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천시

 


端川市 / Tanchŏn City
단천시
端川市 / Tanchŏn City
국가
북한
면적
2,170㎢[1]
광역시도
함경남도
행정구역
39동 39리
시간대
UTC+9

1. 개요
2. 역사
3. 지리
4. 산업
5. 교통
6. 특징
7.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8. 북한 기준 행정구역


1. 개요


함경남도 동북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2. 역사


대한민국 역사에서 고대 시대에는 동옥저의 영토였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 아래에 있었다.6세기 신라 강성기에는 일시적으로 신라의 영토에 속하기도 했으며, 마운령비가 그 근거이다.
남북국 시대에는 발해의 5부인 남경남해부의 일부였다. 발해 멸망 이후 여진족 치하에 있다가 중세시대 고려에 흡수되었고, 원래 이름이 '단주(端州)'였던 것을 조선 시대(태종)에 들어와서 고려 시대에 지명으로 많이 사용했던 '주(州)'의 상당수를 '천(川)'이나 '산(山)'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단천'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까지 현 허천군의 남동쪽 절반까지 총 1읍 9면을 관할했었으며, 면적 2,386㎢였다. 1930년에는 이 지역에서 농민운동이 일어났고, 1년 후에 해체되는 신간회가 이 농민운동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후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당시 수하면을 잘라서 새로 신설되는 허천군에 내어 주고, 광천면, 남두일면, 북두일면을 새로 신설되는 광천군에 넘겨주었다가 1974년 광천군을 다시 흡수하였다. 북쪽으로 길쭉하게 뻗은 지역이 구 광천군 지역이다.

3. 지리


함흥 이북 함남 해안지역이 다 그렇지만 북고남저형 지형이다. 최고점은 군 최북단으로 혜산군과 접하는 두류산(2,309m)이다. 군내를 흐르는 주요 하천은 북대천(北大川), 남대천, 복대천(福大川)이 있다.

4. 산업


대흥청년영웅광산(마그네사이트)과 룡양광산이 있는 전형적인 광산 도시다. 조선 시대 최대 은광이 있었던 곳으로, 연은분리법이 이곳에서 개발되었다. 마그네사이트(매장량 37억 톤)나 코발트, 아연(검덕광산), 인회석(동암광산)이 풍부하고 철광석도 채굴되는 등 지하자원이 많다. 특히 비철금속광물로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 때문에 광물, 기계, 화학공업도 어느정도 발달해있다고 한다. 연대리에는 허천강수력발전소·제4발전소가 있는데, 최대출력 6만 5400㎾에 이른다. 2017년에는 예상 발전용량 약 200만㎾에 달하는 거대 수력발전소인 단천발전소가 착공식을 가졌다.
2009년 북한의 2009년 화폐개혁 이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도시기도 하다. 2010년 초 하루에 각 인민반마다 1~2명씩 사망하는 등 사망자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2위는 북한의 "도매시장" 역할을 하던 청진시). #

5. 교통


교통은 평라선금골선, 단풍선이 지난다. 금골선은 80km가 넘어가는데도 단천시 내부로만 다니며, 금골선 주변에는 광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탈북한 새터민들 중 철도업에 종사한 사람들의 증언으로는 평라선의 견인기(기관차)는 대부분 단천역에서 교대한다고 한다. 과거 경부선 선구에서 동대구역 기관사 교대와 비슷한 개념인데, 평라선은 그 총연장만 경부선의 2배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일본의 도카이도 본선이나 도호쿠 본선처럼 견인기 교체가 필요한 노선 중 하나이다. 거리상 평양과 청진-나선지구의 중간쯤에 위치한 공업/광업도시이기 때문에 교체 및 정비보수에 이롭다는 장점이 있다.[2]
단천역 구배에서 탈선사고가 일어나 5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탈북민들의 증언으로 알려진 사항.

6. 특징


1970년대의 삼척군과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단천시는 현 태백시 일대와 동해안으로 시가지가 분리되어 있었던 옛 삼척군과 마찬가지로, 시가지가 한 군데에 몰려 있는것이 아니라 동해안, 검덕지구, 무학 등의 여러 군데에 분산되어있다. 그래서 인구는 34만명이나 됨에도 각각의 시가지의 크기는 읍의 크기와 비슷하다. 또한 둘다 광업도시라는 점도 있고 동해안이라는 점이 있다.

7.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端川郡 / Dancheon County
[image]
단천군
端川郡 / Dancheon County
국가
대한민국
광복 당시 면적
2,385㎢
광역시도
함경남도
광복 당시 행정구역
1읍 8면
시청/군청/구청 소재지
단천군 단천읍 서상리
시간대
UTC+9

광복 당시에도 인구 '''18만 명'''이라는 흠좀무스러운 인구를 자랑했던 곳으로, 당시 도내의 중심지였던 '''함흥시'''보다도 인구가 많았다! 읍내 인구만 따져도 동시기 '''수원읍''', '''포항읍''', '''김천읍'''[3]과 비슷한 '''4만 1천명'''의 인구를 자랑했던 곳이다.[4]
광복 당시 1읍 8면이 있었고, 군청은 단천읍 서상리에 있었다.
  • 단천읍(端川邑)
    • 관할 리 : 서상(西上), 고령(古靈), 기평(碁坪), 내문(內門), 대성(大成), 대흥(大興), 덕천(德川), 독평(獨坪), 동상(東上), 동하(東下), 동현(東峴), 동호(東湖), 두언대(豆彦臺), 문호(文湖), 복천(福川), 봉양(鳳陽), 사동(社洞), 상서(上西), 상직절(上直節), 송동(松洞), 송평(松坪), 신창(新昌), 영산(靈山), 오몽(吾夢), 외문(外門), 용성(龍城), 용암(龍巖), 용현(龍峴), 은호(銀湖), 주남(州南), 증산(曾山), 하서(下西), 하직절(下直節)
    • 면적 50㎢. 부군면 통폐합 당시 파도면(波道面)이었으나 1937년 단천읍으로 승격되었다. 1943년 복귀면 두언대리와 오몽리, 1944년 복귀면 용암리를 편입했다. 1943년 일제가 단천읍 두언대리와 오몽리 일원에 신도시를 건설하려 했으나 기초 공사가 진행되던 도중 광복이 되었다. 1945년 당시 인구 4만을 돌파한 상태였으며 만일 남북분단이 안 되었으면 최소 1949년에 단천부→단천시로 분리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던 읍 중 하나였다. 평라선을 중심으로 오몽리역에서 우회철도인 두언선이 분기하며 두언역(구 두언대역)이 있다. 단천역에서 단풍선이 분기하며 동대역이 있다.
  • 광천면(廣泉面)
    • 관할 리 : 용잠(龍岑), 덕산(德山), 덕천(德泉), 동암(東巖), 동원(東元), 영평(永坪), 운천(雲川), 와동(瓦洞), 용전(龍田), 장항(獐項), 창흥(昌興)
    • 북한 행정구역상 한때 존재했던 광천군 소재지.
    • 금골선(함남선) 철도가 지나며 관내에 가응역(구 용령역), 광천역(구 용잠역), 운천역, 동덕역, 동암역이 있다.
  • 남두일면(南斗日面)
    • 관할 리 : 보거(堡巨), 신평(新坪), 신풍(新豊), 신흥(新興), 운송(雲松), 이상(梨上), 이파(梨坡), 이하(梨下), 증산(甑山)
    • 금골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수촌역, 신평역, 리파역, 신증산역, 돈산역(구 운송역)이 있다.
  • 복귀면(福貴面)
    • 관할 리 : 용포(龍浦), 기암(奇巖), 노동(路洞), 대로동(大蘆洞), 복상(福上), 송오(松塢), 복평(福坪), 용강(龍崗), 용연(龍淵), 장내(場內)
    • 단천군의 남부 해안지역으로 최남단이다. 작봉에 둘러싸여있는 형상이었다. 복대천을 경계로 단천읍, 신만면과 접하고 남쪽에 이원군이 있다. 주요 인프라는 단천읍에 의존했다. 평라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기암역, 신단천역(구 용강역)이 있다.
  • 북두일면(北斗日面)
    • 관할 리 : 대신(大新), 남별(南別), 대흥(大興), 덕응(德應), 신덕(新德), 양천(陽川), 용양(龍陽), 용천(龍川), 학선(鶴仙)
    • 단천군의 북부 산악지역으로 현재의 검덕 지역이다. 용양리에서 국도 제 76호선국도 제 73호선이 만나 학선리에서 갈라진다. 금골선 철도가 이곳에서 시종착하며 관내에 백금산역(구 용양역)[5], 금골역, 상금골역, 신덕역, 대신역, 대흥역, 무학역(시종착역, 양천리 부근)이 있다.
  • 수하면(水下面)
    • 관할 리 : 고성(古城), 내촌(內村), 만덕(滿德), 상농(上農), 상운승(上雲承), 용원(龍源), 은흥(殷興), 응덕(鷹德), 인풍(仁豊), 중평(仲坪), 하농(下農), 하운승(下雲承), 황곡(黃谷)
    • 단천군의 서부 산악지역(1)으로, 북한 행정구역상 허천군 소재지. 단풍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하운승역, 상농역, 중촌역, 농촌역, 추동역, 허천역(구 수하역), 수의역이 있다. 장파역부터 시종착역인 홍군역까지는 풍산군 천남면 소재. 또한 허천역에서 산업철도인 만덕선이 분기하며 부동역, 만덕역이 있다.
  • 신만면(新滿面)
    • 관할 리 : 정동(貞洞), 개평(開坪), 석우(石隅), 신동(新洞), 안시동(安時洞), 용천(龍川)
    • 단천군의 서부 산악지역(2)으로 북한 행정구역상 허천군의 남서부에 해당한다.
  • 이중면(利中面)
    • 관할 리 : 답동(畓洞), 가산(嘉山), 가응(加應), 낙인(樂仁), 덕주(德州), 돌산(乭山), 동평(東坪), 두연(斗淵), 두우(斗牛), 문암(門巖), 신덕(新德), 영천(永川), 용산(龍山), 인산(仁山), 창동(昌洞), 천곡(泉谷), 하전(荷田), 화장(華藏)
    • 단천군의 남동부 해안지역으로 단천읍의 동북부 교외지역이다. 평라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문암역, 여해진역이 있다. 여해진역에서 두언선금골선이 분기하며 금골선 천곡역답동역이 있다.
  • 하다면(何多面)
    • 관할 리 : 연대(蓮臺), 가원(加元), 개장(開墻), 고읍(古邑), 달전(達田), 백자동(栢子洞), 송파(松坡), 쌍룡(雙龍), 쌍상(雙上), 양평(陽坪), 원동(元洞), 좌역(佐驛), 풍화(豊和)
    • 단천읍의 서쪽 교외지역으로 단풍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장덕역이 있다.

8. 북한 기준 행정구역


총 39동 39리로 이루어져있다.
  • 관할 동: 광천동, 금골1동, 금골2동, 금골3동, 금봉동, 금산동, 남풍동, 내문동, 대신동, 대흥1동, 대흥2동, 덕흥동, 돈산동, 동암동, 양산동, 용대동, 무학동, 문화동, 백금산동, 백암동, 복천동, 본산동, 북두동, 사오동, 선광동, 신단천1동, 신단천2동, 양천동, 영웅동, 전진동, 지초동, 직절동, 탐사동, 포거동, 항구1동, 항구2동, 항구3동, 해안1동, 해안2동
  • 관할 리: 가원리, 가응리, 달전리, 답동리, 덕주리, 돌산리, 두연리, 연대리, 영산리, 용덕리, 용연리, 용잠리, 용흥리, 이파리, 이풍리, 문암리, 문호리, 백상리, 복평리, 봉화리, 삼거리, 석우리, 송정리, 송파리, 신동리, 신평리, 신풍리, 신호리, 쌍룡리, 양평리, 영평리, 오몽리, 와동리, 운천리, 원산리, 장내리, 정동리, 증산리, 화장리

[1] 경상북도 안동시보다 넓다![2] 조차장 자체는 함흥과 흥남 사이에도 함흥조차장역이 있다.[3] 이 지역들이 '''1949년'''에 시로 승격된 지역들이라는 점을 보면, 정말 인구가 많은 것이다. 즉, 남북분단이 안 되고 대한민국령으로 남아있었으면 비슷한 시기에 '''단천읍을 단천시로 승격시켜''' 단천군과 분리시켰을 가능성이 높다.[4] 의외의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 함경남도에서 제일 인구가 많았던 도시는 다름아닌 '''흥남시(14만!)'''였다(...) 그 다음이 원산시와 함흥시(각각 11만명). 관북권 전체 중에서는 청진시가 제일 컸는데, 당시 '''23만 명'''으로 무려 '''당시 인천시, 대구시'''와 맞먹던 인구였다. 이 두 지역이 각각 인천광역시 대구광역시가 되었다는 점을 본다면(...)[5] 일제강점기에는 이 역이 시종착역이었으며 남한에서 발행된 지도에는 백금산역까지만 표기되어 있다. 나중에 북한 당국이 노선을 연장한 것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