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드비가

 


[image]
'''Jadwiga'''
헝가리어: Hedvig (헤드비그)
폴란드어: Jadwiga (야드비가)
리투아니아어: Jadvyga (야드비가)
생몰: 1373년 ~ 1399년
재위: 폴란드 국왕(1384년 ~ 1399년)
1. 소개
2. 생애
3. 기타


1. 소개


폴란드 왕국,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여왕[1].

2. 생애


헝가리 왕국 앙주 왕조의 국왕 러요시 1세의 차녀이며 아들이 없이 딸만 셋을 두고 사망한 카지미에시 3세의 뒤를 이어 그의 딸 엘즈비에타와 결혼한 사위 자격으로 폴란드를 동군연합으로 물려받은 부왕의 뒤를 이어 9살에 왕위를 물려받았다.[2] 야드비가가 즉위했을 무렵 폴란드는 튜튼 기사단이 세운 독일 기사단국과 대립하고 있었는데 귀족들은 야드비가의 배우자를 찾던 중 마찬가지로 기사단국과 대립하던 국가인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주목했다. 이 때 야드비가는 오스트리아의 빌헬름과 약혼한 상태였으나 폴란드 측에서는 약혼을 파기한 후[3] 리투아니아 대공 요가일라에게 야드비가와의 결혼을 제의하며 1385년에 크레보에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 요가일라와 리투아니아인들이 모두 발트 신화 종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
  • 리투아니아를 폴란드에 병합할 것.
  • 요가일라는 야드비가와 함께 폴란드의 공동 통치자가 된다.
세 번째 조건을 제외하고 모두 리투아니아와 요가일라에게 무리한 조건이었지만, 요가일라는 폴란드에서 요구한 조건을 모두 받아들였고(크레보 조약) 가톨릭 세례를 받은 뒤 브와디스와프 2세라는 새 이름을 받고 야드비가와 결혼했다. 이 때 요가일라의 나이는 35세였고 야드비가는 13세였다. 크레보 조약에서 첫 번째 조건과 세 번째 조건은 빨리 지켜졌으나 두 번째 조건은 리투아니아 독립파를 이끌던 요가일라의 사촌 비타우타스가 만만찮은 세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지켜지지 않았고 야드비가, 요가일라, 비타우타스가 모두 죽고 요가일라 왕조가 끝난 뒤인 1572년에나 귀족 공화국 체제가 수립되면서 지켜졌다.
이후 야드비가는 성년이 된 뒤 리투아니아에 가톨릭을 전파하면서 빈민들의 복지에 힘쓰는 등 통치에 힘쓰며 지내다가, 1399년 6월에 딸 엘즈비에타[4]를 낳고 26살의 나이로 산후병으로 사망했다. 야드비가는 유언으로 자신이 소유한 보석들을 매각해서 카지미에시 3세 시절 건설된 크라쿠프 대학을 재건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워는 유언대로 1400년 대학을 다시 열었다. 야기에우워 본인은 문맹이었지만 야드비가의 부탁을 생각해서 이후로도 예술과 학문에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야드비가는 사후 약 600여년 뒤인 1986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가 된 뒤 1997년에 성인이 되었다. 가톨릭 성인으로서의 축일은 7월 17일이다.

3. 기타


[image]
문명 6에서 DLC로 추가된 폴란드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같은 DLC에 동봉된 시나리오 야드비가의 유산(Jadwiga's legacy)에선 폴란드, 리투아니아, 볼히니아를 고를 수 있는데, 이 시나리오에서 야드비가는 등장하지 않으나 시나리오의 시작 년도인 1385년은 야드비가와 요가일라의 결혼으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동군연합이 세워진 해다.
가톨릭굿뉴스에서 검색할 수 있는 성인 정보에서 "야드비가"라고 검색하면 찾을 수 없고, 신분 항목에서 여왕으로 검색하거나 항목에서 찾으면 "성녀 헤드비지스"가 나오는데 헤드비지스(Hedvigis)는 야드비가를 라틴어로 표기한 이름이다.
신을 죽이는 방법에서 등장하는 성녀의 모티프란 추측이 있다.
[1] Regina (여왕)이 아닌 Rex = king (왕) 으로 대관했다. 폴란드 법에 여왕이라는 직책을 규정하고 있지 않고 있었는데 왕이 남성이어야 하는 규정은 없었고 유럽권에선 왕비와 여왕은 모두 Queen으로 표기하기에 왜인지 모르게 Queen으로 표기하면 주권 군주가 아닌 군주의 배우자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군주가 본인임을 뜻하는 Regnant를 표기하면 상관없긴 하나 그래도 공주나 왕자비를 뜻하는 Princess가 아닌 소국의 여성 군주는 Princess가 아닌 Prince로 번역하는데 이와 같은 이치.[2] 헝가리는 야드비가의 언니인 마리어가 물려받았고 다시 마리어의 남편인 룩셈부르크 가문의 지기스문트가 물려받는다.[3] 이 때 빌헬름은 분노하여 폴란드로 쳐들어왔으나 소득 없이 돌아가야 했다.[4] 생후 1달만에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