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희

 

성명
최동희(崔東曦)

소수(素水)
생몰
1890년 1월 4일 ~ 1927년 1월 26일
출생지
한성부 가희정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희동)
사망지
중국 상하이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동학 제2대 교주 최시형의 장남이다.

2. 생애


최동희는 1890년 1월 4일 한성부 가희정에서 부친 최시형과 모친 손소사[1]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4년 일본으로 유학간 뒤 세이쇼쿠 영어학교 및 와세다 대학의 고등예과 정경학부에서 공부하고 1914년 귀국했다. 이후 천도교 내에서 시천교와 통합운동을 벌이다 반발을 사자 1916년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8년 베이징에서 신채호를 만났고 만주에서 유동열, 김좌진, 황상규 등과 만나 그들이 추구하는 무장 투쟁 노선에 공감했다. 1919년 이채우(李采雨)·김영순(金永淳)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했으며, 천도교 의정회(議正會) 혁신파(革新派)에 소속되었다가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1922년 7월에는 천도교 중심의 고려혁명위원회(高麗革命委員會)를 조직하여 부위원장 겸 외교부장으로서 이종훈·홍병기·송헌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김광희(金光熙)·강도희(姜道熙) 등과 함께 연해주로 건너갔다.
1926년 4월 5일에는 길림에서 양기탁, 현정경, 오동진, 곽종대(郭鍾大), 김봉국(金鳳國)·이동구(李東求), 송헌, 이규풍(李奎豊), 주진수 등과 함께 독립투쟁을 결의하고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을 조직한 뒤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1927년 1월 26일 지병이 악화되어 상하이 적십자병원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최동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손병희의 여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