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급 순양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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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型戦艦'''
1. 제원
2. 개요
3. 개발
5. 한계점
5.1. 화력
5.2. 방어력
5.3. 속력
6. 실전
7. 대체 계획
8. 동형함
9. 기타
10. 창작물에서
11. 관련 문서


1. 제원


공고급 순양전함 1번함 공고
金剛型巡洋戦艦こんごうがたじゅんようせんかん一番艦いちばんかん金剛こんごう
구분
건조(1913년)
1차개장(1930년)
2차개장(1938년)
최종사양(1944년)
배수량
27,500t(상비)
29,330t(기준)
32,200t(기준)
36,314t(만재)
전장
214.6m
222m
전폭
28.04m
31.02m
흘수선
8.38m
8.65m
9.6m
보일러
Yarrow식 혼소 36기
로호함본식혼소대형 4기
로호함본식혼소 6기
로호함본식 8기
터빈
Parsons식 직결 증기터빈 2기 4축
함본식증기터빈 4기 4축
출력
64,000 마력
136,000 마력
속도
27.5Knot
26Knot
30.3Knot
항속거리
14Knot로 8,000해리
14knot로 9,500해리
18Knot로 10,000해리
연료
석탄 4,000t, 중유 1,000t
석탄 2,661t, 중유 3,292t
중유 6,000t
승무원
1,201명
주포
Vickers식 14인치 45구경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41식 36cm 45구경
2연장 주포탑 4기 (총 8문)
부포
Vickers식 6인치 50구경
단장 부포곽 16기 (총 16문)
단포신 80mm 단장포좌 12기
(총 12문)
41식 15cm 50구경
단장 부포곽 16기 (총 16문)
41식 15cm 50구경
단장 부포곽 14기 (총 14문)
41식 15cm 50구경
단장 부포곽 8기 (총 8문)
대공포
없음
단포신 80mm 단장포좌 7기
(총 7문)
127mm 2연장 대공포탑 4기
(총 8문)
127mm 2연장 대공포탑 6기
(총 12문)
대공기관포
없음
25mm 2연장포좌 10기
(총 20문)
25mm 3연장포좌 18기 (총 54문)
25mm 2연장포좌 8기 (총 16문)
25mm 단장포좌 30기 (총 30문)
어뢰
533mm 수중발사관 8기 (총 8문)
533mm 수중발사관 4기 (총 4문)
제거
레이더
없음
21호 대공레이더 1기
22호 수상레이더 2기
13호 레이더 경보기 2기
장갑
측면장갑 203mm
갑판장갑 19mm
주포탑천정 75mm
주포탑전면 254mm
부포곽 150mm
측면장갑 203mm
갑판장갑 19 + XXmm[1]
주포탑천정 152mm
주포탑전면 254mm
부포곽 152mm
함재기
없음
수상기 3기
수상기 3기, 캐터펄트 1기

2.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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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급 순양전함 1번함 공고
공고급 순양전함 2번함 히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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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급 순양전함 3번함 하루나
공고급 순양전함 4번함 기리시마
일본 제국 해군의 순양전함 '''공고급 순양전함(金剛型戦艦)'''.

3. 개발


러일전쟁 후 일본 제국은 상당히 자금이 부족한 상태였으며, 대세로 떠오르는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건조는 커녕 남은 전함들 수리하기도 바빴다. 드레드노트급으로 건조되기로 한 사쓰마급 전함은 기술부족으로 前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되어버렸으며[2], 그나마도 시대에 밀려 빠르게 구식화 되는 실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12인치 포를 12문 탑재한 카와치급 전함을 건조하게 되었으나 이것도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 도고 헤이하치로등의 영향으로 인해 12인치 주포 자체가 45구경과 50구경을 혼용하는 식의 불완전한 물건이었다. 당연히 이런 물건으로는 일제사격이나 협차기술을 사용하는데 애로사항이 꽃핀다. 지금이야 사격통제컴퓨터가 알아서 다 하니 다양한 구경장 다양한 구경이 섞여 있어도 사격통제 자체는 문제없지만, 당시는 계산자와 주판, 계산표와 연필을 쓰던 시절이다.[3]
그러자 이대로 있을 수 만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장갑순양함 4척의 건조 계획을 순양전함으로 확대시키고 영국빅커스 사에 설계를 요청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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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순양전함 라이온
기본적으로 영국 해군라이온급 순양전함을 바탕으로 주포를 13.5인치에서 14인치로 강화한 형태이며, 포탑 배치와 함수의 형상등에서도 차이가 있다. 대표적으로 기존의 전함들에는 들이받아 공격하기 위한 충각형 함수가 아직 시대의 유물처럼 남아있지만 공고급의 함수는 속도를 위해 이중만곡형으로 되어있었다. 이외에 레샤디에급 전함[5]의 순양전함 버전이라는 설도 있다. 이는 공고를 설계한 영국 빅커스 사의 설계주임 서스턴 경의 일기를 근거로 한다.
덕분에 세계 최초의 14인치 주포 탑재함이 되었다. 원래 공고는 50구경장 12인치 포 연장포탑을 5기 탑재할 예정이었는데[6], 영국 주재 무관이던 가토 히로하루가 이 포의 성능이 예상보다 나쁘다는 영국측 보고서를 획득하여 해군성을 설득, 14인치로 변경하였다. 공고가 레샤디에의 순양전함판이라는 근거도 서스턴 일기에서 레샤디에의 선체를 늘려서 기관부를 증설하는 방식으로 출력 증강을 하고, 레샤디에의 13.5인치 포탑을 50구경장 12인치 포탑으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최초 설계를 했다고 쓰여져 있는 데서 나왔다. 그리고 일본은 레샤디에의 다포탑도 마음에 들었는지, 후소급과 이세급까지 14인치 6포탑을 달아버린다.
당시는 영일동맹의 전성기라서 영국이 편의를 최대한 봐주었다. 설계안과 함께 1번함 공고는 영국에서 건조되고, 나머지 자매함들은 설계도와 기술을 일본에 몽땅 넘기면서 일본 내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그리고 기술이전을 위해 많은 수의 일본 기술자들이 영국에 찾아와서 1번함 공고의 공사를 보고 참여하면서 경험을 축적하도록 조치했다.[7]
이리하여 공고급 순양전함은 해외에서 도입한 최후의 주력함이 되었고, 그 뒤의 전함들은 모두 일본 내에서 설계 건조되었다. 그리고 후소급 전함 등 일본의 후속 전함의 기초설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건조된 히에이 다음으로 하루나와 키리시마는 일본에서 설계해서 민간 조선소에서 건조됐는데, 이때 두 조선소간의 경쟁이 정말 치열했다고. 그런데 여러가지 사고가 겹쳐서 하루나의 건조가 늦어지는 바람에 키리시마가 먼저 진수되자, 하루나를 맡은 가와사키 중공업 산하 조선소의 주임은 자책감을 못이기고 할복 자살해버렸다. 그래서 일본 해군은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자 하루나를 3번함으로 지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취역일이 같은것도 이것이 이유인데 자살보고를 들은 군이 너무 경쟁하지말라고 해서 취역일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당시 일본해군은 건조예산 승인일을 기준으로 함번을 정하고 있어서 하루나는 이미 3번함이었다.
한편 영국 해군은 공고급 순양전함에 비해 라이온급 순양전함의 주포배치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을 알게되어 라이언급 4번함인 타이거의 주포배치를 다시 설계하여 타이거급 순양전함으로 재탄생시켰다.

4. 마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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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건조되었을 당시의 1번함 공고
이후 유틀란트 해전이 벌어지면서 순양전함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난데다, 더구나 1921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신규 전함의 건조가 제한되면서 있는 전력을 유효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애초에 공고급이 조상인 라이온급보다는 장갑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 그 기준이라는 것이 적 전함을 상대할 수준이 아니므로 이건 당연한 조치였다.
그래서 전간기 기간 동안 대대적인 개장을 받았다. 굵직한 것만 따져도 2차례며, 그 이외의 기간도 소규모의 개장이 지속되었다. 중요한 것만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 1차 개장 이전 - 사거리 증대를 위한 주포 고각 확대와 협차 사격을 위한 방위반등의 장비, 지붕 장갑 증가 등
  • 1차 개장 - 갑판장갑 강화, 보일러 교체, 어뢰 방어를 위한 벌지 설치, 수상기 장비 등
  • 2차 개장 - 보일러 교체 및 위치 변경, 터빈 교체, 함체 연장, 주포 고각 추가 확대 등
  • 최종사양 - 대공포의 지속적인 배치 증가, 주포탑 장갑 두께 증가, 방독 장치 신설, 주 배수 장치 신설 등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장갑을 어느 정도 강화하고 동력기관을 교체하여 속력을 증가시키면서 고속전함으로 재분류되었다.

5. 한계점


하지만 태생 자체가 순양전함이라 그 한계가 존재했다.

5.1. 화력


14인치 45구경의 주포는 건조 당시에는 최상급이었으나, 2차대전 개전 직전의 상황에서는 진짜 구식전함을 제외하고는 전함중에서 최하급에 가까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나가토급 전함의 16.1인치 주포를 이식받을 수 있다면 화력이 급상승하겠지만, 불행히도 바벳 크기나 배수량의 문제로 인해 적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물리적인 화력 증대는 사실상 불가능했다.[8] 이런 이유로 인해 함대결전부대에서 제외된 것이다.
부포의 경우에도 구식 방식인 포곽식 부포를 최종 개장때까지 유지했다. 포곽식 부포는 방어력 면에서의 문제가 큰데, 부포가 설치된 부위는 장갑이 152mm 수준으로 얇았고 포곽의 구멍을 덮는 포방패는 평균 장갑이 51mm 였다. 이런 빈약한 방어력으로는 경순양함의 포탄마저 방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포방패부분의 경우 구축함의 주포 혹은 같은 사양인 적의 부포하나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다. 본래 포곽형 부포는 부포의 사격각도에 제약이 심했고, 후방부를 부포곽이 공용으로 사용한다는 특성상 유폭에 취약했으므로 집중방어구조를 채용하여 최대한 약점을 보완해야 했다. 그러한 까닭에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개장 시 이 부포들을 철거하였고, 미국 전함들은 5인치 2연장 포탑으로 교체하였다.[9]. 심지어 자국의 전함인 이세마저도 항공전함 개장 때 포곽식부포를 철거했다.
그러나 일본 해군은 화력 약화를 감내하지 못하고 끝내 약점을 유지하였다. 일본은 자국의 경순양함 전력이 빈약했던 탓에 소형함을 상대하기 적합한 전함의 부포를 포기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왕 보일러까지 교체하는 수준의 대개장이라면 포곽을 제거하고 89식 대공포를 탑재한다면 대수상 화력을 거의 유지하면서 대공화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러한 간단한 부분에서 미흡했다는 점이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게다가, 부포곽의 경우 상갑판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함선이 고속으로 항해하거나, 풍랑이 거칠어지면 침수의 위험이 있다. 이러면 해당 부위의 부포를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공고급 순양전함도 함수의 2문을 제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부포곽을 줄이고 대신 대공포와 대공기관포를 놓기 시작했다.
물론 공고급이 설계 건조된 시기를 고려하면 포곽의 채용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부포탑이 도입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대개장을 거치면서도 야마토급을 제외한 모든 전함에서 포곽을 유지했다는 것은 오판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10]
대공화력에 대해서는 개장을 통해 수량은 그럭저럭 100문 이상을 확보했으나, 일본군의 전체적인 빈약한 대공능력으로 인해 실제로는 수량에 비해서는 강력하지 못하다. 그나마 후소급 전함처럼 주포탑이 전함 전체에 널려 있어서 대공화기를 설치하기 어렵다는 약점은 없었으니 대공능력에 대해서는 일본군의 전함중 중간 이상은 간다고 보면 된다.

5.2. 방어력


순양전함이라는 특성상 건조당시부터 전함의 화력을 감당해낼 수 없는 장갑을 가진데다가, 강화를 했지만 대응방어가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라서 후술하겠지만 중순양함의 근접사격에 타기실 장갑이 관통되는 일이 일어났다.
  • 수직방어
    • 현측 주장갑 - 203mm KC(하단은 76mm)
    • 중갑판 부위 현측장갑 - 152mm KC
    • 상갑판 부위 현측장갑 - 152mm KC
    • 측면방어격벽
      • 함수방향 중갑판 - 152mm KC
      • 함수방향 하갑판 - 127mm KC
      • 함미방향 중갑판 - 152mm KC
      • 함미방향 하갑판 - 203mm KC
  • 수평방어
    • 보일러실 하갑판 - 19mm NS + 76mm HT
    • 기계실 하갑판 - 19mm NS + 83 ~ 89mm NCNV
    • 최상부 갑판 - 28mm NS
  • 어뢰방어격벽 - 76 ~ 102mm HT
  • 탄약고
    • 갑판평탄부 - 19mm NS + 102 ~ 127mm NVNC
    • 갑판경사부 - 19mm NS + 70mm NVNC
    • 천정 - 13 ~ 19mm NS
    • 바닥 - 19 ~ 25mm NS
  • 장갑함교
    • 측면 - 254mm KC
    • 천정 - 76mm KC
    • 바닥 - 76mm KC
    • 통로부위 - 102 ~ 178mm NCS
  • 주포탑
    • 전면 - 254mm KC
    • 측면 - 254mm KC
    • 후면 - 254mm KC
    • 천정 - 152mm VC
    • 바벳 - 76 ~ 229mm KC + 76mm VC + 64 ~ 127mm VC
  • 부포곽
    • 포방패 - 38mm NS
    • 격벽 - 51mm
일단 원거리 포격전이 대세가 되면서 갑판장갑은 크게 강화했지만 현측장갑이나 포탑장갑 등 수직장갑은 사실상 강화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순양전함시절 그대로였다. 덕분에 기리시마는 약 9km라는 가까운 거리에서 워싱턴의 16인치 주포 일제사격에 대파되며 강화한 갑판장갑 덕을 못봤고,[11] 히에이는 미국 순양함의 8인치 주포에 타기실이 관통되어 침수가 진행되었기에 제대로 기동하지 못하다가 결국 항공기들에게 공습까지 받게 되고 결국 자침하고 말았다. 하여튼 개장을 통해 장갑을 보강 했지만 한계점이 있었다.
그리고 주포탑의 배치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함 전체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전방의 1, 2번 주포탑은 인접한 반면, 후방의 3번 주포탑과 4번 주포탑은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원본 설계의 한계점이다. 공고급 순양전함이 개발될 당시의 영국은 순양전함을 설계할 때 배수량 확보를 위해 전함에서 장갑을 줄이고 주포탑 1-2기를 제거한 형태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12] 그리고 당시의 영국 전함은 중앙부 주포탑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공고급 순양전함을 설계할 때에는 서서히 중앙부 주포탑의 문제점이 알려지던 시기라 중앙부 주포탑을 약간 후방으로 물러나게 해서 후방 사계를 확보하는, 그나마 과도기적이긴 하나 나름대로 선진적이던 설계가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공고급 순양전함의 3번 주포탑은 중앙부 주포탑의 후신이므로 다른 포탑과는 달리 혼자서 뚝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일단, 3번 주포탑의 사용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주포탑이 서로 떨어지게 된 결과, 집중방어가 힘들어지고 포탑과 그 주변을 방어할 장갑을 더 많이 할애해야 한다.
이 어정쩡한 3번 주포탑 위치의 흔적은 페이퍼플랜으로 남은 아마기급 순양전함, 카가급 전함, 키이급 전함의 설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운데가 비어 보이거나 있을 만 한 자리에 주포탑이 들어가 있는 모습은 나가토급 전함까지 이어진다. 나가토급 1번함이 유틀란트 해전 1년 뒤인 1917년에 기공됐다는 것을 고려하면 설계는 그 이전이므로, 집중방어 개념이 발명되기 한참 전에, 중앙부 포탑의 위험이 증명되지 않았던 시절에 설계됐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단, 그래도 나가토급은 집중방어와 거의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이외에도 구일본해군의 전함 외관이 공고급부터 나가토급까지는 스팀펑크 분위기다가 야마토급에 와서 일신하는데 이것은 야마토급이 나가토급의 20년 뒤인 1937년에 기공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찬가지로 쉽게 납득할 수 있다.

5.3. 속력


2차 개장 이후로 30노트의 속도를 가지게 됨으로서 겉으로는 매우 우월해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비화가 있었다.
위 제원의 1차 개장을 보면 갑자기 속도가 원래보다 1.5노트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나가토급 전함처럼 보일러만 교체하고 터빈 및 주기관을 교체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래 이런 구식 군함의 대개장시에는 평소에는 두꺼운 장갑 내부에 있어서 교체가 어려운 동력기관을 좀 더 발전된 물건으로 완전히 교체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가 안 가는 행위다. 당연하게도 장갑을 강화하고 배수량이 늘었는데, 출력은 그대로니 속도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순양전함의 속도를 가지지 못한 점이 전함으로 함종변경이 이루어진 것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문제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순양전함이 아닌 전함으로써는 방어력이 정말 만족스럽지 못한 군함이 속도까지 느려지니 엄청난 비판이 쏟아지게 되었고, 결국 8년만에 다시 배를 대대적으로 뜯어낸 후 보일러와 기관을 다시 교체하고 동력기관의 배치를 변경하는 대작업을 한 끝에 속도를 크게 늘리게 된다. 결론적으로 자금과 시간이 2배로 들어가고, 멀쩡한 배가 전쟁 직전에 다시 도크에 들어가는 등의 불필요한 과정이 추가되고 만다.
사실 이런 실수(?)는 의외로 영국 해군에서도 있었는데 건조시 32.5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던 리나운급 순양전함이 1차로 개장을 받은 이후 30노트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으로 속력이 감소하는 바람에 2차 개장에서 기관과 추진계통을 교체해서 31.5노트 수준으로 속력을 끌어올린 사례가 있다. 물론 이쪽은 그래도 30노트는 넘겨서 아쉬운대로 순양전함으로 쓸 수 있는 수준이기는 했다.

6. 실전


태평양 전쟁의 주역은 더 이상 전함이 아닌 항공모함이므로 모든 함종을 통틀어서 일본군 최고의 수훈함 자리는 쇼카쿠급 항공모함들에게 돌아가야 하겠지만, 전함 중에서는 그나마 태평양 전쟁에서 적극적으로 싸워온 공고급이 최고의 수훈함으로 인정받는다. [13]
태생이 순양전함인 탓에 제대로된 전함과 맞짱을 뜨기엔 부족한 스펙을 가져서 일본해군의 함대결전 플랜에서는 제외. 대신 30노트라는 빠른 속도, 그리고 순양함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화력과 방어력을 살려 구축함 위주로 편성된 수뢰전대의 기함으로서 야간전 중심으로 운용되었다. 공고급에 배속된 함장들도 죄다 전함의 포격전과는 거리가 먼 수뢰전 전공자들이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제공권이 연합군측에 있는 탓에 주요시설을 항모로 공격할 수 없으므로 최대한 다가가 전함의 포격으로 직접 공격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적의 항공기가 뜨지 못하는 야간에 쳐들어가 한바탕 쏟아부은 뒤 해가 뜨기 전에 최대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라는 이유였다. 이 '빨라야 한다'라는 조건 탓에 결국 30노트대의 속력을 내는 공고급 밖에는 딱히 수가 없었던 것. 덕분에 활약했던 전장도, 최후를 맞은 전장도 모두 야간전이었다. [14]
과달카날 전투에서는 공고와 하루나가 1942년 10월 14일 야간에 핸더슨 비행장에 포격을 가해 비행장을 거의 완전히 마비시켰고 이를 지키던 미 해병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더 퍼시픽에서의 포격 장면
당시 포격에 대한 묘사 14인치가 비록 동시대 전함들에 비해서는 가장 낮은 구경에 속했지만 지상에서 보이는 화력은 5인치나 8인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위력이었으며, 이후 미 해병대는 전함의 화력지원에 광적인 집착을 보인다.
이후 히에이와 기리시마가 핸더슨 비행장을 재차 포격하려 하였으나 미국 수상함대의 처절한 희생으로 저지되었다.
결과적으로 공고급은 일본의 전함들 중 가장 많은 전장을 누비며 활약하였으나 격침 전과 자체는 별로 없다. 그나마 유의미하거나 특색있는 전과도 1번함 공고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USS 갬비어 베이(CVE-73)[15]와 '''아군''' 중순양함 초카이 격침 정도이다.
쇼카쿠급 항공모함도 마찬가지지만 수훈함이었다는 것은 동시에 개고생을 많이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함생의 최후도 각각 다르다. 공고는 잠수함이 쏜 어뢰를 맞고 침수로 한쪽으로 기울다가 탄약고내의 주포탄들이 쓰러지면서 발화해서 폭침당했으며, 히에이는 과달카날 전투중 제1차 과달카날 해전에서 순양전함이라는 말도 무색할 정도로 야간에 미국 중순양함이 근접해서 쏜 포격에 타기실이 파손되며 항해기능에 장애가 생겨 제대로 후퇴하지 못하다가 추가 공습까지 받고 자침했으며, 하루나는 가장 오래 살아남았지만 구레 군항 공습에서 미군의 폭격에 두들겨맞아 착저하며 사실상 함생이 끝났고, 키리시마는 역시 과달카날 전투중 제2차 과달카날 해전에서 미국의 신예 16인치 전함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2번함 워싱턴이 발사한 75발 중에서 9발의 직격탄을 맞고 격침당했다.[16]
어쨌든 1~4번함 모두 태평양을 내달리며 마지막까지 적과 싸우다가 가라앉은, 일본 해군이 그렇게나 좋아 죽던 '야마토 정신' 그 자체의 함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순양전함이라는 태생과, 태평양 전쟁 개전 시점에서 30년이 넘은 노령함이라 함대 결전에서는 쓸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전함이 필요한 호위 임무등에 우선적으로 배치받아 연합군과 싸워왔지만 그 대가로 일본 해군 전함 중에서 가장 빛나는 전공을 세웠으며, 일본 전함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높이 평가받고 있다. 속력이 느리단 것 단 하나 때문에 함대의 발목을잡는 골칫거리로 변해버린 후소급과 이세급을보면 참으로 전함다운 삶을 보냈다고 볼 수 있다[17] 물론 고속전함인 나가토와 야마토도 있지만 함대결전사상에 빠져 아끼다가 제 역할 못하고 침몰 해 버렸지만

7. 대체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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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서 20년 이상 된 노후함들은 조약에서 제한한 범위 내에서 새로운 전함을 건조해서 대체해도 된다는 조건에 따라서 공고급을 대체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후지모토 키쿠오가 공식적으로 설계안을 만들고 히라가 유즈루가 별도로 설계안을 제출했다. 특이한 점으로는 후지모토 계획안에선 아예 '''조약을 파기하고''' 개장할 계획까지 세워놨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 위키피디아 항목 참조. 결국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전함 추가 건조 금지 조치가 연장되면서 건조는 모두 취소되었지만 야마토급 전함의 건조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여담으로,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을 극화한 애니메이션 <일곱 도시 이야기> 에 등장하는 전함의 모델이 저 그림들이다(국가는 일본이 아니다).

8. 동형함


함명의 유래는 모두 일본의 산 이름에서 따왔다. 원래 일본의 전함 이름은 옛 지방 명칭에서 따오는게 관례이지만, 본급이 산 이름을 따 명명된 것은 본래 순양전함으로 건조되었기에 순양함의 명명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순양함으로 예산이 배정되었던 것이, 그 이후 아예 순양전함의 함명도 산 이름으로 따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일본 해군은 그 이후 단 한 척의 순양전함도 취역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공고급만 산 이름을 딴 순양전함으로서 남았다. 대신 항공모함으로 개장된 아카기 및 그 자매함으로서 원래 항공모함이 될 예정이었던 아마기급 순양전함에 그 흔적이 남았다. 5번함 히라누마도 있다는 카더라가 있으나 이는 미국의 오보다.
네임쉽인 공고의 경우 우연히도 한국의 금강산과 한자까지 똑깥다. 실제 공고 산은 나라와 오사카 인근에 있는 산이다.
공고 (金剛/금강)
1944.11.21 침몰
히에이 (比叡/비예)
1942.11.13 침몰
하루나 (榛名/진명)
1945.7.24 침몰
키리시마 (霧島/무도)
1942.11.14 침몰
그리고 과달카날과 정말 좋은 의미로든 안좋은 의미로든 악연이 깊은 함급이다. 공고, 히에이, 하루나, 키리시마 4척이 모두 다 과달카날 전투에 참전했으며 히에이와 키리시마는 과달카날에서 함생을 끝냈다.
여담으로 하루나는 격침 오인보고를 일본 해군 내에서 가장 많이 들은 함선이고 태평양 전쟁 전체에서는 두번째로 많이 들은 함선이다. 1위는 미국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9. 기타


영국에서 건조된 1번함 공고와 일본에서 건조된 자매함들 간에 품질 차이가 있어서, 일본에서 건조한 공고급을 개장하는 데 쓴 드릴을 1번함 공고에 사용했더니 드릴이 장갑판을 못 뚫고 구부러지는 바람에 영국에서 신형 드릴을 수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루머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히에이도 마찬가지로 영국제 VC강판을 사용했으나 히에이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적힌 곳마다 드릴이 굽었느니 부서졌느니, 아니면 단순히 구멍이 뚫리지 않았을 뿐이니 등 제각각 다르게 전해지는 점, 건조 당시면 모를까 공고급의 1차 개장 시점인 1930년에 VC강은 이미 구식 기술이었다는 점[18]을 고려하면 신빙성은 많이 낮은 편이다. 1차 개장 이전의 일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게, 공고급은 1차 개장 이전까지는 장갑에 드릴을 사용할 만한 개장을 받은 적이 없다.
다만 당시 일본의 공구 제작 기술이 영국이나 독일에 비해 많이 떨어졌던 건 사실이었다. 2차대전 때 일본이 전문 공작함[19]아카시 단 한 척밖에 가지지 못한 이유가, 아카시에 탑재한 독일산 기계를 복제하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미군이 악착같이 찾아내 아카시를 부순 뒤에 동남아의 일본군함들은 전투 후 신속한 수리를 받지 못해 본국으로 귀환하거나 전장에 복귀하기 힘들어졌다.
1차 대전이 발발할 즈음에 영국이 일본에게 공고와 동형함의 대여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공고급도 충분히 1선급 순양전함이었고 독일을 해군을 견제해야하는 영국 입장에서는 군함 한척 한척이 아쉬운 상황이라 외국에서 주문해서 건조하던 군함도 구입해서 썼고 당시 해군장관인 처칠은 다른 나라가 주문해서 건조하던 배도 강탈해서 사용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10. 창작물에서


여기에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와 콜라보하여 안개의 전함버전으로도 나왔다. 자색이 공고, 분홍이 히에이, 황색이 하루나, 녹색이 키리시마. 원작처럼 합체하거나 초중력포는 못쓴다. 함장은 원작의 멘탈모델로 설정되어 있다.
  • 일본의 DMM 에서 서비스 중인 웹게임 함대 컬렉션에도 4척의 자매 함이 모두 나온다.[20]
  • 전함소녀에서는 모두 다. 모두 순양전함이지만 공고는 개장하면 전함으로 분류된다.
  •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에서 안개의 함대로 등장한다.
  • 스틸 오션에서 일본트리 4티어,6티어전함으로 등장한다.(다만 4티어는 공고프로토타입이다)
  • 우주전함 야마토 2199[21]에서 UN 우주해군 공고급 우주전함이라는 함종으로 키리시마가 등장했다.
  • 벽람항로에서도 4척 모두 등장한다. 다만 적으로만 등장하다가 미카사이벤트로 히에이가 선행건조로, 이후에 로그인보상으로 키리시마가 풀렸으며, 이후 나가토이벤트로 콩고하루나가 포인트교환으로 풀렸다. 공고를 제외하고 일본 전함은 대부분 오니가 모티브라 뿔이 달렸으며,(공고에 경우 뿔이 장식으로 달린 모자를 쓴다. 비서함 대사에서 이 뿔은 모자 장식이라고 직접 언급.) 공고는 영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고증했는지 금발로 나온다.
  • 미드웨이(2019)에서 아카기를 격침하고 돌아갈때 주인공이 기총을 쏴댔던 전함이 바로 이 전함이다
  • Naval Front-Line에서 일본군 순양전함으로 개장 전과 개장 후가 각각 나온다. 나가토 주포를 설치 할 수 있다.[22]
  • Naval Creed:Warships에서 일본 전함 테크트리 2티어로 나온다, 30노트로 티어대비 고속에다 포도 상당히 좋은 명품전함, 다만 옆구리 장갑이 많이 아쉬운 편이다.
  • 어비스 호라이즌에 공고와 히에이가 등장한다.
[image]

11. 관련 문서



[1] 부위에 따라 다름[2] 드레드노트처럼 All big gun을 지향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전 드레드노트급이 되었다.[3] 체험해보고 싶다면 네이비필드에서 마운트마다 구경장이 다른 함포를 달아놓고 수동조준해 사격해보자.[4] 일본은 러일전쟁으로 인하여 파산상태였기 때문에 건조할 돈이 없었다.[5] 오스만 제국이 영국에 주문건조한 전함. 단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영국이 자국 해군의 전력증강을 위해 술탄 오스만 1세와 함께 무단으로 압류했고, 레샤디에는 에린으로, 술탄 오스만 1세는 애진코트로 개명해버린다. 이는 당연히 오스만 제국의 분노를 불렀고, 거기에 마침 독일 제국이 이를 이용해 어차피 본국으로의 귀환이 불가능해진 지중해 해역의 순양전함을 오스만 제국에 넘겨주는 척 하면서 오스만 국적으로 러시아를 공격해버리면서, 오스만 제국도 독일을 편들어 1차대전에 강제로 참전하게 된다. 이를 두고 "독일은 전함 한 척으로 동맹국을 얻었다"는 말도 나돌았다나... 이 사건이 처칠에게 끼친 결과는 갈리폴리, 영국과 세계에 장기적인 결말은, 오스만 제국 해체, 터키 공화국 성립, 중동 제국(諸國)과 이스라엘 독립의 단초 등이다.[6] 이 전함이 빅커스 설계 472형 순양전함이다.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일본 4티어 프리미엄 전함 이시즈치로 구현되어있다.[7] 사실상 엄청난 특혜를 베푼 셈이다. 2017년의 시점으로 적절한 예시를 들자면 미국이 한국에게 F-35의 자체생산, 미국 현지공장에 공식적으로 한국 기술자 파견, 설계도와 관련기술 제공까지 죄다 허가했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당시에는 다른 국가가 돈 주고 주문한 무기가 자국군의 무기보다 좋으면 선금을 줘도 시비를 걸던 일이 빈번했으며 군함은 오늘날의 핵무기와 비슷한 수준의 전략무기였다. 영국은 앞의 주석에서 보듯이 남이 주문한 도 멋대로 강탈하는 국가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특혜다. 다만 배 강탈은 처칠이 좀 또라이 기질을 보인거고 영국 내부에서도 이건 좀 아니지 않냐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처칠의 똥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8] 육상포대에서 공고급 순양전함의 바벳과 같은 크기의 16.1인치 단장포탑을 운용하긴 했었지만, 이런 물건으로는 협차나 일제사 등에 애로사항이 꽃피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9] 미국의 구식 전함들은 2차대전기 오버홀할 때 대공무장을 증설하면서 동시에 5인치 양용포를 달았다.[10] 게다가 미국의 경우는 네바다급 전함 이나 펜실베니아급 전함을 개장할 때 포곽식 부포를 몽땅 떼어내고 5인치 38구경 양용포 8기를 설치했다.[11] 다만 한국에서는 기리시마와 교전했던, 세대부터가 20년 이상 차이가 나는데다가 처음부터 전함으로 만들어진 사우스다코타가 키리시마의 14인치 주포와 일본 중순양함의 8인치 주포에 역시 초근접거리에서 집중사격을 받고도 중요부위는 피해를 입지 않고 자력으로 귀환해 수리를 받은 것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1910년대에 건조된 순양전함과 1930년대 건조된 전함의 차이는 엄청나고, 미국은 네바다급 전함부터 집중방어 개념을 도입해서 집중방어 설계의 완성도는 타국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되었다고 보는 게 옳다.[12] 이는 리벤지급 전함리나운급 순양전함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리벤지급 전함에서 장갑을 줄이고 포탑 1기를 제거한 것이 리나운급 순양전함이다[13] 당시 일본해군이 그토록 꿈꾸었던 거포거함들이 맞붙는 함대결전이라는게 태평양 전쟁사를 통틀어 겨우 레이테 만 해전정도 뿐이었고, 그마저도 결국 미국 해군에게 탈탈 털려버렸다.[14] 참고로 당시 일본의 야간전 플랜은 함대에서 제일 크고 튼튼함 함이 기함으로서 탐조등을 키고 적들의 온갖 공격을 받아내는 사이 수반함들이 탐조등에 비춰진 적을 쓸어담는 단순무식한 것.[15] 그나마도 미군은 토네급 중순양함 2번함 치쿠마에 의해 격침되었다 주장하고, 일본은 야마토급 전함의 전과라는 주장과 공고급 전함의 전과라는 주장이 갈린다. 다만 야마토급 전함은 지근탄이라고 주장되고 공고급 전함은 직격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공고와 야마토 중 누가 침몰시켰냐에 대해서는 야마토가 더 가까이 있었고 포각이 낮아 명중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점에서 야마토를 지지하는 쪽과 직격탄을 낸 공고급을 지지하는 쪽의 주장이 갈린다.[16] 다만 자료에 따라 20발 가량이 명중했다는 증언도 있다.[17] 마찬가지로 느려터진 미국의 표준형 전함도 격전지에 보내기보단 수송로 호위쪽으로 허숭세월 보냈다[18] 당장 공고의 1차개장에 더 이후 기술인 VH강에 기반을 둔 NVNC강이 사용되고 있다.[19] 조선소가 아닌 일선에서 손상된 함선을 수리할 수 있는 배. 1/3토막이 없어진 배를 대양항해가능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주포탑이 파괴됐으면 없는대로 작전투입할 수 있게 재생하기도 한다. 아카시와 대응해 유명한 미국 선박은 요크타운과 엔터프라이즈를 살려내 전황을 뒤엎는 데 큰 공헌을 한 베스탈.[20] 단,여기선 공고가 아닌 "콩고"라고 발음한다. Kongo를 그대로 발음했기 때문이다.[21] 2199로 리메이크되면서 지구측 우주함대의 함선에 구 일본 해군 함선의 이름을 붙였다.[22]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바벳크기 등의 문제들로 인하여 공고급은 절대 나가토급의 주포를 설치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