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다 이상 성욕 살인사건
戸田・異常性欲男殺人事件
1. 개요
1970년 사이타마현에서 하기와라씨(당시 40세, 1930년생)와 그의 가족들이 살해된 후 시체로 발견된 사건.
2. 사건 발생
1970년 8월 10일 낮 사이타마현 토다시에서 공장일을 하는 하기와라 A씨와 그의 아내 B(당시 37세, 1933년생)씨, 장남(당시 11세, 1959년생), 차남(당시 8세, 1962년생)의 일가족 4명이 숨져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범인은 하기와라씨의 동생인 하기와라 마사토(당시 37세, 1933년생)로 그는 8월 8일 밤 11시경 본가에 있던 장작을 들고 하기와라씨의 집에 숨어 들어가 잠을 자던 4명을 차례차례로 살해하고 빈사 상태의 아내 B씨를 유린했다. 그 사이 다른 가족들이 신음 소리를 내어 행위를 중단하고 장작을 휘둘러 재차 쓰러뜨렸다.
B씨에게 입맞춤을 하려 들었지만 얼굴이 피로 물든 상태였기 때문에 포기하고 이윽고 밖으로 도망쳤다. 자세한 기록이 담겨진 사건록에선 쇠망치로 형수의 머리를 깨부수며 유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 사건 조사
검시 결과 도끼같은 흉기로 마구 때린 흔적이 보였으며 장남에게는 31차례나 창흔을 입혔고 전원이 두개골이 골절되고 머리뼈가 함몰, 뇌는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닳아있었고 안면도 알아볼 수 없는 참담한 상태였다고 한다. 아내 B씨의 하복부에 소량의 정액이 검출되었으며 너무나도 끔찍한 현장이기에 범인의 원한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11일 아침, 흉기로 쓰여진 장작이 발견되었고 하기와라씨의 본가에서 사용하던 것임을 금방 판명한 조사 본부는 그의 형제들을 철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기와라씨의 자택은 본가에서 1km 떨어진 근거리이며 본가에 사는 형제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장남인 하기와라씨는 상속권을 둘째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부친에게 자금을 받아 건물 매매 주택을 구입하여 살고있었던 상황이었다. 삼남인 마사토와 사남은 절도 상습범으로 검거된 전과가 있었으나 사남에겐 알리바이가 있었다.
용의자는 삼남인 하기와라 마사토로 좁혀졌고 그는 불과 3개월 전 절도 혐의로 아오모리 형무소에서 출소하여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다 6월과 7월경에 갑자기 형의 아내인 B씨에게 육체관계를 요구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는 8월 26일 도망중 돈이 급해져 모친에게 전화를 걸었고 형사는 그 전화 내용을 토대로 도쿄의 간이 숙박소에 은신하던 범인 마사토를 긴급 체포했다. 체포 전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형 부부를 살해했는가?"라고 묻자 주저하지않고 바로 "네"라고 고개를 숙였으며 "불끈불끈(ムラムラ)해서 저질렀습니다"라고 자백했다.
4. 용의자에 대하여
용의자인 하기와라 마사토는 어린 시절부터 이상성욕을 가진 자로 근처 목욕탕을 엿보거나 팬티를 훔치는 짓을 어른이 될 때까지 저질러 왔다. 그는 형의 아내인 B씨를 결혼 당초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으며 이윽고 B씨를 간음하여 육체관계를 맺었다. 이것을 계기로 형인 하기와라씨는 가족이 함께 살던 본가를 나와 따로 살게되었다. 경찰의 조사로 마사토는 출소 후 카와자키 시에서 일용직으로 일했으나 형수와 성관계를 하고 싶어져 형 집을 방문했고, 거절당해 옆집 담너머로 형 부부의 성관계를 보며 자위하다가 죽이더라도 그 짓을 하고 싶어져 살해 계획을 세웠다고 자백했다.
그는 공판에서 '''"제일 안타까운 건 형수의 고기를 먹지 못한 것"'''이라고 진술. 다른 여성에게도 같은 범행 계획을 세우고 있던 것이 판명되었다.
또한 경찰 측 조사 중 너무나도 검열삭제에 대한 이야기 밖에는 하지 않아 질린 형사가 '''너, 머리엔 섹스 밖에 들지 않은거냐?'''라고 묻자 "'''네"'''라고 대답했다고.
이는 개선의 여지가 없음으로 판단하고 1972년 12월 사형 선고를 내렸다. 정신감정에서는 '의지박약증, 감정이 없는 정신 질환이며 동시에 관음증, 페티시즘, 카니발리즘(여성의 신체를 먹는 것) 등의 이상 성욕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되었다. 그는 항소하지 않고 형이 확정되어 1976년 4월 사형이 집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