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사(남원)

 

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1. 개요


임진왜란 당시 남원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절한 순국 선열을 모신 사당이다.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위치하고 있다.

2. 내용


남원시에 충렬사는 2곳이 있는데, 이렇게 2개가 생기게 된 사연이 기구 하다.
원래 있던 충렬사가 원조(?) 라 할 수 있는데, 정유재란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일곱 충신[1]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광해군 4년(1612년)에 남원부의 사람들이 남원성 내(구 교육청 부근)에 칠충사를 건립하였고, 효종 4년(1653년)에 조정으로부터 충렬사의 사액을 하였다. 그 뒤 숙종 1년(1675년)에 동충동으로 이전되었다.
헌종 6년(1840년)에 별도로 건물을 세움과 동시에 박기화를 동배하였으니, 본사 8위, 별실 2위[2]의 규모가 되었다. 1871년(고종 8년) 사우가 철폐되어 단을 설치하고 춘추로 제사를 지냈으나, 1943년 일제는 충렬사를 파괴하고 재산을 압수하여 모든 행사를 중단시켰다. 해방 후 다시 유림들은 즉각 사우(寺宇)를 복설하고 재산 일체를 환수하였으며 사적 제102호 '''만인의총'''으로 지정 됐다.
1964년 만인의총 정화지시가 내려져 허술한 기존 묘역을 이장하여 만인의총(萬人義塚 / 사적 제272호)[3]이 새로 지어지게 되었다.[4] 1979년에는 정화 사업을 마치고 충열사에는 50명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9월 26일(정유년 음력 8월 16일에 해당)에 제를 지내고 있다. 충렬사는 만인의총 내에 있는 사당으로 박정희가 사당의 현판을 주었다고 한다.
  • 충렬사

3. 바깥고리




[1] 정기원, 이복남, 임현, 김경노, 신호, 이덕회, 이원춘 등.[2] 위패를 세는 단위. 즉 10분의 위패를 모셨다는 의미.[3] 남원성 전투에서 산화한 만여명의 의로운 선열들을 기리는 무덤[4] 기존의 사적 제102호는 문화재 위치 이전에 의해 사적으로서의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인정되어 지정해제 되었다.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