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환(독립운동가)

 


성명
최민환(崔珉煥)
이명
이형춘(李亨春)·김석주(金石柱)·강신전(姜信悛)
김상철(金尙哲)·최동명(崔東明)·최해영(崔海永)
본관
경주 최씨
생몰
1905년 12월 18일 ~ ?
출생지
함경남도 단천군 복귀면 복평리[1]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민환은 1905년 12월 18일 함경남도 단천군 복귀면 복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 중반에 단천청년동맹(端川靑年同盟)에 가입하여 중앙본부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3월 단천군 복귀면 복평리의 서당 경락재(慶樂齋)에서 심태붕(沈泰鵬)의 권유로 단천농민동맹(端川農民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1월 2일경 최윤빈(崔允斌)으로부터 단천농민동맹이 단천농민조합으로 개편된다는 것을 듣고 여기에 가입하여 곧바로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9일 조재훈(趙在勳)·최병하(崔秉夏)·김경연(金京淵)·김성용(金聖庸)·정태경(鄭泰卿)[2]·김기철(金起澈) 등과 함께 제1회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하여, 금후의 운동방침·정책강령 및 규약·조합원 모집 등에 대해 협의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앙집행위원회에 참석하여 행동강령과 운동방침 등에 대해 협의하였으며, 단천농민조합 쟁의부장(爭議部長)으로도 활동하였다.
3월 중순경 최윤빈 등과 함께 단천농민조합 복귀북구지부(福貴北區支部)를 결성하고 지부장이 되어 활동하였다. 이때부터 1932년 2월경까지 김동묵(金東黙) 외 50여 명을 권유하여 조합에 가입시켰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복평반(福坪班) 외 3개의 반(班)을 결성하여 단천농민조합을 확대 강화시켰다. 이와 같이 단천군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중 1931년 7월 일제의 ‘단천농민조합 탄압사건’이 거세지자 이를 피하여 함경남도 갑산군으로 갔다.
1931년 10월 중순부터 1931년 11월 중순까지 갑산군 운흥면 검산리에 거주하는 박시영(朴時英)의 집에서 한하석(韓河錫)·김봉현(金鳳鉉)·이삼만(李三萬)·온병일(溫柄一) 등과 함께 독서반(讀書班)을 만들어 갑산군 내 청소년을 지도 계몽하였다. 1931년 11월 29일 운흥면 대상리에 거주하는 온병일의 집에서 독서반의 핵심 성원들과 회합하여 ‘갑산군 전위동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 자리에 모인 맹원들은 각자가 위원이 되어 갑산군 내 각지에 독서반을 설치하여 동지를 규합할 것 등을 협의 결정하였다.
갑산군의 조직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최민환은 운동거점을 다시 단천으로 옮겨갔다. 1931년의 대검거로 인하여 거의 와해된 단천농민조합 등을 재건할 목적이었다. 1932년 2월 하다면 송파리에 소재한 서길성(徐吉成)의 집에서 과거 단천농민조합의 간부로서 일제의 검거망을 피했던 동지 이상호(李相鎬)·김중손(金中孫) 등과 회합하여 ‘단천농조재건협의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그 지도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운동방침으로는 단천군을 남북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책임자를 두고 지역을 분담한 후 각 면(面)에는 면협의회, 리(里)에는 적농반(赤農班)을 조직하기로 하였다. 또한 하부조직이 모두 완성된 후에는 전 군(郡)을 단위로 한 적색농민조합(赤色農民組合)을 결성하기로 하여, 당시 조선 내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에서 일반화되어 있던 ‘아래로부터의 조직화’ 방침을 따랐다.
그는 하다면협의회(何多面協議會)를 비롯해 신흥(新興)·동원(東元) 등 7개 지역에 적농반을 꾸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외에도 개별적으로 단천전우동맹(端川戰友同盟)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1935년 3월 초순경 함경남도 이원군 군선에서 체포되어 단천경찰서로 압송되었다. 23일 밤 유치장 간수의 교대시간을 틈타 탈주했으나, 26일에 다시 체포되었다.
10월 28일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31일 예심에 회부되었다. 12월 24일 예심이 종결되어, 1936년 6월 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을 언도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최민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경주 최씨 집성촌이다.[2]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정태경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