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미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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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이토부르크 전투의 승리를 이끈 게르만의 영웅으로, 독일에서는 게르만의 해방자로 대접받는다. 한국으로 따지면 이순신 급의 대우를 받는 독일의 국가적 영웅.
아르미니우스(Arminius)는 로마식으로 표기된 이름이며, 줄여서 아르민(Armin)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독일에서는 주로 독일식 이름인 헤르만(Hermann)으로 불린다. 현대 독일어와 게르만어 사이에 다소 차이가 있어서 어느 쪽이든 원어로 읽은 이름은 아니다.
2. 생애
게르만족의 한 부류인 케루스키족의 군장인 세기메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원전 11년~기원전 9년에 있었던 드루수스의 게르만족 정벌로 인해 인질로 로마로 보내졌다. 아르미니우스는 로마에서 자라며 로마군에서 군사 교육을 받았다. 로마 시민권을 얻어 기사계급(에퀴테스)이 되어 로마군의 전술을 터득하고 또한 로마군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했으며 이후 게르마니아로 돌아오게 된다.
그 자신은 게르만족의 왕국을 세워 왕이 될 야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가 게르만족의 왕이 될 것을 두려워한 친척들과 대립하였다.
로마는 게르마니아에 지배권을 행사하여 라인강을 넘어 엘베강 연안까지 속주화하려고 하였는데, 이를 위해 아우구스투스는 푸블리우스 퀸틸리우스 바루스를 총독으로 파견하게 된다. 문제는 게르마니아의 사정에 어둡던 바루스가 금이 부족하였던 게르만족들의 형편을 무시하고 예전에 자신이 먼저 부임했던 속주들에서 하던 대로 세금을 금으로만 거두어 들이거나 로마의 민족우월주의 등을 내세워 게르만족의 정서와 문화를 무시하는 등, 게르마니아를 무리하고 성급하게 속주화하려고 시도했다.
아르미니우스는 바루스 밑에 있을 당시 군사적 능력을 포함한 모든 능력을 인정받는 동시에 신임받기까지 했으나 바루스는 그에게 치안관 이상의 직책이나 권한은 부여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자신이 홀대받음과 동시에 소외되었다고 생각한 아르미니우스는 로마와 협력하는 대가로 힘을 빌려 게르만족의 왕이 되려했던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수정하여 자신을 따르는 여러 게르만족 부족들을 연합하여 기원후 9년에 봉기하였다. 그는 자신이 봉기를 주도한 사실을 숨기고 바루스를 전장으로 꾀어내어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로마의 3개 군단을 전멸시키는 쾌거를 이루어낸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뒤인 기원후 14년부터 티베리우스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게르마니쿠스 카이사르가 보복으로 이끌고 온 로마군의 공격을 받으면서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으며 16년에 벌어진 이디스타비소 전투에서 게르마니쿠스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참패하면서 그의 세력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1] 이후 로마군은 앙그리바리안에서 다시 집결한 아르미니우스의 세력을 격파했고, 게르만족의 거주지들까지 공격해서 초토화시켰기에 더욱 큰 타격을 입었고 아르미니우스는 끝난듯 했다. 하지만 티베리우스 황제는 여기서 더 나가기를 원치 않고 게르마니쿠스를 로마로 소환하면서 아르미니우스는 기사회생했다.
로마군이 철수한 이후 아르미누스는 로마와의 전쟁 대신 마르코마니족의 왕인 마로보두스와 전쟁을 벌여 그의 군대를 패퇴시키지만 보헤미아를 탈취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게다가 아르미니우스가 자기를 도와준 숙부이자 장인이기도 한 세게스테스까지도 친 로마파로 몰아서 죽이는 것을 본 아르미니우스의 친척들은 그가 게르만족의 왕이 되면 자신들까지 해칠 것이라고 판단하여 결국 21년에 자객들을 보냈고 아르미니우스는 길을 가던 도중 자객들에게 습격을 받아 단검으로 살해된다.
아르미니우스의 숙부 잉고마르(벨레이우스 II.118.2)와 장인 세게스테스 (타키투스 Annals I.55)는 다른 사람이다. 두명 모두 로마에 우호적이었다고 무려 '로마' 역사가들이 기록했다. 그리고 아르미니우스가 숙부나 장인을 암살했다는 내용은 역사에는 없는 허구이다. 다만 친족들에게 암살당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이면서 (타키투스 Annals II.88) 이로서 '12년의 권력은' 끝나게 되었다.
세게스테스의 딸이자 아내 투스넬다는 이후 로마에 포로로 잡혀 로마로 끌려갔고, 거기서 아들 투멜리쿠스를 낳았다.
3. 뒷이야기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가 게르만 족의 우상이라니 숭배사업을 거창하게 벌이면서 그의 신격화가 나치에 연관되어서 한동안 독일에선 그에 대하여 언급을 꺼리기도 했다. 물론 나치 청산이 많이 이루어진 지금은 아르미니우스가 다시 독일의 위인으로서 많이 언급되고 있다.[2] 같은 독일문화권인 스위스(독일계 주민 한정)[3] , 오스트리아[4] , 리히텐슈타인에서도 독일 민족의 위인으로 추앙받는다. 물론 이들 국가는 문화적으로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로마가 싫어서 그런 건 전혀 아니고, 저항정신을 본받자는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바바리안이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제작됐다.
[1] 특히 이 전투는 개활지에서 벌어졌다.[2] 유럽 국가들은 로마에 맞선 '야만족' 족장들을 위인으로 추앙한다. 영국은 부디카, 프랑스는 베르킨게토릭스, 루마니아는 데케발루스(다키아 왕), 벨기에는 암비오릭스(카이사르와 싸운 벨가이족 족장)를 영웅으로 칭송한다. 족장까지는 아니지만 트라키아인 출신인 스파르타쿠스 또한 불가리아에서 로마 제국 지배층의 폭압에 맞서 싸운 영웅으로 추앙받는다.[3] 프랑스계는 라틴계 + 켈트(헬베티아)계, 이탈리아계와 레토로망스계는 라틴계다. 라틴계는 로마의 후예이고 켈트계는 게르만계에게 핍박받은 역사가 있어서 딱히 아르미니우스를 기념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스위스인들은 현재는 사멸한 켈트족 헬베티아인의 혈통이 언어권 불문하고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4] 이쪽도 소수의 비독일계 주민들(특히 헝가리계와 체코계)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