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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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장기천(張基千)
이명
장병두(張炳斗)
생몰
1903년 12월 20일 ~ 1980년 4월 3일
출생지
평안북도 의주군 수진면 가현리
사망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현동
매장지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장기천은 1903년 12월 20일 평안북도 의주군 수진면 가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만주로 망명해 박장호, 조맹선, 전덕원 등이 조직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했고, 1922년에는 통의부(統義府) 제5중대 참사(參士)로서 동지 8명과 함께 의주 고령삭면 일본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 경찰 3명을 사살했다. 또한 1924년에는 이상룡, 김동삼, 현정경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정의부(正義府)에 가담하여 정의부 의용군으로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1927년 7월에는 이진무, 홍학순, 김봉수(金鳳守), 김성숙, 김치복(金致福)·이원진(李元珍) 등과 함께 의용군 제5중대장 김석하(金錫河)의 명령을 받고 국내에 진입하여 구성경찰서와 조악 경찰출장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 시게 타메요시(重爲好)를 사살했다. 그해 8월에는 홍학순, 김봉수 등과 함께 다시 국내에 들어와 먼저 수진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 경찰의 주의를 다른 데 돌린 후 8월 18일에 홍학순, 이원진 등과 함께 용만 금융조합을 습격해 이사를 권총으로 위협하여 890원의 군자금을 확보했다.
이후 본대로 무사히 귀환하고 관전현 일대에서 의열 활동 및 의무금 징수 활동을 지속하다가 1928년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국내로 이송되었고, 1929년 9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요시찰 인물로 간주되어 감시받다가 8.15 해방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으며, 공산화되어가는 북한을 떠나 서울로 이주해 서대문구 대현동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1980년 4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장기천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80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