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리

 

1. 개요
2. 생애
3. 후손들


1. 개요


천만리(千萬里, 1543년 ~ ?)는 명나라의 수위사 겸 총독장으로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전공을 세우고 귀화하여 한국 영양 천씨의 중시조가 된 장군이다. 자는 원지(遠之), 호는 사암(思庵),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묘는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방촌리에 있다.

2. 생애


아버지는 천종악이며, 어머니는 병부 시랑 전탁의 딸이다. 1571년 무과에 장원 급제하여 1575년 총절사가 되어 몽골군을 격퇴하였다. 그 공으로 내위진무사가 되었으나, 참소를 입어 양릉에 귀양살이하였다. 8년의 귀양살이 후에 태청전수위사와 총독오군사를 겸직하였다. 태청전수위사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이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중국 명나라 황제의 명으로 조병영양사 겸 총독장으로 두 아들과 함께 이여송을 따라 조선에 와서 군량 수송 업무를 관장하였다.
철기 2만 명을 거느리고 제독 이여송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곽산에서 첫 전투를 이긴 다음, 평양으로 진군하여 주둔하고 있는 적을 포위하였다. 제3차 평양 전투에서 칠성문을 공격했는데, 대포로 문짝을 부수고 군사를 정돈하여 들어가 1,280여 급을 참획하였다. 계속 싸우면서 동래에까지 이르는 동안 연전연승함으로써 적의 예봉을 꺾어놓았다. 정유재란 때는 마귀 제독 휘하의 중사마로서 진군하여 울산에서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이 끝난 1600년 그는 명으로 귀환하지 않고 조선에 머물러 살았다. 선조는 그의 전공을 생각하여 자헌대부 봉조하의 벼슬을 내리고, 화산군에 봉하였으며, 그의 장남 천상은 한성부좌윤, 차남 천희는 평구도찰방으로 승진시켜 자손에게 세록을 전수받게 하였다.

3. 후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