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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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엔터프라이즈는 태평양 전쟁 당시 크게 활약한 미합중국 해군의 항공모함으로, 2차 세계대전 전 기간, 전 참전국가를 통틀어 최고로 치는 수훈함이자, 사실상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데 가장 크게 공헌했다해도 과언이 아닌 명 항공모함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미국 해군이 보유했던 항공모함 8척[1] 중 새러토가, 레인저와 함께 종전까지 살아남은 세 항공모함 중 하나로, 잿빛 유령(Grey Ghost)[2] , 질주하는 유령(Galloping Ghost), 빅 E, 럭키 E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미합중국 해군과 일본 제국 해군 모두 나름대로 수훈함이 많았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연이은 격전에 참가하면서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데 일조했으며, 결정적으로 끝내 살아남기까지 했다.
진취[3] ,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일을 이룩함'이라는 함명에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함생을 살았던 배이다.
2. 제원
- 전장 : 250m 1943년 이후, 252m
- 전폭 : 수선하 25m ,최대 33m 1943년 이후 수선하 29m, 최대 35m
- 비행갑판 : 245m(1943년 이후 247m) x 26m
- 격납고 : 166m x 19m x 5.3m
- 흘수선 : 8.5m
- 기준배수량 : 19,800톤, 1943년 이후 21,000톤
- 만재배수량 : 25,500톤, 1943년 이후 32,060톤
- 최대출력 : 120,000hp
- 최대속력 : 32.5kt
- 항속력 : 15kt로 10,400해리
- 장갑 : 측면 4인치, 갑판 1.5인치
- 무장[7] :
- 개전 당시 - 5인치 38구경 양용포 8문, 1.1인치 75구경 4연장 기관포 4기[4] , 12.7mm 기관총 24문
- 1942년 초기 - 5인치 38구경 양용포 8문, 1.1인치 75구경 4연장 기관포 4기, 20mm 기관포 30문
- 1942년 후기 - 5인치 38구경 양용포 8문, 1.1인치 75구경 4연장 기관포 1기, 40mm 4연장 기관포 4기[5] , 20mm 기관포 44문
- 1943년 - 5인치 38구경 양용포 8문, 40mm 기관포 40문, 20mm 기관포 50문
- 1945년 - 5인치 38구경 양용포 8문, 40mm 기관포 54문, 20mm 기관포 32문[6]
- 함재기 수[8] : 80기~90기, 최대 96기
- 승조원 : 2,919명
- 동형함 : 요크타운, 호넷
- 엔터프라이즈의 시기별 항공단
3. 연혁
3.1. 건조
1934년 7월 16일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 기공되고, 1936년 10월 3일 진수, 1938년 5월 12일에 취역했다. 요크타운과 함께 렉싱턴과 새러토가가 있는 태평양 함대에 배속되어 진주만을 모항으로 했으며, 항공기 수송과 훈련에 전념하게 된다. 이후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요크타운은 대서양으로 이동하였고, 엔터프라이즈는 렉싱턴, 새러토가와 함께 태평양에 남아 있었다.
3.2. 진주만 공습
1941년 12월 2일, 웨이크 섬에 와일드캣 12기를 배달하고 돌아오던 엔터프라이즈호는 원래대로라면 12월 6일에 입항했어야 하는데, 오다가 폭풍을 만나 일정이 하루 늦어진다. 일본은 그 다음날인 12월 7일에 나구모 함대(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쇼카쿠, 즈이카쿠)를 동원해서 진주만 공습을 감행했고, 진주만은 피바다가 되었다. 일본군의 공습소식을 들은 엔터프라이즈는 서쪽에서 진주만으로 접근중이었고, 남쪽에서 일본 함대를 찾아 공격하는 임무를 받았지만 일본 함대는 북서쪽에 있었기에 허탕을 친다. 게다가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 중 일부는 명령에 따라 항모로 돌아오지 않고 진주만의 포드 섬 비행장으로 귀환했는데, 공습을 받아서 긴장한 아군 대공포 부대가 함재기가 일본군 인줄 알고 오인사격을 해서 격추당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엔터프라이즈는 수색을 마치고 다음날인 12월 8일 진주만에 입항했고 급유작업을 마친 뒤 다시 다음날인 12월 9일 재출격했다. 12월 10일 엔터프라이즈는 일본의 해대 6형 잠수함인 I-70을 침몰시켰고 이는 태평양 전쟁이 개전된 이후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처음 침몰시킨 적함이었다.
1941년 12월 8일, 웨이크 섬은 일본군의 공습으로 와일드캣 8기를 잃는 등 큰 피해를 입는다. 일본군은 충분히 웨이크 섬의 방어력을 약화시켰다고 판단하고 11일에 상륙함대(기함 유바리)를 보냈지만, 미 해병대는 와일드캣 4대와 군함에서 떼어온 해안포 6문으로 반격한 끝에, 2척의 구축함을 격침시키고 300명이 넘는 일본군을 사살했다. 특히 구축함 키사라기는 (엔터프라이즈가 갖다준) 와일드캣의 폭격으로 격침되었고 승조원 전원이 사망했다. 망신을 당한 일본군은 일본 해군의 명예를 걸고 웨이크 섬을 점령하기로 하고,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 2개의 항모전단(소류, 히류)과 제6전대(기함 아오바) 등의 정예부대를 동원해서 간신히 웨이크 섬을 점령한다. 자세한 내용은 웨이크 섬 전투 참조
1942년 2월 1일, 엔터프라이즈가 포함된 함대는 일본군이 점령한 길버트 제도를 기습하여 적함 3척을 침몰시킨다. 2월 24일에는 웨이크 섬을 공격하고, 3월 4일 마커스 섬을 때린다. 이때 적의 공격으로 인한 지근탄으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3.3. 둘리틀 특공대
1942년 4월 8일, 엔터프라이즈는 항모 호넷과 함께 비밀임무를 위해 출동한다. 그러나 4월 18일에 일본군이 그들을 발견했고, 여기서 엔터프라이즈의 전투기가 항공엄호를 담당하는 가운데 호넷이 배에 탑재한 B-25 미첼 폭격기 편대를 발진시킨다. 이들이 바로 둘리틀 특공대였고, 일본은 대낮에 수도 도쿄를 폭격당하면서도 한 대의 폭격기도 못 잡는 치욕을 당했다. 일본군도 둘리틀 특공대가 출격했다는 정보 자체는 입수했지만, PBY 카탈리나 수상기가 아니며 미 해군은 카탈리나 이외의 쌍발기는 운용하지 않는다며 무시했다가 대낮에 대놓고 도쿄를 공습당하고 말았다.
사실 공습 자체가 일본에 엄청나게 피해를 준 건 아니다. 하지만 백주대낮에 미군에게 수도인 도쿄가 빈집털이를 당했다는 것 자체가 진주만 공습으로 잔뜩 기고만장해하던 일본에게 한방 먹였다는 의미가 컸고, "그날 히로히토가 공습을 모면한 건 우리가 봐줘서 그런 거다"라는 루즈벨트의 조롱까지 나오자 일본은 잔뜩 부들부들댔고,[9] 망신살이 뻗친 일본 해군은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할 방안을 찾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야마모토가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던 미드웨이 공격방안이 채택되었고, 일본은 연합함대를 출격시킨다. 핵심 전력은 당연히 나구모 제독의 항모전단(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였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이라는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미드웨이 공격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아래에 나오는 산호해 해전을 참조.
한편 둘리틀 특공대 작전을 수행할 당시 엔터프라이즈가 호넷과 직접 합류하기 직전인 1942년 4월 12일에는 소소한 사고가 발생했다. 한밤중에 갑자기 비상 사이렌이 울려퍼져 전 인원이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갔다. 비밀 임무를 앞두고 터진 일이라서 함내가 긴박하게 돌아갔는데, 사실은 당직근무를 서고 있던 인원이 졸다가 비상 사이렌 버튼을 잘못 누른 것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배틀 360'> 에 해당 증언이 있다.
3.4. 산호해 해전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이 도쿄를 공습하러 간 사이에 산호해 해전이 벌어진다. 미군은 요크타운과 렉싱턴을 투입해 일본군에 맞섰으며, 지휘관은 프랭크 플레처 제독.
이 해전에서 일본군은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와 5개의 항모전단(쇼카쿠, 즈이카쿠)을 투입하였는데,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를 엄호하던 제6전대(기함 아오바)가 미 항모전단의 위치를 발견해서 5항전에 알려준다. 그러나 5항전은 쇼카쿠의 정찰기가 발견한 미군 항모전단을 공격하기 위해 이 정보를 무시했고, 플레처는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를 일본군 주력부대로 착각해서 총공격을 감행한다.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의 경항모 쇼호는 중과부적으로 침몰했고, 쇼카쿠와 즈이카쿠의 함재기들도 미군 항모전단을 격파했는데, 그 항모전단은 급유함 네오쇼(AO-23)와 그 호위인 심즈(DD-409)였다! 쇼카쿠 정찰기가 함종을 착각하는 바람에 승리의 기회가 날아간 것.
오후에 다시금 출격한 쇼카쿠와 즈이카쿠의 함재기들이었지만, 쇼카쿠 정찰기가 또 삽질을 하는 바람에 미 항모전단을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채 함재기들은 귀환하는데, 착함하려던 배는 미군 항모였고 일본기들은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다음 날 벌어진 전투에서 쇼카쿠는 대파된다. 즈이카쿠는 한 방도 안 맞았지만, 전력을 크게 상실한 일본군은 포트 모르즈비 침공을 포기했다. 미군도 렉싱턴을 잃고 요크타운이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전략적 승리는 미군의 것이었다.
산호해 해전 이후, 미군은 모든 전력을 미드웨이에 긁어모은다. 요크타운은 해전에서 중파당해 전선에서 응급수리와 진주만에서 3일 정도 수리 기간을 받아 완벽하게 수리 되지 않아서 미드웨이에 파견된 시점에도 함선에 기술자들이 남아 수리를 진행중인 상태였다. 이것은 미드웨이로 요크타운을 보내면서 동력과 엘리베이터는 멀쩡하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항공모함을 단 한 척도 놀릴 여유가 없다며 수리중인 상태로 전선으로 보내라고 직접 명령하였기 때문이었다. 3개월은 걸릴 배를 3일만에 고치라는 건 무리한 요구지만, 까라면 까는 거다.[10] 그리고 홀시가 병원에 입원했으므로, 프랭크 플레처가 엔터프라이즈, 요크타운, 호넷을 지휘하는 함대 사령관이 된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이라는 쇼카쿠는 대파된 탓에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하지 못했다. 문제는 멀쩡한 즈이카쿠까지도 미드웨이 공격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전 가능한 일본 항모라면 류조와 준요도 있었지만, 일본군은 이들을 알류산 열도로 보내버렸다. 덕분에 요크타운, 엔터프라이즈, 호넷이 상대할 항모는 4척(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으로 줄어들게 된다.
3.5. 미드웨이 해전
1942년 5월 25일에 진주만에서 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미 해군의 주력으로서 나구모 제독의 항모전단(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과 격돌하였지만 크게 고전한다. 미군의 구식 뇌격기와 엉터리 어뢰, 훈련이 부족한 조종사들로는 숙련된 일본군의 제로센을 상대할 수 없었다. 미군 미드웨이 기지 소속 항공기와 항공모함 소속 뇌격기 조종사들은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결국 큰 피해를 보며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했고, 일본군은 환호를 올리며 미군을 공격하기 위해 공격대를 발진시킬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일본군 구축함 아라시의 뒤를 밟은[11]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폭격기 돈틀리스들이 일본 항모를 발견했고, 그대로 공격을 개시한다. 일본 전투기들은 미군 뇌격기들을 때려잡기에 바빴기에 수면 가까이로 내려와있었고, 카가의 견시가 황급히 "적기 직상! 급강하!"를 외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기에 카가는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폭격기들의 공습으로 작살이 났다. 즈이카쿠와 류조, 준요 같은 항모들을 최대한 많이 투입했더라면 미군 급강하폭격기들의 요격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일본군은 그러지 않았고 대가는 참혹했다.
나구모 기동부대의 기함인 아카기는 모든 미군기들이 카가로 몰려가는 바람에 살아남았지만,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리처드 홀시 베스트 대위가 이끄는 급강하폭격기들에게 발각되었다. 일본군도 필사적으로 대공사격을 퍼부었으므로 1발은 빗나갔지만, 1발의 지근탄이 아카기의 키를 고장냈고, 베스트 대위의 베스트 샷이 아카기를 파괴했다. 미드웨이 해전 이전에 일본군이 모의전을 벌였을 때는 3발의 폭탄이 아카기에 맞고 소파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베스트 대위는 딱 한 발로 그런 계산을 뒤엎은 것이다. 소류도 같은 시각에 도착한 요크타운의 함재기들에게 박살나버렸고, 이것이 바로 태평양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운명의 5분이다.
겨우 살아남은 히류는 반격에 나서서 요크타운을 대파시켰지만 요크타운의 승조원들은 엄청난 피해 복구 능력으로 고작 1시간만에 겉으로 멀쩡해 보일 정도까지 배를 수리했고, 다시 공격해온 히류의 공격대는 그걸 보고 "저건 요크타운이 아니라 다른 항모다!"라고 착각해서 다시 공격을 퍼부었으며 요크타운 혼자서 일본군의 공격을 모두 흡수하는 결과를 낳았다. 요크타운의 함재기들은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으로 대피한 후 복수를 다짐했고,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은 함재기들을 발진시켜 최후의 전투에 나선다. 이들에게 발각된 히류는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했으나 폭탄 4발을 맞고 화재로 침몰했으며,[12] 아카기를 박살낸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폭격기 조종사 베스트 대위는 이 때도 명중탄을 내었다.
이후 요크타운은 전투가 끝난 직후까진 대파된 상태로나마 간신히 살아있었지만 전투가 마무리된 후 진주만에서의 수리를 위해 예인하던 도중 근처를 배회하던 伊-168의 뇌격에 의해 예인중이던 구축함 해먼이 침몰당하고 요크타운도 어뢰에 명중당해 회복불가 상태가 되며 함생을 마쳤다.
이렇게 해서 미드웨이 해전은 미군의 대승리로 막을 내렸고, 일본군은 가장 강력한 항모 4척을 모조리 잃고 말았다.
3.6. 과달카날 전역
3.6.1. 사보섬 해전
연합함대의 정규 항모 4척을 침몰시키는 대승리를 거둔 엔터프라이즈는 1942년 7월 15일에 진주만에서 출격, 새러토가와 와스프와 합류한 후 8월 7일에 시작된 미 해병대의 과달카날 점령을 지원한다. 이날 일본군의 제8함대가 다가오는 것을 미군이 발견했지만, 함종을 착각한 탓에 과달카날이 아닌 다른 곳으로 하는 함대라고 오판한다.
8월 8일, 기동부대 지휘관인 프랭크 플레처 제독은 기동부대의 피해를 우려하여 함대를 철수시켰다. 과달카날 상륙함대를 지휘하던 리치몬드 K. 터너 제독은 "주력함대가 비열한 핑계를 치면서 도망쳤다!"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한 항공모함들은 이미 떠난 후였다. 다만 플레처 제독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도 무리가 아닌 게, 미군의 입장에서 항공모함은 굉장히 중요한 병기였다. 전함이 진주만에서 괴멸되었기에 엔터프라이즈 같은 항모들이 주력함이 된 것인데, 이들마저 사라지면 미군은 연합함대에 맞설 수가 없었다. 플레처 제독으로서는 무슨 짓을 해서든 항공모함을 지켜야 했으므로 위험을 최대한 피하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상륙함대를 엄호하기 위해 다수의 순양함과 구축함들이 남아있었으므로, 상륙함대가 무방비인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일본군 제8함대의 구성을 보면 미군이 질 이유는 없었다. 기함인 중순양함 초카이만 그럭저럭 신형이고, 주축인 제6전대(기함 아오바)의 중순양함 4척은 미군 중순양함보다 성능이 뒤떨어졌던 것. 게다가 텐류, 유바리, 유나기는 기함과의 무선통신도 안 되는 고철덩어리였으니, 미 함대가 경계만 제대로 한다면 일본군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놀라운 전술로 모든 것을 극복했다.[13] 일본군 중순양함 아오바가 정찰기(아오바 1호기)를 날렸던 것. 이 정찰기는 뻔뻔하게도 한밤중에 불을 켜고 미 함대의 머리 위에 나타났고, 과달카날의 모든 미군이 이 정찰기를 목격했지만 "한밤중에 불을 켜고 우리 머리 위로 날아올 정도로 정신나간 일본기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저건 우리 비행기다"라는 착각을 해버렸다. 결국 아오바 1호기는 미 함대의 모든 정보를 싹 털어갔고, 제8함대의 미카와 제독은 이 정보를 토대로 야습을 감행, 상륙함대를 엄호하던 미 함대를 개발살 내버렸다. 미 함대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30분 내에 당해버렸고, 중순양함 퀸시가 홀로 대항했지만 아오바에게 격침당했다. 이 해전이 바로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라는 사보섬 해전으로, 철수 명령을 내린 플레처 제독은 평생까임권을 얻고 말았다. [14]
그러나 플레처 제독의 실수가 사보섬 해전의 패배를 불러온 건 아니다. 어차피 엔터프라이즈가 야간작전 능력을 획득하려면 1944년은 되어야 했으니, 현장에 있었다면 그냥 거대한 표적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전함 노스캐롤라이나가 있기는 하지만, 사보섬 해전에서 보여준 미 해군의 오판을 보면 엔터프라이즈와 다른 항공모함이 있었다고 승리가 아니라, 표적함 신세로 제8함대의 산소어뢰 공격을 받고 격침되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 해전의 패배로 인해 미군은 일본군에게 과달카날의 초반 제해권을 빼앗기고 미 해병대는 과달카날에 고립되어 일본군의 집중공격을 당하게 되었으며 함대 사령관인 플레처 제독은 철수명령을 내린 탓에 온갖 비난을 받게 되었다. 플레처 제독이 철수명령을 내린 이유는 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한 항공모함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서였고, 미군은 어떻게든 제해권을 되찾고 해병대를 구해내야 했다. 이렇게 해서 태평양 전쟁의 과달카날 전역이 시작된다.
3.6.2. 동부 솔로몬 해전
사보섬 해전의 패배로 고립 상태에 빠진 미 해병대는 헨더슨 비행장을 완성하고 공중과 해상에서 지원 병력과 물자를 보급받아 전력을 보강하여 이후 테나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일본군의 공격을 버티어냈고 8월 중순이 지나 일본군은 추가적인 병력과 함대를 파견하였고 이 움직임을 파악한 미군은 제61임무부대와 제17임무부대를 파견, 제61임무부대에 소속된 엔터프라이즈는 병력수송함대를 동반하고 남하하는 일본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새러토가와 함께 8월 24일 동부 솔로몬 해전(2차 솔로몬 해전)에 참가했다. 당시 항공모함이 소속된 임무부대는 새러토가, 엔터프라이즈, 와스프로 구성된 제61임무부대와 하와이를 지키고 있던 호넷 중심의 제17임무부대로 동부 솔로몬 해전 당시 와스프 중심의 제18임무부대가 해상급유를 받기 위해 전열에서 이탈하여 해전에 참가하지 않았고 호넷 중심의 제17임무부대는 솔로몬 제도로 이동했지만, 합류가 늦어 해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는 적 정찰기에 발견 되어 집중 공격을 받게 되었고 3발의 명중탄을 제대로 맞아 이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는 사망 74명, 부상 95명이란 함생 중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명중탄에 조타 기능 상실로 제자리에서 뱅뱅 돌고 있던 엔터프라이즈를 끝내기 위해 적의 추가 공습 시도가 이어져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중 두 번째로 저승길을 건널 뻔 했으나 스콜 덕분에 적이 엔터프라이즈를 찾지 못하는 행운이 있었고 조타가 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 끝끝내 다시 복구를 해냈지만 더 이상 싸우기 힘든 상황이라 후퇴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군은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전략적 승리를 거머쥐지 못했다. 엔터프라이즈를 쫓아낸 뒤, 쇼카쿠와 즈이카쿠로 편성된 일본의 주력 항모전단이 그냥 퇴각해버린 것. 문제는 과달카날로 가던 일본군 수송선단을 놔두고 후퇴했다는 거다. 원래 이 수송선단은 일본 항공모함 류조가 공중엄호를 제공할 계획이었는데, 일본 항모전단을 지휘하던 나구모 주이치가 엔터프라이즈를 잡는다며 류조를 미끼로 던져서 침몰시켰다. 항공모함이 모두 후퇴했으니 제공권은 자연스럽게 핸더슨 비행장을 소유한 미군에게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일본 수뇌부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을 명령했다. 수송함대를 호위하던 일본군 제8함대와 제2수뢰전대는 안간힘을 썼지만 제2수뢰전대 기함 진츠가 폭탄을 맞아 큰 피해를 입었고, 구축함 1척과 수송함 1척을 잃은 끝에 퇴각해야 했다. 일본군은 해전에서 이기고도 제해권 절반을 빼앗긴 것이다.
자력으로 9월 10일 진주만에 귀환한 엔터프라이즈는 즉각 수리를 받고 10월 23일에 남태평양으로 돌아와 8월 31일 초계 중 적 잠수함 뇌격으로 동력 계통이 대파당한 새러토가와 9월 15일에 침몰한 와스프를 뒤로하고 혼자 남아 전선을 지키고 있었던 호넷과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새러토가에서 지휘하다가 적 잠수함 뇌격으로 부상한 플레처 제독을 대신해서, 윌리엄 홀시 제독이 함대를 지휘하게 된다.
3.6.3. 산타크루즈 해전
엔터프라이즈 함생 최대의 위기였던 시기로 1942년 10월 26일에 벌어진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군은 항공모함 4척(쇼카쿠, 즈이카쿠, 준요, 즈이호)를 끌고 왔고, 엔터프라이즈는 자매함 호넷과 함께 전투에 돌입한다.
본격적인 전투가 일어나기 전 25일 아군 정찰비행정에서 보내온 정보를 바탕으로 적함대를 찾기 위해 돈틀리스 12대로 구성된 정찰대와 29대로 구성 된 공격대를 적함대가 목격된 지점에 보냈으나 이미 다른곳으로 이동한 상태라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귀환해야했고 이때 야간착함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엔터프라이즈는 1대가 비행갑판에 불시착, 6대가 부근 바다에 불시착하여 전투가 시작 되기도 전에 7대의 함재기를 손실하는 등 석연치 않은 징조들이 있었다.
그리고 26일 전투 당일, 엔터프라이즈는 다시 돈틀리스 16대로 구성 된 정찰대를 보내어 그 중 2대가 적함대를 찾아 내는 것에 성공하였고 곧장 즈이호에 급강하 폭격을 시도하여 비행갑판에 손상을 입혔다. 하지만 적함재기는 이미 전기 출격하여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노리고 오는 중이었다.
적함대를 발견한 미함대 측도 공격대를 보내기 시작하여 제1, 3차 공격대는 호넷 편대 제2차 공격대는 엔터프라이즈 편대로 구성 되어 있었다. 호넷의 편대와 함께 일본군 함대를 찾다가 일본의 공격대와 마주친다. 처음엔 서로 무시하고 지나가는 듯 했으나 히다카 모리야스 소좌가 이끄는 즈이호의 전투기대가 갑자기 반전해 엔터프라이즈의 공격대를 덮쳤다. 이때 다시 한번 6대의 함재기를 손실했는데 그중 하필 지휘관기가 2대나 끼어있었다.[15][16]
이렇게 엔터프라이즈가 제대로 된 전투 전부터 함재기 손실을 입긴 했지만 일본군의 첫 공격은 엔터프라이즈가 스콜에 가려져 있는 상황이었기에 호넷에 집중되었다. 호넷은 일본군에게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 15km 떨어진 엔터프라이즈에서도 "아 호넷이 위기구나..."라고 할 정도로 잘 보였으나, 그정도로 호넷에만 공격이 집중된 후에야 일본기 하나가 엔터프라이즈를 발견했고, 그 소식에 놀란 나구모는 바로 엔터프라이즈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당시 엔터프라이즈 주변을 맴돌며 CAP(Combat Air Patrol, 전투 공중초계) 중이던 전투기가 있었지만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요격하기에는 함대와 너무 가까워 적기를 놓치게 되었고 일본군 공격대는 함대 상공에 도달하여 공격을 개시했다. 엔터프라이즈는 폭탄 두 발을 얻어맞았지만, 살아남기 위한 격렬한 회피 운동을 하여 지근탄 두 발과 어뢰 아홉 발을 회피하고, 전함 사우스다코타를 비롯한 호위 함정의 지원과 모함을 지키기 위해 방공망 안으로 목숨을 걸고 들어온 함재기들과 스콜에 가려져 적의 공격이 분산된 덕분에 엔터프라이즈는 구사일생 할 수 있었다.
적의 공습을 버틴 엔터프라이즈는 일본군 공격대의 집중 공격을 받아 빈사 상태에 빠진 호넷과 자신의 함재기들을 수용하기 시작했으며 적정 대수인 85대를 넘어가게 되어 함재기를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착함유도장교는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착함을 유도했다. 승조원들은 전방 엘리베이터가 손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함재기 수용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사투를 벌였고 수용 결과 95대의 함재기를 채우게 된 엔터프라이즈는 적의 공격에 대단히 취약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현 상태로는 전투할 수 없다고 판단한 킨케이드 제독은 전선 이탈을 명하게 된다.
엔터프라이즈는 빈사 상태에 빠진 자매함 호넷을 전장에 남겨둔 채 이탈하였고, 호넷은 예인되어 전장에서 이탈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본군의 추가 공격에 버틸 수가 없었고 결국 홀시 제독은 호넷을 포기한다. 미군은 호넷을 처분하기 위해 포탄과 어뢰를 호넷에 잔뜩 쐈지만, 호넷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안 가라앉았고, 일본 해군 함대가 다가오자 결국 미군은 호넷을 버려두고 도망쳐야 했다. 일본군은 방치되어 있던 CV-8 USS 호넷함을 어떻게든 노획해보려고 했으나 손상이 너무 심해서 결국 뇌격으로 처분했다.
이 해전에서 사망 44명, 부상 75명의 사상자를 내고 전방 엘리베이터가 작동 불능에 명중, 지근탄에 선체가 손상된 엔터프라이즈는 어쩔 수 없이 수리를 위해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요크타운이 침몰당하고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호넷 역시 침몰당하며 이제 3척이었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중 엔터프라이즈 홀로 남게 되었다.[17] 이때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은 비행갑판에 Enterprise VS Japan란 글을 게시해 놓아 당시의 심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18]
이 해전 이후 미 해군의 상태는 진주만 공습 이후 가장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개전 직후 가지고 있던 정규 항공모함 7척 중 어뢰를 맞아 수리를 위해 전선에서 이탈한 새러토가와 대서양에서 활동 중인 레인저를 제외하면 미 해군에는 항공모함이 하나도 안 남았다. 이때 일본 해군은 엔터프라이즈를 붙잡아서 침몰시키려고 했으나, 빈사 상태에 빠진 호넷 함을 전장에 남겨 둔채 이미 전선에서 이탈하였고 일본 해군으로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고 말았다. 쇼카쿠는 대파되었고 즈이호가 중파되었으며, 즈이카쿠와 준요는 무사했지만 다수의 비행대를 잃었다. 일본 항모전단의 항공세력이 사실상 와해된 것이다. 결국 일본군은 쇼카쿠와 즈이호, 즈이카쿠를 일본으로 돌려보냈고, 과달카날에 남은 것은 함재기도 모자란 준요 한 척 뿐이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가 한계치를 넘어서면서 수용한 함재기들과 파일럿들은 살아서 돌아갔기에 베테랑 파일럿들의 대다수를 잃은 일본군과 달리 나중을 기약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해전에서 일본군은 값비싼 희생을 치러 전술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과달카날은 일본군에 함락될지도 모를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3.6.4. 과달카날 해전
"어떻게 되었을까요. 남은 건 엔터프라이즈 뿐이었죠."
"우린 최후의 항모니까 일본군의 좋은 목표물이었죠. 달리 누가 있나요?"
ㅡ'배틀 360'에 나온 승조원들의 증언
큰 피해를 보았지만, 진주만으로 돌아가지 않고 뉴칼레도니아 누메아에 도착한 엔터프라이즈는 10월 30일, 윌리엄 홀시 제독의 명에 엔터프라이즈 승조원과 공작함 베스탈을 비롯한 미 해군 시설대까지 달라붙어서 응급수리에 들어갔다.'''Enterprise vs Japan'''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은 비행갑판에 흰 페인트로 이 문구를 써 놓았다.
과달카날의 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엔터프라이즈는 11월 11일에 수리작업 중인 베스탈 함의 승조원을 태운 채 가용 가능한 마지막 미 해군 태평양 함대 항모부대가 되어 버린 전함 워싱턴 및 사우스다코타와 몇 척의 순양함, 구축함으로 구성된 제16임무부대(Task Force 16)[19] 에 복귀하여 출항 11월 13일, 과달카날 해전(3차 솔로몬 해전)에 참가한다. 이 TF16에는 항모 엔터프라이즈 말고도 전함 워싱턴과 사우스다코타 역시 과달카날에서 마지막 가용 전함들이었다."...And then there was one patched-up carrier."
"...그리고 응급수리된 항공모함 1척이 남아있었다."
ㅡ 해군소장 토마스 C. 킨케이드(Rear Admiral Thomas C. Kinkaid)
11월 13일 새벽에 1차 과달카날 해전이 벌어졌고, 아직 엔터프라이즈가 도착하지 못했기에 미 해군은 전함 히에이를 필두로 한 막강한 일본 함대에 맞서다가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함대를 일단 저지하기는 했지만, 11월 14일 새벽에 일본군 제8함대가 핸더슨 비행장에 나타나서 야간포격을 가해온다. 루즈벨트 대통령조차도 이 소식을 듣고 과달카날에서 철수하는 걸 검토했을 지경. 그러나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제8함대 앞에 엔터프라이즈가 보낸 함재기들이 나타났고, 엔터프라이즈가 격침된 줄 알았던 일본군은 혼비백산했다. 아오바는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대파되었기에 현장에 없었지만, 기함 초카이와 키누가사는 엔터프라이즈 함재기들의 집중공격을 받았고 초카이는 중파, 키누가사는 침몰했다. 제8함대의 다른 배들도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하면서, 사보섬 해전의 굴욕은 씻겨졌다.
11월 14일 밤, 일본군은 다시금 핸더슨 비행장을 공격해왔지만, 엔터프라이즈를 호위하던 전함 사우스다코다와 워싱턴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행히도 사우스다코다가 전기계통의 고장을 일으키는 바람에 제대로 싸울 수 없어 위기에 몰렸지만, 일본군의 공격은 다행히 사우스다코다를 침몰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전함 워싱턴이 일본군 기함 기리시마를 7분만에 박살냈고, 일본 함대는 워싱턴 한 척에게 밀려 도망쳤다. 엔터프라이즈의 호위를 맡은 전함의 힘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그리고 11월 15일 아침, 일본군은 수송선단을 과달카날에 상륙시켰지만, 엔터프라이즈의 비행대는 헨더슨 비행대와 연계작전으로 수송선들을 몽땅 박살을 내버렸다. 이 승리로 과달카날의 제해권과 제공권은 미군에게 돌아갔고, 일본군은 과달카날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3.6.5. 과달카날 해전 이후
엔터프라이즈는 새러토가가 1942년 11월 말에 복귀할 때까지 태평양에서 실질적으로 활동 가능한 유일한 미 해군 정규항모로 전선에 남아 있었다. 1943년 1월, 새러토가와 함께 과달카날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던 엔터프라이즈는 일본군의 항공기 공격에 대파되어 인양 중인 중순양함 시카고를 지키기 위해 전투기를 파견하였고 렌넬 섬 해전이라 불리게 되는 다시 함선을 공격하기 위해 온 G4M '베티' 편대와의 전투가 일어났다. 이때 적의 폭격기를 격추하고 시카고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결국 시카고를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1943년 2월에 대혈투가 끝나 과달카날을 미군이 완전히 확보하고 엔터프라이즈는 에스피리투산토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1943년 5월에 진주만으로 귀환하여 신규 비행대 훈련에 힘쓰던 중, 1943년 5월 27일에 미합중국 대통령이 니미츠 제독에게 감사장을 수여한다. 이것은 미군 항공모함 중에서는 사상 최초였다.The Presidential Unit Citation
1943년 7월에 엔터프라이즈는 본토로 귀환해 10월까지 대대적인 수리를 받았으며 그동안 전력화가 완료된 미기동함대의 새로운 중핵이 될 에식스급 항공모함과 함께 1943년 11월에 출격, 길버트 제도와 마샬 제도에서 활약한 후 1943년 12월 9일에 진주만으로 귀환한다.
1944년 1월에는 마셜 제도 상륙작전을 지원하고, 2월에는 트럭 섬을 공습하는 등 상륙작전 지원과 양동공격 임무를 맡았다. 이후에도 비스마르크 제도, 케롤라인 제도, 팔라우 제도, 뉴기니아 섬 등 태평양 일대를 돌아다니며 상륙작전을 지원했다.
3.7. 필리핀 해 해전
1944년 6월 19일, 엔터프라이즈는 에식스급 항공모함들과 함께 필리핀 해 해전에 참가했다. 일본군도 엔터프라이즈에 맞서 쇼카쿠를 포함한 정예 항모전단을 내보냈지만, 당연히 엔터프라이즈가 이겼다. 워낙 공중전이 일방적이었기에 파일럿들이 "칠면조 사냥 같았다"고 인터뷰를 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엔터프라이즈와 몇 번이나 싸웠던 쇼카쿠는 엔터프라이즈와 싸우기도 전에 미군 잠수함에게 걸려 침몰되었다.
그러나 필리핀 해 해전 종료 직후, 해전 때보다도 큰 위기가 닥쳐왔는데 돌아오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늦어 파일럿들이 밤바다를 비행해서 돌아와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파일럿들을 잃은 항모도 꽤 되었고 워낙 절망적인 상황이라 당시 파일럿이었던 한 참전용사는 그 일에 대해 인터뷰를 할 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엔터프라이즈가 포함된 함대를 지휘하던 마크 미처 제독은 함대의 목숨을 걸고 전 함선에 불빛을 밝힐 것을 지시하는 도박을 감행한다. 야간에 함재기도 없는 항공모함, 즉 호위 없는 함대가 떡하니 불을 밝힌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가장 잘 알면서도 파일럿들을 위해 함대의 목숨을 걸고 야간등화를 켜라고 명한 것이었다. 이런 마크 미처 제독의 목숨을 건 도박은 멋지게 성공하여 대부분 무사히 귀환했으며, 엔터프라이즈에서 돌아오지 못한 파일럿은 제10항모비행단 지휘관인 윌리엄 R. '킬러' 케인 중령 단 한 명 뿐이었고 그도 동월 22일에 아이스크림 25갤런(약 95리터)과 맞바꿔 구조된다. 아이스크림이 언급된 이유는 마크 미처 제독이 구조를 장려하기 위해 '파일럿을 구조해오는 배에는 아이스크림을 더 배급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해당 파일럿이 구조되었을 당시, 파일럿을 구조한 배글리급 구축함 패터슨(DD-392, USS Patterson)는 통신 과정에서 '이 파일럿은 아이스크림 몇 갤런인가? 이 파일럿은 비행대대장이므로 아이스크림을 좀 더 많이 줘야 한다.'라며 협상까지 시도했다. 물론 이는 자신들의 공적을 자랑하기 위한 농담이고, 항공모함으로서는 매우 저렴한 금액이었다.[20]
7월에 휴식을 위해 진주만으로 돌아갔다.
8월 24일에 재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케롤라인 제도, 오가사와라 열도,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공격했다.
3.8. 레이테 만 해전
1944년 10월에는 레이테 만 해전에도 참가했다. 이 해전에서 일본군은 레이테 섬으로 전함과 순양함들을 돌격시켜 미군 상륙부대를 파괴하려고 했지만, 세계 최대의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를 거느린 구리다 함대는 엔터프라이즈와 에식스급 항모들로 구성된 제3함대에게 얻어터진 끝에 무사시를 잃고 퇴각한다. 그러나 북쪽에 오자와 함대가 있음이 밝혀졌고, 여기에는 진주만 공습 이후 살생부 명단에 올라간 즈이카쿠를 포함해 4척의 항모와 2척의 항공전함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윌리엄 홀시는 매우 강력한 적 함대가 나타났다고 판단하고, 오자와 함대를 박살내기 위해 제3함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격한다.
그러나 이들은 함재기조차 없는 미끼에 불과했다. 마침 진주만 공습에 참여한 항모 중에서는 유일한 생존함인 즈이카쿠도 있었으므로, 일본군은 오자와 함대(기함 즈이카쿠)를 미끼로 내걸었다. 여기에 낚인 홀시가 제3함대를 이끌고 쫓아오면, 그 틈에 레이테섬으로 돌입한다는 계획이었다. 홀시가 미끼를 문 사이에 일본의 모든 함대가 레이테섬으로 돌격했고, 제일 먼저 16전대(기함 아오바)가 레이테섬에 도착해서 증원병력을 내려놓는 것에 성공한다.
그러나 레이테섬에 도착한 건 16전대뿐이었다. 니시무라 함대는 울덴도르프 제독의 함대에 걸려 괴멸되었고, 시마 함대는 진입을 포기하고 도주했으며, 일본군의 주력 함대이자 전함 4척을 보유한 구리다 함대는 미군의 2선급 함대인 태피 3하고의 전투를 중단하고 도주하여 패배했다. 그리고 미끼로 던져진 즈이카쿠를 비롯한 일본 항모 4척은 제3함대에 침몰당했고, 엔터프라이즈와 즈이카쿠의 오랜 악연도 끝났다. 일본군이 레이테섬 진입에 실패하고 도주했으므로 해전은 미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유일하게 레이테섬에 진입한 16전대는 탈출하다가 미군의 공격으로 괴멸되었다. 그러나 아오바는 10월 29일, 미 해군 제3함대의 공습과 잠수함들의 공격을 뚫고 일본으로 탈출했다.
12월 24일에는 야간 전투기 훈련도 시작했다.
3.9. 이오지마 그리고 오키나와
1월에 출격한 엔터프라이즈는 Carrier Division Seven 소속이 되어 정규항모 새러토가, 경항모 인디펜던스와 더불어 5월 14일 전열에서 이탈 전까지 야간 및 주간 작전에 종사하게 되었다. 일본과 인도네시아를 잇는 교통로를 자르고, 이오지마 전투에 참여한 아군을 지원한다. 이 무렵 일본군의 공격으로 약간의 손상을 입었고, 아군의 오발로 피격을 당하는 등 손상을 입어 울리티로 가서 수리를 받았다.
4월 5일에 엔터프라이즈는 오키나와 전투에 참여한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출격한다. 이 무렵 카미카제 공격 지근거리 2번에 손상을 입어 울리티로 가서 수리받고 다시 돌아와 작전을 수행하던 엔터프라이즈는 5월 14일에 26기의 일본 항공기의 내습을 받지만, 6기를 대공포화로 격추하고 19기는 상공초계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하지만 도미야스 슌스케(富安俊助) 중위의 1기가 대공포의 포화를 피해 구름 속에 몸을 감춘 후 시시각각으로 구름사이 얼굴을 비친 엔터프라이즈의 위치를 확인하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오전 6시 56분, 이 1대의 기체는 엔터프라이즈를 향해 단기로 자살돌격을 감행했다. 어지간하면 개죽음으로 끝날 돌격이었지만 이 사람은 집중포화를 받는 와중에 함 바로 위에서 180도 좌측으로 선회하여 배면비행의 상태로 급강하해 전방 함재기 엘리베이터 후방에 돌입했다. 덤으로 돌입순간에 폭탄을 기체와 분리해서 폭탄이 격납고에 직격하도록 하는 등 피해면적을 확산시키는 재주까지 부렸다.[21]
이 공격으로 엔터프라이즈는 400피트(약 122m) 상공까지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큰 피해를 보았는데 폭발로 전방의 엘리베이터가 120m 상공까지 솟구쳤고[22] , 비행갑판과 격납고 등 선체가 손상을 입고 화재 발생 및 파이프 손상 등으로 물이 흘러나와 침수가 일어났으며 사망 13명, 부상 68명의 사상자를 냈다. 피해의 심각성에 비하면 사상자가 적은 편이었지만 동부 솔로몬 해전의 사망 74명, 부상 95명, 산타크루즈 해전의 사망 44명, 부상 75명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였다. 엔터프라이즈 승조원들은 약 30분 만에 화재를 진압하고 침수된 구역에서 물을 빼는 등 추가 피해를 막으며 작전을 수행했다. 제58임무부대 사령관 마크 앤드류 미처 중장은 자신이 본 가장 훌륭한 데미지 컨트롤이었다고 엔터프라이즈의 승조원들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방의 엘리베이터 사용 불능 같은 선체 손상 등으로 인해 대대적으로 수리할 필요가 있어서 제대로 된 수리를 위해 본국으로 귀환하여 수리와 창정비에 들어간 와중에 종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3.10. 참전기록 및 전공
사실상 '태평양 전쟁사 = 엔터프라이즈의 함생'이라 보면 된다. 태평양 전쟁에서 적어도 해전에 관해서는 둘리틀 특공대 호위 임무 때문에 불참한 산호해 해전 정도를 제외하고 엔터프라이즈가 참가하지 않은 전투 중 주요 해전은 사보섬 해전밖에 없다. 그나마도 사보섬 해전의 경우에는 참전을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이하는 참전기록과 중순양함 이상의 주요 전과. 물론 이것 말고도 여러 경순양함, 구축함, 상륙함등의 승조원들을 수중고혼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지상지원이나 항공기지 공습등에서도 막대한 전과를 올렸다.
간략히 종합하자면 1941년 12월 7일부터 1945년 5월 14일까지 함 자체의 대공포와 항공기로 911대의 적기를 격추하고, 71척의 적함을 침몰시켰으며, 최소한 192척의 적함을 파괴하거나 피해를 줬다. 단, 저 전과 기록은 교차 검증이 되지 않은 엔터프라이즈 승조원들의 보고로 중복이나 오인이 있을 수 있어 실제 전과는 다를 가능성이 있다. '''이걸 유의하고 정보를 받아들일 것.'''
- 1941년
- 12월 - 해대 6형 A급 잠수함 I-70 침몰 - 미국이 올린 첫 침몰 성과.
- 1942년
- 2월 - 마셜, 길버트 군도 공습, 웨이크섬 공습
- 3월 - 미나미토리섬 공격
- 4월 - 둘리틀 특공대 참가
- 6월 - 미드웨이 해전 - 항공모함 아카기 침몰, 항공모함 카가 침몰, 항공모함 히류 침몰(공동), 중순양함 미쿠마 침몰(공동), 중순양함 모가미 대파(공동)[23]
- 8월 - 동부 솔로몬 해전 - 일본 항모의 공습에 3발의 폭탄을 맞고 조향 기능이 마비되어 아군 구축함에 충돌할 뻔하는 등 온갖 위기가 있었다. 이 공격은 엔터프라이즈가 처음 당한 명중탄이었다. 이 폭발로 인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승조원들에게 호흡보조기[24] 까지 투입해가면서 40분만에 조타장치를 수리했다. 게다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조타장치가 고장난 탓에 엔터프라이즈는 길을 잃고 헤멨고 그 결과 2차 공격대가 엔터프라이즈를 찾지 못했다. 워낙 그날 전투가 격전이었기에 이때 엔터프라이즈를 호위한 노스캐롤라이나 함의 승조원들은 매년 이 전투가 있던 날에 만나기로 약속까지 하게 된다.
- 10월 - 산타크루즈 해전 - 항공모함 즈이호 중파. 엔터프라이즈는 2발의 폭탄을 맞고 9발의 어뢰와 불덩이가 된 아군 구축함을 회피하는 등 분전하였으나 즈이호 중파와 전투기들 격추 외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빈사 상태에 빠진 자매함 호넷을 남겨 두고 전장에서 이탈하게 된다. 호넷이 이착함 불능 상태에 빠져 그쪽 함재기도 받게 되었는데 최종적으로 95기까지 만재하여 전투 불가능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 11월 - 과달카날 해전 - 전함 히에이 침몰(공동)[25] , 중순양함 키누가사 침몰, 중순양함 초카이 중파, 중순양함 마야 중파, 경순양함 이스즈 대파, 헨더슨 비행장 항공대와 그외 지상기지 소속 비행대와 함께 수송선단을 괴멸시킴. 완전히 수리되지 않아 착함 능력이
불완전했던 엔터프라이즈는 헨더슨 비행장에 함재기를 파견하는 식으로 전투를 수행함. 미드웨이 해전 직전의 요크타운처럼 12일 만에 수리를 어떻게든 끝내고 출격했다. [26]
- 1943년
- 1월 - 렌넬 섬 해전 참가
- 2월 - 에스피리투 산토 섬에 기항하여 수리와 휴식을 취했다.
- 5월 - 진주만으로 귀환하여 신규 항공대 훈련에 전념하고 있던 엔터프라이즈는 항공모함으로서는 최초로 대통령 부대 표창을 받음.
- 7월 - 진주만에서 출발하여 워싱턴 주 프레머톤의 퓨젯 사운드 해군공창에 들어가 10월까지 수리와 대규모 개장을 받았다.
- 11월 - 길버트 군도 공략, 타라와 전투 참가.
- 12월 - 마셜 군도 환초 공습 참가
- 1944년
- 1945년
다만 엔터프라이즈가 나름의 전과를 세우긴 했어도 그보다 상당한 전과가 확인되는 함선들도 존재한다.
아래는 그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이쪽도 전과 보고에 오인, 중복이 있을 수 있어 '''실제 전과는 다를 가능성이 있음을 유의하자.'''
- 1944년에 투입된 에식스급 항공모함 CV-12 USS 호넷이 668기 항공기 격추, 742기 항공기 지상파괴, 함선 격침 73척, 함선 격침추정 37척, 함선 피해 413척으로 필리핀 해 해전에서 항공모함 쇼카쿠에 피해를 주거나 즈이카쿠에 퇴함 명령을 내리게 할 정도로 대파시키고[32] 전함 야마토를 대파해서 격침에 도움을 주거나 공작함 아카시를 격침하는 등 엔터프라이즈 못지않은 전과를 세웠다. 퇴역 후 박물관으로 개장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 단함으로 가장 많은 침몰 수를 기록한 군함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잠수함인 U-35이다. 무려 224척, 약 54만 톤을 침몰시켰다. 전쟁 끝까지 살아남았지만 스크랩 처리된다.
3.10.1. 엔터프라이즈가 가라앉지 않은 이유
당연하지만 일본군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엔터프라이즈를 침몰시키려 했다. 일단 엔터프라이즈가 침몰되면 한동안 태평양에 미군 항공모함이 없을테니 그 동안 방어 병력을 증강시키거나 새로운 곳을 침공할 수 있게 되며, 엔터프라이즈의 경우에는 계속 두들겨맞으면서도 반격을 매섭게 하는 바람에 이미 전술적인 면을 넘어서 전략적인 견지에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군에게 지속적인 큰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일본군은 엔터프라이즈를 침몰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가했다. 덕분에 엔터프라이즈는 이들의 어뢰를 피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구축함처럼 선회시킨다든지 갑판에 폭탄이 명중해도 20분안에 화재를 진압하고 긴급 수리해서 항공모함을 회복시킨다든지 하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심지어 수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재출격하는 등 엔터프라이즈의 함생 자체가 일본군의 공격으로 인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격전이 지속되던 태평양전쟁 중반기에는 아예 수리함의 승조원들이 엔터프라이즈에 눌러앉은 채 수리를 계속하기도 했고, 이것은 자매함 요크타운도 마찬가지였다.[33]
엔터프라이즈가 이러한 험난한 해전들을 견뎌낼 수 있던 데에는 요크타운급의 설계도 한몫했다. 요크타운급의 약점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유효한 시절에 건조되어 배수량 제한으로 TNT 180kg에 대응하는 방뢰 능력(어뢰 공격에 대한 방어력)으론 부족하다는 점이었으나 대신 개방형 격납고로 인해 급강하 폭격에는 상당히 강한 편이었다. 이 개방형 격납고 덕분에 폭탄을 맞아도 폭발력이 공중으로 새어나갈 뿐 아니라 비상시에 폭발할 위험이 있는 물질들을 바로 바다로 버릴 수 있었다. [34]
미 해군도 엔터프라이즈를 지키기 위해 여유가 생기는 대로 추가 개수를 하고, 항모 호위 전술을 새로 만드는 등, 이 함의 임무와 비중은 전쟁의 향방을 가를 정도로 커졌다. 당연히 미국에서는 언론의 영향도 있고 하여 '항공모함 = 엔터프라이즈'라는 공식이 생겼고, 곧 엔터프라이즈는 미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후 에식스급 항공모함과 함께 운영되었고 이전에 실험적으로 시도된 야간 공습에서 더 나아가 장기간 야간작전에 종사하여 오히려 나중에 취역한 신형 항공모함보다 더 힘든 업무를 맡게 된다. 1945년 5월14일에 받은 피해로 전열에서 이탈 전까지 야간 공습 작전이라는 것이 항공모함에서 단발성이 아닌 지속해서 이루어진 것은 엔터프라이즈가 최초였다. 다만 이착함의 어려움과 레이더에만 의지해 날아야 하는 야간 작전의 특성상 파일럿 손실이 있었고 야간뿐만 아니라 주간 임무도 있었다.[35]VF(N)-90 SQUADRON HISTORYVT(N)-90 SQUADRON HISTORY
3.10.2. 마지막 작전과 최후
종전 이후에는 각지의 미군을 귀환시키는 수송선으로도 활용되었다. 일명 '매직 카페트 작전(Operation magic carpet)'. 당시 배에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태우기 위해 승조원의 숫자도 기존 2217명 정도로 운용되던걸 500명으로 줄이고 격납고 데크에 침대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하여 5000여명의 장병들을 승선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항공기 운용을 하지 않으니 일단 항공 관련 인원들이 전부 빠지고, 핵심적인 항해와 기관부 인원 및 그 잔류 인원에 적당한 지원 부서 인원만 남기고 전투 중 대공포 등에 배치되는 인원 등을 하함시키면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굴리고도 남긴 한다.
이후 항모들이 점점 대형화되고 제트기로 바뀌기 시작한 함재기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엔터프라이즈는 거의 고철신세로 전락했다. 결국 스크랩처리가 결정된다. 엔터프라이즈 함에서 복무했던 해군 장병들은 '엔터프라이즈 협회'를 만들어서 엔터프라이즈를 기념함으로 만들려고 했고, 윌리엄 홀시 제독 역시 협회와 협력하여 모금 운동을 전개했지만 돈이 부족했다. 미국 의회는 돈이 없다며 엔터프라이즈를 박물관으로 만드는 계획을 거부했고, 해군 역시 돈이 없었기에 엔터프라이즈를 더 이상 보존할 수 없었다. 결국 협회는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을 새로운 항공모함에 계승시키고, 일부 유물을 보존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1958년 엔터프라이즈는 멋진 마지막 항해의 장식 후 스크랩 처리된다. 스크랩을 담당한 노동자들 중에는 당시 엔터프라이즈 승조원 출신 참전 용사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 자신이 타던 또 하나의 고향같던 배가 해체되어 사라지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당시 최신 항모인 인디펜던스와 같이 정박해있었던 해체 직전의 엔터프라이즈.
기념함이 되면 관광객들이 배를 더럽히고 모욕할테니 편하게 보내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승조원도 있었다고 하지만 소수에 불과했고 영국의 전열함인 빅토리가 영구보존된 것만 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활약했고 지금까지도 보존된, 현역이고 가끔 자력항해도 하는 프리깃인 USS 컨스티튜션 함이 있다. 엔터프라이즈가 해체된 지 몇년이 흐른 다음에야 미국은 자신들이 겪은 가장 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만든 주요 유적과 장비를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런 이유에서 미드웨이급 항공모함 CV-41 USS 미드웨이, 아이오와급 전함들, 에식스급 항공모함 CV-12 USS 호넷처럼 퇴역 이후에도 보존되는 함선들이 있었다.
참고로, 이런 상황은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수훈함인 HMS 워스파이트 함이 해체되었으며, 심지어 나폴레옹 전쟁의 트라팔가르 해전에 참전했던 테메레르급 전열함 HMS 임플라커블 함, 그리고 아편 전쟁에 참전했고 난징 조약을 맺은 장소이기도 했던 뱅거급 전열함 HMS 콘월리스 함마저도 '''폭약 시험 대상으로 날아가버렸다.''' 또다른 역사적인 배들도 해체 수순을 밟을 뻔 했으나, 임플라커블이 침몰한 이후에야 정신을 차린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하고 보존될 수 있었다.
엔터프라이즈의 마지막, 나무갑판을 빼내어 태우고 작업을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선수가 해체되어가는 모습.
(엔터프라이즈의 다른 스크랩 사진은 여기서 볼 수 있다.링크)
배의 함명은 대체로 해당 함선이 침몰되거나 스크랩 처리되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 쓰는 게 관습이기 때문에, "USS Enterprise"라는 이름을 항공모함에게 계속 계승시키려면 이전 배들은 전부 폐기하는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었던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 미 해군 내에서 퇴역 후 박물관으로 보존된 아이오와급 전함 3번함 미주리를 비롯해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아이오와, 매사추세츠가 버지니아급 잠수함의 함명으로 쓰이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작전 중인 군인이라면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을 듣고 현역함을 떠올릴까 퇴역함을 떠올릴까를 생각해보자. 다른 함으로 혼동할까봐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36]
함명을 이어 주게 되긴 했지만, 워낙 엄청난 업적을 쌓은 함선이다 보니, 후계함 선정이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이 이름을 이어 받았다. 후대 엔터프라이즈 항공모함도 일부에서는 박물관으로 개장하자고 했지만 개조 작업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다며 바로 스크랩 처리. 그리고 그 이름은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의 3번함인 CVN-80이 다시 물려받았다.
4. 비교대상
4.1. 맞수들
태평양 전쟁에 참가한 일본군 군함 중에서, 엔터프라이즈에게 한 방을 먹인 경력이 있고 마지막까지 미군의 만만찮은 적이었던 일본군의 수훈함들을 여기에 소개한다. 조건이 두 개 달린 이유는 단순히 살아남았다거나 하는 이유만으로는 대상이 되는 배도 많아지고 비교하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37]
- 쇼카쿠급 항공모함 쇼카쿠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으로 불리는 항공모함으로,[38] 진주만 공습 당시에는 1항전(아카기, 카가), 2항전(소류, 히류)에 비해 미숙한 탓에 쉬운 임무만 맡았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 아카기를 포함한 일본 항모 4척이 격침된 후에는 항모전단의 기함을 맡아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으로 떠오른다. 자매함인 즈이카쿠와 여객선 출신 항모 준요, 경항모 즈이호와 함께 동부 솔로몬 해전, 산타크루즈 해전, 필리핀 해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에 맞서 싸웠지만 언제나 엔터프라이즈에게 전략적 승리를 빼앗겼다. 결국 필리핀 해 해전에서 미군 잠수함에게 침몰당했으며, 이 해전도 역시 엔터프라이즈의 승리로 끝났다. 그래도 싸울 때마다 엔터프라이즈를 고전시켰고, 미드웨이 해전 이후에는 즈이카쿠와 함께 일본해군의 대들보 노릇을 했다는 공적이 있다.
- 쇼카쿠급 항공모함 즈이카쿠
쇼카쿠와 함께 싸운 일본군의 정규 항공모함 자매함으로, 쇼카쿠가 침몰된 이후에도 엔터프라이즈에 맞선 항공모함이다. 필리핀 해 해전 이전까지는 단 한 발도 맞지 않은 행운함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전공을 세우지 못한다며 일본군 상층부로부터 구박받기도 했다. 결국 레이테 만 해전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의 38기동부대를 유인하는 미끼로 쓰여 침몰되었다. 이 해전에서 즈이카쿠는 미끼 노릇을 충실히 잘 했지만, 구리다 함대가 구리다 턴을 시전해서 돌아가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자매함이 모두 묘하게 콩라인 기질이 있는데, 공훈이 있지만 더 월등한 공훈을 세운 숙적과 비교하면 밀리는 모습이 콩라인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즈이카쿠는 윌리엄 홀시 제독이 상부의 명령조차 무시하고 죽이러 갔을 정도로 미군에게 증오받던 함선이었다. 적군에게 이토록 큰 증오를 받았다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수훈함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히요급 항공모함 준요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의 자매함 호넷을 침몰시키는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운 여객선 개조 항공모함으로, 쇼카쿠급과 함께 엔터프라이즈에 맞선 일본군의 주력 항공모함이기도 하지만, 산타크루즈 해전이 끝난 후 쇼카쿠급 자매가 함재기가 없다, 대파당했다는 등의 이유로 일본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과달카날 해전에선 혼자 남았고, 함재기도 제때 보내주지 않은 일본군 때문에 활약도 못한 채 엔터프라이즈에게 승리를 바쳐야 했다. 미군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즈이카쿠와 달리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행운함이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엔터프라이즈와는 악연의 극을 달리는 군함으로, 엔터프라이즈가 개전 전에 비행기를 배달해준 웨이크 섬을 함락시키는데 일조한 게 시작이었다. 산호해 해전에서는 아오바의 제6전대가 미 항모전단을 발견해서 승리의 기회를 만들었지만 쇼카쿠 정찰기의 삽질 때문에 승리가 날아갔고, 이 때문에 안 해도 되는 전투를 한 번 더한 쇼카쿠가 대파되면서 미드웨이 해전에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사보섬 해전에서는 제8함대의 주력함으로 참전, 정찰기 한 대로 미군을 농락하며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안겨주었다. 이 패배로 과달카날의 초반 제해권이 일본군에게 넘어갔고, 미 해병대는 고립되었으며, 철수명령을 내린 플레처 제독과 철수한 항공모함 새러토가, 와스프, 엔터프라이즈가 소속된 제61임무부대는 "주력함대가 아군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비난을 듣게 되었다.[39] 그러나 과달카날의 제해권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게 하필이면 엔터프라이즈의 영원한 호구인 쇼카쿠와 즈이카쿠.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후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는 미 해군의 기습으로 대파되면서도 수송함대 호위임무를 성공시켰지만, 아오바 없는 제8함대는 과달카날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에게 분노의 일격을 맞아 아오바의 자매함인 키누가사를 잃고 대패했고, 과달카날의 제해권도 미군에게 넘어간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16전대의 기함으로서 제1차 다호작전을 수행했으며, 엔터프라이즈가 즈이카쿠에게 낚인 틈을 타서 레이테 섬에 돌입했고, 아오바 자신은 미군의 공격으로 대파되어 회항했지만 휘하의 16전대는 끝내 임무를 성공시켰다. 이후 대파 상태에서도 38기동부대의 공습을 전부 피하고 일본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엔터프라이즈가 수리를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두 배의 악연도 끝을 맺는다. 이후 이뤄진 구레 군항 공습에서는 제대로 수리받지도 못한 상태로 미 항모전단의 공습을 당했지만, 끝내 격침되지 않고 싸우다가 미 육군항공대의 공습을 추가로 받고 격침된다.
사보섬 해전에서는 제8함대의 주력함으로 참전, 정찰기 한 대로 미군을 농락하며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안겨주었다. 이 패배로 과달카날의 초반 제해권이 일본군에게 넘어갔고, 미 해병대는 고립되었으며, 철수명령을 내린 플레처 제독과 철수한 항공모함 새러토가, 와스프, 엔터프라이즈가 소속된 제61임무부대는 "주력함대가 아군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비난을 듣게 되었다.[39] 그러나 과달카날의 제해권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게 하필이면 엔터프라이즈의 영원한 호구인 쇼카쿠와 즈이카쿠.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후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는 미 해군의 기습으로 대파되면서도 수송함대 호위임무를 성공시켰지만, 아오바 없는 제8함대는 과달카날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에게 분노의 일격을 맞아 아오바의 자매함인 키누가사를 잃고 대패했고, 과달카날의 제해권도 미군에게 넘어간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16전대의 기함으로서 제1차 다호작전을 수행했으며, 엔터프라이즈가 즈이카쿠에게 낚인 틈을 타서 레이테 섬에 돌입했고, 아오바 자신은 미군의 공격으로 대파되어 회항했지만 휘하의 16전대는 끝내 임무를 성공시켰다. 이후 대파 상태에서도 38기동부대의 공습을 전부 피하고 일본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엔터프라이즈가 수리를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두 배의 악연도 끝을 맺는다. 이후 이뤄진 구레 군항 공습에서는 제대로 수리받지도 못한 상태로 미 항모전단의 공습을 당했지만, 끝내 격침되지 않고 싸우다가 미 육군항공대의 공습을 추가로 받고 격침된다.
4.2. 나름대로 수훈함
일본군 기준으로는 상당한 수훈함이지만, 엔터프라이즈의 맞수라기에는 조금 부족한 배들을 여기에 소개한다.
일본에서는 최고의 수훈함으로 꼽히며, 진주만 공습으로 미 해군 태평양 함대를 박살낸 주역이자 전쟁 초기에 많은 승리를 이끌어낸 배이기도 하다. 조종사들의 숙련도[40] 와 배 크기[41] , 그리고 비용에서[42] 일본 최고를 자랑하는 항공모함들이며,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여러 미군기들을 격추시키고 미드웨이를 공습했다. 그러나 아라시의 인도로 일본 함대를 발견한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급강하폭격기들의 공습을 당해 5분만에 대파당했고, 이후 침몰하면서 태평양 전쟁의 전세는 역전된다.
일본 서브컬쳐에서 아카기, 카가의 1항전을 띄워주면서 엔터프라이즈의 라이벌로 보기도 하지만, 엔터프라이즈와의 첫 전투에서 박살났으므로 여기에 싣는다. 전쟁 초기에 1항전이 대활약한 건 사실이고, 일본 최강의 항모들인 것도 사실이며, 미드웨이 해전 이전까지 일본 해군의 대들보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엔터프라이즈에게 한 방을 먹인 경력도 없고, 개전 후 1년을 버티기는커녕, 일곱달 만에 박살나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일본 서브컬쳐에서 아카기, 카가의 1항전을 띄워주면서 엔터프라이즈의 라이벌로 보기도 하지만, 엔터프라이즈와의 첫 전투에서 박살났으므로 여기에 싣는다. 전쟁 초기에 1항전이 대활약한 건 사실이고, 일본 최강의 항모들인 것도 사실이며, 미드웨이 해전 이전까지 일본 해군의 대들보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엔터프라이즈에게 한 방을 먹인 경력도 없고, 개전 후 1년을 버티기는커녕, 일곱달 만에 박살나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쇼카쿠, 즈이카쿠, 준요와 함께 일본 해군을 지탱한 경항공모함으로,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의 공격으로 중파되었지만, 즈이호 소속 함재기들이 대파된 쇼카쿠와 중파된 즈이호를 공격해오던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들을 막아내는 전공을 세웠다. 이후 레이테만 해전에서 즈이카쿠와 함께 미끼 임무를 성공시키고 엔터프라이즈 공격대가 포함된 미 해군 함재기들의 공격에 침몰했다. 엔터프라이즈에게 직접적으로 한 방을 먹이지는 못했으므로 맞수 항목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과달카날부터 레이테 만 해전까지 쇼카쿠급과 동행하며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했고, 엔터프라이즈의 공격을 막아낸 전공이 있으므로 여기에 싣는다.
머리가 너무 커서 슬픈 항공모함. 함생 내내 구르면서 자기 역할을 다했지만,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나구모 주이치가 엔터프라이즈를 잡는다며 미끼로 던지는 바람에 격침당했고, 이 틈에 일본군 항모전단이 엔터프라이즈를 공격해서 손상을 입힌다. 그러나 일본 항모전단은 수송함대를 놔두고 줄행랑을 쳐버렸고, 그 결과 일본군의 수송함대는 큰 피해를 입고 철수해야 했다. 엔터프라이즈를 직접 때린 건 아니지만 아무튼 도움이 되기는 했고, 태생적으로 큰 결함을 안고 있었음에도 함생 내내 많은 수훈을 세웠으므로 여기에 싣는다.
일본군 제 8함대의 기함이며, 사보섬 해전에서도 함대 기함으로 참가, 미 해군에게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과달카날 해전에서 분노의 엔터프라이즈와 마주쳐서 개발살났으며, 휘하에 있던 키누가사는 침몰했고 이스즈는 대파, 자매함 마야도 중파당했다. 이후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미군 호위항모의 포격으로 개발살났고, 승조원 전원이 사망했다. 사보섬 해전에서 기함을 지냈고, 과달카날 전역에서 많은 전공을 올렸지만 중순양함이 호위항모에게 박살나는 굴욕을 당했기에 여기에 싣는다.
일본군 전함 중에서는 가장 수훈함으로 꼽히지만, 엔터프라이즈를 상대로는 별다른 실적이 없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하루나가 제1항공함대의 호위역으로 참전했지만 패배했고, 필리핀 해 해전에서도 호위임무에 실패했다. 레이테 만 해전[43] 에서는 즈이카쿠가 엔터프라이즈를 꾀어내서 생긴 틈을 이용해 레이테 만으로 진격했지만, 야마토와 나가토는 단 한 척의 구축함에게 쫓겨서 도망가버렸고 하루나는 아무런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공고는 일본 최고의 전함답게 미군 구축함들을 대파시키며 상당히 활약했지만 구리다 턴 때문에 임무에 실패했다. 이후 공고는 미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했고, 하루나는 대공포를 몰수당한 후 구레 군항 공습에서 꼼짝못하고 침몰당했다.
구레의 유키카제와 사세보의 시구레는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행운함이며, 절대로 치명상을 입지 않는 기막힌 행운을 자랑한다. 엔터프라이즈가 작전 중에 몇 번이나 피해를 입은 걸 감안하면, 유키카제는 엔터프라이즈조차 능가하는 행운함인 셈이다. 그러나 해전에서 승리를 안겨주고 아군 군함 대부분까지 살려서 귀환하는 엔터프라이즈와 달리, 유키카제와 함께 싸운 일본 군함들은 대부분 침몰당했으며 해전에서도 패배를 거듭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연유로 유키카제에게는 "동료 군함들의 운을 빨아먹는 사신"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다른 군함에 탑승하는 수병들 역시 "같이 출격하면 다 죽고 저 놈만 살아온다"며 유키카제와 함께 출격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적의 공격을 피한다는 측면에서만큼은 엔터프라이즈를 능가하지만, 그 외에는 엔터프라이즈의 안티테제다. 엔터프라이즈와의 별다른 접점도 없고, 중요한 전투에서 제대로 활약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구축함이라는 함종 자체의 한계이긴 하지만....
적의 공격을 피한다는 측면에서만큼은 엔터프라이즈를 능가하지만, 그 외에는 엔터프라이즈의 안티테제다. 엔터프라이즈와의 별다른 접점도 없고, 중요한 전투에서 제대로 활약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구축함이라는 함종 자체의 한계이긴 하지만....
4.3. 빈수레
엔터프라이즈의 적수로 가끔 거론되지만 실상은 전공도 없으면서 이름만 유명한 배들.
전쟁 전에는 '나가토와 무츠는 나라의 자랑'이라는 말을 들으며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만, 전쟁 중에는 별다른 전공이 없으며 레이테 만 해전에서 단 한 척의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쫓겨 (야마토와 함께) 도망치는 추태를 보였다. 전후에는 핵실험 제물로 바쳐졌으며, 야마토에 밀려 돋보잡으로 전락했다.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군 함대의 호위역으로 참전했지만 결과는 승리의 엔터프라이즈. 그래도 전쟁 전의 지명도만은 엔터프라이즈와 비교될 수 있는 수준. [45]
자매함 무츠도 유명세만은 나가토와 맞먹는 수준이지만, 이쪽은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했다가 순양함들을 쫓아가지 못하고 낙오되었고 이후 원인불명의 주포탑 폭발사고로 침몰했다.
자매함 무츠도 유명세만은 나가토와 맞먹는 수준이지만, 이쪽은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했다가 순양함들을 쫓아가지 못하고 낙오되었고 이후 원인불명의 주포탑 폭발사고로 침몰했다.
-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
세계 최대의 전함이자 일본 해군의 상징이지만 전쟁 중에는 별다른 전공이 없으며, 전쟁 후에 일본의 선전으로 유명세를 얻은 해상 호텔.[46]
엔터프라이즈와의 인연은 별로 없지만, 과달카날 전역에선 일본군의 다른 배들이 목숨을 걸고 엔터프라이즈와 싸우는데 호텔 노릇이나 하면서 미군 승리에 일조했고, 레이테 만 해전에선 즈이카쿠가 엔터프라이즈를 꾀어내서 만든 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구축함, 호위항공모함, 호위구축함들로 이뤄진 소규모 함대를 정규 함대로 착각하고 덤비다가 플레처급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쫓겨서 나가토와 함께 도망치는 추태를 보였다. 그 후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연합함대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제물로 자살돌격에 동원되어, 별다른 전과도 못 세우고 침몰했다.
사실 두 함의 함생을 비교해보면 라이벌보다는 안티테제에 더 가깝다. 야마토는 건조 당시부터 제국의 비장의 카드 마냥 애지중지 되었지만 엔터프라이즈를 포함한 항모들은 전쟁전만 해도 전함을 서포트하는 2선 전력이나 마찬가지였고, 상부가 너무 애지중지하다보니 전선에 나가지 않고 후방에 쳐박혀있기만 해서 '야마토 호텔'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들은 야마토와 달리[47] 엔터프라이즈는 전선에서 끊임없이 굴렀고, 수병들로부터는 'The Big E'라는 애정과 자부심이 담긴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야마토는 죽기 위한 전투에서 격침당하며 수천명이나 되는 자신의 승조원들을 길동무로 삼아 버렸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자신의 승조원들을 육지로 살려 보내고 자신은 수명이 다한 함들이 그렇듯 명예롭게 퇴역한 후 스크랩 처리되었다. 사람으로 치면 자연사. 뿐만 아니라 야마토의 경우는 전후 일본이 야마토 신성화 작업이란 역사 왜곡을 거쳐서야 유명하게 된 것 역시 당대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엔터프라이즈와 대조된다. 덤으로 야마토는 후대를 남기지 못했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이라는 후대를 남기며 세계 최강의 미국 항모 전단의 뿌리가 되었다. 한 때 서로 대립했던 양국 각자의 최고의 인기함이라는 점 때문인지 대비되는 면이 더 부각된다.
자매함인 무사시와 시나노도 세계 최대의 덩치를 자랑했지만, 이쪽도 내세울만한 전과는 없고 이름만 유명하다. 무사시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의 공습을 받고 침몰했으며, 시나노는 엔터프라이즈를 만나기도 전에 미군 발라오급 잠수함 아처피시에게 침몰했다. 덤으로 시나노는 단 한 척의 잠수함이 침몰시킨 역대 최대의 군함, 전쟁에서 격침당한 최대의 군함[48] , 역대 최단명[49] 군함 등 온갖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달고 있다.
엔터프라이즈와의 인연은 별로 없지만, 과달카날 전역에선 일본군의 다른 배들이 목숨을 걸고 엔터프라이즈와 싸우는데 호텔 노릇이나 하면서 미군 승리에 일조했고, 레이테 만 해전에선 즈이카쿠가 엔터프라이즈를 꾀어내서 만든 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구축함, 호위항공모함, 호위구축함들로 이뤄진 소규모 함대를 정규 함대로 착각하고 덤비다가 플레처급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쫓겨서 나가토와 함께 도망치는 추태를 보였다. 그 후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연합함대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제물로 자살돌격에 동원되어, 별다른 전과도 못 세우고 침몰했다.
사실 두 함의 함생을 비교해보면 라이벌보다는 안티테제에 더 가깝다. 야마토는 건조 당시부터 제국의 비장의 카드 마냥 애지중지 되었지만 엔터프라이즈를 포함한 항모들은 전쟁전만 해도 전함을 서포트하는 2선 전력이나 마찬가지였고, 상부가 너무 애지중지하다보니 전선에 나가지 않고 후방에 쳐박혀있기만 해서 '야마토 호텔'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들은 야마토와 달리[47] 엔터프라이즈는 전선에서 끊임없이 굴렀고, 수병들로부터는 'The Big E'라는 애정과 자부심이 담긴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야마토는 죽기 위한 전투에서 격침당하며 수천명이나 되는 자신의 승조원들을 길동무로 삼아 버렸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자신의 승조원들을 육지로 살려 보내고 자신은 수명이 다한 함들이 그렇듯 명예롭게 퇴역한 후 스크랩 처리되었다. 사람으로 치면 자연사. 뿐만 아니라 야마토의 경우는 전후 일본이 야마토 신성화 작업이란 역사 왜곡을 거쳐서야 유명하게 된 것 역시 당대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엔터프라이즈와 대조된다. 덤으로 야마토는 후대를 남기지 못했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이라는 후대를 남기며 세계 최강의 미국 항모 전단의 뿌리가 되었다. 한 때 서로 대립했던 양국 각자의 최고의 인기함이라는 점 때문인지 대비되는 면이 더 부각된다.
자매함인 무사시와 시나노도 세계 최대의 덩치를 자랑했지만, 이쪽도 내세울만한 전과는 없고 이름만 유명하다. 무사시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의 공습을 받고 침몰했으며, 시나노는 엔터프라이즈를 만나기도 전에 미군 발라오급 잠수함 아처피시에게 침몰했다. 덤으로 시나노는 단 한 척의 잠수함이 침몰시킨 역대 최대의 군함, 전쟁에서 격침당한 최대의 군함[48] , 역대 최단명[49] 군함 등 온갖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달고 있다.
4.4. 유럽전선의 군함
유럽 전선의 군함들은 엔터프라이즈처럼 전쟁의 흐름을 뒤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에 비해 지나치게 강했고, 독일 해군은 소련 해군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 전선은 해전보다는 지상전과 공중전 위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몇 척의 배가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전장도 아니었다. 독소전쟁은 독일과 소련의 육군이 주연이고, 영국과 독일도 많은 육상전을 벌였다. 태평양 전쟁에선 드문드문 떠 있는 섬과 광대한 바다가 무대였다면, 유럽 전선은 대서양 외에도 광대한 육지가 전장으로 있었기에 생긴 한계다.
물론 유럽 전선의 군함들 중에도 수훈함은 많다. 영국 전함 HMS 워스파이트가 노르웨이 전역에서 독일 해군 절반을 박살내버린 예가 있고,[50] 전함 비스마르크가 영국 주력함대에 맞서 홀로 싸운 예도 있으며, '''침몰한 후에도''' 독일군에 맞서 싸운 소련군 전함 마라 같은 예도 있다[51] . 그러나 그들은 엔터프라이즈처럼 혼자서 전선 전체를 지탱하지 않았다. Enterprise VS Japan이 괜히 전설이 된 게 아니다. 그들이 수훈함임에도 불구하고, 엔터프라이즈와 맞먹는 수준에 올라갈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5. 기타
워낙에 격전을 많이 겪었고 일본군의 혈압을 오르게 한 함선이라, 세계에서 가장 침몰 허위보고가 많이 올라온(9회) 함선이기도 하다. 심지어 최초의 침몰 오인보고는 진주만 공습 당시의 보고였다. [52]
그리고 이곳에 가면 엔터프라이즈의 일대기를 한글로 상세하게 볼 수 있다.
엔터프라이즈 데미지 리포트USS ENTERPRISE CV6 War History 7 December 1941 to 15 August 1945
제16임무부대(Task Force 16)Task Force 16 Citation
전장에서 활약하다가 쓸쓸하게 퇴장해서 많은 밀덕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찾아보면 엔터프라이즈와 비슷한 처지의 배들은 많다. 당장 후계자인 CVN-65부터가 같은 처지고,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영국 해군에서 가장 활약한 전함인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워스파이트도 해체를 위해 이동하던 중 좌초해 그 자리에서 해체되었고, 과달카날에서 키리시마를 박살내 도쿄급행을 끝장낸 전함 워싱턴도 해체, 범선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트라팔가 해전에서 기함 빅토리를 구한 전열함 테메레르도 해체처분을 받았다. 이 때 테메레르가 해체를 위해 신세대를 상징하는 증기선에 인양되어 가는 장면은 유명한 그림이 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다.[53]
5.1. 배틀 360
히스토리 채널에서는 이 배의 전투 기록을 소재로 한 'Battle 360''이라는 10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었다.
1편. 출격! USS 엔터프라이즈
2편. 미드웨이의 반격
3편. 지옥의 혈전
4편. 산타크루즈 대전
제목대로 산타크루즈 해전을 다루며, 마무리를 장식하는 말은 그 유명한 Enterprise VS Japan.
5편. 과달카날을 사수하라과달카날 해전을 다룬다.
6편. 회색유령의 질주엔터프라이즈의 개장과 타라와 전투를 다룬다
7편. 진로를 바꿔라헤일스톤 작전을 다룬다
8편. 태평양의 D.Day위대한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을 다룬다. 당연히 Turkey shot도 언급.
9편. 도쿄를 향하여레이테 만 해전을 다룬다. 핵심은 세계 최강의 전함 야마토가 미군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쫓겨서 도망간 사마르 해전.
10편. 제국의 최후일본 제국의 멸망과 엔터프라이즈의 해체를 다룬다.
엔터프라이즈의 기록을 다룬 만큼 산호해 해전 이야기 등은 없지만 레이테 만 해전 등의 주요 해전들도 다루긴 다룬다. 또한 엔터프라이즈의 승조원들에 대한 인터뷰 역시 잔뜩 실려있으며[54] 엔터프라이즈 내 비행대나 여러 소소한 사건들도 들을 수 있다.[55] 이런 노력 덕분에 미국쪽 고증은 거의 완벽하다. 그러나 일본 해군 쪽에 대한 고증은 조금 부족하다. 나가토와 아카츠키가 둘다 순양함이라고 나온 그 그 예다. 실제론 나가토는 대형 전함이고 아카츠키는 구축함이다. 심지어 나가토가 중순이라는 오류는 한번도 아니고 두번 나온다. 엔터프라이즈에게 패배한 적들에 대해서는 그 강함을 과장하는 경향도 있는데, '지옥의 혈전'편에서의 사카이 사부로는 일본의 붉은 남작이라는 식으로 나오고 '태평양에서의 D day'편에서의 다이호는 흡사 최종병기스러운 설명과 함께 등장한다. 다만 '지옥의 혈전'편에서 소개되는 사보섬 해전에 대해서는 미군의 질적 우위를 역설한 후 "적은 놀라운 전술로 그 모든 걸 극복했다"는 멘트와 함께 짤막하게 언급하는 정도이고, 뭐가 놀라운 전술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심지어 해전의 이름조차 생략할 정도이다. 하지만 어쨌든 미군 부분의 고증은 끝내주게 좋다보니 이 문서 내에도 해당 다큐를 참조한 부분이 많이 있다. 더빙으로 보러가기.
여담으로 2010년 전후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상당히 자주 틀어줘서 한국에서 해전 관련 밀덕들의 입문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6. 대중문화
태평양 전쟁의 주역이자 말 그대로 전쟁드라마 같은 함생을 산 함선이니만큼 태평양 해전을 소재로 했거나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을 따온 함선이 등장하거나, 그리고 단 한척의 함선이 고군분투 끝에 전황을 뒤집는 전개가 나온다면 십중팔구는 이 배가 기원이다.
스타트렉 시리즈의 우주선 엔터프라이즈는 이 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USS 엔터프라이즈의 관련항목 참조.
우주왕복선 엔터프라이즈도 이 배의 이름을 따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타 트렉의 스타쉽 USS 엔터프라이즈(NCC-1701)는 바로 이 문서의 주인공인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CV-6)에서 이름을 가져왔다고 스타 트렉 시리즈의 방송작가였던 Gene Roddenberry가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스타 트렉의 팬들이 백악관에 수십만통의 투서를 날려서 우주왕복선의 이름으로 바꾼 것. 그러니 원래 이름의 기원은 이 배가 맞다.
프라모델의 경우 1/700의 워터라인 시리즈의 경우 타미야제 한 모델 외에는 발매되고 있지 않다. 상대적으로 이펙트가 적은 CV-3 새러토가나 CV-8 호넷이 복수의 회사에서 발매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조금 이상하다. 심지어 1/350으로는 일본 내 회사에서는 발매되고 있지도 않다(...). 타미야제의 경우 1973년 금형임에도 단차도 우수하고 몰딩도 우수하다. 아마 판매량이 적다보니 금형이 아직 쌩쌩한 듯. 하지만 정작 이 킷의 가장 큰 문제는 함재기와 선체는 후기형이지만 함교는 막상 각이 진 전기형이라는 것이다. 둥근 후기형 함교를 하고 싶으면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 판 등을 이용해서 개조하는 수 밖에는 없다. 그러다가 트럼페터에서 1/700 스케일로 출시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43년형이다. 이어서 트럼페터의 자회사인 메리트 인터내셔널에서 1/350 스케일의 엔터프라이즈[56] 를 출시하였다.
2017년 8월 아카데미과학에서 1942년형 엔터프라이즈가 출시되었다. 박스아트는 와일드캣이 그렸다.
SCP 재단 한국어판에선 SCP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중이라는 설정. 실제 역사에서의 스크랩 처리된 결말은 역정보로, 여기에서는 시대에 따라 최신예 스펙으로 자동 업그레이드된다는 변칙성이 발견되어 재단에서 '''현역으로''' 굴리고 있다고 한다.[57]
[image]
월드 오브 워쉽에서 8티어 프리미엄 쉽으로 나온다.
성능은 정규 미항의 동앗줄인 철갑급폭 테스트베드라 보면 된다.항공모함이 리워크 된 이후에도 철갑급폭을 쓰며, 현재 8티어 항공모함들 중 승률 1위를 달리고 있다.
물론 성능도 특출나서 대함대공 다재다능한 함선. 항공모함 리워크 후에도 철갑 폭탄과 12기에 달하는 로켓 공격기, 전투기를 운용하여 동티어 항공모함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image]
Naval Creed:Warships에서 4티어 MM8.1프리미엄 쉽으로 나온다
구매비용과 업그레이드 비용이 만만치는 않지만, 4티어 항모중에 최강급 성능과, 전용 수리반을 가지고 있다, 수리반 덕에 항모저격에 거의 면역인셈.
모바일 게임 벽람항로에서는 SSR급 항공모함으로 등장. 캐릭터 자체도 정상권을 다툴만큼 인기있고, 성능도 벽람항로 내의 항공모함 중에서도 최고급. 스킬 발동 시 자신이 받는 대미지를 무효화하는 동시에 대미지도 뻥튀기되는, 상당히 강력한 스킬로 등장해 일반 해역, 연습전을 가리지 않고 크게 활약하는 함선이다.
미드웨이(2019년 영화)에서는 당연히 등장하며, 영화의 주인공은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폭격기 조종사였던 베스트 대위이다.
소설 별이 펄럭일 때에서 미 해군 소속 정규 항공모함으로 등장. 상대가 일본 제국 해군에서 판타지의 제국 해군들으로 바뀌었을 뿐 바뀐 상대들과 싸우면서도 업적을 줄줄이 쌓아나가며, 스토리 중간에 대서양 전역이 주무대가 될 때는 파견근무까지 나가는 등 작가도 밀어주는 함선이다. 전쟁 후반기엔 몰락 작전의 중간 단계에서 함대 총기함을 맡아 시홀앙르 제국 수도 공습까지 펼친다.
폴란드의 레고 호환 밀리터리 전문 브랜드 코비 블럭에서 1/300 스케일의 블럭으로 구현한 엔터프라이즈를 출시했다.
대체역사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이 이끄는 미 해군 항공모함으로 등장. 역사가 바뀌어서 1942년 1월 25일, 진주만 공습이 일어나고 진주만을 공격하고 돌아가는 일본 제국 해군항공대 3차 공격대를 추격하여 큰 피해를 입힌다. 이후 태평양을 누비고 다니며 초카이와 히요를 비롯한 여러 척의 일본 제국 해군 함선들을 단신으로 격침시키고 일본 제국 해군에게 그레이 고스트라는 별명을 얻는다. 작품의 마지막 파트 부분을 장식하는 독일, 영국, 미국의 연합군 함대와 일본 제국 연합함대와의 결전에서 윌리엄 홀시 제독이 이끄는 기함으로 등장해 활약하고, 카미카제 공격에 대파되나 수리하고 소류를 역으로 격침시켜버리는 위엄을 보여준다.
대체역사소설 대영제국 함장이 되었다에서도 미 해군 항공모함으로 등장. 역사가 뒤틀려 독일 제국 해군, 영국 해군과 함께 일본 제국에 맞서 싸우며 무려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의 Bf109가 착함하는 장면도 나온다. 엔터프라이즈는 엔터프라이즈라 이 역사에서도 단신으로 과달카날 전투의 일본 증원군을 타격하고 전쟁 후반기 일본 제국 연합함대와의 결전에도 참가해 대활약한다.
워쉽배틀:2차세계대전에선 과거 보스전 최강자로 등극했었으나 파워 인플레와 비싼 무기값, 항공모함 특유의 낮은 기동성과 얇은 장갑, CIWS등 방어 무기가 없는 등 여러 문제가 겹쳐 완전히 고인이 되었다. 엔터프라이즈 감성 말고는 굴릴 가치가 없는 함선. 심지어 더 강한 항공모함들도 잔뜩 나왔으니 전혀 쓸모가 없다.
7. 외부링크
- USS ENTERPRISE CV-6 The Most Decorated Ship Of The Second World War
- NavSource Online : Aircraft Carrier Photo Archive USS Enterprise
- Wikipedia USS Enterprise (CV-6)
[1] 랭글리, 렉싱턴, 새러토가, 레인저, 요크타운, '''엔터프라이즈''', 와스프, 호넷.[2] 군함이 회색이라 붙은 별명이지만, 사실 태평양 전쟁 중 엔터프라이즈는 위장을 위해 회색보다는 짙은 푸른색으로 더 오랫동안 전투를 치뤘다. 엔터프라이즈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도 "우리는 전쟁이 나자마자 갑판과 선체를 어둡게 칠했어요. 그래서 칠하지 않은 일본의 항공모함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라는 승조원의 증언도 있다. 시기별로 엔터프라이즈의 위장 색은 거의 다 푸른색이다. #[3] 중국에선 엔터프라이즈를 한자로 번안해서 적을 때 음차하지 않고 그냥 뜻을 있는 그대로 해석해서 '''기업(企業)'''이라고 번안하곤 한다.[4] 이 기관포의 별명은 마피아들이 즐겨쓰던 톰슨 기관단총에서 따와 '시카고 피아노'였다. 기관포 사수들이 붙여준 별명. 2차 세계 대전 초기까지 미 해군 군함에 많이 장비되었던 대공기관포. 하지만 태평양 전쟁 초기 실전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잦은 탄 걸림 현상을 비롯해 낮은 신뢰성으로 병사들에게 원성이 높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5인치 포와 12.7mm 기관총이나 20mm 기관포 사이의 갭을 제대로 커버하기엔 너무 작은 화기라서 사거리가 부족했고, 반대로 초근접한 적기를 상대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기에는 너무 묵직한 물건이었다. 여기다 포의 발사속도도 높지 않아 (분당 150발 x 4) 효과적이지 않은 매우 어정쩡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선함 대부분에서 빠르게 도태되었고, 유명한 보포스 40mm (56구경) 기관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5] 보포스 40mm (56구경) 기관포.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시켰다고도 이야기 된다. (오리콘 20mm 기관포가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했다는 주장도 있다.)[6] 카미카제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20mm 오리콘 기관포 일부를 철거하고, 40mm 기관포를 증설했다.[7]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1942년 후기에서 1943년을 거치며 대공화력이 강화되는 걸 볼 수 있다. 이러한 대공무장 강화와, VT신관, 함대원형진 전술이 어우러져 미군 함대의 대공방어 능력은 획기적으로 강화되었고, 그 결과 산타크루즈 해전처럼 심지어 침몰수로는 일본 측이 앞선 외견상 일본측이 승리한 듯한 전투에서도, 미군보다도 도리어 일본 항모기동부대가 더 많은 항공기와 인원을 잃고 사실상 전력을 상실함으로서, 결국 작전에 실패하는 상황이 초래되기에 이른다.[8] 격납고가 단층이라 모든 함재기가 수납될 수 없으므로 비행갑판에도 계류시켜 운용했다. USS Enterprise CV-6에선 최대 96기라 표기하고 있는데 Location of U.S. Naval Aircraft, World War II» 1944 » 7 Nov 1944에선 엔터프라이즈에 소속된 CVG-20의 함재기가 F6F 55기, SB2C 24기, TBM 19기로 총합계가 98기인데 이게 어떠한 상태로 있는지 따로 설명된 것은 없다.[9] 이는 일종의 야사라는 말이 있다.[10] 사실 이게 가능했던 건 항모라는 함종의 특성 덕분이다. 항모는 일선에서 직접 포격을 주고받는 함이 아니기에 동력과 갑판, 엘리베이터가 멀쩡하고 함이 기울지만 않았다면 다소 손상이 있어도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11] 이때 나왈급 잠수함 노틸러스의 행동 역시 중요했다. 노틸러스는 카가와 아카기 사이를 파고들어서 두 배 중 하나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를 아라시가 쫓다 본대에서 멀어져 급하게 따라가느라 생긴 항적을 보고 미군이 일본군 항모를 발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12] 폭탄 4발이 모두 함수 비행갑판에 몰려 명중하여 피해 범위가 적었고, 항공유나 폭탄이 유폭되지도 않아서 가만히 서서 피해 복구에 전념했다면 살 수도 있었겠지만 급폭기 두 대가 상공에서 선회하며 기회를 노리는 통에 계속해서 고속으로 항진하며 회피기동을 펼칠 수밖에 없었고, 그러던 사이에 화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퍼졌다.[13] 엔터프라이즈의 함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배틀 360' 3화 지옥의 혈전편에서 나오는 설명이다.[14] 터너 제독이 "주력함대의 탈출"이라며 분개한 내용의 출처는 #.[15] 와일드캣은 3대가 격추되고 1대가 손상되었으며 뇌격기는 2대 격추, 1대 불시착, 1대 손상이었다.[16] 해당 사건의 주인공 히다카는 이때 아군 전투기 둘을 잃고, 모함의 방향을 잃어 결국 자신을 포함해 세명만 쇼카쿠로 귀환하게 된다. 참조.[17] 그리고 요크타운급 항공모함들 중 유일하게 생존한 항공모함이 된다.[18] 몇 몇 이들은 이에 대해 '새러토가도 있는데 이 문장으로 물고 빠는 건 헛소리'라고 말하나 만일 새러토가가 저 상황이 되었다 해도 그건 새러토가가 대단한 것이지 폄하받을 일이 아니다. 이것은 엔터프라이즈가 가장 필요할 때에 살아남아 적 주력을 박살 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19] 엔터프라이즈가 소속되는 부대는 대개 제16기동부대인데, 이 부대명을 받게 되는데는 독특한 경과가 있다. 자세한 내막은 윌리엄 홀시 참고.[20] 참고로 배급된 아이스크림은 미 해군 항공모함에서 소화재로 쓸 고체 이산화탄소 생성 과정에서 나오는 냉기를 이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21] 이 때 엔터프라이즈의 방공화기는 40mm 보포스 54문에 20mm 오리콘 32문이었다. 게다가 당시 엔터프라이즈의 방공 능력은 이제 막 취역해서 경험이 부족한 새내기도 아니고, 위에 언급된 격전들을 통해 단련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승조원들이 담당하는 것이라 이들이 쏘는 대공포화는 가히 탄막 슈팅에 필적했을 것이다. 슌스케 중위는 이걸 뚫고 카미카제 공격을 성공시킨 것이다. 따라서 슌스케 중위 또한 엄청난 뉴타입 파일럿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러한 최정예 파일럿한테 카미카제 공격이나 시키는 일본의 말로는 불 보듯 뻔했다.''' 위에서 언급된 마크 미처 제독의 등화관제 사례를 보면 참 아이러니한 부분.[22] 사진속 불기둥끝에 보이는 회색물체가 전방 엘리베이터다.[23] 히류는 엔터프라이즈로 대피한 요크타운 비행대와 같이 공격했고 모가미 및 미쿠마는 호넷 비행대와 함께 공격했다.[24] 이것은 '머렐 트와이벨'이라는 수병이 만든 물건으로 엔터프라이즈에서 사용되던 특제 물건이었다. 기존의 호흡보조기의 두배 성능을 낸 이 물건 덕에 엔터프라이즈는 기적처럼 살아날 수 있었다.('battle 360' 중)[25] 히에이는 1942년 11월 13일 먼저 핸더슨 기지에서 공격해온 SBD 돈틀리스 편대와 에스피리투 산토 섬에서 날아온 B-17 폭격기의 공격을 받아 2번 주포와 4번 주포가 사용불능이 되었다. 이어서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TBF 어벤저 편대(제10뇌격대) 9기와 F4F 와일드캣 6대가 히에이를 발견하고 뇌격해 조타 불가능의 피해를 입고 퇴함명령이 내려진다. 마지막으로 좀전에 히에이를 공격한 엔터프라이즈 제10뇌격대(6기로 줄어들었지만)가 핸더슨 비행장에서 보급을 받은 뒤 해병대 소속 돈틀리스 8기와 함께 돌아와서 히에이를 재공격, 어뢰 2~4발(자료에 따라 다름)과 폭탄을 여러번 얻어맞은뒤 자침 처분되었다. 함선을 포기하게 한 것은 핸더슨 비행장에서 날아온 공격대지만 뇌격대 편대는 원래 엔터프라이즈 소속이었다.[26] 수리함 베스탈과 엔터프라이즈 승조원 그리고 미 해군 시설대대(Seabees)까지 동원하여 어떻게든 수리하고 출격했지만, 작전 지역 도달 전까지 계속 수리 작업을 진행했으며 전방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의문스러운 상황이었다.[27] 히요는 항공모함 렉싱턴에서 출격한 함재기의 뇌격으로 우현후부를 얻어 맞아 기관정지되었고 뒤이어 날아온 엔터프라이즈 항공대의 폭탄을 함교에 뒤집어 쓰는 치명타를 입는 바람에 중요 지휘관들이 몰살하고 이어서 호위항공모함인 벨로우드의 함재기 혹은 잠수함의 뇌격을 받고 계류되다가 침몰한다. 후에 해군 소장까지 승진한 엔터프라이즈의 함상폭격기(엔터프라이즈 답게 신형 함폭인 헬다이버가 아니라 구형인 돈틀리스) 편대장 James D. Ramage(당시 소령)의 수기에 의하면 류호를 공격한건 자신과 Van Eason중위가 이끌던 편대였고, 엔터프라이즈의 편대장 Louis L. Bangs 소령이 이끈 함폭 편대 6기가 히요를 공격했다고 한다. 참고로 래미지 소령과 뱅스 소령, 이슨 중위는 이 전과로 인해 세명 모두 해군 십자상(Navy Cross. 명예 훈장 다음으로 높은 훈장)을 수여 받는다.[28] 추가로 중순양함 토네는 엔터프라이즈가 소속된 38임무부대의 폭탄을 맞아 피해를 입은 것은 확실한데 정확히 어느 부대에 공격을 받았는지는 미확인[29] 1위 20개인 엔터프라이즈, 2위 18개인 경순양함 샌디에고, 3위 17개인 중순양함 샌프란시스코와 미니애폴리스, 구축함 오베넌. 4위는 16개인 포틀랜드, 엔터프라이즈의 첫 파트너인 노스캐롤라이나는 5위로 15개다.[30] 그 '''전역'''이 아니라 'Campaign'이다.[31] 장기간 현역 활동한 CVN-65 엔터프라이즈가 받은 훈장은 CV-6 엔터프라이즈 보다 더 많았다. CVN-65 엔터프라이즈가 받은 훈장[32] 호넷의 전과표에 있는 항공모함은 즈이카쿠가 아니라 다른 항공모함이다.[33] 참고로 항공모함 호넷도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서 상당히 일찍 만들어졌다.[34] 이런데도 불구하고 엔터프라이즈가 입은 피해 대부분은 급강하 폭격으로 인한 것이었다. 일본군이 엔터프라이즈에 줄기차게 어뢰 공격을 가했지만 전부 피했기 때문.[35] 1945년 5월에 있었던 손상으로 인해 전선에서 물러난 엔터프라이즈에 소속되어 있었던 VF(N)-90은 작전 중 사망 7명, 그 외 사망은 2명, VT(N)-90은 작전 중 사망 15명, 그 외 사망은 9명이었다.[36] 물론 컨스티튜션처럼 지속적으로 순환근무가 이루어지는 함선은 혼동유발을 이유로 함선명 계승이 안되긴 하지만 컨스티튜션은 여전히 현역이기 때문에 함명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다. 렉싱턴급 순양전함 중 한 척에 이 함의 이름을 물려주려고 했던 적이 있었긴 했지만 이 때는 컨스티튜션이 퇴역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37] 예를 들어 일본군의 구식 경순양함 텐류와 유바리는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라는 사보섬 해전에 참전했고, 과달카날 해전에서도 엔터프라이즈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엔터프라이즈의 맞수가 될 수 없다. 이 두 척의 배는 사보섬 해전 당시에도 일본군의 걸림돌이었고, 이후에도 별로 활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38] 일본 측에서는 아카기와 카가를 높이 평가하지만, 미국 측에서는 쇼카쿠급 자매를 더 높이 평가한다.[39] 터너 제독이 "주력함대의 탈출"이라고 발언한 일의 출처는 #. 애매한 이유로 아군을 놔두고 철수했다면 도망쳤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욕을 먹은 건 철수 명령을 내린 지휘관인 프랭크 플레처 제독이지만, 엔터프라이즈도 주력함대의 일원이라 연대책임이나 내리갈굼처럼 보이기도 한다.[40] 특히 카가는 중일전쟁부터 투입된 베테랑중의 베테랑이었다.[41] 아카기는 태생적으로 선체크기부터 쇼카쿠급보다 컸으며, 카가는 선체는 작지만 더 넓은 갑판 & 높은 선체로 인해 함재기를 더 많이 실을 수 있었다.[42] 다만 비용은 아카기와 카가가 개장을 여러차례 거듭했던 탓도 있다. 순양전함/전함→3단갑판→단일갑판으로 대규모 개장을 두 번이나 했으니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43] 정확히는 그 일부인 사마르 해전[44] 진주만 공습 이후 경제성이 없는 캘리포니아와 웨스트버지니아를 굳이 건져내 살린 이유도 이것이다.[45] 굳이 개전 전의 자국 내 유명세로 범위를 좁히면 나가토의 승리다. 비록 미국이 항모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항모는 2선급 전력이었지만, 전함은 주력함을 넘어 그 나라의 국력의 상징인 존재들이었고, 이에 항모인 엔터프라이즈가 묻히는 건 당연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나가토는 결전병기인 야마토급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홍보되고 국민들에게까지 유명해졌으며, 관동 대지진 당시 구호 물자를 최대한 빨리 전달하기 위해 가속하다 속여서 발표한 최대 속력을 들키는 등의 행동들이 모여 인지도도 높고 국민 정서도 좋은 상황이었다. 반면 엔터프라이즈는 비록 최신형인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이긴 했지만, 미국에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항모는 개수형인 3번함 호넷, 최대의 항모는 렉싱턴과 새러토가라서 항모 내에서도 좀 밀리는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개전 직전 미 해군의 주력함 중, 병사들이 가장 사랑했던 배는 렉싱턴이었고, 국민 전체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건 빅 파이브, 그중에서도 특히 웨스트버지니아였다.[44] 하지만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미 해군의 자존심 웨스트버지니아는 너무도 허무하게 가라앉아버리고, 렉싱턴 또한 전쟁 초기에 침몰하였으나 엔터프라이즈는 격전들을 겪으며 수난들을 이겨 내고 전선을 홀로 지탱해나가며 점점 영웅이 되어 갔으나, 나가토는 허구한 날 항구에 짱박혀 전선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본군 특유의 똥군기까지 겹쳐 자국민들에게 '소문난 뱀'이라는 조롱까지 듣게 된다.[46] 야마토급 전함은 애당초 일본군 내에서도 존재를 감추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전쟁기 당시 일본 본토 국민들은 야마토급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실제로 전쟁기의 일본 본토 국민들에게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았던 함선은 존재도 모르는 야마토급이 아니라 위에 언급된 바와 같이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와 무츠였다.[47] 참고로 야마토의 자매함인 무사시 역시 '무사시 여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바 있다.[48] 야마토급의 자매함이지만 항모로 개장되면서 배수량과 크기가 약간 더 커 졌다. 특히 이 기록들은 3차 세계대전이라도 발발해서 미 해군의 초대형 항공모함이 격침당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깨질 일이 없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 안습이다.[49] 취역 후 열흘, 처녀항해 시작 후 17시간만에 격침당했다.[50] 심지어 이는 독일 구축함의 대부분을 박살낸 것이라 이후 계속 독일 주력함들의 발목을 잡고, 바다사자 작전같은 건 꿈도 못 꾸게 만든다[51] 물론 마라는 착저한 거지만, 편의상 침몰로 친다.[52] 표적함이 된 전함 유타의 침몰을 엔터프라이즈로 오인보고 했다고 한다. 출처는 청아람미디어에서 번역한 '존 키건'의 '2차 세계 대전사' 384p.[53] 007 스카이폴에서 본드가 바라보던 바로 그 그림이다.[54] 다양한 직종의 해군 장병들이 참여했다. 현직 군인 등도 제작에 참여했으며 반백년전 에이스 파일럿까지도 등장한다.[55] 야간폭격을 고안한 파일럿이 정작 자긴 운동하다 다쳐서 참여하지 못했다거나, 다리에 파편이 박힌 조종사가 작전을 수행하고 싶어서 귀환때까지 이야길 안했다거나 등 여러 이야기들이 나온다.[56] 1942년형.[57] 사실상 엔터프라이즈를 SCP로 써먹고 싶었던 어느 밀덕이 작성한 것에 불과하며, 항목 자체도 질이 높지 않지만 기동항공대등의 설정에서 자주 등장하며 한국어 재단 커뮤니티 내에서는 나름대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