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립
草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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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관모(冠帽)이자 지푸라기로 만든 조선시대 전통모자.
신분제도가 짙었던 조선시대 때부터 선비나 양민, 관례를 치른 어린 남자아이가 쓰고 다녔던 모자이며 아이들은 '''초립동(草笠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패랭이와 비슷해 보여서 천민이나 양민들이 쓰고 다니는 것으로 오인될만 하지만 사실은 패랭이와는 다른 개체이며 선비들도 쓰고 다녔다. 하지만 양반계급에서는 주로 흑립(黑笠, 갓)을 쓰고 다녔었다.
조선 초기에는 양민 외에도 양반 및 선비들도 한때 쓰고 다녔으나 중엽에 들어서 선비들은 흑립을 쓰고 다니게 되었고 관례를 치른 소년이 혼인을 하기 전까지는 쓰고 다녔기 때문에 초립동으로도 불렸다.
재료는 강화도에서 나는 왕골을 사용하였으며 누른빛의 지푸라기 등으로 엮어서 만들기도 하였다.
이후 1894년 갑오개혁과 1910년 일제강점기를 계기로 존재가 사라졌으며 오늘날에는 직접쓰고 다니는 사람도 없다.
다만, 초립을 소재로 한 무용 작품인 <초립동>은 지금도 내려온다. 최승희가 파리에서 '''초립동'''을 공연했을 때 파리 여성들 사이에서 잠시 초립이 유행하여 최승희도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증산 계열 종교에서는 유난히 '초립동'이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고 일부 신자들이 초립동을 자처하기도 하는데, 창도자 강일순 본인이 "초립을 사다가 간수하여 두라. 나의 도를 천하에 펼 일꾼은 이제 초립동이니라."라고 이야기했다는 <도전>의 기록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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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관모(冠帽)이자 지푸라기로 만든 조선시대 전통모자.
신분제도가 짙었던 조선시대 때부터 선비나 양민, 관례를 치른 어린 남자아이가 쓰고 다녔던 모자이며 아이들은 '''초립동(草笠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패랭이와 비슷해 보여서 천민이나 양민들이 쓰고 다니는 것으로 오인될만 하지만 사실은 패랭이와는 다른 개체이며 선비들도 쓰고 다녔다. 하지만 양반계급에서는 주로 흑립(黑笠, 갓)을 쓰고 다녔었다.
조선 초기에는 양민 외에도 양반 및 선비들도 한때 쓰고 다녔으나 중엽에 들어서 선비들은 흑립을 쓰고 다니게 되었고 관례를 치른 소년이 혼인을 하기 전까지는 쓰고 다녔기 때문에 초립동으로도 불렸다.
재료는 강화도에서 나는 왕골을 사용하였으며 누른빛의 지푸라기 등으로 엮어서 만들기도 하였다.
이후 1894년 갑오개혁과 1910년 일제강점기를 계기로 존재가 사라졌으며 오늘날에는 직접쓰고 다니는 사람도 없다.
다만, 초립을 소재로 한 무용 작품인 <초립동>은 지금도 내려온다. 최승희가 파리에서 '''초립동'''을 공연했을 때 파리 여성들 사이에서 잠시 초립이 유행하여 최승희도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증산 계열 종교에서는 유난히 '초립동'이라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고 일부 신자들이 초립동을 자처하기도 하는데, 창도자 강일순 본인이 "초립을 사다가 간수하여 두라. 나의 도를 천하에 펼 일꾼은 이제 초립동이니라."라고 이야기했다는 <도전>의 기록 때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