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누가사(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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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건조한 아오바급 중순양함의 2번함. 일본 해군 최초로 캐터펄트와 수상기를 탑재한 군함이다.
아오바와 함께 제6전대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가했으며 괌 침공, 2차 웨이크 섬 전투, 라바울 침공, 투라기 침공 등에서 나름대로 전공을 올렸다.
산호해 해전에서는 여전히 제6전대 소속으로 경항모 쇼호의 호위를 맡았으며, 중순양함 후루타카와 함께 정찰기로 미군 항모전단을 발견하여 주력부대에 전달했으나, 주력인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엉뚱하게도 유조선을 항모로 착각하고 공격했고 이 틈에 미군은 쇼호를 집중공격, 침몰시킨다. 이후 키누가사는 후루타카와 함께 주력부대로 차출되었고, 전투에서 대파된 쇼카쿠를 호위하여 일본으로 돌아간다.
과달카날 전투에도 제8함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며, 사보섬 해전에서 일본군이 대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 이후에는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했고, 과달카날로 향하는 수송부대의 호위를 맡았지만 주력부대인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철수하는 바람에 미군의 공습을 받고 후퇴한다. 이 전투에서 키누가사는 이틀에 걸쳐 핸더슨 비행장을 정찰기로 야간공습하는 특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함께 수송부대를 호위하던 제2수뢰전대 기함인 경순양함 진츠가 피격된 후에는 임시로 제2수뢰전대의 기함을 맡기도 했다.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미군의 기습을 당했을 때에는 집중포화를 피해 좌선회를 실시했기에 대부분의 포탄을 피했고, 포탄 대부분은 우선회를 실시해서 적에게 가까이 간 아오바와 후루타카가 다 맞았다. 사실상 아오바의 뒤에 숨은 꼴이 된 키누가사는 반격을 실시, 미군 경순양함 보이스를 대파시키는 등의 활약을 펼치며 무사히 사지를 탈출한다. 소파의 피해를 입기는 했어도, 침몰한 후루타카나 대파된 아오바에 비하면 큰 피해는 아니었다. 연합함대 참모장인 우가키 마토메가 "제대로 싸운 건 키누가사 뿐이잖아"라고 평가할 정도.
이후 키누가사는 수리를 위해 후방으로 빠진 아오바 대신 제6전대의 기함이 되었고, 1942년 10월 15일 새벽에는 제8함대 기함 초카이와 함께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했다. 이미 10월 14일에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와 하루나의 포격으로 비행기의 절반을 잃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 핸더슨 비행장에게 있어 이는 치명적이었고, 이 포격으로 돈틀리스 4대를 제외한 모든 비행기가 박살났다.
과달카날 해전(일본명 제3차 솔로몬 해전)에도 초카이와 함께 참가했으며,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하는 제7전대를 엄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14일 아침이 되자마자 핸더슨 비행장의 미 해병대는 돈틀리스를 발진시켜 일본군을 폭격했고, 키누가사는 어뢰 4발을 맞지만 탈출한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가 보낸 뇌격기와 급강하 폭격기의 집중공격이 일본 함대를 덮쳤고, 키누가사는 폭탄을 함교에 맞고 함장이 전사한다. 그래도 살아남은 키누가사였지만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들이 다시 공격을 가해왔고, 다시 폭탄을 맞아 엔진과 방향타가 날아가면서 침수, 511명의 전사자를 내며 침몰했다.
자세한 정보는 아오바와 영문위키 키누가사 참고.
일본군이 건조한 아오바급 중순양함의 2번함. 일본 해군 최초로 캐터펄트와 수상기를 탑재한 군함이다.
아오바와 함께 제6전대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가했으며 괌 침공, 2차 웨이크 섬 전투, 라바울 침공, 투라기 침공 등에서 나름대로 전공을 올렸다.
산호해 해전에서는 여전히 제6전대 소속으로 경항모 쇼호의 호위를 맡았으며, 중순양함 후루타카와 함께 정찰기로 미군 항모전단을 발견하여 주력부대에 전달했으나, 주력인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엉뚱하게도 유조선을 항모로 착각하고 공격했고 이 틈에 미군은 쇼호를 집중공격, 침몰시킨다. 이후 키누가사는 후루타카와 함께 주력부대로 차출되었고, 전투에서 대파된 쇼카쿠를 호위하여 일본으로 돌아간다.
과달카날 전투에도 제8함대의 일원으로 참가했으며, 사보섬 해전에서 일본군이 대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 이후에는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했고, 과달카날로 향하는 수송부대의 호위를 맡았지만 주력부대인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철수하는 바람에 미군의 공습을 받고 후퇴한다. 이 전투에서 키누가사는 이틀에 걸쳐 핸더슨 비행장을 정찰기로 야간공습하는 특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함께 수송부대를 호위하던 제2수뢰전대 기함인 경순양함 진츠가 피격된 후에는 임시로 제2수뢰전대의 기함을 맡기도 했다.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미군의 기습을 당했을 때에는 집중포화를 피해 좌선회를 실시했기에 대부분의 포탄을 피했고, 포탄 대부분은 우선회를 실시해서 적에게 가까이 간 아오바와 후루타카가 다 맞았다. 사실상 아오바의 뒤에 숨은 꼴이 된 키누가사는 반격을 실시, 미군 경순양함 보이스를 대파시키는 등의 활약을 펼치며 무사히 사지를 탈출한다. 소파의 피해를 입기는 했어도, 침몰한 후루타카나 대파된 아오바에 비하면 큰 피해는 아니었다. 연합함대 참모장인 우가키 마토메가 "제대로 싸운 건 키누가사 뿐이잖아"라고 평가할 정도.
이후 키누가사는 수리를 위해 후방으로 빠진 아오바 대신 제6전대의 기함이 되었고, 1942년 10월 15일 새벽에는 제8함대 기함 초카이와 함께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했다. 이미 10월 14일에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와 하루나의 포격으로 비행기의 절반을 잃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 핸더슨 비행장에게 있어 이는 치명적이었고, 이 포격으로 돈틀리스 4대를 제외한 모든 비행기가 박살났다.
과달카날 해전(일본명 제3차 솔로몬 해전)에도 초카이와 함께 참가했으며,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하는 제7전대를 엄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14일 아침이 되자마자 핸더슨 비행장의 미 해병대는 돈틀리스를 발진시켜 일본군을 폭격했고, 키누가사는 어뢰 4발을 맞지만 탈출한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가 보낸 뇌격기와 급강하 폭격기의 집중공격이 일본 함대를 덮쳤고, 키누가사는 폭탄을 함교에 맞고 함장이 전사한다. 그래도 살아남은 키누가사였지만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들이 다시 공격을 가해왔고, 다시 폭탄을 맞아 엔진과 방향타가 날아가면서 침수, 511명의 전사자를 내며 침몰했다.
자세한 정보는 아오바와 영문위키 키누가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