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치 드래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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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아이치현 나고야시. 소유주는 주니치 신문사 (
1934년 일본프로야구 원년부터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3개 팀[3] 중 하나로 주부지방을 대표하는 센트럴리그의 전통적 강호이자 인기 팀이었고, 한때 리그에서 요미우리와 더불어 유이하게 비밀번호를 기록하지 않은 팀이었지만, 세대교체에 실패한 '''2010년대 중반부터는 요코하마와 히로시마로부터 센트럴 리그 공식 샌드백 자리를 물려받은 리그 최약팀'''으로 침체기에 빠져있다.
원래 팀 컬러는 일명 '공룡타선' 이라고 불리던, 나고야돔에 비해 작은 구장인 나고야 구장에서 홈런을 양산하는 스타일이었다. 당장에 구단 레전드만 보더라도 에토 신이치, 오시마 야스노리, 야자와 켄이치, 우노 마사루, 오치아이 히로미츠, 타이호 야스아키 등 강타자들이 다수 떠오를 정도. 그러나, 1997년에 현재의 홈 구장인 '''무식하게 넓은''' 나고야 돔[4] 을 홈 구장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이후 1년의 조정기간을 거친 뒤 팀을 순식간에 수비적인 투수중심으로 재편하였다. 현재는 일본프로야구 12구단 중 가장 수비적인 야구를 하는 팀이 되었으며, 이러한 수비적인 팀 컬러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정립한 이래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을 거쳐 완성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상술했듯 팀 컬러부터가 수비를 매우 중시하는 스타일이며, 홈 구장인 나고야돔의 그라운드 크기가 잠실야구장보다 약간 작게 나오니 안 그래도 점수가 적게 나오는 편인 일본프로야구 구단들 중에서도 점수가 적은 경기가 자주 나오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내에서는 간간히 FC 주니치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다.[5]
이러한 수비적 팀 컬러의 영향으로 2000년대 중반, 오치아이 감독이 집권하던 시기에는 투수진의 경우 다른 팀에 갈 경우 당장 에이스에서 못해도 2, 3선발쯤은 할 것 같은 선수들이 중계 혹은 2군 대기 중일 수준으로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야수진은 전 포지션이 골든글러브 후보로 꼽힐 정도로 야수진 또한 막강했다. 하지만 현재는 그 당시의 중심선수들의 대체자원을 구하지 못하며 '''세대교체에 완전히 실패했고,''' 그로 인해 2010년대 중반에는 과거에 압살했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게도 밀리는 약팀의 자리에 머물게 되었다.
참고로 1990년대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일본프로야구 구단이였다. 이유는 선동열, 이상훈, 이병규, 이종범 등 많은 한국인 선수가 이 팀을 거쳐갔기 때문. 그리고 1982년, 한국에서 MBC 청룡이 창단하자 같은 '드래곤팀' 이라는 이유로 서로 자매구단 결연을 맺기도 했으며, 이는 MBC가 LG가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인연이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1987년부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도 제휴 중. 당장 본 문서에 나와있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로고도 다저스와의 제휴 덕에 다저스의 로고와 같은 영어 폰트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2. 역사
2.1. 2010 시즌
홈 승률 7할대의 엄청난 수준의 성적을 거두며[6] , 2006년 리그 우승에 이어 4년만에 9번째 센트럴 리그 우승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후 일본시리즈에서는 퍼시픽 리그에서 '''3위'''를 기록하고 일본시리즈까지 올라온 치바 롯데 마린즈와 7차전까지 싸웠지만 결국 패배하였다. 결론적으로 승자 롯데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대의 하극상'''의 주인공이 되었고, 주니치 입장에서는 이번에도 명승부의 조연 역할을 맡는 익숙한 결말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승팀인데다 홈구장 등을 포함해 팀 컬러 자체가 수비 중심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골든글러브를 단 1개도 수상하지 못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사상 2번째 기록. 공교롭게도 최초 기록 또한 11년 전의 주니치가 달성했다.
2.2. 2011 시즌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 하의 마지막 시즌. 아사오 타쿠야가 '''일본프로야구 최초로 중간계투로서 MVP를 차지'''하는 맹활약을 보였고, 어수선한 팀 분위기와 저반발력 공인구 도입으로 인한 극악의 투고타저에도 시즌 최후반에 극적으로 역전 리그 우승을 이루며 구단 사상 첫 센트럴리그 연패를 이뤄냈고, 비로소 오치아이의 감독 커리어도 최종적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하지만 일본시리즈에 진출해서는 가을만 되면 삽질하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패해 2년 연속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이 좌절되었다.[7]
여담으로 이해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타율, 득점 최하위 리그 우승팀[8] '''이 되는 진기록을 세웠는데, 저런 어마무시한 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우승이 가능했던 건 방어율, 실점/자책점 1위를 기록한 투수진들의 맹활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9]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당시 일본프로야구가 저반발력 공인구로 인한 극도의 투고타저였음을 고려하더라도 어쩌면 주니치는 이 시기부터 이미 암흑기의 싹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2.3. 2012 시즌
신임 감독으로 70년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다카기 모리미치 감독이 부임했다. 리그 2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해 우승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맞붙는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갔는데, 여기서 2010년 일본시리즈와 마찬가지의 사태가 일어나는데, 시리즈 초반에는 3연승을 거두며 3승 1패[10] 로 앞서가다 남은 3경기에서 연패를 당하며 리버스 스윕으로 요미우리에게 패배하고 만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2012년을 마지막으로 주니치의 황금기는 끝이 난다.
2.4. 2013 시즌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밀려 2006년 이후 7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다.
시즌 종료 후 현역 포수 다니시게 모토노부가 선수 겸 감독 자리에 선임되었고, 오치아이 히로미츠 전 감독은 GM으로 팀에 복귀하였다. 이후 '''베테랑 유격수 이바타 히로카즈를 퇴단시키고, 선수단 전반에 연봉 삭감의 폭풍이 몰아치는 등 파란의 오프시즌이 전개되었다.'''
2.5. 2014 시즌
2014년에는 많은 주니치 팬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마는데, 바로 수많은 베테랑들과 유망주들을 퇴단시킨 후폭풍이 몰아닥치게 된다. 시즌 초반에도 수많은 실책 연발로 인해 이길 수 있던 경기를 패배하는 등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8월에 들어서는 한 달에만 20패[11] 를 기록하며 구단 기록을 갱신한다. 여태껏 지켜서 이기는 수비를 중점에 둔 야구를 고수해왔던 주니치는 무작정 지키는 야구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시원하게 센트럴 리그 5위로 내려갔다가, 시즌 막판에 가서는 분발해 겨우 4위로 B클래스 1위 자리를 확보했다.
또한, 선발 출전 멤버보다 우수한 백업, 2군 멤버가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연공서열식의 선수기용으로 인해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실제로 주니치에서 방출되고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계약을 해서 괜찮은 성적을 남긴 야나기다 시게오의 경우, 주니치전에서 결승타를 기록한 이후 '''''주니치에선 결과를 남겨도 선발 멤버로 기용받지 못한다, 애시당초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 라며 주니치의 구단 운영 방식을 비판했다.
2.6. 2015 시즌
한신과의 원정 개막 3연전을 모조리 패배하며 우려를 자아냈으나, 그 다음 주 요미우리와 히로시마 6연전에서 모조리 승리하고 6승 3패로 센트럴 리그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다시 죽을 쑤기 시작하며 1위 자리를 베이스타즈에게 내주었고, 곧이어 2위 자리 또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양보했다. 2015년 5월 기준으로 3위 자리 역시 한신에게 빼앗기며, 다시 3약 포지션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6월이 끝나가는 시점에 들어서는 야쿠르트마저 주니치를 추월해버리며 잘못하면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2015년 6월 26일, 결국엔 리그 6위까지 추락해버렸다.
2015년 7월 5일 기준으로, 센트럴 리그에서 다른 5개팀과 멀찍이 떨어진 4할 3푼대 승률로 리그에서 제일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상태이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점은 퍼시픽 리그 6위 오릭스 버팔로즈 보다는 승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도 센트럴 리그 전체가 1992 시즌을 뛰어넘는 수준의 상당한 대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 어찌어찌 바로 윗 순위에 자리잡은 5위 히로시마와 2게임 차까지 따라붙었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투타가 완벽하게 폭망하며 아예 최하위 자리에 고정되었다. 결국 팀 체질 개선을 위해 다니시게 모토노부 감독과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야마모토 마사, 와다 카즈히로 등의 노장 선수들이 2015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그래도 시즌 막판 요코하마가 더 빠른 속도로 역사에 남을만한 DTD를 시전하면서 최하위는 면했지만 '''3년 연속 B클래스는 센트럴 리그 출범 이후로만 따지면 1968-1970년 이후 45년만에 달성하게 된 역대 두번째 기록이다.''' 게다가 다음 시즌 전망도 밝은 편은 아니라는 점에서 자칫 잘못하면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구단 역사상 초유의 암흑기로 돌입하게 될 우려도 있다.
2.7. 2016 시즌
선수에서 은퇴한 다니시게 감독이 본격적으로 감독직에 전념하게 되는 첫번째 시즌이다. 아무래도 지난 2년동안의 부진은 선수와 감독 업무를 겸하느라 팀 운영에 집중할 수 없었다는 구실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정말로 정식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평가받는 시즌이다. 그러나 전임 감독이 말아먹고, 단장은 연봉을 삭감하는데는 수완을 발휘했지만, 쓸만한 선수들을 데려오고 발굴하는 능력은 영 좋지 않았다. 그래서 시즌 전 예상도 최하위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4~5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상에 집중되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혼전 양상'''인 센트럴리그에서 어떤 때는 선두에 오르는 등 A클래스 싸움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당초 예상보다는 잘 버텨주는 중. 홈런 선두를 달리는 외국인 타자 '''다얀 비시에도'''가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고 있고, 중간계투인 타지마 신지는 개막 후 27경기 연속 무실점이라는 일본프로야구 신기록을 썼다. 하지만 모두의 염원인 세대교체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 모습이다.
2016년 7월 7일 현재, 비시에도는 홈런(18개)과 타점(55개) 각 리그 3위를 기록중이다. 와카마츠, 오노, 조던, 요시미로 선발 로테이션을 꾸리고 있지만, 타 팀에 비해 중량감은 비교적 떨어지는 모습이다. 팔꿈치 부상에서 돌아온 왕년의 에이스 요시미의 페이스가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 것이 아쉬울 따름. 타선 역시 리드오프 중견수 오시마, 중심타선의 히라타, 비시에도, 주전 포수로 발돋움한 스기야마 정도를 빼면 나머지는 그저 그런 수준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2~4위를 왔다갔다하며 리그 순위싸움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1위는 갑자기 넘사벽이 되어버린 서쪽의 어느 팀에게 넘겨주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되나 안되나 하는 어떤 팀과 함께 순위다툼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은 참 존재감 없게 보내는 중이다.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요미우리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요코하마와는 달리 위로 치고 올라갈 추진력도 없고 그렇다고 밑으로 치고 내려갈 정도로 개막장인 모습도 안 보이고 그냥 저냥 평범한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순위가 오르내리는 것도 자신들이 잘하고 못해서라기 보단 요미우리와 요코하마가 못하면 순위가 좀 올라갔다가 두 팀이 좀 정신을 차리면 다시 내려가는 느낌적인 느낌. 아무래도 감독이든 선수든 딱히 화제가 될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는 것도 최근 3년간에 비하면 그럭 저럭 잘 버팀에도 불구하고 임팩트가 전혀 안 보이는 원인 중에 하나다.
결국 전반기 마지막 10게임을 4승 6패로 마무리하며, 39승 45패 4위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아직 2위 추격의 가능성은 남아있으나 올해도 전반기를 B클래스로 마무리했고, 3위 경쟁중이던 요코하마와의 전반기 마지막 3연전 맞대결에서 1승 2패로 루징 시리즈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상위팀의 DTD가 없으면 올해도 역시 B클래스에 머물 확률이 높아보인다.
후반기를 시작하자마자 수위 히로시마를 만나 깔끔히 루징시리즈로 시작한 데 이어, 홈인 나고야돔에서 야쿠르트에게 폭풍 스윕을 당하며 야쿠르트에게 4위 자리까지 내주고 결국 5위로 내려 앉았다. 그리고 올스타전 이후 전반기까지 2위 경쟁을 하던 팀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수준의 경기력으로 4승 13패를 기록하면서 마침내 최하위로 추락했다.
결국 2016년 8월 9일, '''다니시게 모토노부 감독이 사임을 발표했다.'''[12] 본인은 성적부진이 이유이며 자신은 휴양할 것이라 밝혔다. 잔여시즌은 수석코치 모리 시게카즈의 감독대행 체제로 가게 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감독이 사임하면 그 충격으로 잠깐동안 성적이 잘 나온다던가 그런 케이스도 있지만, 그런 것도 전혀 없이 정말 제대로 추락 중이다. 2016년 8월 13일, 한 때 같이 순위 싸움을 하던 3위 요코하마와는 '''8.5게임차'''까지 벌어졌으며, 심지어 5위 야쿠르트와도 무려 4게임차가 난다. 8월 16일 시점에서 승률이 퍼시픽 리그 최하위인 오릭스 버팔로즈보다도 낮게 내려가면서 사실상 양대리그 최하위 구단이 되었다.
그 와중에 센트럴 리그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제대로 해냈는데, 선두 추격을 벌이던 요미우리 자이언츠과의 원정 3연전을 모조리 싹쓸이하면서 바로 다음 시리즈로 벌어진 히로시마 도요 카프 전에서는 오히려 스윕을 당해줬다. 덕분에 카프의 매직넘버를 대대적으로 줄여 주면서 한신 타이거즈와 함께 카프의 세리그 우승에 일조해주고 말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DTD를 시전하다 결국 9월 16일 VS 히로시마 도요 카프 戰에서 0-8로 무참히 영봉패함으로써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 양대리그 분리 이후 구단 사상 처음으로 '''4년연속 B클래스'''를 확정지었다. 본인이 단장으로 재임한 3년동안 팀이 B클래스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으며, 자신이 앉힌 감독과 마찰만 빚고 팀을 점점 수렁으로 빠지게 한 단장은 자신이 선수들에게 그렇게 했듯이 2016 시즌이 끝나고 몰아치게 될 칼바람을 피할 수 없을 듯 하다.
B클래스 결정 이후엔 17, 18일 경기를 연승하며 그나마 최하위는 탈출하려 노력하나 싶더니 곧바로 4연패로 졸렬한 플레이를 선보인 끝에 25일, VS 한신 타이거스 戰에서 4-1로 패하면서 결국 '''19년 만의 최하위가 결정되었다.'''[13] 더욱 안습인 건 '''팀에 규정타석을 채운 3할 타자도 없고,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도 없다는 것.''' 이래저래 주니치에겐 최악의 해가 되어버렸다.
고액 연봉에 비해 노쇠화로 돈 값 못 하는 노장들을 차례로 방출하거나 은퇴시킨 판단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이들을 대체할 선수를 구하지 않았음은 물론 나카타 겐이치나 다카하시 아키후미 등 실력있는 중견선수마저 FA로 잃었다. 사실상 어떻게 보면 최하위 추락은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그 후 시즌 최종전 다음날인 2016년 9월 29일, 당초 예상되던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2군 감독의 1군 감독 승격설을 뒤엎고 모리 시게카즈 감독 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선임했다.
2.8. 2017 시즌
과거의 화려했던 전성기는 이제 '''자기 위로용 추억이 돼버렸다.''' 물론 2017 시즌을 개막하자마자 요미우리, 히로시마의 강호와 맞붙는 대진표 상의 불운도 있기는 했지만, 개막 6경기동안 무려 '''1무 포함 5연패'''로 시즌을 시작하면서 2017년 역시 매우 불안한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개막 7경기만에 어김없이 DTD DNA가 발동하고 있는 요코하마를 상대로 간신히 역전승을 거두면서 개막 7경기만에 간신히 1승을 거뒀지만, 시즌 시작부터 전년도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며 일찌감치 최하위로 쳐졌다. 다음날 요코하마 투수진에게 삼진을 15개나 헌납하면서 연장 12회 끝에 무승부를 기록, 그 다음날도 타선이 삼진 11개를 헌납한 끝에 카지타니 타카유키에게 역전 홈런을 허용하고 패배하면서 일찌감치 최하위 자리를 굳힐 기세다. 4월 18일까지 시즌 전적 3승 2무 10패에 승률은 .231. 그나마 상대전적이 동률인 팀[14] 들이 함께 하위권을 구성하고 있고, 의외로 3연전 스윕패는 개막시리즈 1번밖에 당하지 않는 등 버티는 방식의 야구는 겨우겨우 되고 있다.
하지만 원체 약체화된 전력이라 대부분의 시리즈를 루징으로 마감하고 4월말, 5월초에 걸쳐서 6연패를 기록하면서 잠시 벗어났던 최하위 자리에 다시 복귀하고 말았다. 그나마 야쿠르트가 최하위권에서 같이 놀고 있어서 외롭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어쨋든 최하위는 최하위다. 그리고 교류전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한신(원정) - 히로시마(홈) - 요코하마(원정) - 야쿠르트(홈) 순으로 대진표가 짜여져 있다. 그 기간 중에 선두를 달리는 히로시마를 스윕하는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며[15] 7승5패로 선전했으나 여전히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한채 교류전에 돌입했다. 첫 상대는 하필이면 교류전의 최강자.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시작부터 꼬여서 더더욱 수렁으로 빠질지는 교류전이 끝나봐야 알 듯.
그러나 소프트뱅크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1승을 따내면서, 같은 시간 오릭스에게 3연패를 당한 야쿠르트를 제치고 탈꼴찌에 성공했고, 퍼시픽리그의 강자 라쿠텐과의 3연전에서는 승-패-승을 기록하며 위닝시리즈를 기록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5위 자리를 굳혔다. 진 경기에서도 팀의 고참 내야수 아라키 마사히로가 주니치 선수 최초로 홈구장에서 2000안타를 달성하며[16] 명구회에 가입하게 되어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경기가 되었다. 또 아라키가 2000안타를 친 직후 주니치 OB이자 그의 은사인 라쿠텐 구단 부회장 호시노 센이치가 축하 꽃다발을 주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이에 관련해서 네이버에 일본야구 칼럼 쓰는 기무라 고이치도 글을 써줬다.
그리고 6월 6일, 롯데전에서 승리하며 같은 시간 세이부에게 패한 요미우리를 제치고 4위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6월 17일 세이부전에서는 창단 첫 교류전 우승에 도전하는 세이부에게 고춧가루를 뿌리며 우승을 좌절시켰다. 이후 재개된 리그전에서도 의외로 제법 잘 버텨내면서 4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신 상대로 스윕승에 성공한 뒤 바로 다음 히로시마와의 시리즈에서 스윕패를 당해주면서 히로시마의 1위 수성을 제대로 도와주기도 했으며 야쿠르트를 상대로도 싹쓸이 승을 해서 야쿠르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선수들 중에서는 이와세 히토키가 돋보였고 실제로 이와세는 6월 리그 MVP를 수상했다.
교류전 이후 홈인 나고야 돔에서 극강 모드를 보여주면서 승수를 쌓고 7월 초에는 3위 요코하마를 2경기차로 바짝 추격하면서 잠시 A클래스의 자리를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전반기 마지막 3경기에서 3연패를 함으로써 되려 5위 자리에서 헤매던 요미우리에게 4위 자리를 뺏기고 5위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그리고 나서는 옆리그 4위팀 처럼 위, 아래로 까마득한 승차를 두고 5위에서 나홀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바로 위하고는 9~10게임차, 밑하고는 13~15게임차에서 거의 변동없이 가기 때문에 이대로 5년연속 B클래스는 거의 확정. 순위도 거의 움직이지 않고 페넌트레이스 판도에도 영향을 거의 못 미치는 관계로 8월 이후로는 거의 아오안 신세이다. 차라리 최하위를 달리는 팀은 우승한지 2년만에 극적으로 몰락하고 역사에 남을 흑역사 시즌을 기록하면서 주목이라도 받지만 이 팀은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준다. 심지어는 홈팬들 조차도. 실제로 역대급으로 참혹한 성적을 거둔 야쿠르트 조차도 2017시즌 관중동원은 증가했는데, '''센트럴리그 6개 팀 중 유이하게 관중이 감소했으며[17] ''' 실제 직관을 간 팬들에 의하면 갈 때마다 관중석이 텅텅 비어있는 느낌이 점점 강해진다고. 이대로 가면 암흑기의 장기화를 피할 수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결국 9월 20일, 요미우리가 한신에게 승리하면서 2017년 시즌도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러고 더 쓸 거리가 없을 줄 알았더니 난데없이 3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한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가 19년만에 일본시리즈에 진출하면서 최근 5년간 센트럴리그의 나머지 5팀이 한번씩 일본시리즈 맛을 보는 와중에 혼자 그 기간 중에 5년연속 B클래스를 기록하게 됐다. 한 때는 리그를 호령했던 최강팀이 혼자만 낙동강 오리알이 되면서 2017년은 주니치 입장에서 더욱 비참한 한 해가 됐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신인인 교다 요타가 시즌 149안타를 치면서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일본 대표팀에 뽑혀 주전 2루수로 좋은 활약을 보인 데 이어 강력한 경쟁상대였던 DeNA의 하마구치 하루히로를 제치고 센트럴리그 신인왕을 수상한 것. 그 외에 긍정적인 뉴스는 부동의 리드오프 중견수 오시마 요헤이의 꾸준한 폼,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개고생했지만 어느 보직에서나 좋은 모습을 보인 사이드암 투수 마타요시 카츠키, 용병 알렉스 게레로가 35홈런으로 세리그 홈런왕 타이틀을 수상한 것, 만년 2군 본즈였던 후쿠다 노부마사의 각성, 오가사와라나 스즈키 쇼타 등 젊은 투수진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정도. 하지만 나고야 돔의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투수진이 전반적으로 침체했으며, 투타의 에이스 역할을 기대했던 투수진의 오노 유다이나 중심타자 히라타 료스케나, 야수진 리빌딩의 중심이 될 거라 여겨진 다카하시 슈헤이, 엔도 잇세이 등이 모조리 폭망해버렸다. 주축 선수들이야 언제든지 반등할 수 있다 해도 야수진의 성장이 정체된 것은 앞으로의 미래에도 암운을 드리우는 상황.
시즌 중의 얘기로만도 충분히 암울한데 시즌 끝나고 나서는 2017년 홈런왕 알렉스 게레로를 교섭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포기하는 등 시즌이 끝나고도 암울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물론 게레로가 2017 시즌의 홈런왕의 실적을 믿고 3년 계약, 연봉 5억엔을 요구하는 등[18] 무리한 요구를 한 측면은 있으나 지금 선수 성장이 부진해 찬밥 더운밥 가릴 것도 없는 주제에 그 와중에 합리적 경영을 한답시고 팀 내 얼마 되지도 않는 제대로 활약하는 선수를 내보내는 등 앞으로도 침체기가 더욱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5년 연속 B클래스로 시즌을 끝내자 시라이 분고 구단주[19] 가 시즌을 마무리하는 납회식 자리에서 구단의 문제점에 대해서 선수단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기관지인 주니치 스포츠는 팀 개혁을 외치면서 히로시마를 본받자, 요코하마를 본받자, 소프트뱅크를 본받자 등등을 기치로 내걸고 연이어 기획기사를 싣고는 있는데 제 3자의 눈으로 볼 때는 개혁은 여전히 입으로만 외치는 수준. 팬들 입장에서는 내년이면 90세인 시라이 구단주가 낡은 사고방식 그대로 구단을 좌지우지하는 한 구단의 체질이 바뀔리가 없다며 자조하는 중이다.
2.9. 2018 시즌
알렉스 게레로를 요미우리에게 뺏긴 데 이어 2017시즌에 꽤 쏠쏠하게 활약한 좌완투수 조던 노베르토가 야쿠르트와 계약을 하면서 팀을 떠났다. 보강이라고는 닛폰햄에서 FA를 선언한 포수 오노 쇼타를 획득한 것이 고작. 물론 전혀 무의미한 보강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나 포수라고는 해도 단 한번도 시즌 규정타석을 채운 적이 없는 선수에게 3년 총액 2억5천만엔의 계약을 안겨준 것부터 아직도 강호 부활을 위해서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게다가 오노는 2017시즌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이력이 있으며(숨기지는 않았고 주니치 구단측에서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2017시즌 도루저지분야에서 커리어 로우를 찍었다. 결국 2018년도도 1할6푼의 타율과 역대 최악의 도루저지율, 피도루시도율을 찍으며 주전자리도 5월들어 마쓰이 마사토에게 내 주며 먹튀화. 더군다나 오노 쇼타의 전 소속팀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그 대가로 보상선수대신 전액 돈으로 받아가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선수층이 쓰레기라는 것을 확인 사살.
여기에 소프트뱅크에서 3년간 12억엔을 먹튀하고나서 미아가 된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데려올 가능성이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미친 게 아니냐면서 팬들에게 까이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마쓰자카의 부활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싼 값에 마쓰자카의 이름값으로 관심이라도 끌어서 부진한 관중동원의 타개책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도를 대놓고 드러내면서 팬들이 뒷목을 잡고 있는 중. 마쓰자카 영입 보도에 시라이 구단주가 나서서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면서 일단 부정했지만 정작 팬덤 내에서는 "저 영감 저러고 딴청부리는 게 하루이틀이냐, 어차피 얘기 다 끝내놓고 연막피우는 거"라면서 일본 사정으로 모르는 한국의 기자들이 구단주의 발언을 진심인 줄 알고 보도하고 있을 즈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마쓰자카에게 입단 테스트 기회를 주겠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팬들의 추측대로 구단주의 발언은 연막용이었음이 드러났다. 마쓰자카가 합격할 경우 등번호 99번 배정 얘기가 나오는 등 벌써 거의 입단한 선수 취급을 해주더니 기어코 마쓰자카를 '''합격'''시켰다. 정작 더 놀라운 건 막상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자 구단 관련 소식은 온통 마쓰자카의 얘기로 도배중. 처음엔 제대로 전력보강을 해도 시원찮은 판에 잉여전력 영입을 까던 팬들도 어차피 연봉은 1500만엔 수준이고 설마 했는데 정말로 구단 의도대로 관심을 끄는데 성공해서 그냥 화제거리만 돼도 본전은 뽑으니 상관 없다는 분위기가 우세해졌다.
닛폰햄에서 FA로 데려온 오노 쇼타의 보상선수와 관련하여 충격적인 카더라가 보도되었는데 NPB 최다 세이브의 주인공인 '''이와세 히토키'''를 "남의 팀 레전드에 이제 은퇴도 얼마 안 남았는데 설마 데려가겠어?"라고 배짱을 부리고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가 돼버렸고, 규정에 따라서 이와세에게 사실을 통보하자 이와세가 "이제와서 팀을 떠날 바에야 은퇴를 하겠다"라고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주니치 프런트는 그제와서 허겁지겁 닛폰햄에게 이와세의 의중을 전달하면서 사정을 봐달라고 굽실굽실한 끝에 발표된 액수에 웃돈을 얹어주고 무마했다고 한다. 물론 이 카더라의 출처가 황색언론으로 악명 높은 도쿄 스포츠(東スポ)[20] 인지라 반향은 미미했지만 닛폰햄이 주니치로부터 보상선수 명단을 받았을 때 "우리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흥미있는 명단이다."라는 반응을 보였었고[21] 바로 보상선수를 지명할 것처럼 해놓고서는 해를 한참 넘긴 후에 고작 금전으로 보상을 받겠다는 발표에 다들 의아해하는 반응이었는데 그 흥미있는 명단의 정체가 이와세였다는 얘기다. 도쿄 스포츠 보도라서 일단은 신빙성은 낮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1월 20일 산케이 스포츠에서 확인 사살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22] 그야말로 이 팀이 답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해프닝이라 하겠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5년연속 B클래스를 기록하고도 구단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덕분에 2018년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력한 최하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018년 1월 19일 정식으로 '''스즈키 이치로'''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기사 이치로 영입전 참여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와이드쇼에서 이 소식이 대서특필되었으며, 인터넷상에서도 주니치의 안습한 선수뎁스로 인해 이치로가 주니치 입단시 전경기 선발출장 가능(...)이란 개드립이 돌기도 했다. 결국 이치로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했고, 마쓰자카와 이치로를 같은 팀에서 볼 수 있다는 소박한 꿈은 결국 이치로가 시애틀 매리너스로 가면서 아시발꿈으로 끝났다.
그리고 시즌 시작 전 모리노 마사히코 코치가 가족여행, 외식 경비를 사업소득의 필요경비로 처리하는 등 선수시절 경비처리를 잘못해 3,900만엔을 필요경비로 과소신고하여 나고야국세국의 조사를 통해 가산세까지 합친 1,600만엔 가량을 토해내야 했고 구단으로부터 주의조치를 받았다. 마이니치신문 기사
2018시즌 개막전 상대는 리그 3연패를 노리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이다. 개막 3연전에서 오프시즌 동안 각종 삽질을 해온 웃음후보답게 깔끔하게 싹쓸이 3연패. 시즌 시작하자마자 바로 최하위로 쳐졌다. 팀 전력도 암울한데 설상가상으로 일부 주니치 팬들이 개막전 경기에서 '''"원폭이나 맞아라 카프"'''[23] 라는 충격적인 비하 구호를 외친 장면이 트위터[24] 에 올라와서 그 영상이 유튜브 등에 퍼지는 일이 벌어졌다기사. 심지어 개막전은 히로시마의 홈구장인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벌어졌다. 즉 자기 홈구장도 아닌 원폭의 피해를 입은 상대팀 홈구장에서 저런 구호를 외쳐댄 것. 잘 나가던 팀이 몰락하면서 비뚤어진 팬심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금기까지 넘은 것으로 KBO 리그에 빗대자면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원정팀 팬이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구호를 외친 것과 다를 게 없다. 그 후 주니치 구단측은 나고야 돔에 전광판을 띄워 팬들에게 주의를 구했으나, NPB 규정 상 헤이트 스피치나 차별행위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구단에 대한 NPB 차원의 징계나 해당 발언을 한 팬에 대한 입장금지 처분 등의 조치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개막 3연전 다음 경기인 요미우리와의 홈 개막전에서도 패하면서 12개구단 유일의 무승팀이 되었고, 그 다음날 경기에 시즌 첫 승을 거두기는 했으나 요미우리와의 3연전도 루징시리즈를 기록했다. 4월 6일 한신전에서 승리하면서 시즌 초반 부진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DeNA를 제치고 일단 5위로 오르기는 했다. 그러나 다시 털리면서 최하위로 내려갔으며 한신 3연전에서 위닝시리즈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요미우리가 6연패로 DTD 하면서 어부지리로 일단 탈꼴찌는 했지만 그 기간동안 DeNA와의 3연전도 스윕당해서 게임차는 1게임차로 못 줄였고 성적도 6승 9패에 머물러 있다. 딱히 돌파구가 없다는 점에서 탈꼴찌야 가능하겠지만 상위권 진입은 어려운 상황. 이 와중에 히로시마와의 홈경기를 스윕하는 충격적인 활약도 잠시, 25일 요미우리와의 원정 경기에서 '''무려 20점이나 내주며 개털렸다.'''
4월 30일 요코하마전에서 승리했는데 그 경기가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일본 복귀 후 첫 승리 경기였다. 그 전에 4연패를 해두고서 겨우 1승 거둔 것임에도 구장의 분위기는 마치 우승이라도 한 분위기. 일단 마쓰자카의 등판 경기는 관객이 꽉꽉 들어참으로써 데려온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기는 하다. 또한 개막후 5월 말 기준 2승3패 평균점자책점 3.08이라는, 사사구는 많지만 기대이상의 성적을 보여주며 오가사와라 카사하라등 젊은 선수들이 등록말소된 현재 요시미와 더불어 마쓰자카는 로테이션 진입에 성공했다... 요시미, 야마이, 마쓰자카가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는것은 좋은데 이들은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 젊은 선수들이 죄다 폭망한 것은 뼈아픈 손실일듯.
5월 16일 기준으로 이번시즌 새로 들어온 외국인 선수인 쿠바 출신 좌완 투수인 오넬키 가르시아가 선발로서 제몫을 다하고 있고,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타자 소일로 알몬테도 알렉스 게레로 만큼의 파괴력을 가지진 않지만, 높은 타율과 장타력으로 클러치 히터로서 면목을 보이고 있다. 또한 시즌 초 부진했던 오오시마와 교다가 살아나고 있으며 역시 부진했던 후쿠다는 홈런 4발과 2할9푼의 타율을 기록했으나 6월들어 다시 침체되고 있다. 그나마 히라타가 각성하여 홈런을 제외하고 커리어하이를 기록중에 있는것이 위안거리.
5월 17일에는 프로듀스 48에 참여한 SKE48의 마츠이 쥬리나가 드래곤즈 응원대사로 취임하면서 시구를 했다.
5월 22일 요코하마전에서 부진했던 오오시마(...)의 2연발 홈런과 비시에도의 홈런, 히라타의 투런포 등으로 8 대 0으로 압승을 거두며 만 40세 야마이의 완봉승을 기록시켜 주었다. 또한 이 경기로 팀은 3위 요코하마를 1게임차까지 따라잡으며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시즌 초 게레로와 발데스 조던 등의 이탈로 약체화 될 듯 보였던 전력은 알몬테와 가르시아가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잘 메꿔 나가고 있으며 시즌 초 부진했던 오오시마 교다 후쿠다가 5월들어 부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히라타 료스케를 빼면 14년도부터 선발 중간을 오가며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마타요시, 15년도부터 부동의 1선발이었던 오노, 전년도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한 다니모토등 30살 전후의 중견 선수들이 죄다 폭망했으며 신인의 성장이 정체 되었다. 대표적으로 프로 7년차로 유망주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다카하시 슈헤이는 주전을 노리기 위해 2루수 전향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으나 부진하여 2루 자리는 도노우에, 아베, 가메자와등을 거쳐갔다. 다카하시도 7년차에 접어든 만큼 각성하지 못 하면 주전은 고사하고 전력외 통보로부터 자유롭긴 힘들듯. 실제로 작년 11월에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트레이드가 성사 직전까지 갔다! 다만 6월 24일 현재 타출장 0.265 0.315 0.415 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2루수 자리를 지키는데 성공했다.
5월 현재 잠시 반등에는 성공했으나 내년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베테랑과 용병의 활약으로 반등한 이상 올 시즌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더라도 내년부터는 이 전력중 몇 명이나 남아있을지는 미지수. 당장 남들 WBC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이 어부지리로 홈런왕을 차지한 게레로를 돈 문제로 놓쳤는데 "1점대" 자책점 가르시아와 6월 24일 경기 종료시점에서 타율은 게레로보다 7푼이나 높고 홈런 개수는 10개로 같은 알몬테를 주니치에서 그에 걸맞는 돈을 지불할리가...
유력한 그리고 독보적인 최하위 후보였으나 의외로 선전하며 혼전 양상에 잘 끼어들어 6월 23일 요코하마전에서 5대 3으로 승리함에 따라 2016년 7월 12일 이후 711일만에 3위, A클래스로 올라섰다. 그러나 5위와 0.5게임차로 다음날 패배시 5위까지 추락할 위기에 처했으며 실제로 마무리투수 타지마 신지의 화려한 불질로 다시 5위로 추락했다. 6월 27일 기대주 후지시마의 대량실점으로 야쿠르트에게 연패를 함에 따라 6위로, 심지어 28일 경기에서 타선의 활약으로 간만에 점수를 냈건만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던 소부에의 투런허용과 타지마의 5실점으로 화려한 불꽃놀이를 장식하셨다...
타지마의 잦은 방화 로 불펜을 다시 점검하겠다는 모리 감독의 선언이 있었으며 실제로 6월 30일 요미우리전에서 타지마는 6회에 2점 "뒤쳐진" 상황에서 등판하여 추격조 취급을 받으며 등판하였으며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 등판하자마자 얻어터지며 실점을 기록, 2이닝 1실점이라는 패전처리투수다운 결과를 남겼다.
결국 타지마는 7월17일자로 2군으로 강등당하고 마무리 자리는 스즈키 히로시가 차지했으나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여 결국 7월 22일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강속구 좌완 투수 조엘리 로드리게스를 영입하였다. 다만 아무리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들 혼자서 큰 영향을 끼치긴 힘들것이며, 야쿠르트전에서 외야수 소일로 알몬테와 스티븐 모야가 하루간격으로 부상크리를 입었다. 심지어 모야는 오른 손 바늘뼈 골절로 사실상 시즌 아웃. 마운드는 상술했듯 개판이 났지만 타선은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다. 다얀 비시에도는 8월 놀라운 타격 페이스로 수위타자 경쟁을 주도하고 있고 지난시즌 부상크리로 부진했던 히라타 료스케가 커리어 사상 처음으로 3할 타율을 노리고 있다. 시즌 초반 부진하던 오오시마 요헤이도 2할 7~8푼을 오가며 준수한 활약을 보이는 중. 과감히 2루수로 박고 키우던 타카하시 슈헤이도 결국 2할 중반 타율에 11홈런을 기록하는 갭파워를 가진 2루수로 정착했다. 소일로 알몬테 도 부상을 입기 전까진 빼어난 타격감을 보여주는 등 타선은 꿀리지가 않는데 그놈의 마운드가 아주 난리가 나서...
결국 9월 들어와서는 최하위에 쳐박혀서 반등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9월 4일 야쿠르트 전에서는 9회말 6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동점을 허용한 뒤에 연장 12회 말에 쓰리런 홈런을 맞고 역전패하는 등 경기력도 엉망이었다. 그나마 요코하마가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하면서 0.5 ~ 1게임차에서 5, 6위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지만 그 이상 순위를 끌어올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6년연속 B클래스는 거의 확정적. 유일한 위안이라면 센트럴리그 팀들이 열심히 히로시마의 3연패 행진에 승수를 조공하는 와중에 유일하게 히로시마와의 시즌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기록한 것[25] . 9월 7~9일 3연전 스윕으로 히로시마와의 상대전적 13승 11패로 우위를 확정지었다. 11일 한신전마저도 승리하며 5연승을 내달린 덕분에 다시금 3위 싸움에 끼어드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정말정말 분발한다면 5년간의 암흑기를 끊을수도 있는 상황. 일단 17일까지 5경기를 치르는 동안 3승 2패를 거두며 3위 요미우리와의 승차를 촘촘히 유지하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리즈라 할 수 있는 요코하마와의 원정 2연전에서 모두 패배하며 실낱같던 3위의 희망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21일 경기에선 요코하마를 상대로 유독 강했던 오구마를 선발 투수로 투입시켰으나 시원하게 6실점으로 털렸고 22일 경기는 타카하시 슈헤이의 투런 홈런을 제외하면 어떠한 득점을 올리지 못했고 2회 2득점 이후 무득점으로 막히면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이어진 야쿠르트와의 홈 3연전마저도 시원하게 피스윕으로 말아먹으며 6년 연속 B클래스 확정, 비밀번호 문서에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다. 시즌 막판 최하위가 유력했으나 결국 한신이 더 막장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최하위는 모면했다'''.
9월 26일 아사오 다쿠야, 아라키 마사히로 그리고 마침내 이와세 히토키가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 황금기를 지탱해 온 주축들도 팀을 떠나고 영광의 시절은 점점 추억속에 묻혀져 가고 있다.
결국 10월 13일 한신과의 정규시즌 마지막 홈경기가 끝난뒤 모리 시게카즈 감독이 물러날 예정이고 후임감독에 팀의 또다른 레전드 요다 츠요시를 새감독으로 선임할 예정. 비록 요다가 구단 OB 출신이기는 하지만 감독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지금의 붕괴된 팀 상황에 과연 적절한 인선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는 팬들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팀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도 팀 OB 출신 감독 같은 명분에 집착할 때인가? 이게 주니치 구단이 안되는 이유" 라면서 팀의 OB라는 이유만으로 코치 경험은 있지만 감독경험은 전무한 초짜를 감독으로 앉히는 데에 비관적인 견해를 보이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팀의 분위기를 바꾸려면 주니치 구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팀 OB에게 맡기는 게 비즈니스 수준으로 감독직을 수행하는 타팀 출신보다 낫지 않을까"라는 견해를 보이는 팬들도 있었다. 다만 어떤 입장이든 수석코치로 베테랑감독 이토 쓰토무가 선임된 것에 대해서는 일종의 보험으로서 적절한 인사라는 데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3년간 기아 타이거즈에서 배터리코치를 역임한 나카무라 타케시를 비롯하여 코치진을 일명 호시노 칠드런 중심으로 싹 다 물갈이 하였다. 전 감독인 모리 시게카즈는 시니어 디렉터로서 종합편성부장에 취임할 예정.
그 와중에 2017년 이와세에 이어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2018년 컴백상을 수상하며 2년 연속 컴백상 선수를 배출하였다. 마쓰자카와 1500만에서 8000만엔으로 대폭 인상한 금액으로 재계약 하였고 일본에서 '에이스의 상징'인 등번호 18번도 되찾게 되었다.
타선은 꾸준함을 보여준 오시마와 3할 타율을 찍으며 부활한 히라타, 두 자릿수 홈런을 치며 만년 유망주 딱지를 어느정도 벗은 2루수 다카하시 슈헤이 등 토종 타자들이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용병타자도 수위타자에 무결점 비율스탯을 찍은 1루수 다얀 비시에도, 알렉스 게레로의 좌익수 공백을 저렴하게 잘 메꿔준 소일로 알몬테와 주전 자리는 차지하지 못했지만 가능성을 보여준 스티븐 모야 등 모든 자원들이 꽤 준수한 생산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작년 신인왕인 쿄다 요타가 막장 선구안과 장타력은 내다버린 슬랩히팅으로 LG 시절 이대형스러운 타격성적을 내며 폭망한 것[26] 을 포함해 FA 영입한 오노 쇼타 포함 잘 하는 녀석이 아무도 없었던 포수진처럼 약점인 포지션이 뚜렷했다. 생산력을 보여준 타자들도 대부분 베테랑이나 외국인 선수였단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세대교체가 또 다른 과제로 던져질 예정.
하지만 이 팀을 말아먹은 가장 큰 원인은 투수진. 그 드넓은 나고야 돔을 사용하고 한때는 철벽 투수진과 수비력으로 리그를 제압했던 팀이 야쿠르트보다도 나쁜 '''12개 구단 최악의 팀 평균자책점'''[27] (4.36)을 기록했으니 타선이 세이부나 히로시마급으로 막강하지 않는 이상 이길 수가 없다. 보강이건 육성이건 간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부분.
2.10. 2019 시즌
그토록 바라던 네오 아키라를 드래프트에서 획득하는데 성공하나 이게 끝. 아니 오히려 더 약화되었다. 오릭스에서 FA를 선언한 니시 유키의 쟁탈전에서 조기 철수한 것을 비롯, 자유계약으로 풀린 가네코 치히로의 쟁탈전에서도 2년 총액 3억을 준비했으나 조기탈락. 결국 변동 없이 새 시즌을 맞는가 했더니 13승을 거둔 에이스 오넬키 가르시아의 탈퇴 소식이 전해져[28] 그야말로 팬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가르시아는 전 시즌 최하위 한신에서 영입을 사실상 확정지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한편[29] 가르시아의 공백은 SD로 진급한 모리 시게카즈가 새로 발견한 도미니카 출신 애니 로메로[30] 와 1년 5천만엔에 계약하였으나 이닝 소화능력이 원체 저질이라 안 그래도 망가진 불펜에 과부하 제대로 걸릴듯.
요다 감독 및 카도쿠라 코치는 현재 전력이면 충분하며 이 투수진으로 이기지 못 하는게 이상하단 언급으로 위안을 하고는 있으나 2군에 장타력을 가진 타자가 없다는 모리노 코치의 절규가 들려오는 판국에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에이스노릇을 하고 있는 투수진을 들고 과연 어떻게 시즌을 헤쳐나갈것인가. 그런 와중에 기껏 1픽으로 얻은 네오를 외야로 돌린다는 황당무개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주니치 팬들의 속은 더욱 타들어가고만 있다.
게다가 스프링캠프 도중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어이없게도 사인회 도중 한 팬이 팔을 잡아당겨서 어깨에 염증이 생기는 황당한 부상까지 당했다. 주니치 구단은 해당 사건이 터지기 직전에도 팬심이 아닌 판매 목적으로 사인을 받아가는 팬들을 향해 경고를 날렸는데 이번에도 팬서비스를 위해 사인회를 가졌다가 생긴 사건이라 사인 금지령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쓰자카는 현재 캐치볼도 못하는 상태라 개막전 엔트리 합류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막장화된 것을 틈타 그럭저럭 중위권에서 선전하고 있다. 불펜이 불안한건 여전하긴 하지만 선발진과 타선이 어느정도 분전중이라 무난한 출발을 하고있다. 타선에서는 지난해 2년차 징크스로 고전하던 쿄다 요타가 3할 초중반대의 타율로 밥상을 잘 차려주고 있고 후쿠다 노부마사도 17년도 후반기를 연상케하는 타격감을 보여주고있다. 비시에도도 작년의 타격왕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선발진은 한때의 에이스 요시미 카즈키가 분투중이고 완전히 망한줄로만 알았던 오노 유다이가 어느정도 부활하며 마쓰자카의 공백을 지워주고 있다. 그리고 즉전감이라는 기대를 걸고 2016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뽑았던 야나기 유야가 로테이션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그럭저럭 선발투수진의 머릿수는 갖추게 되었다. 또한 전년도 하위권 추락의 주범인 불펜에서 다니모토와 로드리게스가 필승조 역할을 해내고, 마무리 자리에는 폭망 끝에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전년도 클로저 다지마 신지대신 스즈키 히로시가 마무리로 나서면서 성공져적으로 정착하면서 일단 필승조의 틀을 갖추었다. 스즈키 히로시는 본인이 목표로 하고 있는 크레이그 킴브럴의 오른팔을 들어올리는 투구 준비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주니치 팬들로부터 스즈킴브럴이라는 별명도 획득했다.
4월 13일 한신전에서는 한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두 방이 터지며 한신을 10:2로 떡실신 시켰다. 그 홈런을 쳤던 타자들이 장타툴이 거의 없는 쿄다 요타와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도노우에 나오미치여서 더욱 놀라울 따름... 그리고 이 경기를 이김으로써 '''거의 10년만에 승이 패보다 많아졌다.''' 그러나 다음날 경기를 한신에 내주면서 도로 승패 동수로 돌아와버렸다.
4월 17일 시점으로 팀타율과 팀방어율이 센트럴리그 1위다! 시즌 시작 전 유력한 꼴찌 후보로 꼽히던 팀이 주요 지표에서 1위를 달리면서 리그 2위까지 치고 올라왔으니 4월까지는 리그 최대의 이변을 연출했다.
그러나 이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4연속 루징 시리즈를 당하고, 연호가 레이와로 바뀌고 나서 4연패를 당하며 신연호 출범이후 가장 늦게까지 승리를 못 거둔 구단이 되는 등 순위도 5위까지 내려가고 만다. 그 과정에서 투수진도 작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올라오는 선발마다 패수만 적립하면서 5월 6일 기준 팀 평균자책점도 5위(3.79)와 별 차이 없는 4위(3.78)을 기록 중. 팀 타율은 그래도 아직까지 세리그 1위지만, 이것도 서서히 내려가고 있는 중이라 안심할 수 없다. 결국 5월 달은 10승 14패를 기록하면서 팬들도 요다 감독체제에 초짜가 그럼 그렇지라면서 실망감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그 동안 새 마무리로 낙점한 스즈키 히로시가 불쇼를 시작하면서 고질적인 마무리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다만 매년 최하위 후보로 거론되면서도 실제로 최하위를 기록한 건 2016년 한 해 뿐인데 묘하게도 꼭 한 팀 씩 바닥을 깔아주는 팀이 나오면서 최하위는 모면하고 있다. 2015년에는 올스타전 때까지 1위를 달리다 불과 1개월만에 꼴찌까지 기록적인 DTD를 보여준 DeNA가, 2017년에는 역대급 폭망시즌을 기록한 야쿠르트가, 2018년에는 가네모토 임기 말년에 막장화가 가속화되면서 17년만에 최하위를 기록한 한신이 바닥을 깔아줬고 2019년에는 센트럴리그 최다연패 타이기록을 기록한 야쿠르트가 다시 바닥을 깔아주고 있는데 이 모습이 2000년대 비밀번호를 찍던 시절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매우 흡사하다. 야수진이 강한 대신 투수진이 저질인 것까지...
6월 들어와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 6월 9일까지 1승 7패로 추락이 가속화 되었다. 그 여파로 교류전에서도 5승10패로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었으나 마지막 닛폰햄과의 3연전을 스윕하면서 일단 8승10패로 교류전을 그럭저럭 넘기기는 했다. 교류전이 끝나고 첫 시리즈인 한신과의 2연전을 2연승으로 쓸어담으면서 5연승으로 기세를 올리는가 싶더니 뜬금없이 요다 감독이 "응원가 가사중에 오마에(お前 = 한국말로 번역하면 반말로 '너')라는 부분이 있는데 어린이들도 따라부르는 응원가 가사에서 다 큰 선수들을 '너'라는 반말로 지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선수를 너라고 부르는 건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발언해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감독의 이러한 발언에 응원단은 해당 응원가를 부르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고 응원가 중에서 인기 있는 곡들이 포함되면서 팬들이 불만을 드러냈으며 응원가 가사에서 선수를 '너'라고 지칭하는 게 선수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표현이냐를 둘러싸고 스포츠 뉴스가 아닌 일반 정보 프로그램에서도 문제를 다루는 등 소동이 일파만파 커져버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요다 감독의 이런 발언 대해 주니치 팬들의 반응은 "지금 팀이 다시 하위권으로 처져 있는데 감독이 응원가 가사 따위나 신경쓸 상황이냐", "다른 구단 응원가 가사에도 다 있는 표현인데 왜 뜬금없이 시비를 거냐"라면서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결국 소동이 커지자 요다 감독은 "난 응원가를 부르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단지 '너'라는 직설적인 반말 표현 대신에 그 자리에 선수의 이름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낸 것 뿐인데 엉뚱한 부분만 부풀려져서 보도가 됐다"라면서 변명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 여파인지 7월 첫 3연전인 요미우리와의 시리즈에서 스윕을 당하면서 자력 우승의 가능성이 소멸되었고[31] , 5월달에 리그 타이기록인 16연패를 당한 최하위 야쿠르트와의 승차가 3.0게임 차로 줄었다. 다음 시리즈 상대가 야쿠르트였는데, 여기서는 1승 1패 1취소.
그런데,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에 맛이 간 히로시마를 만나서 스윕을 거두더니만, 올스타 브레이크 직후에 비슷하게 맛이 간 한신을 만나 역시 스윕승. 히로시마와 한신을 DTD행 급행열차에 태워버리고 3위를 찍으며 A클래스에 복귀하고 내친김에 2위도 노려보지만… 2위 요코하마와의 4연전에서 1승 3패를 하며 다시 5위로 추락.
6월 30일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2대 2 트레이드로 포수 마쓰이 마사토, 외야수 마쓰이 유스케를 보내고 왼손투수 마츠바 타카히로, 외야수 타케다 켄고를 받았다. 같은 날 같은 오릭스를 상대로 외국인 외야수 스티븐 모야의 현금 트레이드도 발표되었다. 모야는 장신의 거포 외야수로 준수한 타격을 보여주었지만 야수진의 비시에도와 소일로 알몬테, 투수진의 주축 계투 로드리게스가 건재하고 부실한 마운드를 채워줘야 할 선발 요원들 때문에 자리가 없던 상황이어서 외국인 타자들이 부진한 오릭스에서 출장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쨌건 후반기 내내 기복을 보이긴 했으나 9월 무렵 선두 요미우리와 2위 요코하마를 연달아 스윕하는 저력을 보이며 실낱같은 비밀번호 탈출 희망을 이어갔다. 그러나 고비마다 패배를 하면서 좀처럼 추진력을 얻지 못하는 모습... 그러는동안에도 잠시나마 한신을 5위로 끌어내리는 등 나름대로 분전했으나 결국 9월 24일 홈에서 요코하마에게 7:1로 완패하면서 '''또 B클래스 확정.''' 비밀번호가 7자리로 늘어나버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후에 치러진 히로시마전을 이겨버리는 바람에 3위 경쟁이 안갯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거기다 주니치의 최종전은 한신과의 고시엔 2연전이다. 세리그의 3위 결정권이 주니치한테 있는 셈. 그리고 한신에게 두 경기를 연속으로 내주며 한신의 극적인 CS진출을 바라봐야만 했다.
돌아보면 주니치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한해였는데, 세리그에서 둘뿐인 득실마진 + 팀이었고 (또하나는 1위 요미우리) 팀타율과 방어율도 나쁘지 않았으나.. 정작 꼭 잡아야 할 경기들을 놓치며 5위로 시즌을 끝내야만 했다. 수비에 있어선 역대급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팀 실책이 45개로 역대 센트럴리그 최소기록인 2004년 주니치의 45개와 같다! (파리그는 17소프트뱅크, 91 세이부가 38개로 최소기록.) 그리고 수비율이 0.992로 세리그 역대 1위! 이는 세이버수치로 봐도 역대급인데, 전체 팀 UZR이 43으로 2위 세이부의 35.5를 압도한다. 특히 내야는 센트럴리그 UZR 1위를 기록하며 수비 면에서 잠재력을 깨워낸 유격수 쿄다 요타와, 그 키쿠치 료스케를 밀어내고 일본 Delta사의 세이버메트리션들이 뽑는 올해의 수비수 2루수 부문을 차지한 노망주 출신 아베 토시키가 확고부동한 키스톤 주전으로 자리잡았고 아베에게 2루를 내주고 3루에 자리잡은 다카하시 슈헤이와 내야 3포지션을 오가며 백업 역할을 충실히 한 도노우에 나오미치도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여주며 12개 구단 최고급의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리그 최소실책 기록을 가진 04 주니치와 17소프트뱅크, 91세이부는 다 리그우승을 했는데 주니치는 어째 B클라스... 이것의 이유는 타격. 팀 OPS 0.698, 팀 wRAA(평균 대비 득점생산) -31.0으로 5위를 기록한, 타율만 나쁘지 않았던 물타선의 영향이 컸다. 물론 팀 OPS 꼴찌(0.681)에 wRAA도 꼴찌(-58.3) 찍고 3위한 한신도 있긴 한데, 여기는 팀 평균자책점 1위에 팀 FIP, tRA(9이닝당 예상 실점) 또한 1위.
2.11. 2020 시즌
'''오노 유다이의 하드캐리에 힘입어 7년만에 B클래스 탈출!'''
지난해 팀의 에이스 투수였던 오노 유다이를 6월 19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개막전 선발로 기용했다. 하지만 4이닝 9피안타 6실점 평균자책 13.50이라는 업청난 기록을 세우고 조기강판 되었고 경기는 타격전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결국 연장 10회말까지 진행된 타격전의 끝은 9:7주니치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그 후 20일 경기에서 패하고 21일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개막 3연전을 위닝 시리즈로 마무리 했다.
이후 펼쳐진 요코하마 원정에선 처참히 스윕으로 깨졌지만 히로시마전을 루징으로 버티고 이어진 한신과의 3연전을 스윕하며 5할 승률을 회복했다. 그러나 이 스윕 이후로는 요미우리, 야쿠르트, 히로시마에게 연달아 루징시리즈(특히 야쿠르트에게는 2패 1무)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7/14에 요코하마에게 패배하면서 결국 최하위로 굴러떨어졌다.
최하위로 굴러 떨어지는 과정에서 요다 감독의 각종 삽질이 부각되면서 팬들에게 까이고 타팀 팬들에게는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야쿠르트와의 루징시리즈 의 경우 7월 7일 경기 때는 아무 생각없이 벤치 내에 있는 야수를 다 써버리는 바람에 연장 10회말 2아웃 2, 3루의 역전 끝내기 찬스에 투수 타석이 돌아왔는데 정작 낼 대타가 없어서 결국 불펜 투수인 미쓰마를 대타로 기용했다가 어이없는 스윙으로 삼구 삼진을 당하며 경기를 망치는가 하면 1군 엔트리에 자리가 비어 있는 데도 무슨 생각인지 채워 넣지를 않고 다른 팀 보다 2~3명 적은 벤치 멤버로 경기를 치르고 7월 9일 경기에서는 투스트라이크까지 잡아놓은 타자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하는 등 이해가 되지 않는 얼빠진 운영을 하고 있다. 게다가 중심타자인 다카하시 슈헤이가 햄스트링으로 전치 1개월의 진단을 받았는데도 "그렇게 큰 부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과를 지켜보면서 (등록 말소기간인) 10일이 지나면 바로 1군에 올릴 생각"이라는 망언을 하는 등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고 있다.
선수들도 투수진은 원래 안 좋았던 불펜은 그대로인데 지난 시즌 에이스 역할을 했던 야나기 유야가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선발진이 붕괴되면서 폭망했고 타선도 변함없는 똑딱이 타선에다 작년에 반짝했던 노망주 아베 도시키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용병 알몬테가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팀홈런, 득점, 실점, 도루 등 각종 지표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하위권 탈출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해에는 5위인 순위 치고는 지표들이 괜찮았던 데다 생각보다 탄탄한 수비력을 보여줬고 시즌 후반의 상승세로 이번 시즌 잘하면 비밀번호를 끊을 수 있으리라 기대를 했는데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되면서 아직 시즌 초반인데도 8년연속 B클래스의 기운이 짙게 드리우고 주니치 팬들은 또다시 암울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결국 NPB에서 관중 입장을 최대 5천명까지 허용했는데도 불과 일주일만에 입장권 판매가 4천장을 밑도는 등 팬들의 반응도 싸늘해지고 있다.
여기에 쐐기를 박듯 기관지인 주니치 스포츠가 7월 25일자 신문에서 요다 감독의 용병술과 작전에 대해서 대놓고 비판하는 기사를 1면 톱기사로 실었다. 기사 내용은 24일 선발 오노 유다이를 어거지로 끌고 간 것[32] , 불펜에 10명이나 투수를 쌓아 두고도 제때 교체 안한 것, 7회초에 역전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전진 수비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 기사 최상단 베플을 번역해 보면 '''원래 이토 쓰토무를 감독으로 올리려다가 말았다'''는 뉘앙스의 코멘트가 나왔다. 사실상 이토가 감독이고 요다 감독은 그냥 바지감독인 셈. 24일 경기 역전패 이후 코멘트는 아예 '''올해 주니치의 유행어'''라는 조롱까지 댓글로 받아야 했다.
일본프로야구에 대해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신문사를 모기업으로 둔 구단의 경우 기관지라 할 수 있는 모기업의 스포츠지에 감독을 대놓고 비판하는 기사가 실린다는 것은 이 이상 상태가 악화될 경우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신호이다. 시즌이 4분의 1정도 지난 시점에서 감독에 대한 비판이 그것도 대놓고 1면에 실렸다는 것은 시즌 중반에 분위기를 전환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최악의 경우 시즌 도중에 감독이 휴양(이라는 이름의 해임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어차피 주니치 구단입장에서는 수석코치에 감독경력만 10년인 이토 쓰토무가 있기 때문에 중간에 감독이 해임되더라도 남은 시즌을 대행체제로 꾸려나가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요다 감독 입장에서는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6일 한신과의 홈경기에선 8회 5점 9회 2점을 퍼주는 졸전 끝에 2-3으로 이기던 게임을 9-3으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죽을 쒀서 꼴지까지는 아니다.
8월 초 요코하마 원정에서 또 스윕을 당하면서 이젠 정말 꿈도 희망도 없어보였으나 홈으로 돌아가서 선두 요미우리한테 2승 1무를 거둔것이 기폭제가 되어 위닝시리즈를 계속해서 거두고 있다. 히로시마, 요미우리에 이어 야쿠르트 원정에서도 먼저 2승을 선점하며 또다시 위닝시리즈를 확보. 승차가 없는 3위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그리고 요코하마를 나고야로 불러들여서 스윕까지 달성하면서 1일천하로 끝날거 같았던 3위 자리를 사수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뒤이어 치러진 한신과의 고시엔 원정에서 깔끔하게 시리즈를 스윕당하며 주말에 거둔 3승을 도로 뱉어냈다... 순위 역시 한신에 밀려나면서 4위로 추락.
10월 3일 요코하마를 꺾고 다시금 반게임차 3위에 올랐다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부문.
그 뒤 10월 6일과 7일 야쿠르트에게 2승을 거두고, 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파죽의 8연승을 달리며 2위에 올랐다! 수 년간 팀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던 약점들[33] 이 나름대로 커버가 된데다 A클래스 경쟁팀인 한신과 요코하마가 각각 코로나19 확진 파동과 줄부상으로 신음하며 주춤하는 행운까지 겹치면서 꿈도 희망도 없는 줄 알았던 팀에 비밀번호 탈출이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정 간소화와 늦어진 개막, 퍼시픽리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돔구장 등의 이유로 센트럴리그만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하지 않는데 모처럼 만에 A클래스 복귀인데도 이 점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2위 등극일뿐이지 확정은 아니기에 비밀번호 탈출 여부는 시즌이 끝날때까지 지켜봐야 알 듯. 10월 27~29일간 치렀던 한신과의 시리즈를 스윕당하면서 승차없는 3위로 떨어졌고 그 사이에 4위 요코하마가 요미우리를 스윕하며 2게임차까지 쫓아왔다.
결국 고시엔 원정을 기점으로 6연패를 당했고 0.5게임차까지 붙은 상황에서 디엔에이와 맞대결 3연전을 하게 되었다. 이 시리즈 결과에 따라서 비밀번호 탈출과 연장이 갈리게 되는데 3경기를 모두 쓸어담으며 3위가 확정되었고 8년만에 A클래스에 복귀. 7년간 이어졌던 비밀번호를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한편 주니치 신문에서 대놓고 저격하던 요다 감독은 후반기에 약진하면서 평가를 뒤집는데 성공했고 비밀번호에서 탈출하며 구단도 요다 감독과 재계약할 방침이라고 한다.
3. 관중수 추이
주부 지방을 대표하는 야구팀답게, 팀이 암흑기에 빠져도 2만 7~8천명대의 평관을 유지하는 반면, 팀이 방어율왕 오노 유다이를 배출하고 시즌 후반부까지 3위 싸움을 벌이며 비밀번호를 탈출하느냐 마느냐로 팬들을 들었다놨다 했던 2019시즌도 3만1천명대로 크게 관중이 늘지 않는다.
일본프로야구 창단부터 주부의 나고야에서 연고지를 한 번도 옮기지 않은 데다가 스폰서도 나고야 지방지인 주니치 신문으로 지역색이 굉장히 강한 팀이라, 아무리 팀이 못 해도 지역을 베이스로 한 콘크리트가 워낙 튼튼해서 관중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 반면 반대로 아무리 잘 해도 나고야 이외에는 팬이 생기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어 크게 늘어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세리그 지방연고팀인 한신은 훨씬 인구가 많은 간사이권 전지역+안티 교진 성향의 팬들을 팬베이스 삼고 있어서 밥그릇 자체가 훨씬 큰데다가 확장성까지 있고, 히로시마 카프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같은 경우 인터넷이나 방송 등을 통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지역을 넘어 팬덤을 확장시켰으며, 파리그는 아예 리그가 단체로 뭉쳐 합심해 팬덤을 확장하는 식으로 나가는데 주니치는 경영이 일본에서 가장 보수적인 팀 중 하나로 저렇게 언제나 크게 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줄지도 않는 팬덤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근데 그렇게 운영해도 아이치를 꽉 쥐고 있어[34] 평관수는 일본프로야구 상위권이라 밥그릇 걱정이 없으니 더더욱 보수적인 경영 일변도로 일관하는 구단. 덕분에 일본내에서 주니치 응원하는 사람=100% 나고야 출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4. 홈 구장
5. 유니폼
6. 응원
7. 이야깃거리
7.1. 일본프로야구 대표 콩라인
일본에서 주니치의 이미지는 '''만년 2위팀'''.
이는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이 팀은 창단 이후 전체 역사에서 '''2위만 26번''', 1950년에 일본프로야구가 양대'''(2)'''리그제가 된 이후의 기간만 따지면 '''센트럴리그 2위만 무려 24번''' 을 해먹었다. 이는 12개 구단 중 최다 2위 기록. 하지만 의외로 20세기 전체 승률은 놀랍게도 한신 타이거스에 밀려서 3위이다. 1위야 요미우리 자이언츠다.
사실 세리그 전통의 강호이지만. 맨날 중요할 때 2위만 해대는 통에 리그 우승 경험도 강호의 이미지에 비해서는 매우 적다. 그것이 실제로 실현된 건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 아래 4번 리그 우승을 하기 이전까지 1954년, 1974년, 1982년, 1988년, 1999년의 단 다섯 번 뿐. 숙명의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홈에서 리그 우승을 내준 뼈아픈 기억도 자주 있다.(...). 1994년의 10.8 결전이나, 1996년 10월 6일 '''나고야 구장 최종전'''에서 패배하며 요미우리에게 '''11.5게임차를 뒤집는 역전 우승'''[35] 을 확정지어주는 등 통한의 순간들이 적잖이 있었다.[36]
거기다 중요한 게임에 상당히 약해서, '''일본시리즈 진출 횟수는 10번인데 우승 횟수는 고작 2번 뿐이다'''. 그나마도 두 번째로 우승했던 2007년 시즌[37] 의 경우 1위로 진출한 것도 아니고 '''2위'''로 리그를 끝낸 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1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발라버리고 올라간 것이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연결된 것[38] . 만년 2위 팀의 명성에 걸맞는 행보였다(...). 팀 첫 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이 1954년이었으니 다음 우승까지 '''5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이런 얘기도 다 잘나가던 예전에 하던 배부른 소리. 2010년대 들어와서는 콩라인은 커녕 A클래스 꼴찌선인 리그 3위도 힘겨울 정도로 침체기를 겪고 있다.
7.2. 한국인 선수와의 인연
1996년 선동열이 입단한 뒤로 지속적으로 한국인 선수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선동열은 1년의 적응기간을 거치긴 했지만 다카쓰 신고, 사사키 카즈히로와 맞먹는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말년을 불태웠고, 그의 뒤를 따라 해태 타이거즈 후배 이종범과 LG 트윈스의 좌완 에이스 야생마 이상훈도 주니치에서 함께 뛰게 되었다. 일본프로야구의 외국인 선수 1군 출전제한이 4명인 것을 감안할 때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고, 선동열을 제외하면 사실 완전히 기대에 부응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이들 '한국인 트리오'는 1999년 나고야 돔으로 옮긴 뒤 첫 리그 우승을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2007년부터 2009년 까지는 이병규선수가 소속했다. 그러나 주니치 역대 최고의 외야수 중 하나였던 후쿠도메 고스케의 포지션을 차지한데다가, 고액을 받는 외국인 선수 치고는 성적이 신통치 않아 언론과 팬들에게 자주 까였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뜬금포를 날려대는 통에 참 대놓고 까기는 뭐한 미묘한 상태였다. 그래도 2007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나름 공헌하는 활약을 했고 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며 일부 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도. 그러나 2009년에는 완전히 말아먹었고, 본인은 주니치와 재계약을 원한다고 했으나 결국 팀은 시즌 종료 후 재계약을 요청하지 않으며 LG 트윈스로 돌아오게 되었다.[41] 여담으로 라뱅쓰리런 드립 역시 주니치 시절에 생긴 것이다.(...)
한국 고교야구 선수인 송상훈이 2012년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 팀에 6순위로 지명되어, 한국 고교야구에서 드래프트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입단 1년만에 육성선수로 신분이 바뀌었으며 2014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이후 한국 선수와의 인연은 끊어진 상황.
다만 요다 츠요시 감독이 2019시즌 종료 후 '과거 주니치는 한국 선수들이 도왔다'면서 한국야구에서 새 전력을 찾아보겠다고 언급. 11월에 개최될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을 시찰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뒤이어 주니치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이종범이 주니치에 2군 코치연수를 가게 되면서 인연이 다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7.3. 기타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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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팀의 마스코트인 코알라 도아라가 서브컬쳐계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pixiv에서도 도아라의 팬아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심지어 '''figma브랜드의 액션피규어'''로 출시되기까지 했다. 말 못하는 마스코트가 TV, 라디오에 나오고.. 광고는 물론 책에 음반까지 냈다. 관련상품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전 구단 통틀어서 상위권의 인기 캐릭터.[42] 4차원적인 행동 등으로 이상하지만 귀엽긴 하다 라는 반응이 대다수. 하지만 그 역시 2013년 오프시즌의 연봉삭감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시즌 도중 왼손 중지가 골절되는 바람에 퍼포먼스를 할 수 없게 되어 연봉이 식빵 1kg에서 750g으로(...) 25% 삭감되었다고 한다.기자회견 기사
DJ 도아라라는 명의로 음반도 냈는데... 곡조가 너무 노골적이라 "설마 걔가 만든거 아님??" 생각했고 그 분의 새 앨범에 수록이 되어서 빼도 박도 못하게 이 분 제대로 확정. [43] 그리고 2017년에 곡조만 바꿔서 다시 냈다.
인터리그 기간 동안에는 도아라가 퍼시픽리그 팀 상징 동물들을 약올리는 광고를 내기도 한다.
얘 말고도 샤오롱과 파오롱이라는 용에서 모티브를 따온 애들도 있다.
[44]
구단의 대표적인 응원가로 '''"燃えよドラゴンズ"(타올라라 드래곤즈)''''가 있다.
주니치가 교진군의 센트럴리그 - 일본시리즈 10연패를 저지한 1974년 나고야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금까지도 즐겨 불러지는 응원가로 자리잡았다. 제목은 당시 일본에 개봉해 인기를 끌던 이소룡 주연의 영화 용쟁호투가 일본에서 '불타라 드래곤' 으로 소개된 것에서 따온 것이다. 주니치에도 정식 구단가는 있지만[45] 타올라라 드래곤즈의 인기 때문에 구단가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수준.
원본인 74년판 이외에도 거의 해마다 새로 녹음되었을 정도로 버전이 많은데, 선동열-이상훈-이종범 한국인 3총사를 데리고 리그 우승을 한 1999년판 중에는 한국삼총사 헌정 버전도 찾아볼 수 있다.# 여담으로 이 곡을 작곡한 야마모토 마사유키(山本正之)라는 사람은 첫 작곡이었던 이 곡이 인기를 얻은 후, 타임보칸의 주제가를 작곡하는 등 애니송 작곡가로서 경력을 이어나갔다. 그래서인지 애니송 가수가 맡는 일이 많아 1987년에는 타이라 이사오(#)가, 2002년 이후로는 미즈키 이치로가 보컬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실제 구장에서 트는 구장합창편에서는 2, 3절에 타팀을 약하게 조롱하는 가사가 들어가 있다. 잘 들으면 상대 팀명이 우회적으로 들어가 있다.[46] 이 때문에 원정경기에서 트는 버전은 1절에서 중간을 싹 건너뛰고 곧바로 마지막 절로 건너뛴다.
등번호 관련해서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보통 일본 야구계에서 투수 에이스의 등번호가 18번[47] 인데 비해 이 팀은 '''20'''번이 에이스 번호로 여겨진다. 스기시타 시게루, 곤도 히로시, 호시노 센이치, 고마츠 다츠오 등이 달았고[48] 선동열도 주니치에서 현역시기에 20번을 달고 활동했을 정도. 게다가 보통 에이스 넘버인 18번의 취급이 매우 안습인데, 역대 투수들 중 18번을 달고 제대로 활약한 사람이 매우 드물다. 그래서 다른 팀에서 트레이드된 선수나 드래프트 하위 순위에 입단한 신인한테 18번을 냅다 던져준다. 오죽하면 '실력은 없는데 18번을 달고 싶으면 주니치로 가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을 정도. 2019년까지는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달고 있다가 현재는 결번.
톰 셀렉, 타카쿠라 켄이 주연한 영화 '미스터 베이스볼'의 소재로 다뤄졌다. 톰 셀렉이 분한 강타자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하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뛰게 된다는 스포츠 영화인데, 영화에서 셀렉이 소속해 뛰는 팀이 주니치. 타카쿠라 켄은 감독 역으로 분한다. 여담으로 영화에서 뉴욕 양키스의 주전 1루수이던 셀렉을 일본으로 밀어낸 신인 거포 역으로 출연한 배우가 바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레전드 '''프랭크 토마스'''.
유명한 애니송을 많이 쓴 가수인 LiSA가 이 야구단과 콜라보를 해 2020년 8월 24일에 신곡을 발표했다.
8. 주요 선수
8.1. 감독 및 코치
1군 감독 및 코치
- 92. 요다 츠요시 :1군 감독
- 83. 이토 쓰토무 :1군 수석코치
- 93. 알론조 파웰 : 1군 타격코치
- 73. 쿠리하라 켄타 :1군 타격코치
- 85. 무라카미 타카유키 : 순회 타격코치
- 74. 아와노 히데유키 : 1군 투수코치
- 84. 아카호리 모토유키 : 1군 투수코치
- 80. 나카무라 다케시 : 1군 배터리코치
- 88. 아라키 마사히로 : 1군 내야수비 주루코치
- 89. 히데노리 : 1군 외야수비 주루코치
2군 감독 및 코치
- 72. 니무라 토오루 : 2군 감독
- 90. 다테이시 미쓰오 : 2군 야수종합코치
- 71. 하루 토시오 : 2군 타격코치
- 87. 카도쿠라 켄 : 2군 투수코치
- 86. 오가사와라 타카시 : 2군 투수코치
- 81. 아사오 타쿠야 : 2군 투수코치
- 75. 타케야마 신고 : 2군 배터리코치
- 76. 와타나베 히로유키 : 2군 내야수비 주루코치
- 78. 쿠도 타카히토 : 2군 외야수비 주루코치
8.2. 투수
- 11. 오가사와라 신노스케 [49]
- 12. 타지마 신지 [50]
- 14. 타니모토 케이스케
- 16. 마타요시 카츠키
- 17. 야나기 유야
- 19. 요시미 카즈키[51]
- 21. 오카다 토시야
- 22. 오노 유다이
- 24. 후쿠타니 코지
- 25. 사토 유
- 28. 우메츠 코다이[52]
- 29. 야마이 다이스케[53][54]
- 30. 아치라 타쿠마
- 33. 소부에 다이스케
- 34. 후쿠 히로토
- 38. 마츠바 타카히로
- 40. 이시카와 쇼
- 41. 카츠노 마사요시
- 43. 미츠마 타쿠야
- 46. 스즈키 히로시
- 47. 카사하라 쇼타로
- 50. 시미즈 타츠야
- 54. 후지시마 켄토
- 57. 조엘리 로드리게스
- 59. 야마모토 타쿠미
- 61. 카키고시 켄신
- 64. 오구마 료스케
- 65. 이토 쥰키
- 69. 마루야마 다이스케
- 70. 애니 로메로
- 97. 라이델 마르티네스
- 98. 키노시타 유스케
- 99. 스즈키 쇼타
- 201. 샌디 브리또
- 202. 하마다 토모히로
- 203. 하마다 타츠로
- 206. 오쿠라 아키토
- 209. 이시다 켄토 마르크
8.3. 포수
- 27. 오노 쇼타[55]
- 35. 키노시타 타쿠야
- 39. 타케야마 싱고
- 45. 스기야마 쇼타
- 52. 카토 타쿠마
- 57. 아리엘 마르티네스[56]
- 58. 이시바시 코타
- 68. 카츠라 이오리
8.4. 내야수
- 0. 타카마츠 와타루
- 1. 교다 요타
- 2. 이시카와 타카야
- 3. 타카하시 슈헤이[57]
- 5. 아베 토시키[58]
- 7. 네오 아키라
- 9. 이시카와 슌
- 32. 이시가키 마사미
- 36. 이시오카 료타
- 37. 미츠마타 타이키
- 48. 미조와키 하야토
- 53. 카메자와 쿄헤이
- 55. 후쿠다 노부마사
- 63. 도노우에 나오미치
- 66. 다얀 비시에도[59]
8.5. 외야수
- 4. 후지이 아츠시
- 6. 히라타 료스케[60]
- 8. 오시마 요헤이[61]
- 23. 엔도 잇세이
- 26. 이료 마사타카
- 31. 와타나베 마사루
- 49. 이토 코스케
- 51. 타키노 카나메
- 56. 타케다 켄고
- 62. 토모나가 쇼타
- 67. 콘도 히로키
8.6. OB
8.6.1. 감독
- 아마치 슌이치 (1949 - 1951, 1954, 1957 - 1960)
1954년 팀 사상 최초의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 감독.
- 요나미네 카나메 (1972 - 1977)
- 다카기 모리미치 (1992 - 1995, 2012 - 2013)
주니치의 명선수였으나 감독으로선 별로 좋은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 호시노 센이치 (1987 - 1991, 1996 - 2001)
주니치의 에이스. 감독직을 맡으면서 2번의 리그 우승을 거두었지만 정작 일본시리즈에선(...)
- 야마다 히사시 (2002 - 2003)
한큐 브레이브스의 레전드. 호시노가 물러가면서 감독이 되었으나 2003년 성적 부진으로 시즌 도중 해임당했다.
- 오치아이 히로미츠 (2004 - 2011)
요코하마에서 이적한 이후 쭉 주니치의 안방마님이었지만 감독으로서는 B클래스를 전전하더니 19년만의 최하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주니치 역사상 최초로 A클래스에 간 적이 없는 감독이란 아름다운 기록을 남기셨다.
8.6.2. 투수
- 핫토리 츠구히로 (1939 - 1939 - 1941, 1946 - 1955, 1957 - 1958)
주니치의 원년 에이스이자 1954년 일본시리즈 우승의 공헌자이며, 현재까지 유이한 주니치의 영구결번자 중 하나이다. 참고로 데뷔는 포수로 했다가 투수로 전향한 사례인데, 1941년 8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한(!!) 엄청난 경력을 가질 정도의 뛰어난 타격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투수 외에도 내/외야수 가리지 않고 뛰기도 했다.
- 스기시타 시게루 (1949 - 1960)
1954년 일본시리즈 우승 주역. 일본프로야구의 원조 포크볼 마스터이며, 주니치의 에이스 넘버를 20번으로 만든 이.
- 반도 에이지 (1959 - 1969)
짧은 기간 주니치의 에이스로 활약한 뒤 예능인으로 지금까지도 왕성히 활동 중. 응원가 '불타라 드래곤즈!'를 처음 불렀다. 불타라 드래곤즈!를 부른 최초이자 유일한 OB로도 남아있다.
- 미즈타니 히사노부 (1959 - 1974)
한국에서는 MBC 청룡 시절 코치를 맡았던 걸로 더 잘 알려진 인물. 주니치에선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뛰었고 한국에 오기 이전에도 주니치에서 여러 해 코치를 맡았다.
- 곤도 히로시 (1961 - 1968)
선수 시절에는 주니치의 에이스이자 "곤도-곤도-비-곤도" 로 요약될 수 있는 혹사의 아이콘[63] . 은퇴 후에는 명 투수코치이자 1998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우승 감독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때 요미우리 팬들은 엄청 이를 갈고 있는데 전반기때 에이스 노릇하면서 팀을 1위로 질주시켜놨던 조성민을 시즌아웃시킨 장본인이라서 그렇다. 그이후로 요미우리는 주니치에게도 밀려서 3위로 추락했다.
- 돈 뉴컴 (1962)
재키 로빈슨, 로이 캄파넬라와 함께 다저스의 1세대 흑인 선수이자 에이스 투수로 활약한 선수로 메이저리그 사상 첫 사이 영 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위의 두 다저스 팀메이트와 하술할 래리 도비와 함께 올스타전에 처음으로 선발된 흑인 메이저리거로 기록에 남았다. 하지만 아래의 도비처럼 전성기가 지나고 찾아온 주니치에서는 큰 활약이 없었다. 특이하게도 주니치에서는 투수보다 1루수 출장이 훨씬 더 많았다.
- 호시노 센이치 (1969 - 1982)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열혈남아이자 1974년 요미우리 V9 저지 시의 에이스. 안티 요미우리의 선봉장이었다.
80년대 주니치의 에이스. 요미우리의 마키하라 히로미와 함께 '스피드건 시대의 산물'로 불린 강속구 투수였다.
- 우시지마 가즈히코 (1980 - 1986)
- 가쿠 겐지 (1981 - 1996)
대만 출신 투수. 1988년 우승에 공헌한 특급 마무리 투수였으며 커리어 전반적으로는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통산 106승[64] -116세이브를 달성했다. 중국어 명은 궈위안즈. 한국식 독음은 곽원치. 선수생활 도중에 일본에 귀화했으므로 일본식 독음인 가쿠 겐지로 적는다.
- 야마모토 마사 (1984 - 2015)
한국프로야구의 태동기에 데뷔해 30년간 일본프로야구 무대에서 활약한 산신령 좌완투수.
'유리의 에이스'. 혹사로 인한 부상으로 커리어를 일찍 접어야 했던 비운의 투수.
- 오치아이 에이지 (1992 - 2006)
90년대 주니치 중간계투진의 핵으로 활약했다.
- 노구치 시게키 (1993 - 2005)
1999년 리그 우승 때 19승을 거두며 리그 MVP[65] 를 차지한 좌완 에이스 투수. 평균자책점 1위 시즌 2회(1998, 2001), 최다탈삼진 1회(2001)를 차지하며 주니치의 에이스 역할을 했지만 전임 에이스 이마나카처럼 혹사와 부상으로 인해 전성기가 빠르게 지나갔다.
- 선동열 (1996 - 1999)
- 이와세 히토키 (1999 - 2018)
일본프로야구 유일의 400세이브, 1000경기 등판 투수. 2000년대 내내 주니치의 불펜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팀의 최전성기를 떠받든 프랜차이즈 스타 좌완 마무리 투수였다.
- 나카자토 아쓰시 (2000 - 2009)
2000년 주니치에 1순위로 지명됐던 우완 강속구 투수로 구로다 히로키와 후지카와 큐지에 버금가는 강속구를 자랑하던 투수로 아마추어 시절부터 초특급 유망주였지만 2002년 스프링캠프 도중 숙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어깨를 다친걸 시작으로 팔꿈치와 허리도 맛이 가며 이후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 2005년 8월에 복귀해 여전히 150km가 넘는 속구를 던지며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지만 이후에도 부상과 수술, 재활을 반복한 끝에 2009년을 끝으로 방출된다. 이후 요미우리에 입단했지만 거기서도 2010년에 2경기 등판한걸 끝으로 2011년에 또다시 방출당했고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오치아이 감독 시절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 이전에 등판하는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일본프로야구 사상 유일하게 중간계투로 시즌 MVP를 차지한(2011) 강속구 우완투수였지만 혹사의 여파로 빠르게 전성기를 날린 비운의 투수.
8.6.3. 포수
- 키마타 타츠히코 (1964 - 1982)
- 나카오 타카요시 (1981 - 1988)
- 나카무라 타케시 (1985 - 2001)
- 세리자와 유지 (1987 - 1995)
- 하세베 유타카 (1987 - 1998)
- 데이브 닐슨 (2000)
호주의 야구 영웅.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8년간 주전 선수로 뛰었으며 직전 해인 99년에 .309/.400/.554 21홈런 64타점의 빼어난 성적을 내며 호주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올스타전에 출장했던 현역 메이저리거 포수였다. 하지만 고국에 대한 애착이 강해 오프시즌마다 호주 야구리그에 참가했으며, 모국에서 열릴 예정인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 출장을 위해 메이저 계약을 거부하고 일본의 주니치로 왔다. 당연히 큰 기대를 받았지만, 18경기동안 1할 8푼을 치는 부진 끝에 8월 중 방출되었다. 이후 호주에서 뛰며 2004 아테네 올림픽 호주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야구 영웅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 하에 첫 전원 프로 대표팀을 꾸려 한국에 삿포로 참사를 안겨주고 본선 금메달을 노리던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을 4강에서 박살내 야구 변방으로 여겨지던 호주가 은메달을 따는 이변에 공헌했다. 선수로서 은퇴한 뒤에는 호주 프로야구 리그와 호주 야구 국가대표팀 등의 코치 등으로 활약하며 야구 보급과 발전에 힘썼으며 그 공으로 2018년에는 훈장도 받았다. 여담으로 주니치 시절 등록명이 딩고였다.[67]
8.6.4. 내야수
- 니시자와 미치오 (1937 - 1943, 1946, 1949 - 1958)
1954년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었던 강타자로 영구결번되었다. 데뷔는 투수로서 했는데 어깨부상 이후 타자로 전업했다. 투수로서 20승을, 타자로서 수위타자와 40홈런을 차지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
- 에토 신이치 (1959 - 1969)
주니치에서 2번의 수위타자를 차지하며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이후 이적한 롯데에서도 수위타자를 차지하며 일본 최초의 양대리그 수위타자가 된다.[68]
- 타카기 모리미치 (1960 - 1980)
빠른 발과 화려한 수비, 정교한 작전수행능력을 자랑했던 명 2루수. 2020년 심근경색으로 사망.
- 오시마 야스노리 (1969 - 1987)
1983년 홈런왕. 70년대 말에서 닛폰햄으로 떠나기 전까지 오랜 기간동안 준수한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입단동기는 호시노 센이치.
- 야자와 켄이치 (1970 - 1986)
장훈의 수위타자 타이틀을 저지한 강타자 1루수.
- 우노 마사루 (1977 - 1992)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유격수 홈런왕이자 유격수 단일시즌 최다홈런 기록(41홈런)보유자. 하지만 그에 반비례한 막장 수비력으로도 팬들을 즐겁게 한 예능형 선수로도 기억된다.
- 켄 마카 (1982 - 1985)
- 오치아이 히로미츠 (1987 - 1993)
前 감독, 前 단장. 3회의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며 퍼시픽리그를 평정한 뒤 4:1 트레이드로 주니치에 입단한다.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주니치에서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억대 연봉자가 된다.
- 타츠나미 카즈요시 (1988 - 2009)
'미스터 드래곤즈'. 유격수, 2루수, 3루수의 내야 세 포지션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명 수비수이자 일본프로야구 최다 2루타 기록 보유자.
- 타이호 야스아키 (1989 - 1997, 2001 - 2002)
대만 출신으로, 일본으로 야구유학을 왔기 때문에 드래프트 전 최종학력이 일본 학교여서 일본인 선수로 드래프트되었다. 타이호 야스아키(大豊泰昭)는 등록명. 본명은 진대풍(陳大豊, 천타펑)이다. 참고로 그의 동생 진대순(陳大順) 역시 같은 대학 출신으로 롯데 오리온즈에 드래프트 되었는데, 이쪽의 등록명은 타이준 마사히로(大順将弘)였다. 형제가 자신들의 본명을 등록명의 성으로 땄기 때문에 형제의 성이 달라진 케이스. 주니치에서 홈런왕으로 활약한 형과는 달리 이쪽은 일본프로야구 생활 2년만에 방출되어 대만 프로야구 리그로 돌아갔다. 2015년 1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51세.
2000년대의 주니치의 황금기를 보낸 프랜차이즈 스타로, 포지션은 2루수.
- 레오 고메스 (1997 - 2002)
한국인 삼총사가 활약하던 1990년대 말에 4번을 친 거포 3루수.
2000년대 주니치 내야를 책임진 명 유격수. 2루수 아라키 마사히로와의 콤비는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2-유간으로 평가받았다.
- 오마르 리나레스 (2002 - 2004)
쿠바 혁명 이 후 처음으로 일본프로야구에서 뛴 쿠바 출신 선수. 과거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이 올림픽 2연패, 월드컵 7연패를 할 당시의 4번타자 겸 3루수로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진출 당시 나이가 35세여서인지 큰 활약은 하지 못했다.
- 타이론 우즈 (2005 - 2008)
주니치 역대 최고의 용병타자.
- 아라이 료타 (2006 - 2010)
- 나카무라 노리히로 (2007 - 2008)
- 토니 블랑코 (2009 - 2012)
-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2014 - 2015)
8.6.5. 외야수
- 나카 토시오 (1955 - 1972)
주니치 초창기의 리드오프 중견수로 1960년 도루왕, 1967년 수위타자, 베스트나인을 5회 수상하면서 1800안타 이상을 기록한 명타자. 요나미네 카나메의 후임으로 1978~1980년 감독직을 맡았으나 별로 좋지 못한 성적을 기록하고 물러났다.
- 요나미네 카나메 (1961 - 1962)
- 래리 도비 (1962)
아메리칸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이자 사첼 페이지와 함께 흑인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 대선수였지만, 이미 노쇠화로 기량이 떨어진 뒤 찾아온 주니치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 타오 야스시 (1976 - 1984)
1982년부터 3년간 최다안타 타이틀을 차지한 당대의 안타 제조기. 또 도쿄돔 최초의 3루타를 친 선수이기도 하다.(이땐 한신 타이거스 소속) 그의 현역 당시 아직은 앳된 야구소년이었던 스즈키 이치로가 동경하던 선수라고 한다. 은퇴 후 2005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창단 감독이 되었지만.. 처참한 성적을 남기고 그 해 바로 짤렸다(...)
- 히라노 켄 (1978 - 1987)
전 KIA 타이거즈 타격코치. 주니치와 세이부, 롯데에서 빠른 발과 강견, 정교한 작전 플레이를 앞세운 스위치 히터 외야수로 활약했으며 1986년엔 센트럴리그 도루왕도 1차례 석권했다. 일본프로야구 역대 2위인 451희생타를 기록했으며 한때는 일본 최고 기록이기도 했으나 후에 카와이 마사히로에게 기록을 내줬다.
- 히코노 도시카쓰 (1983 - 1998)
1988년 리그 우승 당시 타선의 리드오프를 맡았던 선수.
- 야마사키 타케시 (1987 - 2002, 2012 - 2014)
1994~1996년 센트럴리그 수위타자.
- 알렉스 오초아 (2003 - 2006)
강견과 장타력을 갖췄던 외국인 중견수. 2004년과 2006년 주니치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며 후쿠도메와 함께 골든글러브 외야진의 축을 이루었다. 2007~08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뛰다가 현역에서 은퇴했다.
8.7.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 오츠카 아키노리(재적 200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텍사스 레인저스)
- 카와카미 겐신 (재적 1998 - 2008, 2012 - 2015,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 일본 복귀 후 원소속팀 주니치 드래곤즈)
- 후쿠도메 고스케 (재적 1999 - 2007, 시카고 컵스 → 일본 복귀 후 한신 타이거스)
- 천웨이인 (재적 2004 - 2011, 볼티모어 오리올스)
8.8. 영구결번
- 10. 핫토리 츠구히로(服部受弘)
- 15. 니시자와 미치오(西沢道夫)
9. 역대 성적
9.1. 양대리그 분리 이후
[1] 1951 시즌 중반 홈구장이 '''불타 없어졌다.''' [2] 일본의 지방 신문사이지만 2013년 기준 일 평균 250만부 이상을 발행하는 신문이고 여러 지방 TV 방송국 및 라디오 방송국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방송계의 큰손'''이기도 하다. 특히 후지 TV 계열국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네트워크 내에서도 산케이 못지 않은 영향력을 보유 중. 산케이 신문보다 발행부수가 많고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 신문사 이외에는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전국지에 필적하는 영향력을 갖는다. 논조는 일본에서도 비교적 진보 성향. 주니치 신문사의 소유 구단이기 때문에 주니치 계열 방송사인 THK, CBC, TVA가 홈 경기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NBN, CTV는 자체제작 중계가 아닌 키국 중계를 사용해 원정 경기를 방송한다. 라디오는 CBC, 도카이라디오가 중계권을 보유하는 중.[3] 나머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4] 좌우 100m, 가운데 122m, 펜스높이 4.8m[5] 그리나 비밀번호를 찍기 시작하고 있는 최근 시점에선 홈에서도 요미우리, 히로시마, 요코하마, 세이부, 소프트뱅크같이 핸드볼 야구를 하는 팀들에게도 밥먹듯이 10실점 이상을 내주는 경기가 속출하고 있다.[6] 그러나 원정 승률은 뒤집어서 '''4할이 채 안 되기도 했다.'''[7] 이승엽의 요미우리 시절 룸메였던 '''주니치 킬러''' 고쿠보 히로키가 신나게 털어먹고 MVP자리를 차지했다.[8] 당시 주니치 성적은 타율 .228/419득점[9] 당시 성적은 방어율 2.46/410실점-351자책점.[10]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시즌 1위팀은 시리즈 1승을 자동으로 부여받는다.[11] 한신 타이거즈의 암흑기 시절 이래 센트럴 리그 구단의 두번째 월간 20패라고 한다.[12] 사임이라 쓰고 사실상 해임.[13] 그 전 최하위는 1997년. 호시노 센이치가 2기로 감독을 맡던 2번째 해였다. 그나마 이 해가 새로운 홈부장 나고야 돔에서의 첫 해였는데다가 이 해 1월 호시노의 아내가 병으로 사망한 것이 팀의 분위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그 전 해까지 나고야 구장에 최적화 되어 있던 공격 위주의 팀이 넓이도 넓어지고 펜스도 높아진 새 구장에 적응을 못한 것이 가장 컸다. 나고야 돔 이전 전까지의 주니치 팀 컬러는 '강룡 타선'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공격에 특화된 팀이었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구장에서 홈런을 날려대던 타자들이 새 구장에 와서는 이전 구장이었으면 홈런이었을 타구가 플라이로 잡히거나 펜스에 맞고 단타로 끝나는 등 공격력 저하가 현저해지면서 팀이 최하위로 추락한 것. 문제점을 파악한 호시노는 팀 개조작업에 착수해서 이듬해부터 공격력 위주의 팀컬러를 버리고 철저하게 투수력과 수비에 올인하는 방향으로 체질개선을 시도했다. 2000년대 전성기 시절의 주니치의 팀컬러는 바로 이때에 확립된 것이다.[14] 요코하마 1승 1무 1패, 야쿠르트 1승 1패[15] 2017년 5월 기준으로 하면 KBO에서 한화나 kt가 KIA를 스윕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16] 2000안타는 통산 48번째로 달성.[17] 나머지 한개 팀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지만 감소폭이 0.1%로 미미한 수준.[18] 주니치는 연봉 3억엔 제시.[19] 주니치 신문 회장.[20] 한국에선 이 사정을 몰라서 동스포나 히가시 스포츠로 오역되는 그 매체. 이 매체의 위상을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NPB의 더 선이라고 보면 된다. 스포츠 쪽도 스포츠지만 특히 연예 방면에서의 신뢰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21] 당시 양팀 팬들의 반응은 노인정 구단에서 자리 못잡고 백업역할만 하다가 어느덧 30줄에 접어들어 남주긴 아깝고 데리고 있자니 애매해진 그럭저럭 이름이 알려진 1군 벤치급 노망주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예측했었다.[22] 산케이신문은 답이 없는 우익 신문이지만 산케이스포츠는 야구 및 스포츠 분야에서 신뢰성 있는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찌라시는 아니다. 특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경마 분야에서 신뢰성이 높은 편.[23] 이 구호는 일부고 풀버전은 뒈져라! 죽어버려! 원폭이나 맞아라, 카프!(くたばれ! 死んじまえ! 原爆落ちろカープ!). 여담이지만 이것은 일부 야쿠르트의 극성팬이 요미우리에게 외치는 구호인 "くたばって 死んじまえ 地獄に落ちろジャイアンツ!(뒈져라 죽어버려 지옥으로 떨어져라 자이언츠!)"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24] 이 구호를 외치면서 영상을 직접 찍어서 올린 트위터 계정은 현재 삭제된 상태이나, 해당 계정의 트윗에서는 요미우리 구단과 한신 구단, 히로시마의 몇몇 선수, 나가시마 시게오, 혼혈 선수인 야마사키 야스아키, 오토사카 토모를 비하한 트윗이 발견되기도 했다. [25] 특히 요미우리는 3년째 히로시마의 호구라고 조롱받는건 덤.[26] 그 와중에 전반기 대부분을 2번 타자로 고정되어 기용되며 타선 전체의 흐름을 끊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애초에 이런 안 좋은 타자를 2번에 박는 감독, 더 나아가서는 일본프로야구의 구시대적 번트와 스몰볼 신봉이 근본 문제겠지만...[27] 실점은 654실점으로 센트럴리그 5위. 총 실점은 야쿠르트가 좀 더 많다.[28] 연 2억엔 이상의 연봉과 4년의 장기계약을 요구했다고 한다.[29] 170만 달러를 받고 한신에 갔다. 그리고 ERA 4점대 중후반에 선발 18격에 QS 4회로 망했다. 그런데 150만 달러에 재계약을 또 했다(...) 후반기 순위경쟁 상황에서 불펜으로 3경기 나와 3경기 연속 무실점에 3경기 연속 구원승을 하면서 시즌 최종전의 극적인 역전에 큰 공헌을 해서 수명 연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30] 최고구속 164 평균구속155의 강속구 좌완으로 메이저시절 불펜으로 뛰어 2017년 시즌 3점 초반의 무난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도 잦은 수술이력이 발목을 잡을듯. 그러거나 말거나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12월 7일 기준 10등판 49.2이닝 1.09로 무쌍을 찍고 있으나 메이져시절 불펜으로 뛴 탓에 이닝소화능력이 안습...5회만 되어도 구속이 145가 나온다.[31] 보통 일본의 스포츠 미디어에서 이런 표현을 쓰면서 호들갑을 떠는데 우승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시즌 중반부터 매직넘버 같은 걸 세면서 '산술적으로' 다른 팀들의 패배가 곁들여지지 않으면 우승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을 두고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어쨌거나 시즌 중반에 이런 헤드라인이 뜬다는 것 자체가 팀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표로 받아들이면 된다.[32] 5회 종료시 '''투구수 103구'''.[33] 넓은 나고야 돔을 쓰고도 근 몇 년간 마운드가 약한 이미지가 강했는데 선발쪽에서는 후쿠타니 고지, 카츠노 아키요시가 로테이션을 돌아줬고 기복이 있긴 했지만 마츠바와 로드리게스도 선발진에 구멍이 생기면 잘 메워줬다. 고질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불펜진도 소부에-마르티네즈 필승 듀오가 분전했고 후쿠, 마타요시, 타니모토 등의 투수들이 2020시즌동안 고전했던 오카다, 후지시마를 대신해 나름대로 잘 던져줬다. 몇 년간 이렇다 할 주전포수가 없어 포수난에 허덕였던 지난 몇 년과는 달리 전반기에는 육성출신 용병 아리엘 마르티네즈가, 후반기에는 사회인 출신 노망주 키노시타 타쿠야가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안방을 지켜주었다.[34] 주니치의 팬베이스인 아이치 현+주변지방을 더하면 대략 경상도 인구수 전체와 비슷하다. 한국은 경상도를 3개 구단이 나눠먹으면서도 개중 가장 큰 롯데가 빅마켓 소리를 듣는 것을 생각하면 주니치가 얼마나 큰 마켓을 독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35] 이는 '메이크 드라마'라고 불리며 요미우리 팬들에게 역사적인 시즌으로 남았다. 다만 일본시리즈 우승기는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끌고 스즈키 이치로 등이 날뛰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게 내주었다.[36] 공교롭게도 이 두 경기 모두에서 당시 요미우리의 중심선수이던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활약했다. 오치아이가 끝내 감독으로서 주니치의 콩라인 탈출을 이끌어낸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37] 일본시리즈 타이틀을 확정짓는 경기에서 일본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합작 퍼펙트 게임'''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선발 야마이 다이스케가 8회까지 무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을를 기록하며 퍼펙트게임 직전까지 던졌지만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은 9회에 야마이를 내리고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를 올렸는데, 이는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38] 참고로 이 당시 이승엽과 이병규의 맞대결이란 구도까지 생겼던 것으로 유명했다.[39] 99년 세리그 우승 당시 선동열,이종범,이상훈에게 헌정된 한국인 삼총사ver. 타올라라 드래곤즈. 초반에 라인업이 소개된 후, 다른 노래와 달리 세 선수의 모습을 묘사하는 가사가 등장한다.[40] 구단으로서는 53년만의 우승이었고, 본인도 프로 커리어 첫 우승이었다. [41] 이병규 선수 본인도 한국 복귀시 '방출당한 게 아니라 그냥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 뿐이다.'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고.[42] 요즘은 오릭스 버팔로스가 위협하고 있다.[43] 언급된 Second Heaven도 소프트뱅크의 패배에 아쉬워서 만든 곡이다.[44] 처음 곡인 74년도판. 부른 사람은 밑에도 나오지만 주니치 드래곤즈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고 지금은 예능인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반도 에이지.[45] 현재 사용중인 세번째 구단가는 2015년에 발표된 昇竜 -いざゆけ ドラゴンズ-(승룡 -나아가자 드래곤즈-, 노래는 마츠다이라 켄)이다. 한편 초대 구단가 '드래곤즈의 노래'(1950~1977)는 한신 타이거스의 구단가 롯코오로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3대 구단가 거인군의 노래와 투혼을 담아서를 작곡하기도 한 고세키 유지의 작품이다.[46] 2절은 센트럴 리그 팀들 호랑이를 쓰러뜨리고(虎を倒して) 잉어를 낚고(鯉を釣って) 하마의 별자리에 먹구름을 끼게만들고(浜の星座に雲をかけ) 제비를 떨어뜨려(燕落として) 큰 남자의 숨통을 끊어 이겨나간다 (大男息の根とめて勝ち進め) 3절은 퍼시픽리그 팀들 사자를 붙잡고(獅子を捕まえ) 매를 잡아(鷹を狩り) 성난 소들을 길들여(猛牛馴らして) 바다를 건너(海を越え) 북쪽의 전사도 (北の闘士も) 독수리도 (犬鷲も) 용이 제압해 굴복시켜 이겨나간다(竜がねじ伏せ勝ち進め)[47] 사실 이것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시작된 관습이다.[48] 이전 버전에서는 궈위안즈를 예시로 들었지만, 궈위안즈의 등번호는 33번.[49] 2015 드래프트 1위로 2015년 여름 고시엔 대회 우승투수이다. 소속팀인 주니치 드래곤즈와 닛폰햄 파이터즈가 당시 고교투수 최대어라고 평가 받던 다카하시 준페이(현립 기후상고, 현 소프트뱅크)를 동시에 지명했다가 추첨끝에 사이좋게 탈락한 후 두번째 시도에서도 또 두 팀의 지명선수가 겹쳐서 재차 추첨 끝에 지명했다.[50] 개막이후 연속경기 무실점 일본기록 소유자 (31경기)[51] 2000년대 말과 2010년대 초 주니치를 대표하는 투수.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연속 10승 이상을 달성했다. 2009년 센트럴리그 다승왕에 올랐고, 2011년에는 센트럴리그 다승왕 및 승률과 ERA 1위, 베스트나인까지 선정되었다. 2011년 엄청난 성적에도 센트럴리그 MVP를 놓쳤는데, 그 이유는 45홀드에 ERA 0.41이라는 엽기적인 성적을 올린 마당쇠이자 팀 동료 아사오 타쿠야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52] 2020년 8월 2일 10이닝 완봉 무승부를 기록한적이 있다.(...) 네이버 스포츠 경기기록[53] 1978년 생으로 2021년 기준으로 현역 최고령 투수이다. 2020 시즌 후에도 약 2800만엔에 재계약을 하면서 2021년에도 현역으로 뛸 예정이다.[54] 2007년 일본시리즈 5차전에서 8회말까지 퍼펙트를 기록했다. [55] 2017년 닛폰햄 주전 포수 출신으로 FA로 건너온 포수다. 2020년엔 키노시타와 카토에 밀려 주전 경쟁에서 탈락했다. 2020년에 FA로 올 당시 닛폰햄 시절 선배였던 이나바의 아내로부터 갑질을 당한 사례가 밝혀지며 한동안 언급된적이 있었다.[56] 본래는 육성선수였으나 2020년 7월 1일자로 정식선수로 전환되었다. 이로써 2000년 데이비드 닐슨(당시 등록명은 딩고) 이후 20년만의 정식선수 신분의 외국인포수가 되었고 7월 3일자로 1군에 등록. 7월 5일에는 29년만에 외국인포수로써 선발 출전을 하게 되는 진기록을 남겼다.[57] 2011년 드래프트에서 3개 구단 경합 끝에 데려온 선수.[58] 2019년 31의 적지 않은 나이에 주전 2루수를 차지한 노망주.[59] 2018년 센트럴리그 타율 1위와 최다안타 타이틀을 차지했다.[60] 2015 프리미어 12, 2017 WBC 대표 출신.[61] 2012년 도루왕, 2019년 최다안타 1위. 2019년까지 총 7회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전형적인 발 빠르고 수비 좋고 컨택과 선구안도 괜찮은 똑딱이 교타자. 그러나 빠른 발에 비해 도루센스는 좋지 않아서 통산 도루성공율은 71% 정도에, 도루왕을 기록한 시즌에는 32도루 17도루자로 65%의 도루성공율을 보여주면서 사실상 도루왕을 따려고 무리하게 필요없는 도루를 한 수준이었다. 다만 2019년에는 30도루 7도루자로 도루성공율 81%를 찍고 최다안타와 더불어 상당히 훌륭한 리드오프를 기록하고 FA도 땄다.(다만 선언하지 않고 3년 연봉 변동제로 계약. 첫 해는 2억 5천만엔.)[62] 2014,2015시즌은 선수 겸임. 2016부터 감독 전임이 되지만 도중 해임.[63] 데뷔시즌에 69경기 등판(44 선발), 35승 19패, 429.1이닝, 310 탈삼진, 1.70 ERA라는 정신나간 성적을 기록하며 사와무라상과 신인왕을 동시에 석권했지만, 2년간 불꽃같은 활약을 벌인 뒤 어깨가 망가졌고 결국 1965년부터 타자로 전향했음에도 얼마 활약하지 못하고 은퇴했다.[64] 조 스탠카, 진 바키, 궈타이위엔과 함께 4명뿐인 NPB 외국인 선수 100승 투수이다. 다만 이쪽은 다른 셋과는 달리 커리어 도중에 일본으로 귀화했고 일본 커리어도 16년이나 보냈다.[65] 이 해 같은 리그에는 신인왕 + 사와무라상을 석권한 요미우리의 20승 영건 우에하라 코지가 있었고 타자 쪽에서는 로베르토 페타지니나 마쓰이 히데키같은 거물들이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일본에서 리그 MVP는 높은 확률로 리그 우승팀의 선수가 가져가기에 이루어진 선정이라 볼 수 있다.[66] 이들 한국인 선수 세 명이 활약하던 시절 주니치의 인기는 박찬호가 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맞먹었을 정도.[67] 딩고는 호주의 야생 들개이다.[68] 이후 장훈이 2번째가 될 수 있었으나 모 선수의 추잡한 짓 때문에 실패했고,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2011년 2번째 양대리그 수위타자가 된다.[69] 홈런 2위는 동갑인 터피 로즈였다. 42홈런[70] 2016년 아라이 타카히로 이전까지 센트럴리그 최고령 MVP 기록이다. 일본 기록은 1988년 만 40세의 나이로 44홈런을 때리며 퍼시픽리그 MVP가 된 난카이 호크스의 카도타 히로미츠.[71]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