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완(찻잔)

 


1. 소개
2. 설명
2.1. 특징
3. 분류
3.1. 카라모노(唐物) 중국
3.2. 코라이모노(高麗物) 조선
3.3. 와모노(和物) 일본
4. 여담
5. 관련 문서


1. 소개


[image]
한글이 적혀 있는 찻잔[1]
찻잔의 일종. 말차형태의 녹차를 개어 마시는데 주로 쓰인다. 엽차용 다기에 이것과 비슷한 것이 끼어있는 경우가 잇는데 이는 다완이 아닌 퇴수기로써 보통 끓는물의 온도 조절용이나 다기를 헹구는 데에 쓰는 물을 받아두는 용도로, 잠시 물을 옮겨놓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2. 설명


일본에서는 12세기 말 송나라에서 차가 처음 전래 되었을 당시에는 중국혹은 고려에서 수입한 고급 자기그릇 등을 카라모노(唐物)라 부르며 다완과 찻그릇으로 사용하였고 이러한 문화는 점차 사치스러워졌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사치에 대한 반발로 소박한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와비 정신에 입각한 다도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뒤 조선에서 만든 이도다완을 찾아 들여왔고, 이 이도다완을 포함해 다기 하나 하나가 매우 높은 가치를 가진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도 다완 하나가 성 하나랑 같은 값어치일 정도.[2]현대에 와서는 도쿄 시내의 빌딩과 이도 다완 하나를 바꾼 사례가 생겼다. 그래서 차솥을 내놓으면 살려주겠다는 말에 차솥이랑 같이 폭사했다는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가 하면 임진왜란 때 일본군 장수들이 도자기 굽는 장인들을 포로로 잡아들이려고 혈안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수많은 작가들이 이도다완과 찻그릇을 만들고 도리어 이것이 본국인 한국으로 역수입되기도 한다. 또한 이천 도자기축제 때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와 이도다완을 쓸어가는 광경도 가끔 볼 수 있다. 흠좀무....
처음 일본은 중국의 천목다완을 이용했지만 비싼 가격으로 인해 사치 문화가 되자 이에 반발한 센노 리큐에 의해 부족함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한 와비 문화가 성형하게 되었는데 그때 조선의 이도다완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지금까지도 정확한 기원과 제작법이 밝혀지지 않은 유일한 도자기라고 하여 환상의 다완인 것 처럼 하지만 사실 오랜 노력 끝에 대부분의 실체가 밝혀졌다. 아마도 대부분의 이도다완은 흙의 성분 분석결과 경상도 남동해안 그 중에서도 특히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천면 혹은 부산의 왜관에서 일본 상인들의 주문과 치밀한 지도 아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더군다나 일본에서는 지금까지도 이도다완을 포함한 한반도에서 제작된 다완들은 고라이자완(고려다완)이라고 칭한다. 이것이 유지되다가 야나기 무네요시민예론에서 이도 다완이 조선의 백성이 밥그릇으로 쓰는 막사발이라는 주장이 유행하면서 조선의 것이라는 의미로 정착되었다. 이후 이 주장은 완전히 부정되었다.
일본에서 이도다완이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는 한마디로 주문이 끊겼기 때문. 센노 리큐가 라쿠다완을 개발하고 일본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다완들을 재평가하면서 중국이나 고려물건보다 일본산 다완에 눈길이 끌렸고, 또한 일본 도자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팔리는 다완의 양이 달라졌기 때문. 임진왜란 이후에도 간간히 조선에서 건너간 고려다완들이 보이지만 규슈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양의 다완의 공급에 더불어 이미 건너간 명물이 포화상태에 올라갔고 에도시대 중기부터는 규슈의 아리타나 교토의 쿄야끼 같은 하얀 백자에 화려한 채색이 더해진 다완이 유행하면서 점차 이도다완의 유행이 줄어들었다.
일본 특히 센 리큐는 다완이 조선이나 중국에서만 생산되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일본만의 다완을 만드려고 했는데 라쿠다완은 그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라쿠다완은 일본에서 조지로(長次郞)라고 불린 한 외래인[3]이 만든 것이다. 조지로는 원래 기와를 만드는 장인이었는데 센노 리큐는 그의 기술을 다완만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여겨 여러번의 실험 끝에 마치 유약이 타서 나온 것 같은 무광의 차분한 지금의 검은 라쿠다완(쿠로라쿠다완)인 것이다. 이 검은 라쿠다완은 리큐가 추구하던 와비차에 가장 적합한 다완으로 여겨져서 이후로도 다도에 제1은 라쿠 제2는 하기 제3은 카라츠라는 말이 나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다완에 감탄해 자신의 저택이던 주라쿠다이(聚楽第)의 글자를 내려 라쿠(楽)라는 이름이 대대로 이 가문의 성이 되었고 이후 일본 다완의 대표작이 되었다. 이후 라쿠는 이 집안의 성이 되어 대대로 전해지는데 대대로 당주는 라쿠 키치자에몬(樂吉左衛門)이라는 이름을 습명하며, 은퇴 후에는 아호로 불린다. 현재의 라쿠다온은 센노 리큐후루타 오리베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용 도검 감정사이자 에도시대 문화 부흥을 이끈 혼아미 고에츠를 거쳐 3대 당주 도뉴(道入) 때 작풍이 크게 진작되고, 현재 당주인 15대는 유럽에서도 초대받는 등 대대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전 서술에서는 조선의 도공 때문에 기술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라쿠는 조선 도공이 주로 끌려간 규슈나 그 인근과는 전혀 다른 교토 문화권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도예이며, 물레를 돌리는 다른 도예와는 달리 흙을 쌓아 올려 빚어 만드는 것이다.
고려 다완에서 최고로 치는 것은 바로 매화피 혹은 석열과 카이라기라고 불리우는 굽 부분의 유약 뭉침 현상인데 일본 최고의 다완이라 불리우는 기자에몬 대이도[4] 기자에몬의 경우 강약의 크고 작은 석열이 아름다우며 정면에서 보았을때 가이라기를 포함한 풍경이 정말 좋고, 불에 의해 살짝 흘러내린 듯한 모습이 와비와 사비의 정신을 잘 표현한다고 한다. 유명한 표현으로는 "아무것도 없다. 자신 마저 비워낸 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를 담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2.1. 특징


고려다완이 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완벽을 넘어선 불완전이다. 어딘가 유약이 덜처리되어도 타졌어도 심지어 조그만 돌 때문에 파여도 물이 새지 않는 이상 용서가 되며 오히려 그런 점에서 나오는 매력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문외한이 보기에는 흙 알갱이가 보이고 색처리도 얇아 대충 만든 듯 하지만 심미안이 있는 사람은 경덕진의 어용자기 1000개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하는 예술작품이다.
열처리는 낮게 해서 두들기면 목탁 두드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나며 충격에 약하다. 물론 열처리를 높게 한 견수 다완도 있다. 하여튼 열처리가 낮기에 차를 담그면 전체적으로 훈훈하게 퍼져 덜 뜨겁기에 들기가 편하다.
용도가 말차를 위해서 이기에 넓직한데 물을 담가두면 옹달샘 또는 우물안에 물을 보는 들한 풍치가 있다. 내부 석열을 중시하는 분도 있는데 내부 유약이 덜가 파인 홈은 말차 제조시 거품이 더 잘나기에 선호하는 것이다.
사용할수록 변화하는 것도 특징이다. 위에도 언급했듯 석열과 유약처리가 덜 된 부분으로 찻물이 들어가다 보니 찻물이 스며들면서 점점 색이 진해진다. 그렇기에 장시간 사용하면 색감이 진해지고 세월의 묻음이 드러난다.

3. 분류


다완을 분류하는 방법은 원산지, 형태 등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분류는 먼저 중국(唐物 카라모노), 조선(高麗物 코라이모노), 일본(和物 와모노)의 원산지로 구분하고 그 다음 산지와 형태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일본 다도를 처음 접하면서 수십가지 다완 종류에 어리둥절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 무로마치시대부터 에도시대에 걸쳐 유명한 다도가들이 정한 법칙이 불문율로 정해진 경우도 많아서 다소 불명확해 보이는 경우도 많다.
일단 형태별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 사발 모양의 전통적 완(碗)형 다완이 있으며, 거의 접시 같은 평(平히라)형 다완, 그리고 통이나 항아리 같은 통형다완이 있다. 물론 이것도 세부적으로 나누면... 한도끝도 없으나 대체로 여름에는 조금 빨리 식는 평형다완, 겨울에는 보온성이 높은 통형다완을 선호한다.

3.1. 카라모노(唐物) 중국


  • 천목다완(天目茶碗)
카라모노의 왕. 일본어로는 텐모쿠. 무로마치시대 가장 귀중한 대접을 받던 다완으로 주로 중국 강남지방 특히 복건성 등에서 유래하였다. 검고 투명한 유약을 기본으로 하며 아가리 부분은 구울 때 겹친 흔적을 감추기 위해 고급스럽게 은이나 금으로 된 테를 두르기도 하였다. 이건 고급 고려청자도 마찬가지. 일반적으로 현재 사용하는 다완보다는 작은 편이며 중국 송나라에서 유행했던 말차를 증명한다. 워낙 일본인들이 좋아했기 때문에 전세계의 중요한 천목은 다 일본에 있다.
천목다완 중에 가장 귀중한 천목은 구울 때 유약이 우연한 변화에 의해 검은 바탕에 광채를 띄는 푸른색, 혹은 무지개색 점점이 박힌 요변천목이다. 실제로 보면 마치 밤하늘에 별이 박혀있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현재 완전한 요변천목다완은 단 3점으로 모두 일본의 국보지정되어 있으며[5], 약간 요변이 되다 만 것 하나도 일본 미호 박물관(MIHO MUSEUM)에서 소장하고 있다. 다만 정식 요변천목으로 치지는 않지만, 중요 문화재로는 지정되어 있다.
(위의 세이카도분코 미술관에서 소장중인 현존 최고의 천목다완이 2018년 4/24일부터 6/17일까지 전시중이다.)
역사상 전해지는 요변천목은 모두 8점. 그중 하나는 혼노지의 변 당시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소실(...) 하나는 고보리 엔슈의 것이라고 전해지나 실종. 2차 대전 이전까지 일본에서 전해지는 요변천목은 총 6점이라고 기록되며 전쟁을 거치며 3점이 사라졌다. 사라진 것은 오와리 도쿠가와가 소장품, 백작 사카이가 소장품, 후작 마에다가 소장품이며 나머지는 현재 미술관과 사찰 등에 소장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2016년 12월20일 일본판 진품명품인 TV도쿄의 '운이 활짝! 무엇이든 감정단(開運!なんでも鑑定団)'에 미요시 나가요시의 후손이라는 자가 나타나 전해지던 것이라며 요변천목을 가지고 나와 감정가 2500만엔을 받았으나 현재 위조 여부로 격렬한 논쟁이 오가는 중.
정작 중국에는 우연히 항저우에 있는 남송의 궁궐터를 발굴하던 중 요변천목의 2/3에 해당하는 파편을 찾아냈다. 이것이 원산지에 소장된 유일한 요변천목(...) 일본과 중국에서 요변천목을 재현하려고 했으나 지금까지 완전한 복원은 실패하고 비슷한 것만 만들었으며, 어쩌다 요변천목 비슷한 것이 나오면 아무리 듣보잡 작가의 것이라도 가격이 수천만원대를 호가한다.
한편 요변천목 아래에 해당하는 유적천목(기름이 튄 것처럼 황금빛 점이 박힌 천목), 대모천목(바다거북 등껍질인 대모무늬를 내는 천목)이 각각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밖에 여러 천목이 중요문화재로 지정 중.
2017년 6월 19일에 아이치현 세토 시에서 9대째 천목다완의 재현에 힘 쓰고 있는 도예가인 나가에 소키치(長江惣吉)가 원본 천목다완에 가장 근접하게 재현하는데에 성공하였다. 나가에 소키치 도예가는 위에서 언급되는 일본판 진풍명품에서의 천목다완 이슈에 대해서도 전문가로서 인터뷰에 응해, 문제의 천목다완이 18세기에 유럽에서 사용된 스피넬 안료를 사용하여 제작된 가짜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나중에 중국의 여성 도예가가 자신이 만든 모조품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그릇 아래의 도예가의 인장까지 같으며 실제 자신의 유사한 작품들을 공개함으로써 결국 모조품인 것으로 결론이 낫다.
  • 청자다완
  • 벡자다완
  • 시로코라이(白高麗)다완, 에코라이(絵高麗)다완
일부 다완 중 "고려다완 인 것 같은데 분류하기 어려운 것..." 들을 시로코라이, 에코라이라고 분류해놨으나 연구 결과 현재는 명의 복건성 덕화요나 자주요의 작품으로 판별된 것으로 지금은 카라모노로 분류한다.

3.2. 코라이모노(高麗物) 조선


코라이다완(고려다완)의 이름을 나눌 때 "우리 것인데 왜 일본식 이름으로 읽느냐"며 억지로 한국식 한자 발음대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안된다. 오히려 일본식 발음이 이 다완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를 알려주는 힌트가 되는 경우 예를 들어 토토야다완(斗斗屋)의 경우 한자 그대로 두두옥이라고 읽는 경우가 있는데... 과거 표기는 어옥(魚屋)이었다. 센노 리큐가 생선가게에서 발견했다는 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설도 많다. 이도다완 역시 우물 같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인명이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렇기에 정호다완이라고 읽으면 안된다.
게다가 조선다완이라도 기본적으로 처음 일본에 건너간 것들 외에 지금 일본에서 전해지는 것은 대부분 주문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연히 흘러들어가거나 사신이 두고 온 도자기 중 말차에 적합한 것을 일본 상인이 조선 도공에서 주문한 것들과 아예 도면까지 그려가서 제작한 조선 도공이 한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쇼마루다완으로 분명 조선다완이지만 조선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완이다. 때문에 아래에서도 일본음독을 그대로 살려서 표기하되 한자를 평기한다.
  • 이도(井戸)다완
고려다완의 왕. 무로마치시대 까지는 중국의 텐모쿠다완이 최고였으나 전국시대와 모모야마시대까지는 이도다완이 다도를 지배했다. 대표적 다완으로 사발형태로 되어 있으며 삼각형 모양 덕분에 손에착 잡히며 그리고 다완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 밑부분은 유약들이 뭉처 오돌톨하게 되어 있는데 이부분 때문에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일본도의 손잡이와 비슷한 감촉이라 매우 선호했다고 한다. 물을 담가두면 옹달샘에 담가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국보로 선정된 것도 있고 다완의 왕으로 칭송하면서 가장 귀하게 치는 그릇이다. 그래서 가짜도 많고 가장 많이 시도되는 경우이다.
현재는 한국 경남 동남해안의 흙을 사용해서 구우며 이도의 약속이라는 부르는 비파색 표면, 죽절굽, 매화피(카이라기), 반시계방향 물레방향을 지키는 것만 이도다완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이도를 재현하는 사람들도 흙이 다르면 이도형, 이도 모사다완이라고 분명히 부른다. 물론 가짜는 그런 것이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이도는 주로 오이도(大井戸)이며 보다 작은 고이도(古井戸 혹은 小井戸)와 함께 유약이 다소 푸르고 크기도 작은 아오이도(青井戸), 그리고 엄격히 따지면 이도는 아니지만 이도와 비슷한 이도와키(井戸脇)로 나눈다. 특히 고이도는 단순히 크기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주문품이 아닌 본래 실 사용의 원 이도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분류된다.
  • 코히키다완
한국에서는 분청사기 덤벙다완으로 분류되는 다완이다. 말그대로 유약을 덤벙 담가서 만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국에서는 어용자기로 쓰이던 조선백자와 비슷하게 청자태토와 백자유약을 이용해서 만들었고, 유명한 호조고비키(寶城粉引, 보성 덤벙이)의 경우 다완을 만들기 위해 재벌구이도 아닌 삼벌구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 이 방법이 고안되고 불과 50여년 동안만 제조되었다. 그후 백자가 보편화되고 더이상 이런 번거로운 방법으로 백자를 흉내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제작방법이 잊혀졌다가 최근에야 복원되었다. 잘 만들어진 코히키 다완은 물꽃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현상을 일으키는데,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유약 사이의 태토로 물이 스며들면서 아름다운 물방울 무늬가 아주 잠깐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일본에서는 이때문에 명물로 여겨졌으며, 깔끔하고 유약을 어떻게 담그냐에 따라 유약이 묻지 않은 태토로 독특한 문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현대미학적으로도 아름답다.
  • 무지코히키다완
  • 미시마다완
한국에서는 분청사기로 분류되는 다완들로 주로 도장을 찍어 무늬를 그린 인화기법과 철로 된 안료로 그림을 그린 철화기법으로 장식된 것이 많다. 한자로 미시마를 '三島'라고 쓰기때문에 한국에서는 삼도다완이라고도 부른다.
  • 호리미시마다완
  • 하케메(刷毛目)다완
한국에서는 분청사기 귀얄문 완으로 분류되는 다완이다. 붓으로 백토를 찍어 물레를 돌릴 때 묻혀 무늬를 준 것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주로 여름용 히라다완이 많다.
  • 이라보다완
일본어로 까칠까칠하다는 뜻의 '이라이라'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伊羅保' 라고 쓰며, 미시마와 마찬가지로 지명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거친 태토로 만들었으며, 처음 사용시 찻물이 새어 굽언저리에 이슬처럼 맺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는 다완을 사용할 수록 차분말이 태토 사이의 틈새에 고이면서 개선된다. 일본식 미학인 와비사비에 어울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 카타데(堅手)다완
평범한 지방 백자 사발로 와질이나 조질이 아닌 단단한 경질 백자를 통틀어 카타데다완이라고 한다. 시대도 백자가 완전히 자리잡은 조선후기의 것이 많으면 그야 말로 밥공기, 국그릇으로 쓰던 막사발인 경우도 존재한다. 손으로 튕기면 금속음을 낼 정도로 단단해 땡땡이 다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아마모리다완
  • 카키노헤타다완
  • 운카쿠다완
  • 고혼(御本)다완
고혼다완은 일본인들이 도면을 가져와 조선에서 주문해간 것으로 엄밀히 말해 아래 나오는 다완은 대부분 고혼다완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아래와 같이 분류되는 전형적 다완 외에 독특한 주문품은 싸잡아 고혼다완으로 분류하곤 한다.
  • 킨카이(金海)다완
삼국시대의 술잔을 보는 듯한 아주 중후한 모양이 다완이다. 본래 향교 등의 제기로 쓰였던 것을 다완용으로 변형해 특히 밑에 굽을 높게 새워 V자 형으로 잘라 만든 것이 특징이다. 모양에 따라선 손톱으로 일부로 긁어서 빗결무늬를 만든 것도 있는데 일본에서는 고양이가 발톱으로 긁은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 토토야다완
  • 고키다완
  • 한스다완
  • 고마가이다완
  • 와라코다이다완
  • 타마고테다완
  • 타치츠루다완
  • 소바다완
  • 오쿠코라이다완
  • 고려청자다완 위에 언급된 모든 다완 종류보다 시기가 오래되었고 가장 화려한 다완이다. 고려시대의 귀족들이 말차를 마시기 위해 쓰던 것으로 송나라시기의 길주요 다완과 같이 뒤집어 놓으면 뾰족한 삿갓모양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양각, 음각, 또는 상감기법으로 다른 색의 흙을 입혀 문양을 그리고 청자유약을 입혀 굽기 때문에 굉장히 화려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고려청자가 몰락하면서 분청사기계열의 다완으로 일찌감치 유행이 지나갔고, 일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청자 다완은 너무 사치스럽기 때문에 와비차의 미학에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 드물게 남아있다.

3.3. 와모노(和物) 일본


  • 라쿠다완
와모노의 왕. 부친을 외래인으로 두는 교토의 도예공인 쵸지로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의 대표 다완으로 독특한 맛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일본 정신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말차 격불 시 다완벽에 찻물이 부딪혀 파도처럼 부서지는 감각이 일품이다. 센 리큐가 선호했던 검은 쿠로라쿠(黒楽)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호했으나 저평가되다가 혼아미 고에츠와 3대 도뉴에 의해 향상된 붉은 아카라쿠(赤楽)가 대표적이다. 만드는법이 매우 특이한데, 도자기처럼 물레를 차서 빚는게 아니라 흙덩어리를 직접 쌓고 손으로 주물러서 만들며 구울때도 한번에 딱 한개만 구울 수 있다. 소성이 완료된 라쿠다완을 꺼낼 때에는 집개로 집어서 꺼내기 때문에 모든 라쿠다완에는 집개자국이 남게 되어있는데, 이 또한 중요한 감상포인트로 여긴다. 요약하자면 대충 막 만든것 같지만 의외로 치밀하게 의도한 대로 엉성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와모노 다완으로는 유이하게 단 2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라쿠다완이다. 근데 정작 국보는 쿠로라쿠도 아카라쿠도 아닌 하얀 백색의 시로라쿠(白楽)다완으로 혼아미 고에츠의 작품인 후지산(不二山)... 기타 중요문화재 급은 매우 많다
  • 시노(志野)다완
조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일본 고유의 다완으로는 라쿠와 함께 양대산맥을 이루는 다완이다. 현재 기후지방인 미노에서 만들어지는 다완으로 크게 보면 세토다완의 일종이지만 워낙 독특해 따로 시노다완으로 분류가 된다. 어원은 무로마치시대의 다인인 시노 소신(志野宗信)이 개발하였다고 하여 시노야키. 일본 다완으로는 유이하게 국보로 지정된 다완 우노하나가키(卯花墻)가 시노다완이다. 백색의 유약이 기본이 되지만 회청색(쥐색) 적색, 홍색, 등의 바리에이션이 있다.
  • 오리베(織部)다완
시노다완과 마찬가지로 미노지방에서 탄생한 일본 고유의 다완이며 센노 리큐의 제자인 후루타 오리베가 고안한 것이라 오리베다완이라고 한다. 라쿠다완과는 반대로 독특한 모양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 많다. 기본적인 오리베다완은 흰 바탕에 올리브색이 들어간 것을 의미하며 바탕색에 따라 쿠로, 아오, 아카, 시노오리베 등등의 여러 바리에이션이 있다.
  • 하기(萩)다완
하기다완부터 시작하여 쿄다완 이전까지는 모두 임진왜란 이후 조선 도공에 의해 개척된 다완으로 주로 가마가 있던 지역명을 기원으로 한다. 그 중 하기다완은 조선의 다완과 가장 유사한 전통을 유지해온 것으로 유명하며, 사용할 수록 찻물이 들어 색이 변하기에 하기의 일곱가지 변화(萩の七化)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에도시대에는 제일은 라쿠, 제이는 하기, 제삼은 카라츠(一楽・二萩・三唐津)[6] 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명품다완으로 유명했다. 특이한 점은 다른 다완들에 비해 '처음 사용할때' 찻물이 그릇표면에 스며나와 이슬이 맺히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찻물이 미세한 틈새를 메워 사라지게 되며, 하기 다완의 색을 사용할 수록 점점 변화시키는데 작용한다.
  • 카라츠(唐津)다완
카라츠는 '당진'이라는 한자답게 한국, 중국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곳으로 1580년대 하타씨[7]의 영지에서 처음 구워지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카라츠 다완은 임진왜란때 조선에서 잡아온 도공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일본에서 카라츠 도기라고 하면 보통 일상식기가 유명하지만 다완에 있어서도 명성이 높다. 카라츠 다완은 철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에카라츠, 잿물과 철유약을 이중으로 시유해 그라데이션 효과를 내는 조센카라츠(朝鮮唐津)외에도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되지만 특히 그라데이션 효과를 내는 조센카라츠가 높이 평가받는다.
  • 세토다완
일본 고대시대의 스에키 토기로 유명한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다완으로 1000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가진 오래된 도요지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다도가 유행하는 모모야마 시대 이전인 가마쿠라 시대에 유행했던 송나라 천목다완 같은 옛 양식을 흉내낸 다완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 시가라키다완
  • 타카토리다완
  • 쓰시마다완
  • 이즈모다완
  • 아사히다완
  • 하쿠앙다완
  • 쿄(京)다완
밥그릇 같이 생긴 모양 (...)이 특징이며 크기도 큰편이다. 기본 모양을 만들고 그걸 가공해서 둥그스럽게 모양을 잡은 후 그 후 에 그림등을 넣는다. 때론 금박도 칠하기도 한다. 인위적이지만 일본 특유에 화사함을 넣기도 한다. 에도시대 교토에 자리잡은 노노무라 닌세이, 기요미즈 로쿠벤, 오가타 겐잔 등이 와비차에 대한 지나친 쏠림에 반발하여 헤이안시대의 귀족적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백자에 화려한 문양을 넣으면서 크게 번졌다. 아기자기 한 것을 좋아하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고 또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서 널리 보급되어 있다. 왠만한 라쿠다완 제대로 된 것은 비싸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쿄다완을 많이 찾는다.

4. 여담


일본에서 다완을 보는 예법으로 엎드려서 팔목도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머리를 들어 (거의 조아림 자세) 보는 것인데 다완을 들고 있다 떨어트려 깨트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끼던 다완 츠츠이츠츠(筒井筒)의 금이간 다완은 수하가 깨먹어서 그런 것이다. (그 당시 다완이 성 하나 가격에 맞먹은 걸 고려하면...)
한편으로는 깨진 다완을 소중이 옻칠로 이어붙이고 이어붙인 부분은 금이나 은으로 덮어 수리하는 것을 일부러 하기도 했다. 와비차가 극에 달하면서 일부러 쓸쓸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이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이쁘게 깨트리고 이어 붙이는지 연구한 경우도 있다...
분청사기(일본에서는 귀얄분청은 하케메, 나머지 분청은 미시마라고 분류한다.)나 고백자 다완은 오래 쓸 수록 빙열이라 불리는 균열 사이로 찻물이 스며들어 다완 색 자체가 변하거나, 빙열이 점차 뚜렷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것을 차심(茶心)이라고 부르며 좋아하는 다인들도 있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런 '차심'이 밴 다완이 세월의 흐름을 나타낸다며 좋아하지만, 서양에서는 그냥 때얼룩으로 보는 듯. 사실 청자다완도 빙열에 찻물이 배는데, 청자다완에 생긴 얼룩은 좀 보기 싫기는 하다.
이도다완이나 비젠야키, 시가라키야끼같은 무유다완을 처음 사용 할때에는 흙냄새 비슷한 거북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특히 무유다완 대부분이나 분청다완 일부의 경우 소성온도, 흙의 재질, 장작가마 사용여부에 따라 이런 냄새가 날 수 있는데, 때문에 처음 사용할때 찬물에 담그고 30분정도 펄펄 끓여서 소독도 하고 냄새도 빼주면 좋다.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차가 배어들어 이런 냄새가 사라지게 되는데, 이 과정을 '길들이기'라고 한다. 이 흙냄새는 눅눅한 곳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곰팡이가 핀 다완의 곰팡이 특유의 쿰쿰한 냄새와는 다른 냄새가 나니 구분할 수 있으며, 이런 냄새가 난다고 해서 꼭 나쁜건 아니다. 장작가마소성 산청다완의 경우 거의 꼭이라고 할 만큼 이런 냄새를 맡을 수 있다.

5. 관련 문서



[1] 사진속의 한글이 적혀있는 다완에는 사연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하기 지방에 정착한 조선인 도공이 남긴 시조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개야 즈치 말라 / 밤살ᄋᆞᆷ / 다 도듯가 ᄌᆞ / 목지 호고려 님 지슘 ᄃᆡᆼ / 겨ᄉᆞ라 그 / 개도 호고려 / 개로다 / 듯고 ᄌᆞᆷ즘 / ᄒᆞ노라" (개야 짖지 마라. 밤(에 다니는) 사람이 다 도둑이냐? / 저 목지 호고려님 계신데 다녀올 것이다. / 그 개도 호고려 개로다. 듣고 잠잠하노라.) 호고려(胡高麗)는 일본사람들이 조선사람들을 부를때 쓰던 말로, 밤중에 동포를 만나는 길에 개가 짖자 이렇게 달랬더니 잠잠한 것을 보고 그 개도 조선의 개인가 보다 하는 이야기이다. 임진왜란 당시 잡혀가 고향에도 못 돌아가는 도공들의 고향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슬픈 시이다.[2] 희한하겠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춘추전국시대의 그 유명한 조나라의 화씨의 벽(구슬)은 진나라에서 성 15개와 교환하자고 했다. 정확하게는 고가에 팔린 다완들의 값이 성 하나를 만들 수 있는 비용인 경우가 있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성이란 흔히 생각하는 규모가 큰 성이 아니라 군사시설로서의 요새에 가깝다.[3] 한국에는 조선 출신 기와공이라는 말이 많지만 일본에서는 명에서 온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더 많다. 하여튼 수수께끼의 인물로 라쿠 가문에서도 전승이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으며 갑자기 획기적인 자료가 튀어나오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중국인이라는 설이 더 우세하다.[4] 이 다완을 소유한 사람들 중 병사한 사람이 많고 그래서 이 다완을 소유하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는다는 괴담이 생겨나기도 했다.[5] 세이카도분코 미술관(静嘉堂文庫蔵)에 소장중인 작품이 현존하는 천목다완 작품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나바 천목(稲葉天目)'이란 명칭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나머지 2점은 각각 후지타 미술관과 용광원(龍光院/류코인)에서 소장하고 있다.[6] 혹은 제일을 라쿠 다완 대신에 이도를 놓기도 한다.[7] 대표적인 도래계 성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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