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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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및 성능
2. 개요
1991년 대한항공이 개발하고 과학기술처(현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원을 받아 대한항공, 한국화이바, 삼선공업이 참여하여 결성한 한국항공우주연구조합이 제작한 5인승 다목적 경비행기로 구조시험기 1대, 시제기 2대 등 총 3대를 제작했다.
3. 상세
대한항공은 이전부터 초경량 항공기인 창공-1,2,3호를 제작하였으며 이를 통해 본격적인 경비행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이 연구 개발에는 약 36억 3천만 여원을 투입하여 창공-91호를 개발하게 되었다.
창공-91호라는 명칭은 비행기의 완성 및 시험 비행이 1991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했다. 대한항공이 설계 및 개발사업 관리, 부품제작 및 최종 조립을, 한국화이바는 복합재 부품을, 삼선공업이 알루미늄 압출재를 담당했다. 이로써 항공기 품질인증체제 구축 및 주요 부품의 국산화에도 성공함으로써 양산체제로 돌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엔진은 미국 라이코밍(Lycoming)사 제품이 창작되기로 했다.
외형은 파이퍼(Piper)사의 PA-28 체로키(Cherokee) 경비행기와 매우 비슷하다.
교통부(현 국토교통부)의 형식승인 및 감항증명을 받은 최초의 국산 항공기이기도 하다. 교통부는 1992년 7월부터 1년간 검사를 실시하고 80여 시간의 시험 비행을 마친 후 항공기형식증명을 받았다. 항공기형식증명을 받게되면, 양산 실용화가 가능하다.
1994년 4월 한반도 상공의 황사오염을 측정을 하는 임무에 투입되기도했다.
다목적 운용이 가능하고 가격이 1~2억원 정도로 외제 경비행기보다 저렴했으며 군용으로도 운용이 가능하여 T-41 초등훈련기[1] 를 대체할 후보였지만 아쉽게 탈락하였다.
대한항공은 창공-91호를 공군과 대한항공 제주비행훈련원의 초급 훈련기로 공급할 계획을 세웠고 수출확대를 위해 미국 연방항공청(이하 ‘FAA’)의 형식승인까지 받으려고 했지만, FAA의 형식승인을 받지는 못했다. 이란·볼리비아 등 해외 업체에서도 주문 생산 제의가 들어오기도 하여 대한항공 측도 양산을 심도있게 검토했었다. 그러나 화물칸이 협소하다는 문제가 있었고 생산 설비 투자와 정비 지원을 위해선 300대 이상의 수요가 필요했지만, 국내외에서 50대밖에 수요가 없어 양산은 취소되었다.
4. 매체에서
가상전쟁소설 데프콘(소설) 초간본에서는 한일전쟁편에서 등장하며 현재 북한군의 An-2 처럼 이 기체가 대량 양산되어 통일한국군 특수부대를 스루가 공항까지 이동시키는데 사용한다. 조종사도 특수부대원에게 딱 1회 이착륙할 능력만 될 정도로 속성 양성해서 충당했다는 설정. 재간본에서는 이 기체가 양산되지 못한 점을 반영하여 이 기체는 삭제되고 이 기체의 역할은 기종 미상의 경항공기로 내용이 변경되었다.
[1] 세스나 T-41은 그 뒤로도 15년을 넘게 더 날다가 퇴역한 뒤 필리핀에 공여되었다. 국군의 T-41은 원래 미군에게서 받은 것이다. 불곰사업으로 구매한 T-103이 대신했는데 유지보수에 애로가 있어 운용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KT-100으로 교체할 것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