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 홍콩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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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특별행정구'''
'''香港特別行政區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image]
[image]
'''특별행정구기'''
'''휘장'''
'''면적'''
1,105.6㎢[1]
'''인문환경'''
'''공용어'''
영어, 중국어(사실상 광동어)
'''인구'''
7,552,800명(2021년) | 세계 103위
'''인구밀도'''
6,777명/㎢[2]
'''민족구성'''
한족 92.0%, (홍콩인 89.2%, 중국인 2.8%), 인도네시아인필리핀인 4.6%, 백인 0.8%, 기타 2.6%
'''하위 행정구역'''
18개 구
''' 정치'''
'''주권'''
중화인민공화국특별행정구
'''행정부 수반
(행정장관)
'''
캐리 람
'''임기'''
2017년 7월 1일2022년 6월 30일
'''정무사사장
(사무총장)
'''
매슈 청
'''정치형태'''
수반 간선제, 단원제, 제한선거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87위'''(2020년)[혼합된체제]
'''경제'''
'''GDP'''
$3,729억(2019)#
'''1인당 GDP'''
$49,334(2019)#
'''GDP(PPP)'''
$4,908억(2019)#
'''1인당 GDP(PPP)'''
$64,927(2019)#
'''국부'''
$3조 660억 / 세계 17위(2019년)
'''신용등급'''
무디스 Aa2
S&P AA+
Fitch AA+
'''HDI
(인간개발지수)
'''
0.949 (세계 4위)
'''화폐'''
홍콩 달러
'''ISO 3166-1'''
HK, HKG[3]
'''도메인'''
.hk, .hk.cn,[4] .香港
'''행정구역 한자 약칭'''
[5]
'''국제 전화 코드'''
+852
''' 기타'''
'''시간대'''
UTC+8(홍콩 표준시)
'''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90일
'''여행 경보'''
'''특별여행주의보'''
전 지역[코로나19]
'''위치'''
1. 개요
2. 상징
2.1. 명칭
2.2. 깃발
2.3. 노래
3. 지리
4. 기후
5. 구획
8.2. 중국 대륙과의 관계, 갈등과 마찰
11. 주민
12. 생활
12.1. 닭장 아파트
12.2. 의료와 보건
12.3. 수도와 전기
13. 교육
13.1. 초/중등 교육
13.2. 고등 교육
14. 군대와 치안
14.1. 군대
14.2. 치안
14.2.2.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치안붕괴와 사회분열
17.1. 경관
18. 대중문화에서
20. 관련 문서

'''도시 전경'''
[clearfix]

1. 개요


'''홍콩'''(香港, Hong Kong)은 동아시아중국 대륙에 위치한 특별행정구이다. 1842년 8월 29일 난징 조약으로 영국에 할양되었지만, 중영공동선언을 거쳐 일국양제 시행에 합의 후 1997년 7월 1일중화인민공화국특별행정구로 편입되었다.
아시아에서는 물론 국제 금융, 물류의 중심지로서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금융허브로 꼽힌다. 홍콩은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독특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 일찍부터 개방되어 동서양이 만나는 관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홍콩의 역할은 현재에도 유효한데 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아시아 거점 도시로 전세계에서 사람들과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6] 영국의 식민지였던 만큼 영국, 서양 문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깊게 박혀있는 데다가 영어가 공용어이며 국제도시답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7]
홍콩은 영국으로부터 반환 이후 특별행정구로서 중국 영토에 편입되기는 했으나, 일국양제에 의거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중국 본토와 분리되어 있으며 사실상 도시국가처럼 굴러가고 있다. 홍콩의 최고 법률은 홍콩기본법으로 중국 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국경도 중국과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간의 왕래에는 비자와 비슷한 통행증이 필요하며 출입국심사에 준하는 절차를 거친다. 홍콩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 정치를 비롯한 경제, 법률, 재정, 교육 등 대부분이 중국과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8] 올림픽 등의 국가 대표팀도 별도로 가지고 있고, 주요 국제기구에도 중국과는 별도의 회원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다.[9] 홍콩인의 국적 또한 중국 국적이 아니라 홍콩 별도의 국적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다수의 국가들은 홍콩이 일반적인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국과는 다른 별개의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10]

2. 상징



2.1. 명칭


'''공식 명칭'''
'''정체 한자'''
中華人民共和國香港特別行政區
中華人民共和國香港特别行政區[11]
'''간체 한자'''
中华人民共和国香港特别行政区
'''영어'''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SAR)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한국어'''
중화인민공화국 향항특별행정구[12]
'''약칭'''
'''중국어'''
香港[13]
'''영어'''
Hong Kong
홍콩(香港)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향(香)을 실어나르는 항구(港)가 위치했던 곳(향항;香港)이라는 중국어에서 유래했다. 이것이 광동어로는 ''''횡공'''[14]'으로 발음되고 다시 영국인들이 Hong Kong으로 적으면서 홍콩의 현 이름이 확정되었다.[15] 표준중국어 발음으로는 '샹강'(Xiānggǎng)'으로 발음되어 상이하다. 샹강이라고 발음하면 알아들을 사람은 중국본토인이나 대만인들 뿐이고 이들조차도 Hong Kong이 워낙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이름이라 이렇게 말해도 알아듣는다.
이 이름은 본래 홍콩에 있는 섬 중 하나로 홍콩 섬 남부 애버딘과 마주보는 작은 돌섬인 압레이차우(鴨脷洲) 섬을 가리키는 말이었다.[16] 구룡반도 인근에는 을 생산하던 공장이 있었고 이 공장은 주강 삼각주를 통해 배로 중국 각지에 향을 실어날랐는데, 그 때문에 압레이차우 섬에서는 항상 향 냄새가 났었고 거기서 이름을 땄다고 여겨진다. 1841년 아편전쟁 당시 영국인들이 처음 홍콩에 도달했을 때 이 섬에 도달했고, 그곳에 있던 중국인에게 "여기가 어디냐"라고 물었더니 "헝꽁" 비슷하게 발음한 것이 영국인들 귀의 몬더그린 필터를 거쳐서 Hong Kong이라는 표기로 확립되었다.
1926년 표기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Hongkong이라고 썼다. 이 시절 영국령 홍콩이 광동어 고유명사에 대한 영어 표기법을 확립하면서 한자 한 자마다 영어로 표기할 때 전부 띄어 쓰도록 규정했는데 이 규정에 따라 Hongkong이었던 것이 Hong Kong이 되었다. 그러나 Hongkong이라고 붙여 쓰던 시절의 흔적은 이곳저곳에 많이 남아있는데 HSBC의 정식 명칭 The Hongkong and Shanghai Banking Corporation이 그 예 중 하나. 그리고 영어로 홍콩의 형용사형(demonym)을 일컬을 때는 Hong Konger, Hong Kongese보다도 Hongkonger, Hongkongese처럼 붙여쓰는 경우가 많다.
홍콩은 일부 국제 기구에 중국과는 별개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기도 한데 이 경우에는 중국홍콩(中國香港)이라는 이름을 쓴다. 영어로 쓰면 Hong Kong, China가 된다. 영국령 시절에는 Hong Kong이란 이름으로 일부 국제기구에서 활동했는데 홍콩 반환 이후 중국령임을 명기한 이름으로 교체한 것이다.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나 중국 정부 등에서는 주권 국가의 정식 이름과 홍콩의 지위까지 명기한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中華人民共和國香港特別行政區,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HK라는 약자를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홍콩 정부를 HK government라고 하거나 하는 식이다. 홍콩인들 스스로가 HK를 워낙 많이 써서 보편화됐다. 뉴질랜드가 NZ가 약칭이고 뉴욕이 NY, 싱가포르가 SG로 줄여서 불리기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홍콩의 정부기관 등에서는 홍콩 특별행정구를 의미하는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을 줄인 HKSAR을 쓰기도 한다.

2.2. 깃발


[image]
현재 홍콩 특별행정구의 깃발인 골든바우하니아 기는 응모작 중 하나를 1990년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의 주권반환을 대비해 제정된 것이다.
깃발에 있는 꽃은 자형화(紫荊花, 바우히니아)로, 영어로 Hong Kong orchid tree라 한다. 실제 자형화는 한자가 나타내듯 자주색 혹은 보라색이지만 깃발에서는 흰색으로 표시되며 홍콩을 상징한다.
바탕색인 빨간색은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이 좋아했던 색깔로 중국을 상징한다. 즉 빨간색으로 상징되는 중국 안에 홍콩이 있다는 것으로 '중국에 속한 홍콩'과 '중국 본토와 정치/경제적으로 구분된 홍콩'(일국양제) 모두를 상징한다.
깃발 안에 있는 5개의 별은 오성홍기에서 유래햇으며 모국(중국)을 사랑하는 홍콩의 모든 애국자를 상징한다. 중국 공산당 내지는 베이징 중앙정부를 상징하기도 한다. 홍콩이 중국의 일부이고 직접 통치지역임을 어필하는 셈이다.
홍콩의 관공서에서는 이 깃발과 오성홍기를 함께 게양하며, 오성홍기가 더 커야 한다. 과거 영국 식민지 때에도 영국령 홍콩을 상징하는 깃발이 있었지만 많이 안 보였고 영국 국기인 유니언 플래그만 단독게양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중국이 일국양제 및 특별행정구역을 어필하고자 미국의 각 주기(State Flag)처럼 자국 국기와 함께 게양하게 한다. 참고로 중국 본토에는 행정구역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휘장이 딱히 없다.
[image]
영국령 홍콩 시절에는 좌상단에 유니언 잭이 있고 우하단에 영국령 홍콩의 휘장이 새겨진 깃발을 사용했다. 이 깃발에는 용사기(龍獅旗, Dragon and Lion flag)라는 별명이 있다.
이 영국령 홍콩기는 식민지 시절 편의상 사용했던 국기 대용으로 1997년 홍콩 주권반환 이후로는 공식적인 지위를 상실했지만 홍콩 독립운동 진영에서 가끔씩 이 깃발을 중국 공산당과 현재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에 반대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홍콩 정부는 역사 유산으로 간주하므로 써도 별 문제는 되지 않으나 공식적인 지위는 없다.
홍콩 반환 전 1987년부터 1988년까지 도안된 깃발들 중에서 오성홍기를 기반으로 한 깃발이 많았다.#[17] 그러다가 현 도안이 가장 이상적이라 판단하여 채택되어 지금에 이른다.

2.3. 노래


홍콩을 상징하는 공식적 지위의 노래는 따로 없다. 본국인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이 국가 대접을 받는다.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등 각급 스포츠 대표팀이 아시안컵, 아시안 게임, 올림픽 등 각종 경기를 치르는 경우 중국의 국가인 의용군 진행곡을 연주한다. 연주 시 야유 등의 행위가 일체 금지되며 이 경우 무거운 처벌을 한다. 홍콩 국가법 참조.
식민지였던 영국령 홍콩 시절에는 영국 국가인 God Save the Queen/King 이 국가였다.
홍콩 독립운동 진영에서는 영광이 다시 오길이 비공식 국가처럼 불려진다. 홍콩 국가보안법 발효 이후 독립운동 진영이 사실상 와해되면서 이 노래도 사실상 금지곡이 되었다.

3. 지리


중국 대륙 남부 광동성과 가까운 주강 삼각주 하구에 위치한다. 이를 보면 알겠지만 광동성과 가깝다. 그러나 광동성은 아니며 엄연히 성급 행정구역으로 체구가 동급이다. 원래 중세 중국에서는 같은 양광지방에 속했는데 아편전쟁으로 영국 해군이 점령, 상륙한 후 식민지인 영국령 홍콩으로 변하며 별도 행정구역으로 갈리게 되었다.
까우룽 반도[18]홍콩 섬[19], 그리고 홍콩 국제공항이 있는 란타우 섬[20]을 비롯한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개 육지 부분은 구룡, 섬 쪽은 홍콩 섬 본섬과 란타우 섬, 라마 섬, 청차우 섬 등이다. 그리고 광동성(廣東省) 선전(深圳)과 마주보는 지점에 있고 또 다른 특별행정구인 마카오(澳門)에서도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이 둘을 드나드려면 출입경 심사를 거쳐야 한다.
홍콩 표준시[21]는 대한민국 표준시인 GMT+9보다 1시간이 느리다. 당연히 중국 대륙대만과는 시간대를 공유한다.
위성지도를 보면 경상남도 통영시와 홍콩의 지형과 시가지 분포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물론 서남쪽이라는 위치는 오히려 전라남도 여수시와 더 비슷하다. 여수의 경우 실제로 영국이 점령한 거문도가 있으며, 거문도가 점령당했으면 홍콩처럼 됐을 수도 있다. 방언이 전혀 상이한 것은 제주도와 비슷하다. 중국 기준에서 광동 성은 서남 지방이고 한국의 영남 같은 동남 지방은 푸젠 성대만 섬이다. 그러면서 산과 바다를 낀 지형은 부산광역시를 방불케 한다.

4. 기후


북쪽에 있는 중국 대륙 즉 본토와 한국, 일본의 도시보다 한여름 최고기온이 5도 가량 더 낮다. 즉 연중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는 해가 거의 없다. [22] 공식 역대최고기온이 36.6도다. 일단 해안도시여서 바다가 열 창고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대외적인 인식과 달리 구름이 많아 일조량이 연중 내내 부실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슬점도 밤낮에 따른 변동이 없고, 수증기는 바다에서 꾸준히 보급되므로 습도의 변동 역시 미미하다. 따라서, 5~8월 홍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섭씨 28도, 습도 80% 이상을 유지한다.[23] 동남아시아의 자카르타, 방콕,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등의 도시들도 24시간 습도 80%를 찍는 날은 드물기 때문에, 아시아권 대도시 중에서 이 곳과 비슷한 기후인 오사카와 함께 고온다습의 교과서와도 같은 곳이다. 한국의 7~8월도 홍콩보다는 건조하다. 네이버 세계날씨를 통해 비교해볼 수 있다. 홍콩은 온난습윤기후에 속해서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에는 비교적 온화하고 건조하다.[24] 대체적으로 한국 남해안 일대 기후의 강화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4계절이 있지만, 한국만큼 연교차가 크지않다. 물론 아열대기후라고 해서 겨울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홍콩의 겨울은 한국의 가을날씨에 해당할 정도로 그냥 쌀쌀한 수준으로, 그 기간이 대개 11월 중순부터 3월까지 4개월정도 지속된다. 다만 연중 가장 추울때는 최저기온이 10도 아래까지 내려가서 한겨울에 홍콩방문하려면 한국의 늦가을 옷 정도로 입는게 좋다. 더군다나 홍콩은 겨울에도 습도가 그럭저럭 높은데다가 바람도 세게불면 체감온도가 확 떨어진다. 그리고 한국과 비교적 가까운 곳이라서 동아시아 기후의 영향을 받는데 특히 겨울에 심해 한국의 기후패턴이 그대로 나타난다. 즉 한국에 한파가 닥치면 홍콩도 춥다는 것. 2016년 1월 전세계적인 이상한파 발생 당시 홍콩도 0도 가까이 내려가고 아주 추웠다. 일반적으로 3월부터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해서 4월로 접어들면 한낮기온이 30도를 넘나들고, 습도도 꽤나 높아서 한국의 초여름 내지 한여름 날씨를 경험할수 있다. 최저기온도 20도선을 상회하고 4월말이 되면 열대야 수준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5월부터는 한여름과 다름없는 찜통더위가 10월까지 쭉 이어진다. 10월 중순에서 말 정도가 되어야지 비로소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서 열대야가 사라지며 이때부터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해서 11월엔 최저기온이 다소 큰 폭으로 떨어지고 최고기온도 20도 초중반대에 머무른다.

5. 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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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영국의 점령 및 조차 시기의 차이에 따라 홍콩 섬, 까우룽 반도[25], 신계로 구분된다. 이 셋은 엄연히 행정단위가 다르며 특히 신계는 초록색 택시, 란타우 섬은 파란색 택시로 택시 색깔도 타지와 달라 사실상 도시 내 도시로 별개 행정구역 취급한다. 홍콩인들도 신계를 갈때나 란타우 섬을 갈 때는 시외로 간다고 표현할 정도로 꽤 다르다.
홍콩은 총 18개의 구(區, district)로 나뉘어 있는데 위의 지역 구분에서 다시 세부적으로 나뉜다. 각 구는 1982년 홍콩에 민주주의가 도입될 때 생겨났으며[26] 모두 구 의회(區議會, council)를 갖추고 있다.
간혹 빅토리아 시티를 홍콩의 수도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정확하게는 홍콩의 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하는 지역, 즉 홍콩 섬 센트럴을 속칭 빅토리아 시티라고 일컫는 것으로 홍콩 내 법적 행정구역 상 빅토리아 시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영국에 홍콩 섬이 막 할양된 1841년에는 실제로 Victoria, Hong Kong이라는 도시가 행정적으로도 존재했다. 지금은 우편 주소 쓸 때에나 사용하는 명칭이 되었다. 현 행정구역으로서의 빅토리아는 센트럴과 셩완 일대가 속한 중시 구(Central and Western District)에 속해 있다.
배낭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홍콩/관광, 마카오/관광 문서도 참고하자.
참고로 구글 맵스에서 한국어 설정시 홍콩의 구획명은 표준중국어 발음으로 표기된다. 표준중국어 지명은 홍콩인들은 알아듣더라도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헷갈리지 않게 찾으려면 구글맵스를 영어로 설정하는 게 낫다. 몇몇 거리 지명들을 살펴보면 영어를 광동어에 음차해서 끼워맞추거나 그 역으로 끼워맞춘듯한 홍글리시스러운 지명들이 많다.[27]
'백만불짜리 야경'이라는 별명이 있다. 마천루들도 계획적으로 세웠다. 호사가들은 나폴리, 하코다테와 더불어 세계 3대 야경으로 부르기도 한다. 어느 정도로 야경이 유명한지 한국에서도 흥행한 홍콩 영화 영웅본색에서 싸움 끝에 도망쳐 빅토리아 피크 언덕에 올라 홍콩 섬의 야경을 내려다보던 주윤발이 "홍콩의 야경은 참 아름답군"이라고 하는 대사가 나올 정도다.야경은 빌딩 숫자가 늘어서 더욱 화려해졌으며 특히 1997년 중국으로 주권반환 후 중국 자본의 유입으로 마천루가 계속 생겨나고 있어 볼거리가 더해진다. 그리고 20:00~20:15에 펼쳐지는 레이저 쇼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가 백미다. 빅토리아 만의 양단에 있는 마천루들에서 레이저를 쏘아 보낸다. 통상 볼 수 있는 위치는 침사추이 스타페리 터미널 옆의 시계탑~스타의 거리, 완차이의 컨벤션 센터 앞, 빅토리아 피크, 빅토리아 만을 관광할 수 있는 유람선 등이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이것도 꽤나 축소되었다.
빅토리아 만의 양단이나 빅토리아 피크에서는 반대쪽의 레이저 밖에 볼 수 없으므로 돈이 충분한 사람이나 배멀미에 완벽히 적응한 사람이라면[28] 침사추이에서 19:30, 센트럴에서 19:45에 출발하는 아쿠아루나를 탈 것을 권한다. 빅토리아 만의 해상에서는 양쪽의 레이저 쇼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단 심포니 오브 라이트 때문에 이 시간대의 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홍콩으로 여행가기 10일 전에는 반드시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29]

6. 역사



1841년 아편전쟁부터 영국식민지(영국령 홍콩)였다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어 중화인민공화국 소속 홍콩특별행정구가 되었다. 이후 잘 알다시피 특별행정구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런 역사 덕분에 지금까지도 중국 본토와는 다른 위치에 있다.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홍콩은 중국 영토이지만 일국양제가 시행되어 많은 부분에서 중국 본토와 분리되어 있다. 홍콩은 올림픽 등의 국가 대표팀도 중국과는 별도로 가지고 있고, 일부 국제기구에도 중국과는 별도의 회원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다.

7. 정치




8. 대외관계




8.1. 한국과의 관계




8.2. 중국 대륙과의 관계, 갈등과 마찰








9. 언어



광동어가 제일 널리 쓰이며 표준중국어영어도 쓰인다. 표준중국어 외의 중국 방언을 제1언어로 쓰는 곳은 사실상 홍콩과 마카오 뿐이다. 문자로서는 한자(번체자)가 쓰인다.
광동어는 격식적인 환경에서는 글말로서 사용되지 않고 입말로서만 사용되기 때문에 글로 쓰이는 언어는 표준중국어영어 두 가지 뿐이다. 이런 홍콩의 독특한 환경을 두 가지 글말과 세 가지 입말이라는 뜻의 양문삼어(兩文三語)라 표현한다. 물론 인터넷이 보편화된 21세기에 들어서는 광동어를 글말로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어서 사실상 삼문삼어에 가까워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10. 경제



중국 대륙은 무현금 사회를 추구해 알리페이 등 페이류 결제수단이 널리 쓰이는 반면, 홍콩은 신용카드 만들기가 까다로운 관계로 일본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도 현금이 많이 쓰이며, 옥토퍼스 카드 역시 여러 곳에서 현금을 대신해 쓰인다. 너무 옥토퍼스 카드가 많이 사용되어 되레 신용카드 도입이 잘 안된단 목소리도 나온다. 홍콩 지하철이나 홍콩 버스는 물론, 선전시로 가는 국제 시외버스 요금도 옥토퍼스로 결제 가능하고 패밀리 레스토랑도 옥토퍼스를 받으며, 심지어 주차장 요금까지 옥토퍼스를 받는다. 자동판매기도 현금 대신 옥토퍼스 카드를 더 많이 받는다. 첵랍콕 공항에 내리자마자 옥토퍼스 카드부터 만들자. 공항철도 안내 데스크와 공항 도착 로비 내 세븐일레븐에서 모두 구입 가능하다.
2021년02월09일, 홍콩증권거래소에서 역대 처음으로 외국 국적[30]의 홍콩 영주권자 사령탑 총재를 임명했다.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이후 많은 홍콩인들과 외국인들이 헥시트[31]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우려되어서 임명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기사
홍콩금융관리국 총재는 홍콩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후에 자금 유출이 있다는 설에 대해서 부정했다.기사

11. 주민



홍콩인들은 스스로 중국인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젊은 세대로 갈수록 적어지는 편이다. 영국의 도시로서 150년 이상 중국과 정치적, 문화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여기는 일부 홍콩인들도 대부분 중국 대륙중국인들과 자기들은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홍콩인들은 여권도 홍콩 여권으로 따로 나오고 중국 주민 등록 제도인 후커우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나아가 홍콩은 영국의 지배하에 일찍부터 국제화된 도시 중 하나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홍콩인들 중에서는 한족 홍콩인뿐만아니라 미국, 영국, 캐나다 출신의 백인계들과 일본인, 아랍인, 인도인, 필리핀인 등의 국가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으며 이들은 외국인 신분이 아니라 홍콩 영주권을 갖고 있고 홍콩 입경처에서 규정한 공식적인 홍콩인이다.[32] 이러한 독특한 홍콩의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홍콩인=중국인 이라는 개념은 성립되기 어렵다.
인구는 약 720만 명이고 면적은 1104km²[33]인구 밀도가 '''정말 높다.''' 1km²에 6천 명 정도가 거주한다. 다만 여기서도 홍콩 섬 북부 해안지역들인 셩완, 센트럴, 완차이, 코즈웨이베이 등과 구룡반도 남부인 침사추이, 몽콕, 야우마테이, 홍함 정도가 초고밀도로 개발되어 있고 나머지 지역인 신계 및 도서지역들은 인구밀도가 비교적 낮다. 엄밀히 말하면 체감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것이다.[34] 2004년 조사에선 '''홍콩의 각 도심이 세계 인구밀도 1~9위를 석권할 정도였다.''' # 2012년 홍콩 정부가 다시 산출한 '''도심'''의 인구 밀도는 26,000명/km²으로 세계 7위 수준이다.[35] 그나마 신계를 개발해서 홍콩 '''전체'''의 통계가 6000명/km² 정도로 이 중 교외 지역인 신계가 홍콩 전체 면적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앞의 26,000명은 홍콩에서 신계를 제외한 지역[36]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 섬에선 주말만 되면 거리에서 모여있는 수십만의 필리핀인도네시아인 여성을 볼수있다. 특히 센트럴 역에 엄청 많다. 그 이유는 필리핀인도네시아인 여성들이 가정부로 홍콩에 많이 들어오는데, 홍콩법상 가정부를 고용하려면 가정부 방을 따로 제공해야 하며, 휴가도 정기적으로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주말마다 휴가를 받는다. 홍콩의 특성상 집이 작아 친구끼리 놀 곳이 거리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리로 나와 끼리끼리 어울려 놀게 된다. 그런데 이게 최근에 인종차별 논란을 낳았다. 홍콩인 고용주가 주말에 가정부들을 집에서 쫓아낸 것이 아니냐는 것. 사실, 명목상으로는 '주말은 휴가'라서 놀라고 내보낸다고 고용인들은 주장하지만, 그 '놀러 나간' 가정부들은 주말에는 고용인이 제공하는 방에서 자지도 못하고 길에 골판지 상자 깔고 노숙한다. 즉, 주말에 안 그래도 좁은 홍콩의 집에서 홍콩인 고용주 가족끼리 오붓하게 보내고 싶으니까 가정부 여성들을 거리로 쫓아내서 노숙하게 만든다는 것.
그나마 홍콩이 아열대 국가에, 치안이 좋은 나라라 망정이지, 겨울이 추운 나라거나, 치안이 별로인 나라였다면 가정부를 죽음의 위기로 내몰 수도 있는 만행인 것. 이 외에도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가정부들은 홍콩인들로부터 각종 학대에 노출된 경우가 많고, 심한 경우 거의 고문 수준의 폭행을 당하거나 성폭행 피해를 입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홍콩 주재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영사관에서 항의성명을 내기도 했다. 홍콩에서는 홍콩 사회 내 제노포비아를 가감없이 드러낸 어두운 사건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딱히 개선되고 있지 않은 부분이라 여전히 필리핀/인도네시아 가정부에 대한 멸시와 박대는 현재 진행형이다.
같은 동남아인데도 태국 국민들은 자동입국심사 등록으로 출입국 심사를 면제해 주는것과 달리, 필리핀인도네시아, 베트남 이 세 나라 여행객들은 관광비자조차 아주 까다로운 인터뷰가 기다리고 있고, 입국 거부도 자주 당한다. 프리패스로 통과하는 일본 관광객들이나 앵글로아메리카, 호주, 뉴질랜드, 서유럽 출신 백인들을 보다보면 대놓고 사람 차별한단 생각까지 들 정도다. 특히 대한민국, 일본, 영국, 유럽연합,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선진국 여권 소지자들은 자동출입국 심사 등록으로 출입국 심사까지 면제되는 걸 보면 안구에 습기가 찰 정도(...)로 설움받는게 필리핀인 등 후진국 사람들이다.
특히 젊은 필리핀 여성의 경우 필리핀 이민국도 홍콩 입경처[37]도 태도가 태클투성이니, 필리핀인 여성을 지인이나 애인, 부인으로 두고 계신 분들은 신원보증에 힘을 많이 써야 한다.# 홍콩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홍콩인들은 주장하지만 확실히 못 사는 나라 사람들은 심하게 갈굼당한다. 피부색보다 국가의 소득수준으로 평가하는 조금 다른 종류의 인종차별일 뿐이다. 같은 황인이면서도 잘 사는 선진국인 한국,대만,일본의 경우와 최빈국인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등과 둘의 대우가 너무 다르며, 본국인 중국 인민들도 마찬가지로 입경절차가 까다로워 어지간한 부유층이 아니고선 홍콩 출입증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다.[38]

12. 생활


홍콩도 세대차가 심한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중국에 대한 시각에서 두드러지는데 기성세대가 친중 혹은 반중[39]이더라도 적어도 중국을 모국으로 생각하는 한편 신세대들은 그렇지 않다. 홍콩 독립운동의 영향으로 "한때 친척이었으나 지금은 갈라진 국가", 심지어는 아예 홍콩과 일말의 접점도 없는 외국 취급을 하기 일쑤다. 당연히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이후 급증한 청년세대의 정치화와 홍콩 정체성 의식을 중국 정체성을 가진 기성세대는 못마땅해 한다.#[40]
참고로 2014년 10월에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인 일명 우산혁명 시위를 주도했던 조슈아 웡1996년생이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도 1990년대2000년대 출생 세대가 최전선에 나섰다. 반대로 가정이 있고 직장생활을 하며 안정을 추구하는 1970년대 ~ 1980년대생은 사회안정을 추구하며 시위에 잘 동참하지 않고 중도층을 구성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2000년대 이후 중국 대륙인의 부동산 투자가 늘면서[41] 홍콩의 부동산 가격이 급속하게 폭등하여 집을 소유한 기성세대들은 막대한 이득을 얻었고, 임대료로도 상당한 수입을 벌수있는데 반해서 젊은 층은 공공임대주택을 배정받으려면 최소 몇년은 기다려야 하는 꼴이 되어버려서 독립이 어려워지게 되고 집을 구할려고 해도 집값이 너무 비싸져 버렸고 월세도 너무 비싸져 버려서 좀 괜찮다 싶은 집은 월급의 반 이상을 임대료로 내줄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 문제는 홍콩 정부도 알고있는 지라 신계 북부 접경지대에 아파트를 대거 신축 중이며, 현재는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통근시간이 길어서 문제지(...).
더군다나 중국 중앙정부에서 자신들의 요구는 들어줄 생각조차 안하거나 들어준다 해도 하는 둥 마는 둥하면서 미적거리는데다가 그러면서도 홍콩에선 경제적 자유만 보장에 돈만 쏙 빼가고 정치적 자유는 보장하지도 않아 홍콩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생각은 만땅이니 당연히 시각이 확 달라질수 밖에 없어진 것이다.
물론 기성세대라고 해서 다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중산층 이상이 아니기 때문에 쪽방촌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사는 기성세대들도 적지 않게 있으며, 이들의 경우에는 중국정부나 홍콩정부에 대한 감정은 영 좋지 않은 편이다. 더구나 이들은 과거 공산중국을 피해 홍콩에 넘어온 피난민 출신들도 종종있는지라 중국 공산당을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홍콩인들은 자신들이 정체성을 '''영국 시민권'''을 가진 중화민국 공민으로 봤다. 현재도 중국인 의식을 가진 기성세대도 그 중국은 중화민국이어야 한다며 쑨원을 국부로 세운다. 10-20대 어린 세대들 사이에서는 홍콩 독립운동이 꽤 관심을 끌었지만 기성세대는 이를 정체성 파괴로 인식하고 못마땅하게 본다.
이러한 사회문제가 있지만, 홍콩경제 자체는 나홀로 호황(...)에 가까울 정도인 만큼 주머니 사정은 나은 편이다. 주거 문제만 빼면 어느 정도 식도락도 즐기고 해외여행도 휴가철마다 즐기는 게 홍콩의 서민층들이다. 영국의 경우 홍콩인에게 6개월 무비자 체류를 허용해서 자주 가는 나라다. 그리고 해외 유학도 활발하다. 한마디로 꽤나 부유한 사람도 사는 집만 보면 굉장히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 같다(...) 애초 실내공간이 좁은 건 대부분이 산지인 홍콩의 지형 탓이 크다. 그나마 얼마 없는 평지에 아파트고 뭐고 다닥다닥 세우니까 별 수 없다.
한편 장애인에 대한 복지나 처우 등은 나은 편이다. 홍콩은 장애인들의 취업기회를 많이 열어주며, 세계적으로 장애인 의무채용에 앞장서는 맥도날드는 물론 동네 식당에서부터 심지어 좀 번듯한 회사까지 장애인들이 일하고는 한다.

12.1. 닭장 아파트



홍콩은 열악한 거주환경으로도 유명한데, 여기엔 홍콩 면적 대비 거주 인구가 많아 필연적으로 인구밀도가 높다는 까닭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시장경제가 활발한 지역으로, 법인세를 비롯 매우 낮은 세율을 지녔는데 이는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거듭나는 데에 그 역할을 톡톡이 했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정부가 돈을 걷을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홍콩 정부가 수입을 올리는 수단이 바로 토지 임대인데, 홍콩의 모든 토지는 정부 소유로 홍콩 정부는 토지의 장기 임대를 경매 붙임으로써 대부분의 수익을 얻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주택용으로 공급되는 토지가 매우 적은 실정이며, 이는 홍콩 전체 면적의 3.7%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경매로 지대(地代)가 매겨지는 방식은 자연히 홍콩의 집값이 세계 1위를 형성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즉 홍콩의 부동산은 다른 국가들보다도 국내의 빈부격차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42]
홍콩의 빈부격차 및 비정상적으로 비싼 집값 때문에 적잖은 수의 저소득층들이 반평도 되지 않는 비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사는 것이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이루고 있다. 닭장 아파트라는 것은 정말 이 사는 공간처럼 비좁다는 뜻이다. 홍콩의 서민층은 대개 해외여행도 즐기고 필리핀인 가정부를 두며 식도락도 어느정도 즐기는 등 주머니 형편이 괜찮은 편이지만 대륙 중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이주민들, 그리고 영국령 당시부터 이주해 온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출신 3D 육체노동자들, 빈곤에 허덕이는 난민 출신의 독거노인들 때문에 빈부격차가 골칫거리이며 닭장 아파트는 다른 나라들의 빈민촌을 대신하는 일종의 쪽방이다.
독거노인들이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대륙 중국에서 단신으로 건너온 이주민들이 이러한 빈곤에 많이 시달리며 구룡반도는 경제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런 곳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노인들의 빈곤 문제가 꽤 심한 편이라 한국, 일본처럼 고독사가 홍콩에서도 큰 문제가 된다. 닭장 아파트에 대개 노인들이 살기 때문. 만일 화재가 날 경우 꼼짝 못하고 타 죽는 곳이라 홍콩 소방처는 이 닭장 아파트의 소방 점검에 꽤 신경쓴다.
기사에 따르면 2016년 미국 컨설팅 업체 데모그라피아 인터내셔널이 전세계 도시의 주택 가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홍콩의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은 6년 연속 세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홍콩의 평균 주택 가격은 홍콩 가구의 연간 평균 소득의 19배가량으로 파악된다.'반 평도 안되는 방...' 홍콩 주택난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진 하지만 나름 홍콩인들은 주거 환경이 좁은 것에 그리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고소득인 홍콩인들도 구입하기 힘들 정도로 땅 값이 비싼 건 유명하고, 그 만큼 국제 금융 허브 도시로서 자부심도 가지고 있어서 거주 환경이 좁은 건 당연하게 여기는 성향도 있다.
홍콩 닭장아파트, '쪽방촌'보다 '최악'...불가피한 선택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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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의료와 보건


홍콩 소방처 소속 구급서에서 구급차가 나가며 999가 호출번호로 영국본토 및 아일랜드와 같다. 110을 쓰는 중국 대륙, 119를 쓰는 대만과는 다르니 주의. 마카오는 원래 자체 번호가 993이지만 999도 병용된다.
그리고 의료보험의 경우 개인병원(Clinic)용 보험은 영국다국적 기업 보험회사들이 제공하는 민간보험이라 비싸다. 대신 퀸 엘리자베스 병원 등 정부병원에 가면 홍콩 영주권자는 납세를 하는 만큼 무료 진료고 외국인도 싼 값에 진료해준다. 대기시간이 긴 게 문제라서 되도록이면 비응급환자는 정부병원 이용을 자제하라는 조언도 있다. 물론 홍콩 소방처 구급차에 실려 오면 당연히 1순위로 진료받는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2020년에 들어서면 999로 코로나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 소방처 구급대가 방역복 착용 후 '''경찰을 대동해서''' 출동한다. 경찰을 대동하는 건 확진자일 수 있어 일대를 폐쇄시키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려 하는 것이며 격리 거부 시에는 강제구인도 가능하기에 같이 출동하는 것이다.
2017년 2월 MTR 췬완선침사추이 역에서 중국 대륙 출신의 중노년 남성이 화염병을 투척[43], 전동차에 큰 불이 나서 췬완선의 운행이 조던역-침사추이역간 구간이 중단되고 침사추이역은 폐쇄되었던 사고가 벌어졌으나 홍콩 소방처홍콩 경찰 그리고 MTR사의 빠른 대응[44] 그리고 홍콩인들의 침착한 대응으로 11명 부상으로 끝났다. 2004년에도 비슷한 방화 사건이 있었으나 역시 발 빠른 소방당국 및 경찰의 대응과 높은 시민의식 등으로 경상자 몇 명에 그치고 말았다.
한국과 가까운 거리라서 취업 등으로 나간 장기체류자들은 그냥 주말 틈타 한국에 와서 진료받고 간다.[45] 저가 항공사들의 범람으로 이게 더 싸다. 치과는 보험적용이 안 되어 비싸다. 물론 미국이나 필리핀같이 100% 민간 의료보험만 있는 의료체계에 비해선 낫다.
홍콩의 의료 수준은 높은 편이라 안심하고 진료받아도 된다. 정부 병원은 퀸 메리 병원, 퀸 엘리자베스 병원, 프린스 에드워드 병원, 킹 조지 병원 등 영국 /여왕이나 왕족들의 이름이 명명되어 있으며 전술한 것처럼 홍콩 소방처에서 나오는 999구급대를 이용하면 이 곳으로 100% 온다. 본인이 따로 다니는 사립 병원이 있다면 돈 주고 세인트 존(ST.JOHN)이라는 구급차 회사에 문의해 그 쪽으로 옮겨 달라고 해야 한다. 이 회사는 999 구급대와 달리 환자 셔틀 역할을 하고 대형 재난이 터질 때 소방처 보조를 위해 대기 의무도 있다.
위생 수준은 중국 본토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2003년 사스 사태를 겪어서 결벽증에 가까운 위생 문화로 굳어진 이유도 있다. 그 당시 홍콩의 사스 사태는 그 사건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도 감염병의 공포를 깊숙히 새겼을 정도로 심각했다. 하지만 해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인플루엔자 때문에 홍콩의 위생당국의 효율성에 대한 불신도 높다. 벌써 2017년 여름철 유행성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사람만 14721명이고 이중 312명이나 사망했다. 이는 2003년 사스 때보다도 더 많은 사망자다. 당연히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때도 또 한번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중국 대륙 후베이성에서 발원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2020년 연초 홍콩을 휩쓸었다. 확진자 3000명이 넘고[46]에 사망자도 꽤 많이 나왔다. 특히 이번에는 역시 친중파인 호얏셍이 행정장관임에도 이웃 마카오가 진작 중국 본토와의 관문을 닫은 것과 달리 중국 관문 폐쇄에 부정적인 친중파 캐리 람 행정장관의 뜨뜻미지근한 일처리가 불만을 초래해 의료계가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바이러스 감염 사태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까지 종결시킬 정도로 홍콩 내에서 꽤 심각하게 퍼졌으며 확진자 대부분이 1월 한 달 동안 급속히 불어났다. 이미 사스의 공포를 느낀 데다 사스보다 전파력이 더 뛰어난 코로나19를 겪은 홍콩인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한동안 대규모 집회는 꺼리게 되었으며 지난해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 때 100만이나 되는 시위대가 거리에 나온 것과 달리 현재는 좀 상징성 있는 집회도 수천 명 수준, 평소에는 수십 명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난 2019년 하반기 내내 벌인 장기간의 시위로 인한 피로감과 코로나 감염 우려, 그리고 범세계적인 경제난 등이 그 원인이다. 결정타는 홍콩 국가보안법이었다.
그리고 주방은 영미법을 따르는 나라답게 100% 공개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도 싱가포르와 똑같다. 세관도 깐깐하게 검사를 해서 무작위로 여행객을 검문하기도 하니 행여나 검문에 걸려도 따지지 말고 순순히 협조하자. 괜히 안 되는 영어로 따지면 더 의심받고 추가 조사를 위해 사무실로 끌려가는 불상사도 일어난다.
담배 피고 꽁초 버리다 걸리면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50만 원 넘는 벌금 폭탄을 뒤집어 쓴다. 거리에는 거의 50미터 간격마다 담배떨이 겸용 대형 휴지통이 있어 보통 휴지통 근처에서 피운다. 그리고 실내 흡연도 마찬가지로 금지인데 워낙 빌딩이 높아 엘리베이트로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계단 층계로 가서 숨어 피우는 경우도 많다. 실내흡연에 관대한 중국 본토, 일본, 대만과의 차이점 중 하나이다. 사스의 폭격을 된통 맞은 원인이 흡연자들의 가래침이었기 때문에 실내 흡연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유행 이후에는 바이러스 비말이 묻을 가능성이 있는 담배꽁초를 확실히 없애고자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훼손된 쓰레기통을 100% 원상복구시켜서 담배꽁초는 전부 쓰레기통에 버리게 했다.
2007년 1월 1일부로 '완전 금연도시'를 선포하고 모든 실내 사업장과 공원이나 해변 등에서의 흡연을 금지하였다. 어길 경우 벌금이 5000홍콩달러(2015년 기준 약 75만원)에 이른다. 다만 흡연이 불법인 건 아니고 흡연구역에서의 흡연은 가능하다. 길거리에는 곳곳에 재떨이를 겸한 쓰레기통이 있어 흡연자들이 모여든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이미 예전부터 실내 금연을 실시했다. 한국에서도 현재 실내 금연이 원칙이다.[47]

12.3. 수도와 전기


홍콩은 공기업이 아니라 사기업이 전기, 도시가스 사업을 한다. 그래도 영국같이 전기요금이 괴악하진 않다. 특히 홍콩 섬 쪽에 전기를 공급하는 홍콩전력 등 홍콩 최고의 재벌 청쿵실업 소유로 CEO는 그 유명한 화교재벌 리카싱이다. 세계적 이동전화 회사 3 Mobile[48], 대형 슈퍼마켓 체인 파크 앤 샵, 드럭스토어 체인 왓슨스(Watson's,屈臣氏)도 사실 청쿵실업(長江實業) 계열 회사인 허치슨왐포아(和記黃埔) 소속이다.
리카싱 회장은 자산이 '''30조원'''. 공식 '''홍콩 제일의 부자'''이다. 아시아 최고 자산가는 당연히 이웃 마카오스탠리 호아랍에미리트의 만수르 왕자이다. 물론 실제 전 세계 제일의 부자들은 석유로 떼돈 버는 중동에 있는 왕족들이지만 중화권이나 동남아시아로 한정하면 리카싱 일가가 제일 부자이다. 그래서 기부도 통 크게 한다! 홍콩이 빈부격차가 심하지만 똑같이 빈부격차가 큰 영국처럼 이러한 큰 부자들의 적극적인 기부로 그나마 완화되는 부분이 있다.
홍콩 최대 통신기업 PCCW는 리카싱 아들 몫에 홍콩의 도시 가스 독점회사인 Towngas는 헨더슨랜드디벨롭먼트(恒基地産, Handerson Land Development)라는 부동산 개발 및 투자 회사 소속이다. 핸더슨랜드디벨롭먼트는 역시 동남아시아의 중국계 재벌 중 하나로 꼽히는 리샤우키 회장이 소유한다.
참고로 홍콩 지하철을 운영하는 철도 및 부동산 회사 MTR도 원래 시작은 총독부의 공기업이었으나 2000년 주식시장 개방으로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되자 30%의 상당 지분을 썬 흥 카이 그룹[49]및 핸더슨디벨롭먼트 등이 가져갔다.[50] 그래서 최근 MTR MALL이라는 쇼핑몰도 열고 있으며 부동산 개발에도 입찰하고 반쯤은 민간기업화 하면서 런던, 베이징, 난징, 선전, 시드니, 마카오 등 대외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이렇게 써놓으면 무슨 특정 기업이 한 도시 전체를 장악한 거 같지만 대신에 공공서비스 면에선 철저해서, 요금을 굉장히 싸게 제공한다. '''기부'''를 한다는 개념으로 공공 서비스를 사기업이 정부와 '''계약'''을 체결하고 사실 상 공기업처럼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미국처럼 민영화=요금 폭탄은 절대 아니다! 홍콩은 영국 영향으로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고, 정부와 계약을 체결한 사기업들도 기부 개념으로 수도, 전기, 가스, 교통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기 규격이 한국과 달라 변환기가 필요하다. 콘센트 모양이 Type G로 영국 표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압은 똑같은 220V를 쓴다. 그래서 이웃 마카오나 같은 영국령인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는 홍콩과 같은 콘센트라 어댑터가 굳이 필요없다. 반면 일본, 대만, 필리핀, 태국미국식의 110V를 써서 홍콩에서도 어댑터가 필요하다. 노트북 PC나 맥북은 프리볼티지 제품이 대부분이라 어댑터만 있으면 변압기는 필요 없다. 마찬가지로 일본산 및 대만산, 미국산 가전제품 내수용을 홍콩에서 쓸 경우에도 어댑터 필수다. 단 주파수가 50Hz이기 때문에 같은 220V를 쓰는 한국산 전자제품 중에서도 가전제품 극소수는 이용을 못 할 수 있으니 한번 쯤 확인할 필요는 있다. 사실 220V에 60Hz를 쓰는 나라가 한국 외에는 거의 없다. 220V~240V를 쓰는 나라는 대부분 50Hz이고 60Hz를 쓰는 나라는 대부분 100V~120V를 쓴다. 물론 이 서술은 냉장고 등 덩치 큰 가전제품들 얘기로 나무위키에 흔한 원론적인 서술이고 노트북 PC나 태블릿PC 등 컴퓨터스마트폰 충전기 등은 어댑터만 있으면 프리볼티지라 상관없다. 한국 컴퓨터를 미국에서도 그냥 쓸 정도가 요즘 시대다.
중국 대륙호주, 뉴질랜드 등과도 콘센트가 다르다. 이 쪽은 Type I라는 특유의 괴랄한 콘센트를 쓰는 걸로 악명높다. 그리고 중국은 한국과 같은 플러그인 Type-C도 병용한다. 그래서 역시 중국 대륙 전용 어댑터가 필요하다. 중국 대륙호텔 같은 곳에서는 외국인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한국식 플러그 등 다양한 플러그를 이용할 수 있는 콘센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영국식 Type G는 선전, 주하이 등 인근 광둥성에서도조차 죽었다 깨어나도 없고 호환도 안 된다. 한국인들은 홍콩에서 어댑터를 쓸 경우 어댑터 빼고 그냥 한국 플러그를 곧이곧대로 써도 된다.
식수선전 에서 공급받는다. 영국령 시절부터 계속 식수중국에 의존해왔고 반환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반면 싱가포르는 물기근 국가로서 말레이시아와 식수 공급 문제로 다툼이 잦은 반면, 일국양제인 중국과 홍콩은 중국 당국이 식수 공급에 협조적이라 그런 다툼은 없다. 다른 부분에서야 갈등이 많기는 하지만 식수 문제 때문에 홍콩은 중국 본토로부터 자립이 어려워, 영국-중국간 반환 협상 과정에서 영국이 그냥 홍콩 전체를 포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 홍콩 독립운동이 현실성 없다고 비판받는 것도 중국이 식수 공급을 중단할 경우 대책이 없어서 까이는 게 크다.

13. 교육


알려진 바와 같이,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한족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이다. 물론 대학을 가지 않는 청년들도 꽤 있다.
대학 진학률이 18% 정도로 한국에 비해 많이 낮다(#). 한국이 가장 높은 통계를 기준으로 약 80%의 대학 진학률을 보이는 것과는 반대이다.[51] 어차피 홍콩에서는 고졸 학력자들도 영어가 능숙하며 어차피 별 다른 복잡한 기술을 익힐 필요가 없는 3차 산업 위주 국가라서 고등학교만 나오면 다 취업했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먹고사는 게 가능한 사회이니 대학을 굳이 안가도 상관없고, 그 전에 싱가포르처럼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의 대학 진학을 사실 상 막아 버린다. 그나마 2012년 이전의 싱가포르처럼 석차를 대중에 공개하거나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물론 현재는 대학 진학은 물론 해외유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데 주요 선진국들이 세계적으로 겪는 보편적 현상이다. 앞으로 인구가 감소하며 일자리도 따라서 줄어들고 그에 따라 단순 육체노동이나 기능직보다는 아무래도 전문직이 더 살아남기 쉽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만 해도 1990년대만 해도 대학은 돈 있고 머리 좋은 애들이 가는 데고 대부분은 고등학교만 나와 일찍 사회에 진출하거나 군입대를 택했으나 2009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은 후 미국인들의 평균 학력도 높아져서 과거보다 대학입시 경쟁률이 점차 올라가고 있다. 특히 한인들이 진출한 캘리포니아 등에선 한국식 사교육까지 수입되어(...) 기승을 부릴 정도다.
어쨌든 이러한 홍콩인들의 대학 진학에 대한 관심 덕에 해외 유학에 나서는 사람이 오히려 많아지면서 매일 관련 박람회 등이 열리고 관심이 많다. 주 목적지는 6개월 무비자체류 및 영국 시민과 동등한 저렴한 학비를 보장해주고 홍콩인들이 친척 등 연고를 대거 갖춘 영국과 역시 홍콩인들이 많이 나갔던 캐나다 등이다.
그래도 경찰관이나 소방관, 세관원 등의 경우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이인 만 19세에 입직하며, 한국군의 기초군사훈련과 비슷하게 신입직원 훈련이 있다. 경찰은 당연하고 세관원이나 이민국 신입도 권총 사격술을 배운다. 특히 홍콩에서는 세관이 마약위조지폐 단속을 맡고, 경찰과 함께 중요한 대테러 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세관원들도 권총 무장이 기본이다.[52]
대학 진학 희망자들 사이에는 경쟁이 치열하며, 대학 자체가 8개 정도뿐이고 이마저도 다들 한 가닥 하는 명문들이라 들어가기가 빡세서 80%는 영국, 미국으로의 유학을 택한다. 영국에서는 1997년 이전에 태어난 학생의 경우 영국 국적자로서 그 이후에 태어난 학생들도 영국령 출신 홍콩 시민으로서 영국/EU/EEC 국적 학생들과 같은 저렴한 학비[53]를 내고 대학에 다닌다. 이 점은 싱가포르 국적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캘리포니아뉴욕 소재 혹은 보스턴 소재 대학에서 홍콩 유학생이 꽤 보인다. 그리고 영국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은 홍콩 학생이 아주 흔한 편이다.
홍콩의 대학은 홍콩대학, 홍콩과기대학, 홍콩중문대학, 홍콩성시대학, 홍콩이공대학, 링난대학, 홍콩침회대학, 홍콩교육대학 등 8개의 종합공립대학이 있고, 여기에 한국 방통대에 해당하는 공개대학(公開大學, Open University)이 있으며, 그 외 수많은 전문학교들이 있다. 전문학교들은 미술, 사진, 음악, 체육 등 예체능이나 보건계열을 주로 다룬다. 홍콩 소방처의 신입 소방대원들은 고졸들이지만 구급대원은 이 전문대학이나 공개대학 등에서 보건계열을 공부한 사람들만 할 수 있다.
홍콩의 대학들은 일차적으로 숫자부터가 적은데다 대학 교육의 질이 상향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흔히 지잡대라 부르는 대학은 없다. 그래도 그 중에서 세계적 명문으로 평가받는 대학들이 있긴 한데, 홍콩삼대(香港三大)인 홍콩대학, 홍콩과기대학, 홍콩중문대학이 있다. 홍콩대학은 많은 사회의 지도층들을 배출했다. 당장 중국인들의 국부인 쑨원이 이 학교 출신이다. 홍콩과기대학홍콩성시대학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성장하여 명문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13.1. 초/중등 교육


영국식 학제를 적용하며, primary school(小學) 및 secondary school[54](中學)의 2가지로 나뉜다. 학년 역시 미국식의 1~12학년이 아닌 소학과 중학을 별도로 나누는 영국식의 학제이다. 당연히 한국이나 중국본토, 일본과는 아예 학제가 다르다. 한예로 한국과 달리 홍콩은 겨울 방학이 없고 크리스마스 방학만 2주 있으며 부활절 방학이 2주[55]이며 학기가 5월에 끝나고 9월에 시작한다.
특이하게도 영어 교육 시 작문교육을 중요시해 초등학교 때부터 영작문을 제대로 배운다. 중국어도 마찬가지로 작문을 중요시한다. 어차피 말로 하는 광동어표준중국어 둘 다 작문은 동일한 중문법을 쓰는 백화문이라 가르치는 데 문제가 없다. 회화 교육 역시 싱가포르처럼 원어민이 직접 해당 언어를 가르친다. 영어미국인영국인 강사들이 주류고 일부 호주뉴질랜드 출신들이 있으며 공식적으론 영국식 영어를 가르치나 구어로는 미국식 영어를 가르친다. 미국인 강사들이 많아서 그렇다. 외국을 떠돌며 가르치는 원어민 영어 강사들에게는 꿈의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지는 데가 홍콩인데, 영어가 공용어이니만큼 수요도 많고 페이도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만큼 까다롭기도 까다롭다.
수학 교육은 한국,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포르 등과 마찬가지로 꽤 어렵다. 영국본토에서 이민 온 영국인들이 자녀들을 홍콩 학교에 보냈다가 수학 점수가 뒤쳐지는 일이 많다고들 한다. 물론 그 만큼 수학 잘 하는 학생들도 많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 중에 한국에서는 안 배우는 행렬, 행렬식, 정적분의 근삿값 등도 들어 있다.[56]
홍콩의 중고등 학생들도 교복을 입는다. 디자인은 원피스 형이 많으며 예쁘다고 느껴지는 투피스 교복들은 대부분 국제학교 교복들이다.

13.2. 고등 교육


2010년대 들어 고졸 취업 증가 및 대졸자 실업난[57], 블라인드 채용 등으로 학벌의 영향이 확실히 약해지고 있는 추세인 일본이나 한국과는 달리[58] 한동안 학벌직장을 잡는 데 좋은 역할을 하고 심지어 중국 대륙보다도 빈부격차가 크고 거의 영국 수준이기 때문에[59] 대학입시 열기가 미치도록 높았다. 물론 현재는 과거에 비하면 많이 완화되었다.
동네마다 입시 학원이 꼭 하나씩은 있는 편이고, 우리나라의 메가스터디같이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 학원들이 여러군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학원 이름보다도 스타 강사를 내세우면서 광고를 많이 하는 편이다. 수많은 광고들이 버스에도 붙여져 있는걸 볼 수 있을 정도. 학생의 입장에선 일단 홍콩대, 홍콩과기대, 홍콩중문대 같은 월드클래스 대학들이 눈앞인만큼 열심히 공부할 동기가 부여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학 진학률 자체는 한국보다 훨씬 낮은 18% 정도다(#). 그러나 공부하기로 맘 먹은 애들은 진짜 독하게 하고, 홍콩의 대학은 너무나 적다. 그래서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보딩스쿨로 조기유학이 성행한다. 위에 서술한 학벌시대의 붕괴로 인해 2010년대 들어 미국캐나다, 호주영미권 국가로의 해외유학이 급감 중인 일본이나 한국과는 대조적이다.[60] 특히 대놓고 광고 때리는 영국 기숙학교에 많이들 간다.
2013년까지는 대학 입학을 위해 '''HKALE'''라는 시험을 치렀고 한국으로 치면 중고등교육과정이 7년이었다. 그러나 HKALE에 응시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F.5 (한국의 고2)때 HKCEE라는 시험[61]에 합격해야만 했고 '''HKALE''' 자체의 흉악한 난도[62]까지 합쳐져서 대입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다.
'''HKALE'''은 흔히 국가 주관 대학입시시험중 가장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시험의 난도면에서는 물론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만큼 어렵지만 이를 입시와 연관시킨다면 꼭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고 보긴 어렵다. 일단 1950년대 영국 식민지 시절 본국의 시험을 그대로 도입해 온 것이 시초. 그 뒤로 영국 본토나 싱가포르 등에서는 구조가 많이 바뀌었지만 홍콩의 경우는 아직 그때의 모습을 가장 온전하게 보전하고 있는 케이스다. 일단 수능보다도 얼핏 보면 훨씬 어려운 것 같지만 일단 HKALE은 한 과목당 6시간 동안 시험을 치룬다. 시험지가 두개로 나눠져 있어 첫번째 시험지는 오전에 치르고 두번째는 오후에 치르는 것. 당연히 시간 배분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문제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만... 그걸 따져도 일단 어려운건 맞다.
특히 사회과목의 난도는 타국 대학교 1,2학년 수준과 맞먹는다고 보면 된다. 더군다나 문과 과목의 특성상 에세이를 6시간 동안 쓰는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영어로만 정답을 쓸 수 있는데다가 문법이나 철자도 읽는데 지장을 준다고 생각되면 감점 처리 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한국과 정 반대로 문과가 시험이 어려운 케이스. 그렇다고 이과가 쉬운 것도 아니다! 일단 무엇보다 시험 범위가 기절하게 넓은 편이다. 명문고라는 학교에서도 고등학교 정규 교육시간만 사용해서는 진도마저 다 못나가는 상황까지 종종 발생한다. 학원에 의지하지 못하면 사실상 시험 치르는 자체가 불가능한 것. 주로 문과 과목이나 생물등에서 일어난다. 이로 인해 자살 같은 사회문제가 가면 갈수록 크게 대두되어 결국 2013년을 끝으로 HKALE는 폐지되었다.
2012년부터 치러지고 있는 새 시험인 '''HKDSE'''는 범위는 전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로 줄어들게 됐고 중고등교육과정 역시 6년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어렵고 만만찮은 시험이다.[63] 이과 과목 (특히 물리) 의 경우엔 아직도 정규 수업시간만으로는 진도를 다 못 나가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한국기준으로 수능보다 고난도의 시험은 맞지만 다만 등급제를 도입하여 5**,5*,5,4,3,2,1의 7등급제로 나눠져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시행했다가 전패한 전력이 있다시피 시험이 난도가 높다하더라도 등급제에 비해 점수제는 입시생들의 고난을 더욱 부추긴다. 여하튼 이전의 HKALE에 비해서 시험범위 감축이 가능한건 대학 과정이 대신 1년 늘어났기 때문이긴 하지만...
여전히 대입 경쟁이라는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범위가 줄어들어 공부할 양이 줄었다 해도 홍콩에 위치한 대학 정원 숫자는 그대로이기 때문. 홍콩에 있는 4년제 종합대학교는 '''8군데''' 뿐이고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수 때문에 평균적 정원도 당연히 한국 대학들보다 적은 편이다. 홍콩 인구의 7배 가까이 되는 한국의 경우는 종합대학교가 300개 가량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자.[64] 8개의 종합대학교의 수준은 다른 나라의 명문대 수준인데 왠만한 한국의 인서울 중위권이상 대학들만 모여있다고 보면 된다.해마다 홍콩 대학들의 신입생 모집인원수는 다르고 재수생도 꽤 많지만 보통 15-20%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8개 대학에서 제일 막차로 들어간다고 가정할 시에는 상위 15%-20%정도의 성적이면 입학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8개 대학의 입학 난이도는 사실은 한국의 소위 인서울 대학교 진학보다는 더 쉽다고 할 수 있다. 홍콩도 한국처럼 상위 3개 대학을 명문대로 간주하는데[65] 이 역시도 당연히 산술적으로 홍콩 상위 3개대학 진학이 더 용이하기 때문에 홍콩 대입이 한국 대입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기에는 힘든 측면이 있다.
이러한 특이한 점 때문에 해외로 유학을 하는 학생이 많은데 홍콩 고등학생 중 매 3명의 학생이 홍콩내 대학 진학을 할 때마다 2명의 학생이 해외 대학교 진학을 하는 엽기적인 곳이다. 어느 해에는 영국캐나다, 호주영연방 대학 진학을 한 홍콩 고등학생의 숫자가 홍콩내 대학 진학생 수보다 많은 적도 있었다. 따라서 홍콩에서 유학파는 웬만한 명문대가 아니면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미국에도 많이 가는데 캘리포니아뉴욕 등에서 홍콩에서 온 유학생을 볼 수 있다. 기존 화교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홍콩인 이민자들과 비슷하게, 본토 출신 유학생들과는 예상과 달리 그럭저럭 잘 어울리는 편이다. 다만 마카오인, 대만인처럼 국적에 관해서는 대륙과 자신을 철저히 구별한다. 대부분의 본토인 학생들은 홍콩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딱히 갈등을 일으키지 않지만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중국 유학생이라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인 학생회에 가입하지 않고 홍콩 출신끼리 별도의 학생회를 만들어 홍콩 학생들끼리 모이는 경향이 강하다.
사안에 따라 중국인 학생회와는 협력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한다. 홍콩 독립운동을 대놓고 외치지 않는 이상 본토 학생이 먼저 시비거는 일은 없고 그냥 중국과 홍콩이 올림픽 등에서 별도 팀으로 출전하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편.
아시아 최고 명문대학들인 홍콩대학, 홍콩과기대학, 홍콩중문대학 이 있으며 홍콩이 아시아 최대의 금융 허브라는 점 때문에 홍콩으로 유학 오는 외국인 유학생도 많다.
홍콩 대학 교육 자체가 수준이 아주 높다. 그래서 당연히 취업학원화되고 연구 실적도 없는 수준낮은 고등교육기관은 없다. 정 취업학원화 된 대학을 찾으려면 여기서는 전문학교나 한국 방통대와 비슷한 개방대학을 가는 게 낫다. 당연히 가짜대학도 없다.[66]

14. 군대와 치안


홍콩/군사 및 아래 치안 문단 참조.

14.1. 군대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물론 홍콩 주둔 영국군과 영국군에 의해 창설&훈련된 현지 홍콩인 부대가 홍콩의 수비를 맡고 있었다. 주항 영국군은 홍콩 섬에는 해군 및 해병대, 구룡반도신계 등 육지 부분에는 육군이 주둔했다. 그리고 홍콩 현지인 수비대는 1941년 태평양 전쟁일본군과 싸운 적도 있었다.
홍콩 반환 이후에는 철수한 영국군 대신 중국 인민해방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 참고. 군부대는 거의 영국군 시설을 이어받아 사용 중이다.
'''홍콩마카오 주민들은 병역 의무가 아예 없다.'''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귀속되는 대가로 홍콩 청년층이 받는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모병제 국가이지만, 전쟁 발발 등 유사시에 징병제를 운영하는데 그 대상은 중국 대륙 내의 후커우((户口, 호적) 소지자로 한정한다.
홍콩 기본법과 홍콩 주둔군 관련법에 따라 중국 인민해방군은 임의 출병 및 홍콩 내부 문제에 대한 개입은 절대 불가능하며 홍콩의 내무부 격인 보안부[67]에서 건의하고 홍콩 행정장관의 요청한 후 이에 대해 전인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중국군이 홍콩 내정에 개입하면 '일국양제'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짐을 뜻하기 때문에 개입을 극도로 자제한다. 심지어 홍콩 국가보안법에서도 중국군 출병 대신에 홍콩 경찰에 대해 자문 형식으로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가 행사해온 지휘권을 명문화하고 자문기구를 통해 감독 및 지도를 강화한 정도였다.
항간에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 진압을 위해 당시 중국군 투입 루머가 있었을 때도 중국 공산당은 이 법을 근거로 스스로 자처한 기자 회견에서 강하게 부인했다. 물론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를 둘러싸고 가장 정정불안이 심했던 2019년 11월에는 구룡반도의 까우룽통 지역 군부대가 임의로 도로 청소를 명목으로, 비무장 상태로 거리로 튀어나와 친중파를 뽑지 않으면 중국군을 투입한다는 위협 제스처를 보인 적 있었으나 여론의 반발만 샀고 결국 홍콩 정부는 이들이 비무장이었으며 홍콩 경찰이 호위한 주둔지 지역 군사 도로 청소 활동임을 강조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구의회 선거에서 중국 군부의 독자행동이 역풍을 맞아 친중파는 참패했으며 시진핑은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장을 망신당한 분풀이로 현재 실장인 한정으로 교체해 버렸다.[68]
즉 중국군을 외국인이 볼 일은 어쩌다 지나가는 수송용 트럭 등을 마주치거나 하지 않으면 볼 일이 없다. 주일미군일본 열도 내에서 외국인이 볼 일 없는 것과 비슷하다. 주일미군 역시 대부분 일본본토가 아닌 오키나와현에 있으며 도쿄에서는 요코타 비행장과 요코스카 제7함대가 유일한 미군 시설이고 해공군이라 육지에서 볼 일이 없다.


14.2. 치안


원래는 '''민생치안이 우수한 곳'''이다.
2019년에는 격렬한 시위 때문에 일시적으로 경찰력 분산으로 치안부재 상태가 된 적이 있다. 과잉진압으로 인한 혼란 때문이 아닌 진짜로 경찰력이 없어서 도둑, 강도 등 잡범이 설쳤다. 그러나 일시적 치안부재 원인이 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2020년 2월로 접어들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악영향을 받아 동력이 꺼져버리며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결정타를 맞아 이대로 끝나버렸다.[69] 코로나19 위기로 시위가 동력을 잃어가기 시작한 2020년 3월 1일 이후 경찰이 '''시위진압 종료'''를 선언하면서 시위진압이 주 임무인 경찰기동대 PTU만 시위진압을 맡고 나머지 순찰대, 형사대 등은 전원 원래 수행하던 민생치안 관련 업무에 원대복귀시켜 치안부재 현상도 사라졌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통과로 시위 자체가 뿌리 뽑힌 지 오래가 되어 '''치안이 개선되어 예전처럼 민생치안이 우수한 곳이 되었다'''.
민생치안이 우수한 덕에 침사추이 소재 청킹맨션이나 미라도 맨션, 조던역 부근 지역 등 일부 구룡반도 내 낙후 위험지역을 제외하면 경찰의 영향력이 막강하여 여행자조차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다. 물론 이 구룡반도는 상대적 낙후지역이라 침사추이의 청킹맨션, 몽콕(旺角, Mong Kok)이나 야우마테이(油麻地, Yau Ma Tei)-조던(佐敦, Jordan)) 지역[70] 등 일부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이 있지만, 이런 지역조차 혼자 다녀도 나쁜 일 당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면 된다. 또 이런 지역에는 경찰이 정말 많다. 최근 시위방지를 위해 시내 곳곳에 경찰들이 증강되어 되려 역설적으로 민생치안은 더욱 좋아졌다.
삼합회의 전성기이던 1960년대~1980년대에는 범죄가 진짜로 상당히 많아서 1985년~1996년까지 홍콩 RTHK 방송국이 홍콩 경찰과 합작, 공개수배 사건25시의 원조격에 해당되는 繩之於法이란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방송 영상.
그러나 염정공서의 출범. 영중공동선언[71] 체결, 부패방지 3륜법, 대테러부대인 SDU 소대 창설 등으로 1980년부터 삼합회가 물을 먹고 더 나아가 1979년을 기점으로 홍콩이 완전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자 먹고 살만 해져 민생범죄도 줄기 시작했고, 1998년부터는 중국 정부가 광동 성 선전에 육전대를 포함해 인민해방군 해군을 대거 주둔시키며 범죄자들을 중국본토의 공안력과 해군육전대 등으로 쓸어 버리겠다고 하자 잡범과 삼합회 둘 다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물론 홍콩 특별행정구 경무처도 반환 직후 대대적 범죄소탕에 나선다.
그리고 우범지역인 구룡성채 역시 없어지고 상당 수의 난개발지역이 사라지고 나머지도 재개발되어 우범지대 자체가 현재는 사라졌다. 과거에는 우범지대가 꽤 많았는데 대개 구룡성채를 낀 구룡성구 쪽이 으슥했다.
홍콩에서는 경찰에서 직접 TV를 통해서 범죄에 대한 모방 영상을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서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직접 보여주면서 범죄 예방을 위해 제작한[72] 프로그램인 경신(警訊)이 있다. 방송 전에 모방영상(模擬片段)이라는 문구 달랑 보여주는 게 전부다. 그럼에도 범죄율이 낮다는 것 자체가 충공깽.
홍콩의 치안유지는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와는 별도의 조직인 홍콩 경찰(Hong Kong Police, 香港警察)이 담당하고 있다. 홍콩 경찰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큼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후술된 내용과 홍콩 경무처 참조. 관광객이 길 찾을 때 경찰에게 물어봐주면 능숙한 영어와 함께 잘 도와준다.[73] 아니, 이 동네의 웬만한 제복 입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은 죄다 잘 도와준다. 최소 불친절한 미국 경찰이나 강압적인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소속 본토 공안들보단 훨씬 낫다. 물론 다들 지리는 잘 모르는지(...) 무전기로 물어보곤 한다. 그래도 영어표준중국어 까지는 구사 가능하고[74], 광동어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모국어이므로 이 중 한 가지 언어를 알면 도움 받는것 자체는 쉽다. 소리라도 지르면 순찰 중이던 경찰들이 죄다 달려 온다.
홍콩 경찰을 총괄하는 기관은 경무처다. 이 경무처 형사보안국(CID)의 예하에는 삼합회 등을 수사하는 중안조가 있는 조직범죄및삼합회수사부(OCTB) 및 마약사건을 다루는 마약조사부 등이 있어 미국의 FBI, DEA를 방불케 한다. 홍콩 경찰은 영미법계로 영국식 경찰제도를 택해서 수사권은 경찰이 전담하며 부정사건만 염정공서가 담당한다. 율정사 소속 검사는 공소유지 및 기소만 할 뿐이다.
SWAT 같은 개념의 경찰특공대도 있는데 이름은 영어로 Special Duties Unit.[75] 줄여서 SDU로 불러도 되지만 영문 이름보다는 '비호대(飛虎隊)'로 자주 불리운다.[76] 설립 자체는 1962년에 이뤄졌지만 진짜 경찰특공대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다. 조단역 근처 대로변에서 적대하는 갱들이 AK소총으로 총격전을 벌였고 여기 휘말린 민간인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터지자 영국 SAS에서 교관까지 초빙해서 단기간에 특공대다운 부대를 만들었다.
SDU 전성기 때인 1970년대1980년대에는 지금의 러시아 알파팀 못지않은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벌였는데, 그래도 알파팀보다는 인권존중 개념이 있어서 인질이 있을 경우에는 웬만하면 강경진압은 안 한다. 그리고 홍콩 반환 후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홍콩의 시스템에 미국식을 많이 접목시키며 2009년에는 SDU가 투입되기 초동초치를 담당하는 신설 대테러부대인 CTRU가 창설되었다.여담으로 비호대는 아직까지 여성대원이 없다. 진짜다.잉(레인보우 식스 시즈)은 어디까지 창작 캐릭터일 뿐이다. 경찰기동대인 PTU는 여성대원이 꽤 많은데 의외다.[77]2000년대 후반에 이들의 얼굴이 홍콩 언론에 한번 공개가 되어서 홍콩 경찰이 난리가 났었던 적도 있다.
홍콩 경찰은 대체로 부패도 없고 친절하며 공정한 경찰에 대해 홍콩 내 외국인이나 친중 진영 등에서는 신뢰도가 아주 높은 편이지만 한국의 견찰이라는 말처럼 공권력[78]의 개라며 나쁘게 보고 비하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4년2019년 홍콩 정부의 명령으로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강경진압하면서 반감을 많이 사게 되었다. 심지어 중국 대륙과 홍콩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카드 뉴스에서도 '''경찰에 대해서는 비슷한 거 같습니다'''고 할 정도다. 특히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무력진압하고 여기에 경찰들이 삼합회와 중국 무경대원들로 보이는 흰 옷 입은 괴한들이 시민들을 시위 참가자고 행인이고 관계없이 무자비하게 폭행한 백색테러 사건에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경찰에 대한 인식이 확인사살 급으로 나빠졌다.
참고로 홍콩 시민이라고 다 영어를 잘하지 않아서 곤란할 때는 경찰에게 물어보자. 웬만한 영어는 다 통한다. 특히 홍콩 섬이 아닌 구룡반도신계의 경우는 영어를 못 하는 사람도 많은데 대륙 이주민도 많지만 교육을 못 받은 사람이 도처에 깔려 있다.
경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홍콩 경찰 항목 참조.
소방업무인 화재 진압, 긴급구조 및 구급차 업무는 홍콩 소방처가 맡는다. 신고전화는 999번으로 경찰과 같은 번호다. 문서 참조.

14.2.1.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관련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및 이에 따른 홍콩 경찰의 시위진압 투입으로 일시적 치안부재 상태가 되었으나 2020년에 들어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홍콩 국가보안법, 홍콩 국가법의 3연타로 홍콩 시위는 사실상 실패로 끝나버렸고 중국 정부는 중국군 투입 없이 시위를 진압해버려 최종 승자가 되었다.
이제는 대한민국 총영사관도 시위 대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과 새로 도입된 홍콩 국가보안법 관련 안전 및 유의공지를 하는 판이다. 홍콩 국가보안법에선 '''외국인의 홍콩 내 정치 참여를 금지한다'''. 즉 시위에 참가하거나 홍콩 독립운동 그룹에 가담할 경우 외국 국적 비거주자도 처벌 대상이 되며[79] 홍콩 밖의 외국인은 입국 거부 조치되고 중국본토 방문 비자도 거부대상이 되어 사실상 외국이 홍콩 시위대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사라졌다.[80] 그러기에 이와 관련된 유의사항을 공지하는 것이며, 코로나 19 방역조치는 현재진행형으로 단계적으론 완화 추세이지만 아직까지는 제약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시위 원인이 된 범죄인 인도법은 2019년 9월 초 철회되었으나 이번엔 홍콩 경찰의 무력진압과 긴급법 적용 시도 등으로 10-11월 한달 동안 클라이막스를 찍으며 시위가 제일 격렬해졌다. 그리고 2019년 11월 24일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본토파라는 범민주파가 초압승했다. 이로써 시위대에 힘이 실렸고 되려 이 덕분에 절박함이 사라지자 폭력시위가 서서히 사라지며 12월 11일 민간인권전선 주최 대규모 평화시위에서 또 한번 세계적인 감동을 주었다. 애초 폭력시위 자체가 절박함에서 온 것인지라 정치적으로 우군이 대거 형성되지 굳이 민주파 정치인들이 반대하는 폭력시위를 하여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이유 따위는 없었다. 홍콩 독립운동을 추구하는 쪽만 과격시위를 벌이며 민주파 주류와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이때도 홍콩 경찰은 강경 진압을 택해 또한번 욕을 먹었다.
한편 이 시위는 미국 의회에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이 최종 발효되면서 미국중국 간 충돌로 격화했다. 기사
처음에는 선거 결과에 따라 홍콩 경찰이 시위 진압을 자제했으나, 2019년 12월 들어서 홍콩 경찰이 다시 '''강경 진압'''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2019년 12월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자 점차 시위는 사그라져 갔으며 2020년 들어서는 이미 이슈는 시위에서 바이러스와 이란-미국 간 무력충돌 사태, 호주 산불 등으로 바뀌어 있었고 1월 말로 가면서 바이러스 공포가 휩쓸게 되었다.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를 앞두고 이것이 미중 간 알력다툼으로 진화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내(트럼프)가 중국에 연락하지 않았으면 홍콩은 14분 만에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하며 중국을 자극한 바 있다. 이 때 11월 28일 발효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 여파에 따라 중국 국방장관이 "홍콩에 인민해방군 투입 준비가 완료됐다고 선포하면서 군사 개입 가능성이 높은 상태라는 관측도 있었다. 이미 2019년 11월 18일 홍콩 기본법을 무시하고[81]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가 홍콩 거리로 나와서 군사 개입을 시도한 바 있었다. 기사. 이러한 움직임에 심지어 중국군 투입 임박이라는 설까지 한때 나돌았으나 홍콩 정부는 중국군 병영 앞에서 이루어진 자발적 활동으로 홍콩 경찰이 호위까지 했고 비무장이었음을 강조하며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니까 미중 갈등이 심한 마당에서 중국군이 위협 제스처를 하여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 중국이 개입하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중국군 병영 앞이라는 핑계로 중국 군인들을 직접 비무장이나마 언론에 일부러 노출시켜 친중파를 뽑지 않으면 무력 개입하겠단 위협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그 이후 치뤄진 구의회 선거는 중국의 위협도 안 통하고 친중파가 대거 썰려나갔고 민주파가 초 압승해 역풍을 맞았으며 이후 중국은 다시는 중국군 개입을 언급조차 못 하게 되었다. 결국 시진핑은 잘못된 정보보고로 역풍을 맞게 한 홍콩마카오판공실장을 교체했다. 결론적으로 중국 공산당은 얻은 거 없이 손해만 잔뜩 본 셈이다.
그리고 막상 시위가 가장 격화된 홍콩이공대학 공방전에선 코 앞에 중국 육군부대와 군 병원이 있음에도 중국군은 코빼기도 안 보였고 되려 홍콩 경찰이 SDU 경찰특공대를 풀어 고립 포위시켜 중국군 없이 자체적으로 시위를 진압해 버렸다.
결국 중국군 개입은 구의회 선거를 앞둔 위협 제스처에 불과했음이 입증되었다. 물론 중국은 군대까지 풀고도 전혀 이익을 못 보고 민주파/본토파가 압승하는 바람에 되려 역풍을 단단히 맞았으며 이 사건 이후 다시는 홍콩에 대한 군사개입을 언급조차 못하게 되었다.[82]
이후 2020년으로 접어들자 중국본토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폭격을 맞으며 제 코가 석자가 된 중국 공산당은 결국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새해 연설을 통해 '''일국양제 지속'''을 다시금 강조해야 했다.
2019년 11월 당시 주 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과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홍콩의 민주화 조치가 전면 수용되어 중국의 홍콩 개입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홍콩 전역에 내려진 여행경보를 내리지 않을 것임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구의회 선거를 둘러싼 정정불안이 심각했다는 얘기다.
결국 2020년 1월 구의회 선거가 외부의 우려와 달리 성공적으로 끝나고 중국이 홍콩에 개입할 명분을 잃어버려 예견한 대로 정정불안이 해소되었다고 판단해 여행경보를 한 단계 내렸다.
그러나 그 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오염지역으로 중국 영토 전역이 지정되어 특별검역지역에 들어가면서 다시금 2단계 여행경보가 일시 발령되었다. 이번에는 순전히 바이러스 유입 방지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바이러스 감염사태가 진정되어도 2003년 사스를 겪은 홍콩인들이 이미 대규모 집회를 기피하는데다[83] 중국 공산당이 까딱하다 넘어지게 생겨서 어쨌든 다시금 지난해 같은 정정불안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주 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발행한 유의사항이다. 현재는 시위가 사라졌으나 간헐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격리수용지 반대시위가 벌어지는 신계 지역에서는 아래 유의사항을 꼭 참고하자.

2. 홍콩에 체류하시거나 방문하시는 우리 국민들께서는 아래 시위계획을 참고하셔서 시위 장소 방문을 피하시고, 부득이하게 시위장소 인근을 방문하셔야 할 경우 아래 사항을 참고하여 신변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복장) 검은 옷에 마스크를 착용하는 경우 검문검색을 받거나 시위대로 오인되어 경찰에 체포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복면금지법에 따라 경찰이 마스크를 벗으라고 요구하는 경우 반드시 이에 따라야 하며, 불응할 경우 체포되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사진촬영) 시위 장면을 촬영하는 경우 시위대로부터 사복경찰로 오인받을 수 있으므로 절대 휴대전화 등으로 시위대를 촬영하지 마십시오. 외국 관광객이나 홍콩인이 시위대를 촬영하다 폭행을 당한 사례가 있습니다.

 

○ (언행) 시위대가 있는 곳에서 시위를 비난하거나 시위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표시하지 마십시오. 한국어를 이해하는 홍콩사람들이 의외로 많으며 이로 인해 시위대와 충돌이 발생하여 예기치 않은 피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 (교통) 시위로 인해 지하철(MTR) 운행이 중단되거나 시위장소 인근 도로가 차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적지로 향하기 전에 교통소통 상황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공항) 항공 결항이나 지연 운항이 발생할 수 있으며, 공항으로 향하는 공항철도 운행이 전면 또는 조기에 중단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충분한 여유를 두고 공항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 (영업중단) 시위가 발생할 경우 시위장소 인근 주요 관광지나 상점이 문을 닫는 경우가 빈번하여 불편을 겪을 수 있습니다.

- 대한민국 외교부 주 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 출처

위 주의사항 중 홍콩 국제공항의 경우 점거금지명령으로 출입 금지조치가 내려져서 더이상 점거될 염려는 없다. 공항으로 통하는 대중교통도 기습시위에 대비해 홍콩 경찰이 엄격히 경계하고 있으며 공항청사에서 거동수상자는 100% 체포된다.
그리고 위 주의사항에서 복면금지법도 홍콩 종심법원에서 위헌크리를 맞은데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이제는 격리수용지 반대 시위나 윈롱역 백색테러인 소위 7.21 사건 기념집회 등만 산발적으로 열리는 신계만 좀 조심하면 될 수준이다. 되려 2020년 3월 말에는 홍콩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감염 방지조치로 4인 이상 집결을 14일 간 금지해 집회 자체가 불가능해졌으며 이후에도 2003년 SARS를 겪은 홍콩인들이 집결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시위가 심했던 시기로 뽑히는 중국 국경절인 2019년 10월 1일은 전쟁터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 날 경찰이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해 10대 학생이 중태에 빠졌다. 이후 복면금지법 발효로 대규모의 저항이 있어서 홍콩 지하철은 역과 전동차가 파손되는 등 피해를 겪고 10월 첫주 주말에 내내 불통이었다가 간신히 복구되었으며 이 시위는 결국 10월 첫째 주말 홍콩 경찰이 진압해 모든 걸 정상화시켰다.
이후 시위는 소강상태로 숨고르기에 들어갔는데 긴급법 추가적용을 의식해서였다.
그리고 11월 9일, 정관오 지역에서 시위에 참가한 홍콩과기대학 학생 차우즈록 군이 최루탄 공격을 피하려다 그만 3m 아래로 추락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고, 다시금 시위가 불붙어, 11월 11일부터 15일까지 여명행동 4.0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규모로 출근길 교통방해 시위가 벌어졌다.
이때 11월 11-13일 3일 간 다시금 홍콩 지하철이 일시적으로 운행에 차질을 빚었으나, 14일부터는 홍콩 경찰이 전략을 짜면서 지하철 마비시도를 모두 무력화하고 막힌 도로도 모두 뚫었으며 11월 16일 토요일에 과격 시위대인 일명 용무파들을 홍콩이공대학에 토끼몰이해 감금해 버렸다.
이때 대학 캠퍼스가 새로운 충돌지점이 되어서 대학 학기가 조기종강하고, 캠퍼스 폐쇄로 유학생들은 전원 학교에서 쫓겨나 귀국하거나 귀국하지 못했을 경우 홍콩 내 친구집 등에서 임시로 머물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
똑같은 캠퍼스 점거시위 무대였던 홍콩중문대학은 1주일만에 시위대가 자진 철수했으나 이공대학은 화염병과 투석, 심지어 ''''''까지 쏘며 극렬 저항했고, 결국 홍콩 경찰의 새 경무처장 크리스 탕은 강철주먹이라는 별명답게 테러진압 특공대인 SDU 저격수들을 근처 고층건물에 배치, 투석기, 활, 화염병 소지자 전원을 테러리스트로 분류해 발견 즉시 사살을 지시했으며 SDU는 섬광탄을 터뜨리며 지금까지 시위대가 마주쳐 온 PTU 기동대와는 격이 다름을 선보였다.[84] 고립 및 포위작전으로 전기, 수도공급과 물자공급 등이 차단되고, 캠퍼스 밖으로 나가는 통로도 모두 막혀버리며 졸지에 감금되어 버린 시위대는 유서까지 쓰며 극렬히 버텼으나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열악한 위생환경[85], 그리고 며칠 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경찰 침입 우려로 잠도 못 잔 학생들은 하나둘씩 탈진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대부분 자진 투항하였고 일부는 하수구 등으로 빠져나갈려다 걸려서 전원 체포됐다.
이 와중에 12명 정도는 믿기지 않는 탈출에 성공했다.
어쨌든 이공대학 시위는 11월 22일 사실상 이공대학이 뚫리고 시위대 대다수가 자진 투항하여 진압됐고, 과격시위를 이끌어 온 용무파들도 이정도의 강경대응은 예측 못했는지 당혹스러워 했으며 결국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고 이후 거짓말처럼 홍콩 거리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이 사라져 버렸다. 경찰은 이공대학 학생들을 구하러 거리 점거시위에 나선 몽콕과 야우마테이, 침사추이 일대 거리 시위까지 모두 진압했고 거리 시위대 역시 PTU가 실탄을 장전한 자동소총을 들고 나타나고, 섬광탄과 함께 정예 특공부대 SDU가 등장하자 겁 먹고 다신 행동에 못 나서게 되었다.
이후 11월 24일 구의회 선거가 외부 우려와 달리 중국군 개입 없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민주파의 대승으로 시위에 참가하던 시민들이 승리감을 느끼게 되면서 울분과 절박함이 사라졌고, 여기에 경찰의 강공으로 용무파라 불리는 과격 시위대 그룹은 완전히 무력화되면서 폭력 역시 급속도로 퇴출됐다.
그리고 바이러스 공포가 이슈가 된 2020년이 되자 거리에 시위는커녕 사람 자체가 사라졌다.[86]
이제 더 이상 대중교통 마비 시위도 없어졌고 홍콩이공대학에 남은 학생 30명에 대해서는 선거에서 이긴 야권 정치인들이 경찰에 불체포를 요청할 테니 빨리 나오라고 설득했으며 결국 다 나왔다.
2019년 하반기 시위와 관련한 현지 상황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일자별 경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바이러스 패닉이 휩쓴 2020년 1월이 되자 시위는 어느덧 서서히 사라졌으며 현재는 신계구룡반도 외곽의 검역소 및 격리수용소 예정지에서 주민들의 반대시위가 벌어졌다가 역시 사그라들었다.
2020년 3월 홍콩 정부가 14일 간 4인 이상 집결금지 조치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감염방지를 이유로 명령했으며 이제는 시위는 켜녕 거리에 사람 자체가 사라졌다.
관광객은 시위 여파로 줄어서 시위 기간, 특히 7-8월 매일마다 지난 10월 1일 국경절 수준 충돌이 일어나던 동안, 시위가 없는 구역 기준으로 돌아다니는 관광객도 여전히 있었지만 관광객 전체 수는 크게 감소했다. 특히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감소한 여파가 컸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홍콩경제 살리기 프로젝트로 다시 대륙인 유커들이 정책적으로 대거 들어오며 관광수지는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위가 조용해지자 곧바로 터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폭격으로 중국 국경이 봉쇄되고 유커들의 단체관광도 막히면서 홍콩의 관광업계는 빈사상태에 이르게 됐고 정부가 긴급 지원에 나선다.
현재 홍콩 국가법,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났으며 어찌 보면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보다 더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이젠 지난 2014년 시위를 조직한 데모시스토, 2019년 1년 간 광복홍콩이라는 이름으로 기나긴 시위를 조직한 홍콩 독립운동 세력들까지 모두 활동중단 및 자진해산, 영국이나 대만 등지로의 망명을 선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홍콩 독립운동은 사실상 궤멸 수순을 걷고 있다. 시위 상징구호[87]들 역시 죄다 금지먹고 홍콩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14.2.2.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치안붕괴와 사회분열


지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한때 홍콩 사회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폭격을 맞은 다음 해인 2020년에 결국 코로나19의 판데믹과 국가보안법 통과로 시위 자체가 동력이 꺼저버렸다. 이제는 여기서 언제 그렇게 혼란이 벌어졌나 싶을 정도로 모든 흔적이 싹 사라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휩쓸고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시위 자체가 사실상 어려워져 동력 자체가 꺼져버린 2020년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영국이고 중국이고 좋으니 제발 먹고 살자'''며 피로감을 호소하여 잠잠해진 추세이고 돈 좀 있는 사람들인 기업가 등이나 스와이어, HSBC[88] 같은 홍콩 내 주요 다국적 기업은 되려 국가보안법을 지지하는 판이다.[89]
지난해에는 한때 시위로 인해 커플이 되는 규칙조차 바뀌었다. 2019년 12월 14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로 나온 기사에 따르면 기존에는 외모, 성격, 이 커플의 기준이었다면, 2019년에는 시위로 인해 '''친중파민주파본토파냐''', 즉 '''정치 성향'''이 최우선 기준으로 바뀌었다. 기사 다만 지금은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경찰에 쫓기던 최전선 시위 참가자 대부분이 영국, 대만 등지로 망명을 택하고 홍콩을 이미 떠난 지 오래라 그 현상이 사라지는 중이다.[91]
그리고 지난 2019년 후반기에는 시위의 장기화로 인해 가정과 지역 공동체 내에서도 민주파와 친중파가 갈려서 심지어 부모와 자식, 이웃 사이에도 칼부림이 일어나는 등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범세계적 재난을 겪으며 시위가 사그라들어 갈등은 잠잠해졌다.
또한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 이후로 본토파 즉 독립파가 세를 얻었다는 게 입증[92]되자 2019년 12월 들어서 '''민주파본토파(독립파)의 분열도 촉진되었다'''. 애초 민주파는 홍콩 독립운동에 반대하며 폭력시위도 반대한다. 폭력시위가 홍콩 정부에게 진압 명분을 주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토파는 강경파인지라 스스로 용무파라 부르며 폭력시위를 선호해 왔고 이에 염증을 느낀 온건 민주파 지지자들이 시위 전선에서 하나둘씩 이탈하면서 결국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2019년 말 절반의 성공, 사실상 실패로 끝난 원인이 되었다. 특히 홍콩 국제공항 점거시도와 11월 여명행동 4.0 등의 과격 투쟁이 염증과 현실적 불편함을 초래하였던데가 결과적으로 코로나19+국가보안법 통과와 코로나 판데믹에 따른 세계적인 각자도생 분위기[93]로 가면서 결국 2019년 시위는 그 어떤 시위보다 더 참담하게 실패한 건 물론 홍콩에서 시위 이미지 자체가 인위적으로 삭제되었다.
이러한 민주파의 분열과 홍콩 경찰의 강경진압,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폭격에 현실적인 어려움들로 인한 지지층 이탈까지 더해져[94]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도 동력을 잃고 결국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비참한 결말을 맞으며 실패로 끝났다. 그나마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하고, 일국양제의 미래에 대해 여러 차례 중국 정부나 캐리 람 행정장관이 이상없음을 확인해주는 등의 순기능은 있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란 세계적 재난을 맞이하며 이제는 지난 2019년의 사회분열 아픔에서 서서히 벗어나 일단 초당파적으로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협력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국가보안법 통과 후 시위 상징구호 등이 빛의 속도로 삭제되어 인위적으로 시위 이미지를 지워버렸다. 이제는 인터넷상으로도 언제든 경찰이 감시할 수 있어 다들 몸 사리는 판이다.
한편 시위가 격화됐을 당시엔 전례없는 치안공백이 벌어져 홍콩 경찰은 민생치안을 버렸다며 거센 질타를 받았다. 2019년 12월 2일에는 홍콩 경찰이 대부분 인원을 시위 진압에 투입해 시위 진압하러 나가 있는 상황에서 구룡반도에 있는 보석상에 강도가 들었는데 경찰은 신고를 받고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 보석상은 같은 날 오후에 한 번 더 털렸다. 더구나 12월 6일에는 홍콩 섬 내의 아파트 3곳에 도둑이 들었다. 역시나 경찰은 신고를 받고도 오지 않아서 피해를 키웠다. 기사. 그 뒤 2019년 12월 14일에도 홍콩 경찰이 시위 진압하러 나간 사이 몽콕 일대의 시계점에 강도가 들었다. 이렇게 2019년 한 해 내내 홍콩 경찰이 시위 진압에만 신경쓰고 홍콩 내부 치안 단속을 안 한다며 한인 사업가들 등이 불만을 표시했고 절도강도 등 잡범들이나 창궐하는 등 일시적으로 치안이 급격히 불안했다. 비즈니스 관광객이 홍콩 관광객의 대부분인 이상 시위 장기화에 따른 치안 붕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였다. 위의 사례들은 그만큼 경찰이 시위진압에만 정신 팔려있었단 소리다. 실제로 홍콩 경찰2020년 3월 이후 시위진압에 투입한 순찰대와 형사들을 전원 원대복귀시키고 PTU도 야간 순찰활동 등을 재개하자 치안이 급속도로 원상복구되었다. 그리고 순찰대와 형사대를 원대복귀시킨 자리에는 보조경찰로 전환한 징교서 기동대[95], 이민국 특수기동대, 세관 특수기동대 등 사실상 잉여병력화된 각종 특수부대를 대신 투입해 주요시설 경비에 투입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시위 피로감[96]에 코로나 사태로 인한 집결금지까지 더해져 시위가 사그라들어 2020년 3월 1일 이후 홍콩 경찰의 시위진압용 투입 경찰관 전원이 민생치안 관련 업무로 원대복귀하였다. 경찰 범죄 해결률 37%, 19년래 최저 수준, 3월부터 시위 진압 경찰관 본업으로 재배치 예정
홍콩의 입법권은 홍콩 정부와 시민들만 가지고 있으며 대규모 시위로 인해 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하게 했고 '송환법'은 완전 철회했지만, 중국이 홍콩기본법의 해석권을 가지고 있다는 꼼수로 2020년 7월 1일 홍콩 국가보안법을 발효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그 다음 해 그 어떤 소요보다 더 비참한 결말을 맞았으며 이제는 지난 2019년 수준의 대규모 시위는 더이상 불가능해져서 이러한 사회분열이나 치안붕괴도 역사 속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외국인의 시위 참여도 금지되었고 시위 지지를 선언하거나 홍콩 독립운동에 가담하는 외국인은 홍콩에 못 들어오는 건 물론 체포되거나 중국 비자도 블랙리스트로 거부대상이 된다. 그래서 현재 시위 지지관련 SNS 포스팅들을 지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며 기업들은 이미 시위에 가담한 직원은 외국인이라도 전원 해고 조치했다.[97]
홍콩의 시위 이미지는 이미 2월 코로나19 판데믹을 기점으로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국가보안법은 여기에 결정타를 안겨서 그나마 남아 있던 레논 월 등도 싸그리 사라지게 했을 뿐이다. 이미 2월 초로 넘어가며 이슈 자체가 코로나19와 우한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국가보안법 통과 후 잠시 국가보안법 발효 전 마지막으로 시위 동력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몇 번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고 되려 7월에 홍콩의 코로나19 2차 유행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어 버렸다.[98]
중국 정부가 국가보안법에 관한 내용을 홍콩의 교육 과정에 넣는다. 이는 6세 유아부터 국가전복과 테러, 분리독립, 외국 세력과의 결탁이 무엇이며 왜 죄가 되는지를 배우게 된다는 내용이다.# #
또한, 통식(리버럴 아츠)이라는 비판적 사고와 토론 과목을 대체할 과목이 상술한 국가 보안법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과목명은 아직 의논 중이라고 한다. 기사
그리고 중국계 홍콩인들이 복수국적을 소유하는 것은 허용해도 홍콩 내에서 외국 국적을 이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한국의 외국 국적 불이행 서약의 내용과 비슷하게 복수국적은 허용해도 본국에서는 본국 국적만 인정하고 외국 국적은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기사
원래 홍콩 땅에서는 홍콩기본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살인을 제외한 나머지 죄목에 대해서는 보석 석방이 가능했는데,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된 지미라이의 보석 석방이 거부되었으며 이에 대해 더 자세히 판단할 판사들이 모두 비외국계 홍콩인이라고 한다. 기사
2021년02월09일, 홍콩증권거래소에서 역대 처음으로 외국 국적[99]의 홍콩 영주권자 사령탑 총재를 임명했다. 중국 정부가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이후 많은 홍콩인들과 외국인들이 헥시트[100]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우려되어서 임명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기사 또한, 홍콩금융관리국 총재는 홍콩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후에 자금 유출이 있다는 설에 대해서 부정했다.기사
홍콩법정변호사회 신임 회장이 홍콩의 국가보안법을 비판해왔는데, 최근 그가 영국 시의원이였던것으로 밝혀져 큰 풍파가 일고 있다. 기사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취임하고 시진핑과 연락하지 않았는데, 미국 현지 시각 2월 10일 서로 첫 통화를 했다. 바이든 첫 통화부터 미국 대통령은 홍콩, 대만, 위구르, 신장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시진핑은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했다. 기사
이 외 더 자세한 내용은 홍콩 국가보안법 항목을 참조.

15. 교통



홍콩의 국가관문으로는 홍콩 국제공항이 있다.
홍콩의 대동맥으로는 도시철도MTR이 운영하는 홍콩 지하철1904년부터 홍콩 섬 북부 및 남동부에 있던 노면전차홍콩 트램이 있고 모세혈관 노릇을 하는 홍콩 버스 시스템 등이 있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들 참고.
그리고 홍콩의 플래그 캐리어는 영국계 부동산 회사인 스와이어 그룹(Swire Group) 소속의 캐세이퍼시픽 항공캐세이드래곤 항공이다. 저가 항공사로는 홍콩 익스프레스 항공이 있다. 홍콩 익스프레스 항공은 원래 하이난 항공 소속이었으나 2019년 캐세이퍼시픽 항공에 인수되어 이제는 모든 항공사가 영국계 회사 밑에 들어왔다.
중국과의 관문으로는 육상 관문인 황강(皇崗 Huang Gang) 버스 터미널. 록마차우역(落馬州, Lok Ma Chau. 중국 쪽은 푸톈), 로우역(羅湖, Lo Wu, 중국 쪽은 뤄후), 선전완(深圳灣, ShenZhen Bay)대교 등과 해상 관문인 셔코우(蛇口, SheKou)가 광동 성 선전시로 통하며 황강과 선전완은 차량, 로우/록마차우는 동철선으로 접근 가능하고 셔코우 항구로는 MTR 홍콩섬선 셩완 역에 있는 슌탁 페리터미널과 췬완선 침사추이 역과 가까운 차이나홍콩 페리터미널에서 페리를 타고 갈 수 있으며, 로우와 황강, 셔코우 항구에서는 도착 비자중국 공안이 발급해준다. 록마차우와 선전완은 도착 비자 발급이 안 된다. 자세한 사항은 교통 문서에서 대륙과의 왕래 부분 참조.
택시는 일방통행인 길이 많아서 생각보단 많은 요금이 나온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경로 거리당 택시비는 한국보다 약간 비싼 수준이며, 다리를 건너든 터널을 건너든 뭘 할 때마다 기사가 오고가는 왕복 톨비를 줘야 되는 것이 단점이라 하겠다. 공항에서 침사추이까지 160홍콩달러 정도, 침사추이에서 레이디스마켓까지 40달러 침사추이에서 icc까지 40달러정도이다.
참고로 택시는 기사들이 영어를 잘 못한다. 홍콩 섬의 택시는 그나마 좀 나은편이며, 침사추이 및 몽콕 등 구룡반도신계 쪽 기사들은 영어를 거의 못해 중국어로 된 지명을 한자로 보여주거나 사진을 보여주도록 하자.
그리고 택시를 잡을때는 우리나라와 반대편, 즉 왼쪽의 인도에서 기사들의 반대 방향으로 타게끔 잡아야한다. 일방통행의 길에 오른쪽 보도에서 택시에게 승차 거부당했다고 생각하지말자.. 그쪽에 서있는 대부분은 대기줄이라서 앞으로 가라고하거나, 예약 택시이거나, 쉬는중이다.
홍콩 섬구룡반도 사이를 오갈때 페리 말고 택시를 이용할수도 있는데 지하 해저터널을 통해서 이어져있어서 톨게이트 비용을 내야한다.[101] 해저터널[102]은 서쪽에 Western Tunnel 하나, 가운데 침사추이 쪽에서 완차이 쪽으로 가는 Cross Harbour Tunnel, 동쪽에 Eastern Tunnel 하나 총 3개가 있다. 기사분이 서쪽 터널로 갈까요 동쪽 터널로 갈까요 묻는 경우가 있는데 잘 대답하자.
보통 서쪽의 Western Tunnel이나 중앙의 Cross Harbour Tunnel의 경우 침사추이(尖沙咀, Tsim Sha Tsui), 야우마테이(油麻地, Yau Ma Tei) 및 야우마테이에 위치한 ICC, 몽콕(旺角, Mong Kok), 타이콕추이(大角咀, Tai Kok Tsui) 등 구룡반도 서부로 건너갈 때 혹은 센트럴이나 셩완(上環, Sheung Wan), 케네디타운(西環, Kennedy Town) 등 홍콩 섬 서부로 갈때 이용하고, 중앙의 Cross Harbour Tunnel 은 완차이(灣仔, Wan Chai) 및 코즈웨이베이(銅鑼灣, Causeway Bay) 등 홍콩 섬 중앙으로 갈때 이용한다. 그리고 섬쪽에서 홍콩 국제공항 및 란터우 디즈니랜드를 가거나 윈롱(元朗, Yuen Long)을 거쳐 선전시로 가는 시외버스를 탈때도 이 루트를 이용한다.[103]
반면 동쪽의 Eastern Tunnel은 정관오(將軍澳, Tseung Kwan O), 쿤통(觀糖, Kwun Tong), 사이쿵 반도(西貢, Sai Kung), 마온산(馬鞍山, Ma On Shan) 등 구룡반도 동쪽 혹은 타이쿠싱(太古城, Taikoo Shing), 사이완호(西灣河, Sai Wan Ho), 시우사이완(小西灣, Siu Sai Wan) 등 홍콩섬 동쪽으로 갈때 이용하며 장기 체류자들은 많이 이용하지만 관광객은 별로 이용할 일이 없는 루트이다.[104]

16. 문화



중화권의 문화, 그 중에도 광동 지역의 문화에 속하나 중국 대륙과는 어느정도 차별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밀크티, 쿠키 등 영국의 영향을 받은 식문화로 유명하며, 지금은 그 위세가 덜하나 한때는 홍콩 영화로 아시아의 영화 패왕이기도 했다.

17. 관광



한국에서 비행기로 네 시간 정도의 거리로 가깝고 비자도 필요로 하지 않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 중 하나다. 또한 중국 대륙으로부터 끊임없이 수많은 여행객들을 받고 있으며 홍콩의 관광 핫스팟에 가보면 언제나 중국 대륙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17.1.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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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섬 빅토리아 피크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본
홍콩 섬 북부와 까우룽반도
홍콩 전경과 피크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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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야경

'''홍콩 침사추이'''

18. 대중문화에서


홍콩 특유의 이미지와 도시 모습은 사이버펑크 장르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사이버펑크 장르에서 네온사인 가득한 거리와 중국어로 쓰여진 낡은 간판 등은 홍콩의 이미지에서 영향이 크다.
국내 e-amusement의 테스트 때, 드럼매니아 쪽은 지역명으로 '마카오'를 사용했었지만 유비트 쪽은 지역명을 '홍콩'으로 사용했다.
중국집 이름으로 북경반점[105]이나 몽고반점, 대만반점 등과 함께 흔히 쓰이는 이름이기도 하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사이트의 지도 검색에서 '홍콩'이라고 치면 홍콩XX, 홍콩반점 같은 중국집들이 많이 검색된다. 그 다음은 아리산이나 태로각, 양명산 등 대만의 지명들이다. 과거 중국 대륙과 수교가 없었을때 '''홍콩과 대만이 중국의 대표'''였던 시절의 흔적이다. 외국의 차이나타운에서도 홍콩 출신 중국계 이주민들이 식당을 세울 때 '홍콩'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19. 홍콩의 명절




20. 관련 문서



[1] 울산광역시의 면적과 비슷하다.[2] 참고로 서울2019년 8월 기준 16,102명/㎢이다. [혼합된체제] 5.57점[3] ISO 3166-2에 중국의 하위 행정구역으로써 형식적으로 CN-HK를 할당해두었지만 사실상 HK, HKG만이 쓰인다.[4] 중국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인 .cn 산하에 형식적으로 할당해 놓았으나 잘 쓰이진 않는다.[5] 표준중국어로는 '''강''', 광동어로는 '''콩'''이다.[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6] 홍콩의 지정학적 특수성은 홍콩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중국과 홍콩 사이의 마찰 뿐만 아니라 제1세계 국가와 중국 간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7] 둘다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이며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근래에 홍콩이 홍콩보안법으로 정치적 자유를 잃어가고 있는데 싱가포르는 이전부터 정치적 자유가 없는 국가이다.[8] 국방과 일부 외교 제외.[9]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 아래 마카오, 대만도 이와 비슷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대만은 사실상 독립국이기에 홍콩, 마카오와 다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양안관계 참조.[10] 홍콩은 중국과는 다른 별개의 홍콩 여권이 나온다. 따라서 입국신고서나 비자 신청을 위한 공식적인 서류에도 People's Republic of China가 아닌 Hong Kong이나, Hong Kong SAR 등으로 적는다.[11] 양자는 거의 비슷하되 '별'이 別과 别로 다르다. 중국 대륙(본토)에서 번체자(정체자)를 써야 할 때 쓰는 표준 자형은 간화자와 동일한 别이지만, 대만(중화민국)에서는 別을 쓴다(대한민국과 일본에서도 別을 씀). 여권 표지에 번체자인데도 别을 쓰는 이유는, 중국에서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에 없는 번체자(구자형(舊字形)이라고 한다.)를 써야 할 경우에는 중국에서 쓰는 신자형(新字形)을 따라야 하는데, 홍콩과 마카오 여권 모두 중국 대륙측에서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홍콩의 행정은 대륙과 분리되어 있으므로, 홍콩에서는 중국과는 다른 번체(정자) 규격을 정해서 "別"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홍콩의 공식 문장(區徽)에서도 그냥 別을 쓰고 있을 정도. 이 표기가 사용되는 건 사실상 여권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전산처리되는 부분인 "발행 관청(簽發機關, Authority)" 부분에는 香港特'''別'''行政區入境事務處라고 나와 있다![12] '홍콩'을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향항'이 된다.[13] 중국어권(정체자·간화자 모두)의 폰트에서는 港의 밑 부분이 巳의 형태로 돼 있지만, 일본의 폰트(신자체 준거)들은 그 부분이 己의 형태로 돼 있다(구자체용 폰트는 巳). 대한민국의 폰트들은 폰트마다 제각각이다.[14] 월병(광동어) 표기로는 Hoeng1gong2, 국제음성기호로는 [hœ́ːŋ.kɔ̌ːŋ\]. 이 사이트에 한자 표기 香港을 넣고 들어 보자.[15] 홍콩의 언어인 광동어한자 발음이 보통화에 비해 옛 발음이 많이 남아있어 한국의 한자 발음과 비슷하다. 성씨 김(金)은 감(kam), 한국은 혼궉(Hon Gwok), 일본은 얏분(Yat Bun), 베이징은 박깅(bak ging)이라고 발음한다. 표준 중국어로 각각 진(jīn), 한궈(hánguó), 르번(rìběn), 베이징(běijīng)으로 발음하는 걸 생각해보면 확실히 광동어 쪽이 한국식 한자 발음에 조금 더 유사하다. 이는 표준중국어의 바탕이 된 베이징말이 북방 민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16] 명나라 시절 이곳을 향항촌(香港村)으로 명명한 지도가 있다.[17] 마카오도 반환 전 도안된 깃발 중에 오성홍기를 기반으로 한 깃발들이 있었다.[18] 九龍半島, Kowloon, 보통화로는 주룽인데 1990년대까진 한국에서도 대만 영향으로 보통화식으로 주룽으로 알려졌으며 이 때문에 싱가포르의 서쪽 끄트머리인 주롱과 헷갈릴 수 있었다. 주롱은 새공원이 있는 싱가포르 서쪽 말레이시아 접경지대로 싱가포르 MRT의 종점이기도 하다.[19] 香港島, Hong Kong Island, 보통화로는 샹강다오인데 잘 사용하지 않는다. 여기만 줄여서 '''香港''' 즉 홍콩이라고 하기도 한다. 뉴욕의 맨해튼(New York, New York)과 같이 행정상 홍콩(HK)의 홍콩(HKL)이 되는 지역.)[20] 홍콩 섬보다도 큰 섬으로 홍콩 최대면적의 섬이다. 그러나 대부분 산악지대라 평지가 적어 못 쓰는 땅이 대부분이다. 핑크색 돌고래 구경으로 유명한 타이오가 여기 있다.[21] GMT+8을 사용하며 중국 대륙, 대만, 몽골 대부분 지역, 필리핀과 같다.[22] 습도가 매우높아 체감온도는 대구 이상이다.[23] 한국여름은 그래도 화창한날의 경우 한낮습도가 50% 밑으로 떨어지기도 한다.[24] 여름에 비해 건조하다는 것이지 홍콩은 겨울에도 제법 습도가 높다.[25] 구룡반도. 홍콩에서 까우룽 반도로 분류하는 지역에는 1898년 제2차 베이징 조약으로 신계 지역과 같이 조차한 신까우룽(신구룡)도 포함된다.[26] 그 이전에도 구(District)는 있었으나 정식으로 영역이 확정된 건 1982년이다. 구청도 이 때 생겼다. 그 이전까지는 구청이 없었고 구 단위를 생략해도 상관 없었다.[27] 예를 들면 나단(네이선) 로드 → 彌敦道 (nei don dou) 등의 식이다.[28] 이거 흔들리는 게 거의 '''바이킹 수준이다...'''[29] 홍콩편 출연자는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김성훈 교수이다. 현재는 네이버에 합류해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다.[30] 아르헨티나 국적의 백인[31] 자유민주주의 선진국가로 이민가는 것.[32] 다른 나라와는 달리 영주권이 곧 시민권인 특이 케이스이다. 홍콩 입경처가 홍콩 시민의 정의를 영주권 소지자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 본토 국적을 가진 영국계 홍콩인을 배려한 것으로 반환 후에도 영국계 홍콩인들이 여전히 공존하고, 이들이 가진 이권도 많아 중국 중앙정부가 이를 배려해 홍콩을 떠나지 않도록 한 것이다.[33] 서울특별시의 1.82배다.[34] 어쩔 수 없는 것이 전 국토를 모조리 개발하기란 어렵다. 미래 후손에 대하여 유보지역도 남겨줘야 하고, 완충지역, 녹지, 환경, 농업 생산 예비 구역 등을 감안하면 전국토를 모두 개발 할 수는 없는 것이다.[35] 마카오-4위 포함[36] 면적 127km²에 인구 약 340만 명 정도[37] 홍콩의 출입국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기관이다.[38] 이 대륙인 부유층들이 홍콩의 슈퍼리치를 구성하는데 최근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등 반중 시위가 계속되고 경제가 흔들리자 이들이 대거 유럽 국가들 등으로 이민을 나가고 있어 이민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39] 흔히 오해하는 부분인데 반중이라고 해서 중국 자체를 부인하는 게 아니다. 기성세대는 확실히 그 중국을 중화민국으로 인식하고 중국 공산당에 대한 반감을 가질 뿐이다. 이러니 기성세대들은 홍콩 독립운동을 혐오할 수밖에 없다.[40] 물론 민주파와 독립파는 어느정도 선이 그어진다. 워낙 베이징에서 민주파는 분리주의 집단이라고 선전질을 하다보니 "홍콩이 원하는건 독립이 아니라 일국양제와 자치권 보장"이라고 계속해서 강조하는 중이다. 2019년 민주화 운동 이후 독립파로 넘어간 홍콩인도 적지 않아졌지만 아직까지는 소수다. 더구나 홍콩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극단적이고 외국인에 배타적이란 비판도 제기된다.[41] 돈이 있어도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 특성 상 부동산 소유가 쉽지 않아(토지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고, 지상권만을 매매할 수 있다) 대개 특별행정구인 홍콩이나 마카오로 투자한다. 중국 정부도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같이 생판 외국보단 어쨌든 자기네 땅인 홍콩에 투자하는 걸 권유하는 편이다.[42] 빈부격차라고는 하지만 홍콩 주민들이 정말 못살아서 집을 사지 못한다기보다는 홍콩의 부동산값이 정말 미친 수준이기 때문이다. 홍콩의 중위임금은 270만원이고, 사회초년생의 월급은 200만원 정도지만 아파트의 평(3.3m^2)당 단가는 1억원이 넘는다. 즉 10평짜리 아파트가 10억원이라는 것. 월세도 200만원이 넘는다.[43] 정신 이상자로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44] 진짜 어디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한 게 아니라 책임지고 승객들을 대피시켰다.[45] 한인신문에 한국 병원 광고가 많이 실린다.[46] 2020년 8월 1일 기준이다[47] 반면 중국본토는 아직까지는 실내흡연에 꽤 관대하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48] 홍콩에 본사가 있다[49] 홍콩 IFC,ICC를 소유하고있는 기업이다. 원래는 화교자본에서 시작했으나 지금은 토착화되었다.[50] 이때 초창기 홍콩 지하철 차량은 영국의 메트로카멜 사가 수주했고 메트로카멜이 전동차 생산을 중단한 현재도 다니는데 M-Stock이라 불리며 홍콩섬선췬완선의 주력 전동차다. 현재 홍콩 지하철의 전동차는 한국제, 중국제, 프랑스제, 스페인제 등으로 다각화 되어 있다. 특히 중국제 차량이 값싼 수주비와 질 좋은 성능으로 50%를 차지하고 있어 신차 대부분은 중국제이다.[51] 청년실업의 경우 한국은 고학력 실업자가 넘쳐나 몸살을 앓고 있는데 홍콩 정부는 대졸자가 거의 전부인 한국인을 고급 인재로 보고 데려오려고 워킹홀리데이 협약도 맺고 취업비자를 완화하는 등 조치를 해 준다.[52] 참고로 홍콩 경찰이나 홍콩세관에서 사용하는 권총은 공포탄 따위 없고 첫발부터 실탄이다! 거리에서 관광객에게 그렇게 친절한 경찰도 칼 빼들거나 연장 빼들고 덤비는 순간 거리낌 없이 발포해 버린다.미국 경찰이나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공안원들처럼 사람 짜증나게 할정도로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공권력이 매우 강해 범죄율을 낮추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53] 9,000파운드로 우리나라돈으로 150만원 정도 한다. 비 EU/EEC 출신 학생이 내는 것의 반 정도 되며 대충 우리나라에서 저렴한 국립대 정도 수준의 학비다.[54] 미국이 High School을 쓰는 것과 달리 영국식 영어인 Secondary School을 쓴다.[55] 홍콩은 그리스도인이 많고 영국령이었던 적이 있어서 부활절과 부활절 전날인 성 금요일이 공휴일이다. 부활절 다음 날은 영업하는 회사도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사업장이면 대개 쉰다. 한국은 부활절이 그리스도인에게만 의미가 있지 쉬는날도 아니고 인지도가 낮다.[56] 물론 2007 개정 교육과정 이전에는 한국에도 행렬과 행렬식이 있었다. 2007 개정 교육과정 기준으로 수학I 1단원이었다.[57] 다만 일본의 경우 2010년대에 들어서는 초고령사회 진입과 저출산의 영향으로 대졸자 실업 문제가 좀 나아진 상황이다. 청년실업 참조.[58] 물론 이들 나라들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학벌이 낮은 이들을 깔보는 문화나 일부 상위권~최상위권 대학 출신자들의 동질혼 고집과 같은 학벌 지상주의가 남아있다.[59] 물론 중국 대륙이나 베트남 이민자들의 영향이 크다.[60] 한국의 경우 2018년 현재 미국캐나다, 호주 유학의 대체제로 또다른 선진국들인 대륙유럽권, 그중에서도 특히 독일네덜란드로의 유학이 새로 뜨는 추세이다.[61] 영국의 GCSE, 싱가포르의 O-Level에 상응[62] 이와 관련해서 홍콩인들의 부심은 대단하다 할 정도... 가끔 인도공대 입시시험이 더 어렵다고 주장하는 인도인들과 다투지만 일단 인도공대 입시시험은 일반적 대입시험이 아니고 HKALE보다 커트를 보건 뭐건 쉽다는 평이다.[63]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곤 해도 HKALE 전에 보는 시험이었던 HKCEE보단 훨씬 어렵다![64] 다만 홍콩의 경우, 유입된 성인 노동인구의 비율이 높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굳이 우리나라에서 예를 들자면 광역시 규모로는 울산, 좁은 지역으로는 여의도를 들 수 있는데, 이 동네들도 고등교육시설들은 극히 부실하다.[65] 물론 한국에는 카이스트,포스텍 등의 대학과 의,치,한,약,수 등 의료계열이 최상위권에 자리잡고 있기는 하다.[66] 그래서인지 홍콩에서는 중국본토 대학 중 붙으면 신문에 이름나는 북경대, 청화대, 상하이 푸단대학, 교통대학 등을 빼고는 중국 대학은 아예 대학 졸업으로 인정 안 한다. 가짜 대학도 많고 학력 위조도 판 치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며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의 대학 교육 자체가 아주 수준이 떨어진다.[67] 중국어로는 保安局이다.[68] 원래 캐리 람 현 행정장관도 자르려 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보류됐다. 이후 한정이 실장이 된 뒤 중국군 출병 대신 중국 공안부의 지도권 행사를 정식으로 명문화하고 자문기구 형식으로 이에 대한 행사를 강화하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발의해 통과시켰다.[69] 민주파, 본토파 인사들이 대거 체포되고 관련 단체들이 줄줄이 단체 해산 및 활동중단 선언을 한 후 대부분 엎드려 있게 되었고 일부는 체포되었으며 다른 일부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영국이나 대만으로 망명했다.[70] 조던-야우마테이를 가로지르는 상하이 스트리트(上海街, Shanghai Street)는 매춘으로 악명이 높다! 실제로 그쪽을 밤에 돌아다니면 마사지를 빙자한 매춘업소를 많이 보게 된다.[71] 흔히 홍콩반환협정이라 부르는 그거다.[72] 참고로 제작은 홍콩 라디오 텔레비전과 합동 제작.[73] 중국 반환을 앞둔 1994년부터 표준중국어 실력을 경찰 선발기준에 넣었고(이 때부터 영국계 백인이 경찰에 입직하는 경우는 완전히 사라졌다.), 홍콩 태생 대륙인 2세들이 슬슬 사회에 나오는 시기가 되자 영어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대륙인 2세들은 광동어로 수업하는 공립을 주로 다닌다). 경찰에게 길을 물어 보았는데, 정말 친절하게 알려주고자 노력하는데 영어가 잘 안 되어서 땀 흘리는 모습을 몇 번 봤다. 물론 간부급은 영어 및 보통화는 기본이니 잘한다. 그리고 구룡반도홍콩 섬 간에도 격차가 있다. 위의 사례는 구룡반도 사례인 듯. 반대 사례로 홍콩 섬 완차이 및 센트럴/셩완의 경우 경찰들의 영어가 아주 능숙하다.[74] 일부는 일본어 또는 한국어도 구사가능하다.[75] 한국어로 직역하면 "특임대".[76] 비호대를 다룬 홍콩 영화도 있는데, 제목도 비호대(...).[77] SDU는 PTU대에서 우수한 대원들이 내부 선발로 오는 곳이다. 조금 급이 떨어지는 인원은 초동조치 부대 CTRU로 가는데 말이 그렇지 실력은 SDU 못지않다. 우산혁명과 현 반정부 시위 등 각종 시위에서 체포조로 악명을 떨친 특별전술소대(STS), 일명 랩터소대도 PTU 휘하에 있는데 이들은 흑경이라는 이름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78] 중국 공산당 혹은 홍콩 특구 정부[79] 즉 전 세계인이 대상이라는 말. 국제법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80] 기업 등에서 채용시 '''해외여행에 결격이 없는 사람''' 이라는 조건 중에 중국 여행에 큰 제약이 생긴 셈이 되어 채용이 불가능해진다. 이미 홍콩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시위 참가 직원이나 시위대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직원들을 전원 해고 조치하고 침묵하거나 국가보안법 지지성명을 냈다. 중국 공산당에게 영혼을 판 거 같지만 이미 커질대로 커져버련 13억 인구의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다국적 기업들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81] 홍콩 기본법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들어오려면 홍콩 행정장관이 직접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중화인민공화국 주석한테 인민해방군 출병 요청을 하고 전인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2019년 11월 18일에는 구룡반도 북부 까우룽통 병영 앞에 인민해방군이 홍콩 정부의 요청 없이 거리로 나온 바 있다. 물론 병영 앞이었던 건 사실이었는지라 중국군 당국은 병영 앞 군사도로 청소활동을 핑계 삼았다.[82] 당연한 말이지만 협박 따위에 굴하지 않은 홍콩인 유권자들이 민주파에 몰표를 줘서 역풍을 맞은 거다.[83] 다만 2003년 친중파 위주의 홍콩 입법회를 통한 국가보안법 도입 시도 당시 50만 명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규모 시위를 벌인 바 있다.[84] 소위 말하는 어린 세대에 홍콩 독립운동 지지 세력이 주축인 용무파들도 SDU를 마주치자 공포를 느끼고 교내에 숨어버렸다. 전날 양궁까지 꺼내와 활을 쏘며 저항했던 건 상대가 일반 경찰이나 PTU여서 쉽게 본 것인데 그 다음날 진짜로 크리스 탕 새 경무처장이 저격수를 배치하여 자신들의 머리통을 날릴 준비를 하자 살해 위협을 느끼곤 숨어버렸다. 그리고 이때 아직 어린 나이인데다 혹독하게 고생해본 적도 없는 학생들은 PTSD 증세까지 보이게 되었고 내부 분열까지 일어나 패배감이 만연해 하나둘씩 자진투항 혹은 탈출을 시작했다.[85] 이공대학 캠퍼스 내에는 청소차가 못 들어와 쓰레기가 수북히 쌓여있고, 해충 등이 창궐할 가능성이 높으며 시위 학생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86] 2003년 사스 악몽을 겪은지라 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되어도 한동안 대규모 집회를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87] 광복홍콩 시대혁명, Be Water, Fight For Freedom 등이나 영광이 다시 오길 등의 민중가요들이 해당한다.[88] 렁춘잉 전 행정장관은 중국은행 등이 HSBC를 대체할 수 있다며 지지를 강요한 바 있다#.[89] HSBC는 홍콩 국가보안법 지지 선언 후 미국에서 까였으나 중국이 아닌 영국계 회사이고 임원진도 엄연히 영국인이라 미국이 제재를 먹이지도 못하는 판이다. 영국계 기업에 제재를 먹이면 미영관계가 금이 갈 것이며 HSBC는 자꾸 브렉시트 이후 홍콩으로 거점을 옮길려고 하여 영국 입장에서도 크게 손해를 보는지라 언터쳐블이다. 물론 도의적 비난은 예전부터 마약 카르텔, 알 카에다, 소말리아 해적 등의 자금세탁 지원으로 많이 받아왔다.[90] 다만 리카싱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세로드립을 통해 홍콩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을 비판하기도 했다.[91] 홍콩의 사회 지도층과 재벌은 대부분 친중파다. 빈과일보 사주인 지미 라이가 특이한 인물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리카싱[90]이나 2020년 작고한 스탠리 호도 친중파로 특히 스탠리 호는 2019년 홍콩 시위로 경제가 타격을 받자 홍콩에 대거 투자해주기도 했다. 사실 외국인이 홍콩에서 하는 비즈니스는 내수시장이 없는 홍콩시장이 목적이 아닌 어디까지 중국으로 들어갈 교두보인지라 외국계 기업 입장에선 아무래도 싫어도 사회 지도층이고 돈줄을 쥔 친중파와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92]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본토파로 구분되는 정당은 신민주동맹, 클라우디아 모아이들, 열혈공민, 무소속 당선자 중 30여명 등 '''무려 80명 가까이 된다'''. 본토파는 이번 구의회 선거에서 거의 대부분 '''처음 당선'''됐다.[93] 여기에 해를 넘기면서 호주 산불이나 카를로스 곤 닛산 전 회장 탈출사건, 미-이란 전쟁위기 등 다른 이슈들이 자꾸 이슈를 덮으면서 국제사회에서도 아무도 홍콩에서 뭘 하든 신경도 안 쓰는 분위기도 갔다. 코로나19가 여기에 결정타였다.[94] 홍콩 경제는 반환 이후 중국에 종속된 지 오래고 금융계는 큰 손이 중국본토 재벌들과 중국 국영기업이라 반중 구호나 홍콩 독립운동은 재계에서는 아주 달갑지 않은 것들이다. 더구나 코로나 사태로 세계경제가 붕괴되어 버리자 이젠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부터 걱정하는 판이라 평범한 사람들은 '''영국이고 중국이고 먹고나 살게 해줘라'''며 학을 뗀다.[95] 교도소 폭동진압용 특수기동대로 교도소 폭동이 날 일 없는 홍콩에선 사실상 신속대응군에 더 가깝다.[96] PTSD를 보이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로 극단 시위가 심했다.[97] 2019년 영국계 홍콩 국적기 캐세이퍼시픽이 시위에 참가한 파일럿과 승무원을 전원 해고하였다. 중국 민항총국이 시위 참여 조종사가 조종하는 항공기의 중국 영공 진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후 모기업인 스와이어 그룹은 홍콩 시위에 긍정적이던 부사장까지 자르고 친중파로 분류되는 홍콩인을 그 자리에 앉혔으며 홍콩 국가보안법 지지선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HSBC, 블리자드, 나이키 등도 그 뒤를 따라 중국 입장을 따르게 된다.[98] 확진자 수가 7월 1일 마지막 시위 이후 급증했는데 이 때 감염원이 불분명한 감염사례가 대다수였으며 그 중 몇몇의 동선이 시위 현장인 코즈웨이베이 일대와 겹쳐서 시위에 참가했단 사실을 못 말하는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옮겼다는 추측이 있다. 처음 시작은 6월 중순 미국에서 귀국한 가족이 있는 샤틴의 어느 중년 여성과 필리핀, 파키스탄 등 고위험 지역들에서 들어온 14일 격리가 면제되던 교대선원들이었다.[99] 아르헨티나 국적의 백인[100] 자유민주주의 선진국가로 이민가는 것.[101] 기사가 오고가는 왕복을 다 내야한다! 해저터널은 공사비 때문에 모두 유료다.[102] 바다 밑을 지나므로 해저터널이 맞는 표현이다.[103] Western Tunnel은 바로 옆으로 MTR 공항선뚱충선이 병렬로 지나간다.[104] 사실 한국인 관광객이 Eastern Tunnel을 탈일은 없다고 봐도 된다. 타이쿠싱/사이완호는 주재원 등 장기체류자들이 주로 거주하고 쿤통에는 한국인이 갈일이 없다. 타이쿠싱-쿼리베이에 사진촬영지로 유명한 '익청빌딩'이 위치해 있으며, 타이쿠싱에 원더걸스 혜림이 다녔던 Delia School of Canada라는 학교가 위치해 있다.[105] 정작 진짜 베이징 시에 있는 북경반점(北京飯店)은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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