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론주의

 

페론주의(스페인어: Peronismo)는 사실 후안 페론이 젊었을 적에 무솔리니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도 있는 데다가 집권 후에 소모사,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등 반공주의 성향의 독재자랑 꽤나 친하게 지내면서 공산당을 탄압했고, 또한 나치 인사를 일정부분 받아들였고 더군다나 1956년에 쿠데타로 쫓겨난 이후에는 반공주의 정책을 내세운 국가였던 파라과이와 파나마, 스페인을 오가며 망명생활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페론 개인적인 성향은 좌파라고 하기에는 뭐한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원주민 차별을 없애고 복지정책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등 좌파적인 정책을 부분적이나마 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교적으로도 자유진영이 아닌 제3세계 중립성향으로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과도 사이가 좋고 우호적이었으며 이들과도 교류가 잘 이뤄졌었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페론 정권시기이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점에서 제툴리우 바르가스와도 유사점이 있다. 그래서 1960년대 후반기 들어서 좌파 페론주의자들도 등장했고 페론도 1970년대 들어 후안 페론에게 정세가 유리하게 돌아가자 아르헨티나로 귀국하면서 명예회복을 할 생각에 좌파 페론주의자을 끌여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향이 급속히 다양해지게 된 것.
그래도 1980년대 민주화 직후부터 1990년대까지는 정의당 아래에서 한솥밭을 먹었지만 2000년대 초에 경제위기 속에서 정의당이 재집권하는 과정에서 분열이 일어났고 2003년 대선을 앞두고 정의당내 각 계파들이 각기 따로 후보를 내면서 각 정파들끼리 따로따로 놀게 되었다.
이하는 페론주의가 추구하는 목표라고 하는데 사실 1990년대-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할 수 있겠다. 페론당 출신 대통령인 카를로스 메넴은 신자유주의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고, 키르치네르 부부 정부에서 페론주의를 부분적으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겠기는 한데 그 방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사실 페론주의가 까이는 것은 스페인어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페론주의가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비페론주의자들이 대책없이 무능하거나 오히려 새로운 위기를 생성해내기 때문이라는 말이 절실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