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수류

 


'''안국장군(安國將軍) 벽중왕(辟中王) 찬수류'''
'''작위'''
벽중왕(辟中王)
'''직위'''
안국장군(安國將軍)
'''성씨'''
찬(賛)
'''이름'''
수류(首流)
'''생몰연도'''
? ~ ?
1. 개요
2. 생애
2.1. 남제서 기록
2.2. 북위를 무찌르다
2.3. 제후왕에 봉해지다
2.3.1. 관작의 의미


1. 개요


백제 왕조의 제후왕. 백제 벽중(辟中) 지역을 분봉 받았다. 제24대 왕 동성왕때 활약한 제후. 백제의 유물 '계유명삼존천불비상'[1]에서 '찬불(贊不)'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로 보아 찬(贊)을 성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찬불에게 성씨가 따로 있었거나 혹은 성씨가 없어 찬(贊)이 아예 이름의 일부였을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실한 건 아니다. 한편 찬(贊)의 중고한어 발음이 tzans인데 이를 대성팔족 중 하나인 진(眞)에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 진씨의 다른 표기인 저미(姐彌)가 tziAmiE로 발음되기 때문. 다만 그러면 왜 이미 확립된 중국식 한자 표기인 진(眞)이나, 참의 음차로 추정되는 조미(祖彌), 저미(姐彌)가 아니고, 참과 비슷한 음차인 찬(贊)을 사용했는지가 의문이다. 어쨌거나 다른 대성팔족인 사씨, 해씨, 목씨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만큼 정계에 유망한 가문이었을 것은 확실하다.

2. 생애



2.1. 남제서 기록


사법명은 삼국사기삼국유사 등 한국의 사서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 중국 사서 《남제서》에 등장한다.
찬수류는 분명히 백제의 뛰어난 장수였을 것이고 벽중의 왕이었던 만큼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을 줬겠지만 아쉽게도 매우 단편적 기록 밖에 없다.

2.2. 북위를 무찌르다


서기 490년 북위가 백제를 침공하자[2] 찬수류는 동성왕의 명을 받아 사법명, 해예곤, 목간나와 함께 북위군을 대파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겼는지는 알 수 없다.

2.3. 제후왕에 봉해지다


백제는 천자국 제도를 따라 왕족 및 공신에게 작위를 하사해 분봉(分封)을 실시했다. 하지만 남제 등 중국 왕조들에겐 제후국을 자처했음으로 그들에게 백제가 내린 작위를 인정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즉 '내가 내린건 임시로 한거니까 님들이 허락 해주셈!' 같은 느낌. 그리하여 찬수류는 ''''안국장군 벽중왕(安國將軍 辟中王)''''의 관작을 제수받았다.

2.3.1. 관작의 의미


안국(安國)은 '나라(국)를 안정(안)시키다'란 의미. 벽중은 구 마한 지역, 즉 현 전라북도 김제시 일대의 지역명이다. '나라를 안정시킨 장군'이자 '벽중의 왕'인 셈.
[1] 673년 건립.[2] 이에 대해선 동성왕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