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급

 


1. 제원
2. 개요
3. 배경
4. 활약
5. 칠레 해군 소속으로서의 삶
6.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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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전장
191m
전폭
28.2m
흘수선
10m
기준배수량
25,000t
승조원
834, 1.167명[1]
추진기관
저압 파슨즈 + 고압 브라운-커티스 증기터빈석탄-중유 혼소
보일러
야로우 증기보일러 21기
출력
37.000hp
최고속력
22.75kn[2]
항속거리
10kn로 8,100해리
주포
35.5cm[3] 연장포 5기
부포
15.2cm 단장속사포 16기
대공포
7.6cm 단장고각포 2기, 4.7cm 단장기관포 4기
어뢰발사기
53.3cm 수중 어뢰발사관 4기
현측장갑
9인치
갑판장갑
1.5인치
바벳장갑
10인치
포탑장갑
10인치
관측탑 장갑
11인치

2. 개요


칠레 해군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칠레 정부가 자국 해군 강화를 위해 1911년 7월 25일 영국 '암스트롱 위트워스[4]'[5]사에 총 2척을 의뢰하고 1번함이 1913년 11월 27일에 진수되었다가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1914년 9월 9일이 영국이 정식으로 구매하여 사용되었고 이때 함선 이름이 캐나다로 바뀌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1920년 4월에 칠레 해군 소속으로 '알미란테 라토레'란 이름으로 재취역 되고 그해 8월 1일부터 전력화 되었다. 그리고 1959년 2월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 의해 스크랩 되었다. 그리고 2번함 알미란테 코치라네는 1차 세계 대전 발발로 건조가 중단되었다가 1918년 2월 28일 칠레 해군으로 부터 영국이 구매하여, 1920년에 HMS 이글이란 이름으로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으로 운용되었다.

3. 배경


1904년 브라질 정부가 자국 해군 강화를 심각하게 고려하던 중 고무와 커피 값의 폭등으로 충분한 자금이 확보되자 Minas-Geraes급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영국에 건조를 의뢰하였고. 이에 충격받은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1902년에 맺었던 군비 제한 협정의 즉각적인 무력화를 알리면서 남미의 드레드노트 건함 경쟁이 시작되어졌고. 이에 칠레 해군이 경쟁으로 인해 건조를 의뢰한 전함이 바로 이 알미란테 라토레급 전함이다.[6]

4. 활약


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영국 정부는 당장 함선들을 급급히 모으기 시작했고, 그 중 거의 건조가 된 알미란테 라토레를 찾게 된다. 영국은 이 함선을 다시 매입하는 형태로 구입금을 칠레에게 환불하였다.
그 후 1915년 10월 15일 영국 해군 소속으로 전력화 된 이후 제 4 전함전대에 배속되고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하게 된다.
전투 당시 42발의 14인치 함포와 109발의 6인치 포탄을 사용하였고, 전투 동안 피탄이나 사고 등은 없었다. 그리고 18:40에 무력화된 독일 해군 소속 순양함 비스바덴에 두번의 포격을 가했고. 19:20에 알 수 없는 함선에 다섯 번의 포격을 가했다. 그리고 19:11에 6인치 함포로 독일 해군 소속 구축함에 포격을 가했다.
그 후 1916년 6월 12일에 제 1 전함전대로 배속 되었고 1917년부터 1918년까지 개량된 거리 측정기등을 설치 하였고, 당시 중앙 주포의 포격으로 인한 포염으로 후미의 6인체 부포가 피해를 받자 철거되었다.
그리고 1919년 3월 예비 함대로 배속했다가 1921년 칠레 해군에 플리머스급 구축함과 함께 인도했다.

5. 칠레 해군 소속으로서의 삶


그렇게 칠레 해군 기함으로 재취역 되었다가. 1922년 지진 이후 1924년 대개장을 거쳤다가. 1929년 다시 한번 영국 데번포트 조선소에서 대개장을 거쳤고 1931년 4월 12일 칠레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알마 안가 대공황으로 인한 칠레 해군에 대한 예산 삭감으로 알미란테 라토레함의 승조원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알미란테 라토레함을 중심으로 칠레 해군의 함정 대부분이 반란에 동참했으나, 정부군 공군의 공격으로 인해 5일만에 항복하였다. 그 이후 지출을 줄이기 위해 퇴역시키고 탈카우아노에서 함선관리를 위한 승조원들만이 운용되어졌다. 그 이후 진주만 공습으로 해군 전함들이 상당수 피해받은 미국이 구입의사를 밝히지만 칠레는 거절하였고. 그 이후 중립을 위해 경비 용도로 사용되어졌다. 그러다 퇴역을 맞게 된다. 여기서 나온 부품중 일부는 일본의 전드레드노트 전함 미카사의 복원에 투입된것으로 추정된다.

6. 사건, 사고


1951년 칠레 해군 소속 3명의 승조원들이 기관실에서 발생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1] 1차 세계 대전 기준[2] 전작인 아이언 듀크급보다 속도가 '''약간 더 올라갔다.''' 의미가 조금 생긴 정도이지만, 당시에는 속도 면에서 확실한 우위에 섰을 것으로 여겨진다.[3] 14인치.[4] 영문으론 Amstrong Whithworth[5] 2차대전기 당시 최초로 베를린을 폭격한 암스트롱 휘트워스 휘틀리 폭격기의 제조사다.[6] 아르헨티나가 이탈리아제 신형장갑순양함들을 도입하자 브라질이 영국에서 미나스제라이스급 전함 2척을 도입했고 이에 아르헨티나가 미국에서 리바다비아급 전함 2척을 도입하고 칠레가 영국에 알미란테급 2척을 주문하자 브라질이 다시 영국에 전함 1척을 추가주문했다가 경제적어려움으로 건조중에 도입취소한 것이 애진코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