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미에시 3세
Kazimierz III
(1310 ~ 1370)
1. 개요
폴란드의 피아스트 왕조의 제50대 왕이자 마지막 왕. 재위 기간은 1333 ~ 1370년이다.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유일하게 "Wielki"(대왕)이라 칭송받았으며, 농민왕이라는 별명도 있다.
쿠야비 출생으로 즉위하면서 독일 기사단, 보헤미아와 협상했으며, 1325년에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군주(대공) 게디미나스의 딸인 알도나 오나와 결혼했으며, 1335년에 슐레지엔 조약을 맺어 보헤미아의 슐레지엔에 대한 통치권을 인정하는 대신 폴란드의 왕관을 포기하게 했다.
2. 안습했던 과거
안타깝게도 카지미에시 왕이 즉위했을 때 폴란드의 나라꼴은 완전 개판이 따로 없었다. 전쟁으로 인해 국토와 경제는 시궁창이나 다름 없었고, 백성들은 오랜 빈곤과 전쟁으로 지칠대로 지쳐 있는 상태였다. 이로 인해 그가 즉위했을 때 주변국들은 그를 폴란드의 왕으로 보지 않고 "크라쿠프의 왕", 즉 고작해봐야 한 도시나 지배하는 별 볼일 없는 왕이라고 무시했다.[1]
3. 업적
그가 사망했을 때 폴란드는 국토가 2배 가까이 늘어난 상태였으며,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부유하고 막강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군사력에 투자를 많이 했으며 부지런히 전쟁을 벌여 죽을 때까지도 수많은 정복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후세의 폴란드인들은 '목조 폴란드를 물려받아 석조 폴란드를 남겼다'고 격찬한다.
그 예로 쿠야비의 도브진을 점령한 튜튼기사단을 철수시키고 헝가리와 동맹을 맺었으며, 1347년에는 비슬리카에서 의회를 소집해 사법 제도를 개혁하고 크라쿠프에 대학교를 창설해 학문을 장려했다.
또한 1349년에는 할리츠를 점령하고 1355년에 후사가 없어서 귀족들과의 협의를 통해 헝가리의 러요시 1세를 후계자로 지명했으며, 1352년에 리투아니아, 타타르 등의 침입을 물리쳤다. 리투아니아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고[2] 헝가리, 룩셈부르크를 돕게 했다.
상공업도 적극적으로 육성해 크라쿠프는 당시 중부 유럽에서 가장 세력이 큰 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성문법전을 제정했고 백성들에게 추앙받아 명성을 떨쳤다.
4. 농민왕
카지미에시 대왕이 농민들의 왕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법을 뜯어 고치면서 그동안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온 귀족층을 박살내려 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의 중요 3대 계급(귀족, 성직자, 중산층)의 권력을 거의 비슷하게 만듦으로서 그의 왕권을 더욱 막강하게 했다.
즉위 중에 귀족들이나 성직자들에게 착취당하면서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의 약자들의 손을 들어 주기로 유명했고, 심지어 야사에 의하면 그의 왕비가 "경관을 감상하는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한 평민의 집을 박살내자 평민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농민들을 대하는 데에도 스스럼이 없어서 밤중에 농민들의 집에서 묵고 가기도 했다고.
5. 최후
1370년 사냥 중 낙마해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사망했다. 다만 낙마하면서 즉사한 것은 아니고 왼쪽 다리가 부러졌는데 이 상처가 감염되어서 2개월 정도 연명하다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카지미에시 3세가 낙마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는 오늘날에도 표석이 세워져 있다.
6. 현대 매체에서
파워업 키트에서 추가된 시나리오 4의 폴란드 군주다. 본래 시나리오 4가 시작하는 1370년에 사망하지만, 자연사가 아니라 사고로 죽었기 때문인지 수명은 사실보다 약간 길게 설정되어 있다. 물론 시작 시점에서 고령이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지만, 왕자나 공주를 낳아 그 왕족이 성년이 될 때까지는 생존해 주는 편이다. 능력치는 정치/전투/지모 순으로 각각 94/79/86으로 이 게임 전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동유럽 문화권 장수 중 가장 능력치 총합이 높다. 내정 특기도 등용 특기를 제외한 모든 특기를 다 가지고 있다. 부하로 뒷날 야기에우워 왕가의 창시자인 브와디스와프가 있는데, 그도 이 게임에서 만능형 무장으로 등장하니 혹시 공주를 출산하면 그를 사위로 삼아 후계자로 삼으면 좋다.
-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