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1. 개요
차를 마실 때 쓰는 잔 또는 사발. 다구의 일종이며 다기(茶器)라고도 한다.
2. 다완(茶碗)
다완(찻잔) 문서 참조.
3. 개완(蓋碗)
개완 문서 참조.
4. 서양식 찻잔
[image]
초창기 서양의 다기의 모습 (18세기)[1]
[image]
조지 던롭 레슬리가 1885년에 그린 그림속의 다기의 모습[2] 찻잔을 비롯한 다기의 패턴 디자인은 중국식이지만 서양식 찻잔의 전형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초창기 서양식 찻잔은 중국에서 직수입한 청화백자나 오채자기 위주였기 때문에 형태도 동양의 찻잔과 똑같았다. 그래서 18세기에 그려진 정물화 등을 보면 중국산 도자기 다기들과 서양식 은제 티스푼, 설탕집개가 함께 그려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18세기 중엽 이후부터 자체적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서양식 찻잔하면 떠오르는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양식 찻잔은 동양과는 다르게 유려한 형태를 선호하며 다양한 색깔의 유약을 바른다. 받침과 한 세트를 이루며 보통 이런저런 차를 마시는 데 필요한 도구들과 함께 한 세트로 팔린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서양식 찻잔은 동양식에 비해 입구가 넓고 높이가 낮다. 이는 기본적으로 차향이 넓게 퍼지게 하려는 목적인데 서양에서는 주로 홍차를 마시고, 홍차는 다른 차들에 비해 맛보다는 향이 더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이런 형태가 나왔다.[3] 한편으로 높이가 낮고 넓은 잔은 찻물이 공기와 닳는 면이 넓기 때문에 차가 더 빨리 식는다는 점도 있는데, 차를 불어서 식히거나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시는걸 결례로 여기는 영국의 매너에 따라 선호되었다. 반면에 추운 지방인 러시아쪽에선 차가 빨리 식지 말라고 벽이 두껍고 입구가 좁은 찻잔이 발달했으며, 미지근한 차를 싫어하는 터키, 카프카스쪽에서는 찻잔을 유리로 만들고 허리가 잘록한 형태의 찻잔이 널리 쓰인다.
4.1. 찻잔받침
'''찻잔받침'''은 찻잔과 한 세트로 여겨지지만 영어 이름이 소서(saucer)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소스 등을 담을 수 있는 작은 그릇이었다. 19세기 생활상을 담은 '''초원의 집'''시리즈 소년농부 편에서도 이러한 시대상을 나타내는 대화 내용이 있다. 20세기까지는 이 찻잔받침에 차나 커피를 따라 마시는 것이 흔한 관습이었다. 즉 찻잔과 애초부터 세트였던 것이 아니라 찻잔과 함께 차를 따라 마실 수 있는 작은 그릇을 함께 서빙하던 것이 굳어져 하나의 세트가 된 것이다.
[image]
콘스탄틴 마르코브스키가 1914년에 그린 그림에서는 차를 받침에 따라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용 이유는 표면적을 넓혀 빨리 식혀서 먹기 위함이다. 이후 이 관습이 사라지며 장식으로만 남게 되나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이 용도.# 다만 '찻잎을 차에 바로 넣던 시절 맑은 윗물만 따라 먹으려는 이유다', '찻잔에 손잡이가 없던 시절 뜨거운 찻잔을 받치기 위해서다' 등 다른 설도 있다.#
[1] 자세히 보면 차의 색깔이 홍차가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주로 수입하던 차는 녹차나 영국인들이 Bohea tea(보히 티)라고 불리는 일종의 반발효차였다. 이 보히란 말은 중국 무이산의 발음이 와전된 것인데 이 지역은 현재도 우롱차의 명산지이자 정산소종의 고향이다. 이후 대세가 홍차로 바뀌었음에도 녹차는 고급차로 여겨져서 빅토리아 시대까지만 해도 차를 우릴때는 홍차와 녹차 혹은 우롱차를 일정비율로 섞은 것을 선호했다.[2] 영국에서 현재도 만들어지고있는 시누아즈리양식의 그림이 들어간 다기이다. 초기 영국 도자기 회사들이 중국산 자기를 모방하기 위해 일부러 중국풍의 그림을 그려넣기 시작한 것이 양식으로 굳어졌는데 현재도 willow pattern이라고 불리는 고전 디자인이다.[3] 반면에 커피잔은 향이 쉽게 날아가지 않고, 식지 말라고 높이가 높고 입구가 좁아서 구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