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콜로르

 


[image]
Fernando Collor de Mello, 1949.8.12 ~
브라질의 정치인으로 브라질의 제32대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으로 독일계이다. 성씨인 Collor에서 그 흔적을 알 수 있는데 쾰러(Koelher)를 포르투갈어식으로 변형한 것이다.
정당소속은 민주사회당[1] 브라질 민주운동당[2]-국가재건당이다.
1976년에 정계 입문을 한 이래로 지자체장을 맡아왔다. 브라질이 민주화 된 이후에 알라고야스 주지사를 지냈고, 이때 고위급 공무원들의 급여를 고위 공무원들의 반발을 제압하고 삭감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고 빈민층들의 지지도 얻게 되었다. 얼마나 지출을 줄였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전국구급 정치인으로 급부상하게 된것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쌓아올린 유명세로 1989년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대통령직에 처음 출마했을때만해도 대통령직에 오를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 이는 콜로르의 정치경력이 별로 길지 않고, 그렇다고 민주화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것도 아니었다. 사실 처음에 몸을 담았던 국가혁신연합이라는 정당이었는데 이 정당은 군사독재정권기 때의 여당이었다. 비록 독재정권의 악랄할 행보에 가담한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민주화 운동에 나선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 때문에 당초에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지만 잘생긴 외모에다가 매스 미디어에 잘 먹힐만하게 전략과 공약을 기막히게 잘짜냈고 조제 사르네이를 신명나게 깐 덕택에 지지율이 급상승하여 결선에 진출했고, '''1988년 헌정 이후 첫 직선 대통령'''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3]
참고로 결선투표에 진출했을때 경쟁자는 다름아닌 룰라였다. 참고로 룰라가 외채를 너무 많이 갚았기 때문에(... 무책임한 소리처럼 보이지만 1980년대 당시 외채이자율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틀린말은 아니었다. 외채를 꼬박꼬박 잘갚다가 패망한 사례가 바로 루마니아에 있었고 동구권 공산체제 붕괴 원인중 하나가 외채난이라는 얘기가 있는걸 보면)외채를 갚지않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외채갚을 돈을 빈민층 복지와 인프라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2차 선거에 진출했다. 결선투표에 진출하면서 1차 토론회에서 룰라가 콜로르를 제압하했고, 콜로르가 룰라를 자신의 아내를 낙태시킨 부도덕한 후보라는 광고를 찍으면서 네거티브 공세를 하다가, 오히려 룰라의 전처에게 돈을 주었다는 폭로가 이어지며 결정적인 약점을 보여준 탓에 룰라가 콜로르의 지지율을 추월하기 직전에까지 다달았다. 하지만 당시 브라질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헤지 글로보에서 자유시장 경제와 민영화를 주창한 콜로르를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던 탓에 2차 토론회의 생중계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편집을 통해 콜로르에게 유리하게 편집하면서 콜로르의 지지율을 추월당하는 일은 피할수 있었고 그렇게 콜로르가 간발의 차이로 당선될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1990년 3월 취임했을 때 나이가 겨우 40살이었다.어쨌든 재임 초기에는 주지사 시절에 그러했듯이 대대적인 부패추방 캠페인을 펼치며 여러 비리 관료들을 내쫓았고, 뛰어난 패션센스와 입담, 쇼맨쉽을 발휘해서 인기가 많았다. 심지어 신문에다가 직접 축구칼럼을 쓸 정도였는데 이것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집권 초기에는 브라질의 케네디라는 별칭을 달았다.
그러나 대대적인 민영화 및 보조금 지급 정지, 공공요금 인상, 예금동결이라는 극약처방을 썼음에도 당시 브라질 경제 최대의 문제점으로 손꼽히던 초 인플레이션과 외채문제를 해곃하는데 실패해버리고 말았고 은행고객들이 큰 손해를 보게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초 인플레이션은 지속해서 이어졌다.[4] 이렇게 경제정책의 실패로 지지율이 내려앉았고 더군다나 재임 중반기 들어 선거운동 기간 동안 2800만 달러 가량을 부정축재를 한 의혹이 나오면서 지지율이 급락해버렸고. 결국에는 의회에서 탄핵되었다. 결국 1992년 12월 29일 직무정지가 결정되면서 쫓겨나[5], '''브라질 최초의 탄핵된 대통령'''으로 찍히고 말았다.[6] 여하튼 8년간 공직선거에 출마할수없게 되었지만 2000년대 와서 정계복귀를 시도하였고 처음에는 정계복귀에 실패하는 듯했다가 2006년 상원선거에서 당선되어 하지만 2010년 들어서 위기에 처하기는 했지만 브라질의 관대한(...) 선거제도에 힘입어서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중.
다만 콜로르가 유난히 부패한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많다. 사실 카르도주든 룰라든 테메르든 심지어 보우소나루도 부패혐의에서 썩 자유로운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지우마 호셰프가 개인적으로 깨끗한 축에 드는 인물이라는 것이 주평이다. 다만 지우마도 룰라의 비리에 대해서는 감싸려고 했기 때문에 평이 좋은것은 아니다.

[1] 이름은 민주사회당이지만 우파정당이다. 사실 브라질 내의 정당들 가운데 겉으로는 좌파적인 당명을 지니고 있더라도 실제로는 우파적인 정책을 지향하는 경우가 있으니 딱히 이상한건 아니다[2] 민주화 이후의 브라질에서 가장 장기집권한 정당이다. 우파정권이든 좌파정권이든간에 연립정권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집권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주운동당 소속으로 지우마를 쫓아내고 대통령직을 지내고 있는 미셰우 테메르는 2010년과 2014년 대선에서 지우마 호세프의 러닝메이트였다 [3] 이전의 1985년의 대선에서는 탄크레두 네베스가 당선되었으나 간선제였다. 그리고 네베스가 취임도 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에 호세 사르네이 부통령이 승계했다.[4] 브라질의 초인플레이션이 어느정도 진정되게 된건 헤알화 계획이 통과되고나서부터였다. 물론 IMF 외환위기로 크게 흔들리나 싶었지만 어쨌거나 현재까지도 브라질의 연 물가상승률은 10%를 넘지는 않는다.[5] 엄밀히 말하자면 탄핵소추안이 최종적으로 가결되기전에 스스로 사퇴했다. 그러나 상원은 사임을 무시하고 탄핵안을 가결시켰다.[6] 그런데 탄핵 당시 브라질에서는 한 인기 여배우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여배우를 추모하는 분위기가 가득했고, 언론에서도 대통령 탄핵보다 이 사건을 더 중점으로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