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Queen Elizabeth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
공식 홈페이지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손꼽히는 콩쿠르. 워낙 유명한 동명이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영국의 대회인가 '''착각'''할 수 있으나, '''벨기에''' 국왕 알베르 1세의 왕비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따서 개최한 것이다.
원래는 벨기에가 배출한 바이올린계의 거장 외젠 이자이(1858~1931)를 기리기 위해 1937년부터 시작된 이자이 콩쿠르에서 유래했다.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된 기간 동안 중단된 이후엔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매해 5월마다 개최된다.
바이올린, 성악, 작곡, 피아노의 4개 분야가 있었으며 작곡은 1~2년마다, 나머지는 3년마다 개최되었다. 2012년을 끝으로 작곡은 중지되었고, 대신 첼로 부문이 추가되어 4년에 한 번씩(바이올린-피아노-첼로-성악 순) 한 악기가 돌아가며 개최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1] 첼로는 2017년에 처음 대회가 개최됐다.
'''이 콩쿠르의 하이라이트'''
보통 국제콩쿠르는 2주 내로 각 라운드를 다닥다닥 붙여서 모든 일정이 끝나는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한 달 넘게 한다. 그 이유는, 최종라운드까지 진출한 참가자들은 자신이 준비해 온 협주곡 1곡 이외에 콩쿠르 주최측에서 지정한 1개의 신작을 더 연주해야 하기 때문인데, '''악보를 무려 최종라운드 진출이 확정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냐고? '''파이널리스트들을 뮤직샤펠이라는 궁에 가둔다.''' 왜 가두냐는 표현을 쓰냐면, 파이널리스트들은 '''자신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핸드폰도 못 쓴다!!!'''
그렇게 약 2주의 시간 동안 먹고,자고(감금),연습(플레이)만 하면서 새 곡을 익힘과 동시에 자신이 준비해 왔던 곡까지 연습하며 보내게 된다.
1970년대를 시작으로 다수의 한국인이 수상한 바 있다.
1987 이미주
1991년 백혜선 2위(전 서울대교수)
1995 박종화(현 서울대교수)
2003년 임동혁이 3위를 수상했으나 편파판정[2][3] 을 주장하며 수상을 거부했다.
2007년 임효선 5위(현 경희대 피아노과 교수)
2010년 김태형 5위(현 경희대 피아노과 교수)
외젠 이자이를 기리기 위한 콩쿨인만큼 바이올린 부문의 권위가 높다
1976년 강동석 3위(연세대 교수, 2019년 정년퇴임)
1985년 배익환 2위 (인디애나음대 교수 2014년 작고)
1993년 이경선 3위( 현 서울대교수)
2005년 권혁주 6위 (2016년 작고)
2015년 임지영이 기악부문으로서는 처음으로 1위를 수상했다.[4]
2011년 성악 부문에서 홍혜란(소프라노) 1위. 동양인 최초 우승
2014년 황수미(소프라노)가 우승하였으며,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불렀다.
그리고 펜트하우스 II에서
조은화(2009), 전민재(2010)가 수상한 적이 있다.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손꼽히는 콩쿠르. 워낙 유명한 동명이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영국의 대회인가 '''착각'''할 수 있으나, '''벨기에''' 국왕 알베르 1세의 왕비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따서 개최한 것이다.
원래는 벨기에가 배출한 바이올린계의 거장 외젠 이자이(1858~1931)를 기리기 위해 1937년부터 시작된 이자이 콩쿠르에서 유래했다.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된 기간 동안 중단된 이후엔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매해 5월마다 개최된다.
바이올린, 성악, 작곡, 피아노의 4개 분야가 있었으며 작곡은 1~2년마다, 나머지는 3년마다 개최되었다. 2012년을 끝으로 작곡은 중지되었고, 대신 첼로 부문이 추가되어 4년에 한 번씩(바이올린-피아노-첼로-성악 순) 한 악기가 돌아가며 개최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1] 첼로는 2017년에 처음 대회가 개최됐다.
2. 감금 플레이(?)
'''이 콩쿠르의 하이라이트'''
보통 국제콩쿠르는 2주 내로 각 라운드를 다닥다닥 붙여서 모든 일정이 끝나는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한 달 넘게 한다. 그 이유는, 최종라운드까지 진출한 참가자들은 자신이 준비해 온 협주곡 1곡 이외에 콩쿠르 주최측에서 지정한 1개의 신작을 더 연주해야 하기 때문인데, '''악보를 무려 최종라운드 진출이 확정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냐고? '''파이널리스트들을 뮤직샤펠이라는 궁에 가둔다.''' 왜 가두냐는 표현을 쓰냐면, 파이널리스트들은 '''자신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핸드폰도 못 쓴다!!!'''
그렇게 약 2주의 시간 동안 먹고,자고(감금),연습(플레이)만 하면서 새 곡을 익힘과 동시에 자신이 준비해 왔던 곡까지 연습하며 보내게 된다.
3. 역대 한국인 수상자들
1970년대를 시작으로 다수의 한국인이 수상한 바 있다.
3.1. 피아노
1987 이미주
1991년 백혜선 2위(전 서울대교수)
1995 박종화(현 서울대교수)
2003년 임동혁이 3위를 수상했으나 편파판정[2][3] 을 주장하며 수상을 거부했다.
2007년 임효선 5위(현 경희대 피아노과 교수)
2010년 김태형 5위(현 경희대 피아노과 교수)
3.2. 바이올린
외젠 이자이를 기리기 위한 콩쿨인만큼 바이올린 부문의 권위가 높다
1976년 강동석 3위(연세대 교수, 2019년 정년퇴임)
1985년 배익환 2위 (인디애나음대 교수 2014년 작고)
1993년 이경선 3위( 현 서울대교수)
2005년 권혁주 6위 (2016년 작고)
2015년 임지영이 기악부문으로서는 처음으로 1위를 수상했다.[4]
3.3. 성악
2011년 성악 부문에서 홍혜란(소프라노) 1위. 동양인 최초 우승
2014년 황수미(소프라노)가 우승하였으며,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불렀다.
그리고 펜트하우스 II에서
3.4. 작곡
조은화(2009), 전민재(2010)가 수상한 적이 있다.
[1] 이 부분이 차이콥스키 콩쿨과의 차이인데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4년에 한번씩 모든 악기가 동시에 열리는데 비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매년 개최된다. 악기가 달라질 뿐.[2] 당시 2위를 차지했던 중국의 셴웬유와 1위였던 에커슈타인의 현직, 전직 스승이었던 칼 하인츠 케멀링이 이 수상식의 심사위원으로 있었고, 이것이 이들이 1,2위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당시 언론에서도 3위였던 임동혁에 대해서는 완벽했다는 극찬을 했던 반면, 2위 셴웬유에 대해서는 '''아직 가다듬어 할 것이 많다'''라는 식의 혹평을 내리기도 했다. [3] 다만 일부에서는 공정성과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한 예술가가 대담하게 항의한 표시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항의의 깃발을 꽂은 인사가 다름 아닌 연주자 본인이라는 점에서 돌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임동혁 본인도 이 대회 이전에 2001년 파리에서 열린 롱 티보 콩쿠르에서 한국인 사상 첫 1위를 수상한 바 있는데, 이 때도 역으로 본인이 논란의 중심이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넬슨 프레이어가 임동혁의 후원자였던 마르타 아르헤이치의 입김을 강하게 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것이 논란의 근거였기 때문이다.[4] 이때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파이널리스트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