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카미 노리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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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
세이도 고교
출신지
사이타마
학년
2학년→3학년(2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등번호
No.10
생일
3월 25일

173cm
체중
63kg
혈액형
A형
좋아하는 음식
김초밥, 카라아게[1]
잘하는 과목
일본사
취미/특기
음악감상 (J-ROCK)
존경하는 인물
고토 마사후미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등장인물. 성우는 시모노 히로. 2학년 투수. 1군에서 중간계투마무리를 전문으로 맡고 있다. 모티브는 이름이나 특유의 머리 스타일, 그리고 사이드암 중계투수라는 점에서 전 주니치 드래곤즈의 투수 카와카미 겐신으로 보인다.
세이도 고교의 사이드암 투수. 컨트롤 위주의 투수로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사이드암으로서의 특색을 잘 살리는 피칭을 하며 1학년 가을부터 구원투수로 출전했기 때문에 계투 경험이 풍부하다. 주 무기는 스트라이크존에서 볼존으로 떨어지는 낮은 슬라이더. 때문에 위기상황에서는 팀에서 가장 신뢰받는 일명 '''"마무리의 에이스"''' .[2] 하지만 멘탈이 약해서 도망가는 피칭을 많이하며 볼넷을 종종 내주곤 한다. 첫 등장이 안습한데, 에이준이 세이도 고교에 견학을 갔을 때 아즈마 키요쿠니에게 갈굼을 당하는 투수가 바로 카와카미다. 당시 에이준에게 도움을 받으며 안면을 텄기 때문인지 초반부터 에이준을 굉장히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오오타 야구부장이 가장 신임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팀이 조금이라도 위기에 빠지면 '''"카와카미! 카와카미를 부르죠!"'''라고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신입1학년 대 3학년의 시합 때 카와카미의 얼굴은 현재 얼굴과 꽤나 괴리감이 있다. 다시 보면서 누구지 했다가 에이준이 키요쿠니 선배에게 대들었던 때를 기억하는 걸 보고서야 카와카미가 이땐 이런 작화였구나.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이 되었다.
여름대회 결승전 9회 말 투 아웃, 1점차 리드상황에서 에이준을 구원등판하지만 볼넷-내야안타-안타를 연달아 얻어맞으며 2실점하는 초특대 불쇼를 저지르며 팀의 고시엔 진출 실패에 일조하고 말았다. 이후 자책감에 엄청난 슬럼프에 빠지지만 조금씩 회복해나가는 중.[3] 여담으로 음악을 좋아해 한 달에 음악잡지를 2권씩 산다. 시라스와 친하다. 동기들이 부르는 애칭은 "노리", 에이준에게서는 "노리 선배"라고 불리고 있다.
주 무기인 슬라이더뿐 아니라 싱커도 던질 수 있었지만, 1학년 가을대회 때 3타자 연속 힛 바이 피치를 내고 자폭한 후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그냥 봉인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을대회 8강전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는 에이준과 사토루에게 위기감과 경쟁심을 느끼고 싱커를 해금하여 미묘하게 각성할 분위기를 내고 있는 중.
그리고 결승무대에서 야쿠시 고교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장한다.[4] 연습무대 외에 공식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덕분에 투지를 불태운다.
트라우마였던 싱커볼을 활용해 야쿠시 타선을 잘 막아냈지만 4회 이후 사나다가 나올줄 알았던 야쿠시에서 라이치를 투수로 기용하는 전략을 선보였는데 이 과정에서 라이치의 볼을 휘두르다가 공을 잘못 쳐서 손끝감각에 마비가 오면서 실투를 연발한다. 결국 에이준으로 교체되어 마운드로 내려오는데 덕아웃으로 들어가는데 감독이 "투지는 분명히 전해졌으나 마지막까지 네가 던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라는 엄한 반응을 보여줘 분한 마음에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가을대회 기록으로는 3경기 5이닝 4실점 3자책점 평자 5.4점으로 부부장이 위급 상황마다 등판을 부르짖고, 타칭 '마무리의 에이스'라고 불리기에는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1회전: 테이토 고교 - 9회 노아웃 상황 등판(마무리). 1이닝 소화. 1실점 0자책 (세이브)
2회전: 나나모리 고교 - 등판 없음
3회전: 우구모리 고교 - 등판 없음
4회전: 오우야 고교 - 등판 없음
5회전: 세이코 고교 - 10회 2아웃 등판. 0.1이닝 소화(마무리). 0실점 (승리)
6회전: 야쿠시 고교 - 선발 등판. 3과 2/3 이닝 소화. 3실점 3자책
1승 0패 1세(이브)
춘계 고시엔에서는 잦은 출루허용과 사토루가 많은 이닝을 소화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적었지만 마무리 투수로 제 역할을 해줬다. 그리고 춘계 지역대회에서는 그동안 봉인해뒀던 싱커를 쓰기 시작했다.
도쿄 대회, 준결승 전에 오른쪽 팔꿈치에 위하감을 느낀다. 자기의 야구는 고교 마지막 이라면서 더 던지려고 하지만, 감독은 이를 만류하고, 검진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출전을 금지시킨다.
[1] 담당 성우인 시모노 히로도 카라아게 덕후로 유명하다.[2] 작중에서 크게 실점한 적은 없지만 이나시로와의 결승 9회말 2사 1루에서의 불쇼가 워낙 임팩트가 커서...[3] 아웃 하나만 잡으면 이기는 경기. 거기서 투 스트라이크까지 잡은후에 말아먹었기 때문에 실제 선수였다면 엄청난 트라우마가 됐을 텐데 어째서인지 사와무라보다도 후유증이 적고 회복도 빨랐다. 1학년 때 아즈마한테 갈굼당하고도 계속 투수로 남아 있었으니 '''실은 의외로 멘탈이 강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4] 사토루가 발목염좌로 인해 담당의사로부터 절대 안정 및 굳이 나가겠다면 1이닝 이상 내보내지 말것을 조건으로 걸었기 때문에 감독은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