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天安 奉先弘慶寺 碣記碑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리 319-8
'''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고려 현종 17년(1026)
[image]
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국보 제7호


1. 개요


天安 奉先弘慶寺 碣記碑. 1021년 창건된 봉선홍경사 경내에 세워졌던 사적비로,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석비들 중에서 가장 형태가 잘 남아 있다고 평가 받는다. 국보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이 비석은 절이 창건된지 5년이 지난 고려 현종 17년인 1026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비를 갈비(碣碑)라고 하는데, 이러한 갈비는 탑신만 있고 귀부나 덮개돌은 없는 게 일반적이다. 대신 탑신의 모서리를 둥글게 조각하는 식으로 마무리를 한다. 하지만 이 비석은 특이하게도 갈비(碣碑) 임에도 불구하고, 귀부와 덮개돌까지 온전히 형태를 갖추고 있다. 또한 귀부의 머리가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점도 특이할 만한 점이다. 비문은 해서체로 쓰여졌는데, 그 내용은 최충[1]이 썼다고 전해진다.

3. 바깥고리



4. 국보 제7호


봉선홍경사는 고려 현종 12년(1021)에 창건된 절이다. 절이름 앞의 ‘봉선(奉先)’은 불교의 교리를 전하고자 절을 짓기 시작한 고려 안종(安宗)이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목숨을 다하자, 아들인 현종(顯宗)이 절을 완성한 후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현재 절터에는 절의 창건에 관한 기록을 담은 비석만이 남아 있다.

갈비(碣碑)는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것을 말하는데, 대개는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몸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비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어 석비의 형식과 다르지 않다.

거북모습의 받침돌은 양식상의 변화로 머리가 용의 머리로 바뀌었고, 물고기의 지느러미같은 날개를 머리 양쪽에 새겨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비몸돌 앞면 윗쪽에는 ‘봉선홍경사갈기’라는 비의 제목이 가로로 새겨져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에 휩싸인 용이 새겨져 있다.

이 비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절을 세운 지 5년이 지난 고려 현종 17년(1026)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문은 ‘해동공자’로 불리던 고려시대 최고의 유학자 최충이 짓고, 백현례가 글씨를 썼다.


[1]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에 나오는 바로 그 해동공자 최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