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힐 남편 살인사건

 

1. 개요
2. 내용
3. 검거
4. 발단
5. 살해
6. 결말
7. 여담

康怡花園D座312室烹屍案[1]

1. 개요


1988년영국령 홍콩에서 벌어진 가정폭력에 의한 살인사건. 조현병을 앓던 아내가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둔기로 폭행해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냉동실에 유기했다. 당시 홍콩 내에서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고 미디어로도 각색되었으나 한국에는 이 사건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2]

2. 내용


1988년 2월 23일 오후 3시, 홍콩 쿼리베이(鰂魚涌)의 콘힐 가든(康怡花園)에서 어린 소녀 부미령(傅美玲)이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보니 어머니 마결지(馬潔芝)가 집안을 청소하는데... 집안이 이상했다.
당시 집안은 사람의 피로 흥건했고 마결지의 옷과 몸에도 마찬가지로 피투성이인 데다가 정신이 나갔고 아버지 부당(傅棠)은 어디에 있는지 흔적도 없었다. 부미령이 "아버지는 어디에 있어요?"라고 묻자 마결지는 태연히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했다. 부미령은 워낙 부모가 평상시에도 사이가 나빠서 서로가 "죽이고 싶다.", "죽고 싶다." 하는 말을 자주 들었으므로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고 연락도 없었다. 부미령이 친척이나 친구들 아버지의 지인들 집에 연락을 하고 찾아가 봤지만 모두 "네 아버지는 여기에 없다."하는 대답뿐이었다. 부미령이 다시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여전히 본인이 죽였다고 말했다.
부미령은 어머니가 수상하다고 여겨 경찰에 신고를 하기에 이른다.

3. 검거


딸의 신고를 받은 이후 어머니는 곧 체포되어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마결지는 조현병 때문에 수사 없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었지만, 경찰은 아버지의 시신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의 홍콩 경찰은 과학적으로 수사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쉽사리 단서를 잡지 못했다.
그 후 부미령의 외삼촌, 즉 마결지의 남동생네 집 냉장고 안에서 토막난 시체의 몸과 뼈, 머리카락 등이 발견되었고, 경찰은 집주인 남동생을 긴급체포하여 조사했다. 남동생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누나 마결지가 정신분열증세를 앓게 된 이유는 부당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4. 발단


마결지가 남편 부당을 살해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부당은 젊은 시절에는 정말 착실하고 좋은 성격이었고 얼마 뒤 마결지와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부부관계는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그 후 부당이 어떤 여자를 만나 내연관계가 되자 문제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결지는 남편 부당이 언젠가는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부당은 본처의 기대와는 달리 불륜을 저지르며 겉돌고, 이혼마저 되지 않자 아내를 매번 구타했다. 마결지는 남편의 엄청난 폭력에 시달리면서 정신이상자가 되었고 당연히 사이도 나빠졌다. 어느 날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부엌칼을 들이대고 위협하기까지 했다.[3]
이렇게 남편의 심한 구타와 인격모독을 당한 아내는 결국 참다 못한 나머지 '이런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엄청 무서운 결심을 하게 된다.'''[4][5]

5. 살해


결국 1988년 2월 23일, 마결지는 그동안 남편에게 당해왔던 분노가 폭발한 나머지 둔기로 내려쳐 쓰러뜨렸으며(원래는 북한식으로 죽탕치다란 표현이었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남편의 몸을 도축용 칼로 무자비하게 난도질해 죽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후 마결지의 남동생이 그 집에 우연히 들렸다가 이 꼴을 목격하고는 급히 누나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하고 매형의 시체를 자기 집으로 가져가서 마구 토막낸 뒤 쓰지 않는 냉장고의 냉동실 안에 유기하였다.

6. 결말


결국 다음날 아내 마결지와 남동생 등은 살인 및 시신유기 혐의로 모두 검거되었으며 1988년 10월 7일에 무기한 치료감호 처분을 받은 후 샤오란 치료감호소(小欖精神科監獄)[6]에 수감되었고 그 뒤 1995년에 석방되었다.

7. 여담


  • 이 사건이 충격적인 탓에 두 번 영상화되었다. '팽부(烹夫)'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고, 아시아 텔레비전(aTV)의 실화극에도 영화 제목 그대로 방영되었으며 TV 실화극은 1992년, 영화로는 1993년에 나왔다.
  • 구글에 이 사건의 명칭을 한자로 검색하지 말자. 한자로 검색하면 피해자의 토막난 시신이 나온 사진이 여과 없이 나온다.[7] 해당 사진은 한국에서는 애인을 먹은 여자라는 제목의 괴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 홍콩 및 중화권 내에서의 공식 사건 명칭이다.[2] 당시에 개최될 1988 서울올림픽을 앞둔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노태우 대통령 취임과 6.10/8.15 남북학생회담 투쟁 등의 보도가 집중되었던 시점이라 홍콩의 살인사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3] 남편도 아내의 저런 모습을 보고 병원에 보냈더라면 최소한 자신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오히려 독단적으로 행동했고 아내가 끔찍한 행동을 하는 데 충분히 원인 제공을 했다. 말 그대로 불난 집에 부채질한 꼴이 된 것.[4] 슬프게도 몇몇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죽이기도 한다.[5] 실제로 한국에서도 초등생 남학생이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도 있다. 이것도 콘힐 가든 사건과 같이 가정폭력을 끝내려 살인한 사건이다.[6] 현 샤오란 정신의학센터[7] 합성이 아닌 실제 사진이다. 보기 불편할 수도 있으므로 열람에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