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준(독립운동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최성준'''
'''崔成俊'''

<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909년 1월 24일
평안북도 철산군 여한면 덕산리
<color=#fff> '''사망'''
1966년 1월 3일
서울특별시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성준은 1909년 1월 24일 평안북도 철산군 여한면 덕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5년 정의부(正義府)에 가입하여 오동진의 지휘를 받고 1927년 5월경 제5중대장 김석하(金錫夏)가 인솔하는 특공대에 소속된 국내에 진입하였다.
그는 김봉수(金奉秀)·장기천·최성춘(崔成椿) 등과 함께 평북일대에서 5개월간 일경사살, 군자금모집 등의 활동을 벌이면서 일경의 경계망을 넘나들었다. 1927년 7월 11일에는 의주군 가산면에서, 7월 21일에도 가산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24일에는 구성군 관서면에 이어 고관면과 수진면을 거쳐 15일에는 운천동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다 운정동에서 일경에게 포위되어 맹렬한 사격전 끝에 포위망을 뚫고 도피하였으며, 곧 이어 수진면사무소를 습격·파괴하였다.
이들은 의주군 구성동 대장현에 이르러 두사람씩 1조로 나누어 1대는 주읍 식산은행지점을, 다른 1대는 용만(龍彎)금융조합을 습격하기로 하였다. 그는 농민으로 변장하고 장기천과 함께 금융조합에 들어가 수천원의 현금을 빼앗아 문밖으로 나와 장꾼을 모아놓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뒤에 일장 연설을 하고 시장으로 들어갔다. 도중에 일경을 만나자 총격전을 벌이고 갖고 있던 돈을 모두 장꾼들에게 뿌려버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들은 다른 1조와 합류하여 철통같은 경계망을 돌파하여 압록강을 건넜으며, 9월 9일에는 대안(對岸)의 구련성에 도착하였다. 이후 계속하여 본부로 향하던 도중 봉황성에서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29년 6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장기천은 징역 15년형, 김봉수(金奉秀)는 13년형, 최성춘(崔成椿)과 그는 각각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서울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66년 1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최성준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