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예비군

 

1. 정의
2. 활동
3. 평가
3.1. 긍정적인 평가
3.2. 부정적인 평가
3.2.1. 권위주의
3.2.2. 비 전문성


1. 정의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예비군들. 실제로 이러한 조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예비군복을 입고 시위에 나온 '''불특정 다수'''의 예비역 청년들[1]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개인 단위로 참가한 인원이 많고 이들 전체를 아우를만한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닌 관계로 다소 모호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나, 중반 이후 집회가 격화/본격화 되면서 일정한 활동양상이 형성되었다.

2. 활동


촛불집회 내에서 예비군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본격적인 예비군 훈련 시기인 5월 이후였다. 참여자들 중에 예비군 훈련을 받고 바로 온 사람이 있었고, 보통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는 보기 힘든 이들의 군복때문에 눈에 띄었던 것. 그리고, 촛불집회가 중반기에 이르러 집회가 대규모화 되면서 참여한 예비군의 수 역시 많아졌고, 6월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촛불집회 내에서 상당한 수를 갖춘 집단으로써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이들을 한데 묶어 촛불예비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 대략 이 무렵부터이다.
이러한 인식이 생긴 이후, 이전까지 각 개인단위로 참여했던 예비군들 사이에서 일정한 동질감이 형성되었고, 이에 따라 촛불예비군이라는 이름으로 집회 내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공통점이 있을 뿐인 불특정 다수였던 이들이 정말로 조직화에 가까운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 이 경우 예비역 청년이라는 특성을 살려 집회의 질서 유지나 경찰과의 충돌 방지, 행진의 대열 유지, 몸싸움 등 근력과 체력이 필요한 영역에 앞장서려는 경향이 강했으며, 집회의 규모가 가장 컸던 6월부터 이러한 활동이 본격화되었다.[2] 이후, 이들의 활동은 촛불집회의 진행과 함께 계속되었으나, 7월에서 8월에 이르러 집회가 하강국면에 이르면서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3. 평가



3.1. 긍정적인 평가


이전 시기의 전형적인 운동권 집회들이 참여자 전체에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부에 의해 통제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과 비교할 때, 2008년 촛불집회는 개인 단위의 참가자 비중이 매우 높았고, 이 때문에 집회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었다. 이런 경우, 조직화된 집단이 아니라 자유롭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개인들이 집회의 주축이 되었다는 것은 시민사회운동으로써 매우 높게 평가받을만한 특징이지만 집회를 유지할 수 있는 응집력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처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불안요소를 가지게 된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참여인원이 지나치게 분산되어 집회의 동력이 소실되거나, 반대로 지나친 과밀로 인하여 참여자의 불편, 부상의 위험, 무의미한 공격성의 심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3]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경찰의 진압 및 연행 시도에 대한 저지력이 필요하면서도 동시에 집회 참여자의 돌발적인 행동[4]을 제지할 필요가 있으며, 부상자 발생등의 긴급상황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일종의 안전망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위주의적 지도부에 의해 각 참여자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집회를 유지하는 주요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촛불예비군의 활동은 높게 평가받을 만 하다. 특히 촛불예비군 자신들도 자발적인 참여자였다는 점에서 외부의 강제가 아닌 자발성에 의하여 집회 내의 질서를 유지하는 반권위주의적 시도로써 매우 상징적이다.

3.2. 부정적인 평가


촛불예비군이라는 집단이 명확한 실체적 조직으로써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부 구성원의 문제를 집단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원인으로 삼는 것은 성급하고 지나친 일반화라고 볼 수도 있으나, 이러한 관점에 따라 본다면 상기된 긍정적인 평가 역시 각 구성원의 행동에 대한 평가를 일반화하여 집단을 평가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3.2.1. 권위주의


촛불예비군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 중에 '지도부에 의한 권위주의'의 부정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설적이지만, 촛불예비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각 참여자들 중에서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특히, 20대 중후반의 나이와 예비역들이 피하기 힘든 군대문화의 잔재, 그리고 특정한 집단으로 묶이지 않는 다른 참여자들에 비해 촛불예비군이라는 집단의 이름으로 활동한다는 특성등이 맞물려 종종 주변의 다른 참여자들을 자신이 통제해야 할 대상[5]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청소년 참여자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러한 충돌 사례 중에는 객관적으로 보기에 촛불예비군 참여자의 입장이 정당했고, 상대편의 행동에 오히려 문제가 있었던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 반대로 촛불예비군측이 비합리적인 입장을 내세운 경우 역시 적지 않으며, 또 설령 촛불예비군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할 지라도 동등한 입장의 참여자 사이에서 명령조로 일방적인 지시를 내리는듯한 태도를 취한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상당한 문제의 여지가 있었다.

3.2.2. 비 전문성


개인 단위의 집회 참가자라면 집회와 시위의 전문가(흔히 말하는 전문적 활동가, 또는 시위꾼)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점이 될 수 없지만, 집회 진행에 대한 일종의 진행요원이나 안전요원으로써의 책임을 자처한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 측면에서, 대부분의 촛불예비군들이 집회 진행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했다는 점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 없이 상황을 통제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촛불예비군들은 보통 참여자들과 경찰이 충돌하는 상황을 회피하려고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단위의 군중이 움직이는 양상과, 경찰의 행동패턴을 알고 있어야 한다. 즉, 경찰이 언제쯤 진압을 시도할 것이고, 이 경우 참여자들을 어떤 식으로 유도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 두 가지 모두, 경험이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전혀 없는 상태라면 무익하게 힘만 들 뿐,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문제로 지적된 두 요소, 권위주의와 비 전문성이 결부되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일어난 경우가 실제로 있었다. 6월 초, 집회가 대규모화 되었을 무렵, 시청-광화문 구간에서 스스로를 촛불예비군이라고 자칭하던 십여명의 사람들이 경찰과 충돌을 대비하여 자신들이 앞줄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문제는 이미 그 부근에서는 건장한 청장년들을 앞줄에 내보내는 준비가 끝난 상황이었다는 점이었다. 이 때, 여기는 준비 끝났으니 사람 필요한 다른 곳으로 가 보라는 주변 참여자들과 자신들이 촛불예비군이니 앞줄에 서야한다는 이들의 주장이 맞서 촛불예비군의 일부가 상대를 '프락치'라고 매도하기까지 하는 상당히 격한 언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촛불예비군측의 강경한 주장에 밀려 결국 기존의 앞줄 사람들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예비군들이 대신하기로 했는데... 잠시 후,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면서 더욱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경찰이 다가오자 예비군들이 제일 먼저 도망쳐버린 것이다.
이 경우, 일단 집회 참여자의 입장에서는 앞줄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신체적 힘이 약한 여성이나 청소년, 노약자등이 섞여 있는 뒷줄이 노출되고, 이 때문에 대열이 흐트러지는 혼란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 문제다. 대열이 흐트러진 틈에 경찰에 연행되거나, 넘어지거나 밀려서 다치는 사람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십여명이 참여자가 경찰에 연행되기는 했다.
그리고 경찰의 입장에서도 이 상황은 좋다고 보기 어렵다. 앞줄의 청년들과 몸싸움을 벌일 것을 상정하고 대열을 지어 밀어붙이던 상황에서 갑자기 청년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움직임을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무방비한 상태인 뒷줄에 경찰이 밀고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고, 이 때 발생하는 문제에서는 경찰 역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쓰러져 있는 사람을 경찰이 밟고 지나갔다'는 상황이 생긴다면 경찰 역시 상당한 비판이나 책임추궁, 도덕적 부담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진압에 대한 대비가 없는 사람들을 힘으로 밀어붙일 경우, 이런 상황이 아주 쉽게 벌어질 수 있다는 것.
물론 개인적인 입장에서 경찰이 진압을 시도할 때 몸싸움을 벌이지 않고 물러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앞줄을 맡겠다고 강하게 주장한 상태에서 물러나 버린다면, 애초에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1] 예비군 훈련을 받은 후 옷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온 경우가 많았다.[2] 실제 역사상으로 봐도 한 집단의 기강을 잡을 때는 복식, 즉 유니폼을 정비하는 사례가 많았다. 국사시간에 '왕권을 강화하였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왕들의 대부분의 업적에서 '율령반포', '복식정비' 등이 붙는 것도 그러한 이유. 즉 어느 집단이 동질성을 가진 복식을 착용함으로서 연대의식을 높이고 집단소속감 고양 및 행동양식의 수정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이 경우는 의도된 바는 아니었지만 우연히 예비군들이 입고 나온 예비군복이라는 복식에 의해 연대감이 형성된 것이다. 게다가 예비군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 20대의 한창 나이대인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혈기왕성한 체력과 활동력을 가진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3] 이러한 요건이 부정적 시너지를 일으킬 경우 시위가 폭동이 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LA 폭동, 2011년 영국 폭동 등이 있다. 처음에는 항의 차원에서 벌어진 시위가 폭력적 양상을 띠면서 약탈, 방화, 강도, 폭력행위 등이 수반되는 폭동이 된 것.[4] 특히 과도한 폭력행사 등[5] 군대식으로 표현한다면 자신이 지휘해야 할 대상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