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스넬다

 

Thusnelda
게르만족의 해방자라 불리는 아르미니우스의 아내이자 세게스테스의 딸로 아르미니우스가 그녀와 결혼할 것을 청했다.
세게스테스는 투스넬다가 결혼을 약속한 자가 있다며 이를 거절했으며, 이는 토이토부르크전투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서, 그녀는 14년에 아르미니우스에게 납치혼을 당하였다.
타키투스의 저서에 따르면 1년후에는 그녀는 아버지 세게스테스의 곁에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녀의 귀환이 자의로 의한 것은 아닌것으로 평했다 (Annals I.57). 세게스테스는 15년경 아르미니우스에게 맹공을 받고 포위당하여 절제절명의 순간이었는데, 친-로마파인 그는 로마군에게 구원받을 수 있었다.
투스넬다의 아버지는 로마군에게 구원받은 후 임신한 자신의 딸을 로마군에게 바쳤고, 자신의 아내와 태어나지 않은 자식이 로마인들의 전리품이 된것을 알게된 아르미니우스는 크게 분노하였다고 한다 (Annals I.59). 아르미니우스는 로마측에서 싸운 자신의 동생 플라부스와 베서 강 전투를 앞두고 강을 두고 큰소리로 서로 다투었다고 하는데 이때 플라부스가 투스넬다는 '로마 전통대로' 그녀가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변호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로마의 원정이 끝나자, 투스넬다는 17년 5월 26일 게르마니쿠스의 개선 행진에 전리품으로 전시되었고 그이후 그녀의 자취를 찾을 수 없다.
로마군의 포로로 억류되면서 투스넬다는 아르미니우스의 아들인 투멜리쿠스를 낳았으며, 이 아들은 그의 유일하게 기록된 후손이다. 안타깝게도 투멜리쿠스에 대한 기록은 라베나에서 성장했다는 타키투스의 증언 뿐이다. 다만 라베나가 검투사 양성으로 유명했던 것을 감안하여 아르미니우스의 아들 또한 검투사로 키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은 있다 (James Grout).
한때 그녀의 아버지가 친로마파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아르미니우스의 편이었고 뒤에서 은밀히 아르미니우스의 계획을 도왔다는 근거없는 의견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아르미니우스에게 죽임 당했다는 내용이 있었으나, 이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나무위키의 창작이다. 세게스테스는 언제나 꾸준히 친로마적인 노선을 취했으며, 로마에게 자신의 딸과 손자조차 전리품으로 기꺼이 바친 것이 로마측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이다. 생몰년도 또한 확실하지 않아서 누구에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으니 헛소리에 속지말자.
이탈리아의 피렌체의 시뇨리야 광장의 로지아 데이 란치에서 그녀를 소재로 후대에 만든 조각상이 있으며, 1873년에 카를 폰 필로티가 그린 게르마니쿠스의 개선식에 끌려나온 투스넬다라는 작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