지만 청중들은 달라진 점을 전혀 느끼지 못할테니까요." 라고 대답했어요. 그들의 쇼에는 고전적인 냄새가 강했고 모든 청중들은 칠리스가 점프하고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동안 좌절을 느끼지 못했죠. 저는 매우 흥분되어서 슬램 핏 하는 사람들 주위를 계속 돌았어요. 제가 마치 밴드의 일원이 된 것 같았고, 그 곳의 감성적인 청중들도 마찬가지였죠."'''

프루시안테는 데드 케네디스의 전 드러머인 D.H. 펠리그로와 1988년 초반에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가끔 잼도 같이 했으며 펠리그로는 그의 친구 플리를 그에게 소개시켜주었다. 프루시안테와 플리는 그들의 음악적 케미를 즉시 만들어내었으며, 플리는 나중에 그들이 처음 연주했던 날 플리가 처음으로 친 베이스 리프가 아마도 "Nobody weird like me"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동시에 프루시안테는 프랭크 자파의 밴드에 오디션을 보았으나 자파의 밴드가 마약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이 었기 때문에 마지막 오디션에서 마음을 바꾸게 된다. 프루시안테는 "나는 약도 하고 여자도 끼고 하는 락스타가 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그 것은 프랭크 자파의 밴드에서는 가능하지 않았죠"라고 훗날 얘기하였다.

2.2. RHCP 합류


힐렐 슬로박은 헤로인 남용으로 1988년 사망하게 되고 칠리 페퍼스의 전 드러머인 잭 아이언스도 힐렐의 죽음에 많은 충격을 받아 밴드를 떠나게 된다. 남은 멤버인 앤소니 키에디스와 플리는 그 시기를 인내하면서 밴드를 재구성하기로 한다. 그 둘은 펠리그로를 드럼 포지션에 넣고 드웨인 블랙버드 맥나이트(전 P-Funk의 멤버)를 기타포지션에 집어 넣었다. 하지만 그들 그룹과 음악적으로는 맞질 않았다. 플리는 그들의 스타일에 친숙한 프루시안테에게 오디션을 제안했다. 플리와 앤소니는 그의 오디션을 보고 그가 직전에 해고된 맥나이트의 대체자가 되는 것에 동의하였다. 플리는 그가 밴드의 일원이 되었다는 뉴스와 함께 그를 불렀고, 프루시안테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는 엄청난 기쁨에 그의 집을 가로지르며 소리를 질렀으며, 담장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사실 프루시안테는 쎌로니어스 몬스터와의 계약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플리가 제안한 즉시 그는 그의 계획을 바꿨다.
하지만 프루시안테는 Funk 스타일의 장르인 레드핫 칠리 페퍼스의 사운드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밴드에 들어오기 전 Funk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후에 플리와의 사운드가 어떻게 해야 좋게 나오는 지에 대해 연구하고 힐렐 슬로박의 플레이를 연구하였다고 한다. 몇 주뒤 펠리그로가 약물 남용으로 연주 실력이 떨어지자 해고 되었고, 곧 채드 스미스가 새로운 드러머로 들어오면서 라인업을 재편성하게 된다. 곧이어 그들은 그들의 첫번 째 앨범인 Mother's Milk를 1989년 발표하게 된다. 프루시안테는 슬로박의 스타일을 베끼는데 집중했다. 그의 스타일을 배제하고 일단 그룹의 스타일에 녹아드는게 먼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프로듀서인 마이클 베인혼은 프루시안테의 전형적인 카피연주를 거부했고, 메탈톤으로 기타를 연주하기를 바랬다. 이 것은 이전의 RHCP의 스타일과 전혀달라서 프루시안테와 기타 톤을 가지고 자주 싸웠다. 프로듀서와의 다툼은 프로듀서가 스튜디오에서 가지고 있는 지식과 영향력 때문에 프루시안테를 힘들게 하였다. 보컬 앤소니는 베인혼은 존에게 그룹의 특색인 섹시, 펑키를 배제하고 메탈톤을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회고했다.
RHCP는 프루시안테와 함께한 두번 째 앨범 Blood Sugar Sex Magik에서 프로듀서 릭 루빈과 함께했다. 루빈은 독창적이고 특별한 앨범을 구상했냈고, 그래서 멤버들을 할리우드의 낡은 맨션에(근처에서는 귀신나오기로 유명한 맨션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드러머 채드 스미스는 맨션에 감금되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 했다) 감금하고 레코딩을 하였다. 그들은 가끔 그 집에서 나왔는데, 나와서 하는거라고는 대마를 피우는 것 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앤서니 키디스는 힐렐의 죽음과 기타 등의 이유로 대마를 입에 대지 않았는데, 플리와 존이 서로 대마를 피며 맑은 정신으로 살고자하는 앤서니를 놀렸다고 한다.
Blood Sugar Sex Magik 앨범은 1991년 9월 24일 발매되어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빌보드 차트에 3곡이나 올렸으며 전세계적으로 1300만장이 팔렸다. 이런 기대하지 않은 성공은 RHCP를 단 한방에 락스타로 만들어버렸다. 프루시안테는 그의 갑자기 얻은 명성에 당황했고 명성의 무게에 힘들어했다. 앨범이 풀리고 나고 얼마 뒤에 프루시안테는 밴드의 유명세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앤소니 키에디스는 항상 콘서트 뒤에 존이 투덜거렸다고 말했다.

'''"존은 말했어요. 우리는 너무 유명하다고. 나는 이정도의 성공을 바라지 않았고 나는 그냥 2년전에 우리들 처럼 클럽에서 기타치고 하는게 자랑스러웠다고..."'''

프루시안테는 또 유명세에 대해 언급했다.

'''"너무 높아. 너무 멀어. 너무 빨라. 갑자기 한방에 모든일이 일어나서 나는 견딜수가 없어!"'''

그리고 나선 그는 밴드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것이 운명이라고 말이다. RHCP가 월드투어를 시작했을 때 이미 그는 마음을 먹었다. 1992년 5월 7일, 도쿄 클럽 "콰트로"에서 공연하던 중 멤버들에게 프루시안테는 밴드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떠나지 말라고 설득했으나 그는 다음날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그리고 그는 제인스 어딕션의 전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나바로에 의해 교체된다.

2.3. 약물 중독


RHCP 탈퇴 후 존은 오랫동안 마약, 특히 헤로인에 중독 된채 살았으며 마약에 빠져사는 동안 솔로 앨범 Niandra LaDes and Usually Just a T-Shirt(1994), Smile from the Streets You Hold(1997)[2]를 발매하였다.
이 암흑기 동안 RHCP는 중간의 기타리스트 데이브 나바로를 두었다가, 이후 보컬 앤소니 키디스가 프루시안테에게 펜더 62스트랫을 선물하며 재결합할것을 제안했고, 1999년 존의 복귀작으로 앨범 <Californication>이 발매된다.

3. 디스코그래피



3.1. 정규 앨범


  • Niandra Lades and Usually Just a T-Shirt (1994)
  • Smile From the Streets You Hold (1997)
  • To Record Only Water for Ten Days (2001)
  • From the Sounds Inside (2001)
  • Shadows Collide With People (2004)
  • The Will to Death (2004)
  • Inside of Emptiness (2004)
  • Curtains (2005)
  • The Empyrean (2009)
  • PBX Funicular Intaglio Zone (2012)
  • Enclosure (2014)
  • Renoise Tracks 2009-2011 (2015)
  • Maya (2020)

3.2. EP


  • Estrus EP (1997)
  • Going Inside (2001)
  • The Brown Bunny (2004)
  • DC EP (2004)
  • Letur-Lefr (2012)
  • Outsides (2013)
  • 4-Track Guitar Music (2015)
  • Foregrow (2016)

4. 여담


탈퇴 전 RHCP 멤버들과의 불화설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앤서니와 존 사이에 텐션이 있던 적이 많았다. 가장 좋은 예가 극악무도했던 1992년 SNL 라이브 Under the Bridge. 팬들 사이에서는 '존이 작정하고 무대를 망치려고 한 것이다' VS '존이 마약에 취한 상태로 실험정신에 도취되어 마음대로 코드를 바꾼 것이다' 등등 말이 많지만 앤서니의 자서전인 Scar Tissue에 따르면 존은 갑자기 인트로부터 앤서니 자신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키로 연주했고 자신은 어떻게든 맞다고 생각하는 키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앤서니는 그 무대에서의 시간은 고문과 같았다고 고백했다. 자신은 라이브로 수 백만 명의 관객 앞에서 맞지도 않는 이상한 키로 노래를 싸지르고 있고 정작 이 모든 원흉의 당사자인 존은 그늘 뒤에서 조용히 연주하고 있는 걸 보자니 이 새끼가 자신을 일부러 엿먹어 보라고 한 것 같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1. 처음 곡의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2. 1:47초 경의 릭(Lick)이 환상적이라고 직접 기타로 시도해보는 팬들이있다.
3. 2:02초 경에 존이 Verse 2의 코드인 A를 "실수로" 연주했다가 다시 E로 돌아온다.
4. 3:35초 경부터에 존이 내지르는 호!!!!!!!가 별미.
5. 4:35초 때부터 앤서니의 제대로 빡친 얼굴을 볼 수 있다.
팬들은 Under the Bridge 바로 전의 Stone Cold Bush 무대에서는 존이 정상으로 연주했던 것을 빌미로 Stone Cold Bush 무대에서 앤서니가 존의 엉덩이를 걷어찬 것에 대한 존의 보복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고 그냥 존이 헤로인에 너무 취해서 타이밍 안좋을 때 즉흥연주를 해버렸다는 설도 있는데 이 둘을 합친 복합적인 이유일 수도 있다. 존이 이 당시 헤로인 정키였던 것도 맞고 처음부터 밴드의 방향과 존의 그것이 맞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니 당연히 팀 내에 긴장감과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RHCP 멤버들과 팬들 사이에서도 음악적 천재로 여겨지고있다. 2016년 앤서니 키디스의 인터뷰에 따르면 앤서니는 자기 생애에서 존처럼 창작/작곡을 쉽게 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한다. 앤서니에 따르면 존은 같이 음악 만들기 정말 쉬운 사람이었다고한다. 말인즉슨, 앤서니가 새 노래 가사를 끄적이면 옆에서 존이 즉석에서 가사에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어서 어느새 둘이 같이, 앤서니는 노래를 하고 존은 기타를 치며, 작곡을 하고 있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앤서니가 "이런 느낌을 더하면 어때?" 하면 존이 바로 "그 느낌"을 더해주었다고.
한편, 존의 인터뷰에 따르면 존은 앤서니의 음악적인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앤서니는 악보를 볼 줄 모르고 앤서니 특유의 랩같은 노래에서 현재의 멜로디같은 노래 부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근데 이건 사실이라서 뭐라 할 말이없다.
RHCP의 음악적 특색이 폭발하던 기간에 멤버간의 단합이 끝내주기는 했다. 아래는 Night Music 프로그램에 방영되었던 이들의 공연으로 Subway to Venus, Sexy Mexican Maid, 그리고 Back in Black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다들 똘기 충만하지만 무대를 너무나 즐기고 있다는 것이 보여준다. 존의 솔로를 보다보면 존이 기타와 말하고 있는지 기타를 대신해서 말을 하고 있는 지 분간이 안간다.

팬들 사이에서도 존은 예수나 신으로 불리우긴 하는데 그만 큼 그의 작곡 / 연주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예수 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들도 존재한다. 게다가 RHCP 팬들은 락 황금기였던 80, 90년대 락을 듣고 자란 세대들이 많은데 락 좀 듣는다하는 그들 사이에서도 추앙받을 정도이면 말 다했다. 사기급인 음악적 재능, 데뷔 초 뛰어난 외모, 그리고 완벽한 무대 체질임에도 유명세를 얻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약물 중독에서도 벗어난 후 현재는 그가 원하는 음악을 하면서 종종 앨범도 내고 연주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하는, 그가 그토록 원했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있는 듯하다.
[image]
참고로 그의 팔은 흉터로 가득한데 집이 불에 탔던 영향도 있지만 하도 팔에 마약 주사를 많이해서라고 한다. 앤서니의 자서전에 따르면 당시 팔에 흉터가 너무 많아 괴저가 생겼으며, 잘못하면 '''팔을 절단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고 한다.'''
딸기 마시마로의 등장인물 아나 코폴라가 키우는 개의 이름이 이 뮤지션의 이름에서 따온 프루시안테다.[3] 작가 바라스이 또한 알아주는 락덕후라고.

[1] Frusciante의 실제 발음은 '''프루샨테이'''에 가깝다.[2] 이 앨범은 마약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낸 앨범인데 그의 흑역사 중 하나로 피치포크 미디어에서 빵점을 받기도 했다.[3] 사쿠라기 마츠리의 애완견 이름 또한 존이며, 이 두 이름을 합치면 존 프루시안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