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니 산쥬로

 


谷三十郎. 1832(?)년 ~ 1866년 5월 15일. 신센구미의 7번대 조장.
빗추 국의 마츠야마 번 출신으로, 타니 산지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산지로는 군의 깃발이나 말의 표식 등을 관장하는 하타봉행(旗奉行)을 맡은 상급무사로, 산쥬로는 어릴 때부터 직심류[1] 검술의 사범이었던 아버지에게 검술을 배웠다. 타니 만타로(谷万太郎)와 타니 쥬헤이(谷周平)라는 동생들도 있다. 가에이 6년(1853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문을 잇고, 주군이자 빗추 국의 마츠야마 번 제7대 번주인 이타쿠라 카츠키요(板倉勝静)를 가까이서 섬기기도 하였으나, 안세이 3년(1856년) 10월, 여성문제로 인해 가문이 단절되자 동생 타니 만타로와 함께 오사카에서 도장을 경영하게 된다.
분큐 3년(1863년) 가을 무렵, 교토에서 반(反)막부 세력을 단속하던 낭인부대 신센구미에 입대하여 부장 보좌직과 8번대 조장을 맡는다. 겐지 원년(1864년) 6월, 신센구미가 반막부 세력이 모여 있던 숙소 이케다야를 습격하였을 때, 히지카타 부대의 일원으로서 활약하여 포상금 17냥을 하사받았다. 같은 해 7월에는 교토에서 일어난 조슈 번의 상경 전투인 금문(禁門)의 변에서는 패잔병 색출 작전을 통해, 패잔병 다나카 큐이치로를 체포하는 등 많은 곳에서 활약하였다.[2] 게이오 원년(1865년) 4월, 7번대 조장 및 창술사범을 역임하던 중, 도사 번 내의 존왕양이 집단인 도사근왕당(土佐勤王党) 일파의 오사카 성 탈취 계획을 알아낸다. 그는 타니 만타로, 마사키 나오타로, 아베 쥬로와 함께 도사근왕당의 모임장소인 젠자이야를 습격하였고,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오사카의 번두들에 아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 뒤 산쥬로는 또 다른 동생인 마사타케[3]를 신센구미의 국장 곤도 이사미의 양자로 들여보내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였으나, 게이오 2년(1866년) 4월, 도쿄 히가시야마의 기온사(祇園社)에서 급사하고 만다. 그의 사인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고, 사이토 하지메에게 암살당했다는 설[4], 술을 마시고 뇌졸중으로 병사했다는 설 등의 설만 존재한다.

[1] 直心流 : 검술 유파 중 하나. 신명류검술, 신음류라고도 기록되어 있다.[2] 금문의 변이 종결된 이후에는, 동문에게 "강한 대사가 적어서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서게 되어버렸다"고 하소연했다.[3] 후에 곤도 슈헤이로 개명하게 된다.[4] 바람의 검 신선조에서는 이 설을 채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