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증
1. 개요
신라시대 후기에 살았던 스님. 생몰년은 824~882로 신라 헌덕왕 16년, 경주에서 태어나 882년, 봉암사에서 입적했다.
2. 생애
태어나기 전부터 육이육시, 명승의 자질이 있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데, 어머니가 태몽으로 한 마리 용이 승려가 되겠다고 청했다는 꿈을 꾸었고 400일이 넘는 긴 시간동안 태어나지 않다가 부처가 태어난 음력 4월 초파일에 태어났다.
태어난 뒤에도 비범했는데 모유수유를 하려 하면 목이 쉬어라 울어대던 중 지나가던 한 승려가 "이 아이는 명승의 자질을 타고났소. 키우려거든 어머니께서 매운 것과 비린 것을 먹지 말아야 하오."라 충고해 별 탈 없이 성장했다.
9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사망하고 승려가 되겠다고 어머니에게 청하나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석가모니 역시 출가를 위하여 가족과의 연을 끊었다고 얘기하며 부석사에 출가하나 이때 어머니의 급병으로 인해 잠시 세속에 돌아오며 어머니가 다 나은 뒤 17살의 나이로 다시 승계에 발을 들이며 수행한다.
이후 깨달음을 얻고 큰 승려가 되나 차마 남의 스승이 될 용기가 없어 고민하던 중 지나가던 한 나무꾼의 한 마디에 큰 울림을 받고 모든 이들에게 선종의 가르침을 전하며 더욱 훌륭한 스님이 된다. 경문왕이 지증을 흠모하여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하지만 경문왕은 그를 더욱 중히 여겼다고 한다. 또한 지증은 사람들에게 설법할 때 빼고는 모든 일을 스스로 행했다고 한다.
일생동안 청빈하고 무욕의 삶을 살아가서 말년에 왕이 병려나무로 만든 가마를 줄 때에도 '나에게 아직은 멀쩡한 다리가 있으니 병자가 있으면 그들을 태우고 가세.'라고 얘기했다. 그 뒤 결국 지치고 발병이 나서 남은 길은 가마에 올라타고 가야 했고 희양산의 봉암사란 사찰에서 남은 1년을 보내다 882년 12월, 설법 이후 가부좌를 튼 채 열반했다. 세수 59세, 법랍 43년의 날이었다.
그의 죽음에 많은 신라 사람들이 슬퍼했고 특히 당시 시대를 살아간 명필 최치원은 울면서 '''"오호라! 별들은 하늘나라로 되돌아가고 달은 큰 물에 빠졌구나!"'''란 글을 올리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지증을 기리는 비석에 새겨질 글을 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