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연방 공화국 제35대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Luiz Inácio Lula da Silva
'''
<colbgcolor=#009B3A><colcolor=#FFD700> '''출생'''
1945년 10월 27일 (78세)
브라질 페르남부쿠 주 카에테스
'''재임기간'''
제35대 대통령
2003년 1월 1일 ~ 2010년 12월 31일
'''서명'''
[image]
'''정당'''

'''종교'''
가톨릭(해방신학)
'''신장'''
168cm
'''배우자'''
마리자 레티시아(1974~)
1. 개요
2. 생애
2.1. 젊은 시절
2.2. 정치 경력
3. 긍정적 평가
3.1. 경제성장
3.2. 융통성 있는 소통정치
4. 비판적 평가
4.1. 경제성장 거품론
4.2. 퇴임 이후 부패 스캔들
5. 기소와 정계복귀 논란
6. 한국 관련
7. 어록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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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제35대 대통령.
줄여서 룰라 다 시우바 혹은 그냥 룰라라고도 한다.[1] 그의 집권 기간 브라질은 국가부채를 해결하고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치고 올라갔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브라질을 구해내고 교육시스템을 확충하고 복지제도를 손질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기회를 준 인물로 깔끔하게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모습에 한동안 존경받아 왔던 지도자이다.
그렇지만 2014년 이후에 부패 혐의 등이 드러나고, 경제위기로 인해 그의 경제성장 업적이 그냥 운발이라는 평가가 대두되면서 브라질 내에서도 욕을 먹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2년 1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때 대선 출마를 기도했으나 좌절되었다.

2. 생애



2.1. 젊은 시절


1945년 10월 27일 브라질 동북부 페르남부쿠 주의 카에테스에서 태어났다.
룰라의 아버지 아리스티데스는 룰라가 태어나고 며칠 후 상파울루로 훌쩍 떠났다. 7년 후 룰라의 어머니와 자식들이 상파울루로 찾아갔을 때, 아버지는 이미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본 상황이었다. 그는 원래 아내와 자식들을 본척 만척했고, 심지어는 룰라와 형제들을 학대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결국 견디다 못한 어머니와 룰라의 친남매들은 그런 아버지와 의절을 하고 타 지역으로 떠났다. 이후 아버지는 알콜 중독으로 일찍 사망했다.
룰라 집안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상파울루 주로 삶터를 옮겼지만 그래도 궁핍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학업을 포기하고 땅콩장사와 구두닦이를 했다. 14세 때부터 상파울루 철강공장에서 일당 천원 근처의 돈을 벌기 위해 밤새 일하다가 18세 때 사고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이후 룰라는 손가락이 절단된 공장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을 하는데, 워낙 열악한 작업공간 때문에 아내는 임신한 채로 간염에 걸려서 아기와 함께 사망하고 만다. 이 당시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가끔은 길가에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당시 희망없던 룰라의 삶이 브라질 국민 다수의 삶이었다는 것.

2.2. 정치 경력


1966년 한 금속산업 공장에 취업한 룰라는 이후 1969년 노동운동가로 나섰다. 이 시절 브라질1964년 군부세력이 쿠데타로 주앙 굴라르트(João Goulart) 대통령의 좌파 정권을 무너뜨린 후 85년까지 20년 이상 무력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노동자당(PT)의 창당 멤버인 룰라는 1982년 상파울루 주지사 선거에서 노동자당 후보로 출마하여 4위에 머물렀다. 그 후 대통령 직접선거 운동을 주도하여 1983년1984년에는 각 주의 주도에서 대규모 시위를 이끌었다. 대중적 인기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룰라는 1986년 전국 국민의회 선거에서 상파울루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86년 군사정권이 축출되고 룰라는 연방하원 선거에 출마해 최다 득표로 화려하게 정계에 진출했다. 89, 94, 98년 세 차례 대권 도전에서 룰라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급진적인 좌파 정책 때문에 모두 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2년 10월 대선에서는 공약을 온건중도적인 내용으로 바꾸고 유세 복장도 티셔츠야구모자 대신 정장으로 바꾸고 수염도 다듬는 등 온건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을 거뒀고 상당수 중도파와 중도우파 성향의 정치인까지 포섭하여 대선에 승리했다.[2] 2003년 1월 임기 4년의 브라질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으며, 2006년 말 재선에 성공하여 브라질 사상 두 번째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된 룰라는 대대적으로 빈곤층에게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지원 대상을 점점 넓혀갔다. 다만 여기에 '''아이를 학교에 보낼 것. 단, 결석률 15% 이상이면 지원 보류'''라는 조건을 걸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ília)''' 정책이다.
식민지 시절 지주-소작농 경제구조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군부독재가 오래 지속되면서 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한 남미에선 빈민층들이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을 포기하는 자포자기 상태가 된 지 오래이다.
이런 종류의 저소득층 지원형 복지정책이 다 그렇듯 "이런 경제사정에 복지에 돈을 쏟으면 나라를 파탄낼 것이다"라는 명렬한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보우사 파밀리아의 가장 큰 효과는 바로 국가의 미래인 어린이들에게 나타났다. 룰라가 브라질 대통령이 된 직후 실시된 보우사 파밀리아의 핵심은 바로 빈민층을 지원하면서 그 지원의 대가로 '''자녀들을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로 보내고 교육시킬 것'''을 요구한 것이다.[3] 학교 출석률은 의심의 여지 없는 큰 상승을 보였고, 반대로 어린이 노동 착취는 줄어들었다. 또한 극심한 가난으로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한 아이들에게 영양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룰라의 보우사 파밀리아는 급속한 극빈층의 감소와 중산층의 증가로 나타났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보조금도 받게 된 빈민들이 그럭저럭 중산층 행세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호전된 중산층의 경제능력은 증가하는 소비의 기반이 되었고, 이는 내수시장을 발전시켜 기업의 이익과 궁극적으로는 전체 경제에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되었다.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삶이 가능하게 된 수많은 국민들은 룰라의 절대적인 지지층이 되었다. 빈곤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부자한테 돈 쓰는 건 투자라고 하면서 왜 빈민에게 돈 쓰는 건 비용이라고 하냐'''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막장이었던 브라질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큰 업적을 이뤄낸 룰라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경의를 표하는 대상이 되었다.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조차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브라질 대통령이라고 언급했을 정도. 경쟁자이자 룰라에게 패배한 사회민주당의 주제 세하(José Serra) 주지사도 "룰라의 뒤를 이어 브라질을 발전시키겠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뒤는 동지인 지우마 호세프 후보가 있었다.

3. 긍정적 평가


그의 인기는 대단해서 퇴임을 두 달 앞둔 때까지 지지율이 '''80%'''에 달했다. 3연임[4]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에 대해 본인이 별로 탐탁찮은 반응을 보임에도 국민의 대다수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을 정도. 결국 3연임을 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났는데 그의 뒤를 이을 차기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완전 무명이었던 지우마 호세프를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당선시켜 버렸다. 그야말로 박수칠 때 떠날 줄 알았고, 자신의 재임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의지를 후계자에게 계승시키는 데 성공한, 진정한 지도자계의 위너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호세프는 원래 지지율 10% 미만에서 시작했는데, 룰라와 같이 대선유세를 다니면서 지지율이 엄청 뛰어올랐다. 룰라가 손 한번 잡고 연단에 설 때마다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여론조사까지 있다(...). 지우마 호세프는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특이한 것은 여당 후보인 호세프는 물론이고 야당 후보인 시우바마저도 '''룰라 사진을 내걸고 유세를 했다는 것.''' 시우바는 대놓고 자신이 브라질 대통령이 되어도 룰라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브라질 내에서 룰라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하는 대목. 심지어 제2야당인 녹색당 후보마저 '''룰라 만세'''를 외치고 다녔다고 한다(...).

3.1. 경제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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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집권한 8년간, 실업률은 12%에서 7%대로, 경제규모는 약 7천억 달러가 늘어나 세계 8위로, 국가부채 규모는 GDP 대비 50%에 육박하는 막장상황[6]에서 18%대로 낮아졌다.
그간 브라질은 막대한 자원과 넓은 영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상황은 군부독재 역사, 아동노동착취, 국정막장운영, 정치부패, 너무 많은 빈곤층 등 나라의 땅덩어리와 규모에 비하면 암울했었다. 이런 막장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론 집권 직전의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일 정도로 겉에서 보기엔 멀쩡한 나라였지만, 실상은 높으신 분들의 삽질과, 불안한 국내정세, 희망을 잃은 국민 등 국가 막장 테크를 가장 성실하게 타고 있던 국가였다.
그런 나라를 '''8년 만에 모두 뒤집어버린''' 대통령이 바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이다. 룰라 임기 말의 브라질은 세계 5위권 GDP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었다.

3.2. 융통성 있는 소통정치


그가 브라질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월가 등지에서 룰라를 '''"포퓰리즘으로 성공한 기회주의자에 터무니없는 복지 예산 집행으로 심각한 재정 지출을 야기해 브라질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인물."'''이라고 맹공했었다. 그리고 브라질의 외국 자본들이 죄다 도망가버렸다. 조지 소로스 또한 브라질은 룰라로 인해 아르헨티나처럼 나라를 들어먹을 거라고 2002년 브라질 대선 당시부터 대차게 까댔다.
우파들한테만 까인 것도 아니었다. 좌파도 마찬가지였다. 중남미 사회운동에 정통한 좌파 사회학자 제임스 페트라스는 룰라 정부의 1년(2003년)을 평가하면서 "탈레반 신자유주의자"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룰라의 빈곤퇴치정책이 빈곤과 실업을 더욱 증가시키는 포풀리즘 수법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에서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브라질을 미제국주의의 하위파트너로 변질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브라질 내외의 좌파들이 룰라와 노동자당에 대한 환상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고 결론 짓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과 달리 순탄한 경제 성장이 이뤄지자 그런 소리는 싹 들어갔다. 그 대신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성공한 룰라 대통령'이라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룰라는 시장주의자들을 고용해 중앙은행이나 경제부에 투입시켜 낮은 법인세, 소득세, 세금 감면 정책들을 유지하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아마존 개발은 그렇게 시작되었으며,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 또한 그렇게 끌어들인 돈들, 특히 세계은행에서 준 차관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는 좌파이긴 하나 좌우이념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오히려 임기 초엔 서민보다 부유층의 지지를 받았는데 극좌적인 정치행보를 보일 것이라 예상했던 룰라가 의외로 온건중도좌파개혁적인 스탠스를 취했기 때문. 또 반대로 수천만 저소득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복지정책과 양극화 개선을 시행했는데, 이건 국가부채의 해결과 함께 브라질이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키워줬다. 룰라의 경제 정책을 평가함에 있어 단순히 우파적인 정책이나 좌파적인 정책 한 면만 보고서 평가하기보다는 이 두가지의 정책이 어찌 서로간의 시너지를 발휘했는지 알아보아야만 한다.
'''문제가 있으면 좌우여야 구분없이 당의회 가리지않고 직접 만나고 부딪히는 게 룰라식 소통정치였다.'''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던 조제 사르네이(José Sarney) 전 대통령과도 친구가 된 그는 조제 사르네이 전 대통령에게 "룰라의 말에는 믿음과 진정성이 있다. 다민족 브라질 사회에서 모든 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낸 진정한 대중의 대통령, 위대한 브라질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참고로 이런 소통정치는 브라질의 정치 구도와도 관련이 있다. 브라질은 국회에서 한 정당이 과반수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봉쇄조항 없는 권역별 비례대표제(하원) 등의 이유로 브라질에서는 국회에 진출한 정당이 20개가 넘어가며, 룰라 집권 시기에 제1당이었던 노동자당도 의석수로는 전체의 1/3도 되지 못했다. 따라서 대통령 중심제이지만, 여러 정당을 끌어들여서 연립정부를 구성해야만 했다.[7] 온건 이미지로 집권해서 우고 차베스라파엘 코레아처럼 여론을 무기로 집권당에 유리하게 선거제도를 개편할 수도 없었다. 다만 이 때문에 지우마 호세프가 비교적 쉽게 축출될 수 있었다는 평도 있다.

4. 비판적 평가


그러나 룰라 역시 정치인이라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일단 마약치안 문제는 그의 집권기간에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그는 빈곤층과 부자 사이의 소득 차이 완화 및 브라질의 위상 제고와 경제성장에 큰 공을 세웠으나, 그 이면에는 무분별한 아마조니아 개발이 뒤따랐다. 특히 환경단체는 아마존의 무분별한 개발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지만 아마조니아는 브라질 땅이라며 거부했다. 물론 아마존이 브라질 땅이고 개발도 자유라고 볼 수 있지만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아마존은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땅이다. 또한 선진국들도 과거의 행태를 반성하고 더 많은 환경복구금을 지참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으므로 적정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더욱이 아마존 개발 과정에서 아마존 밀림에서 살던 브라질 원주민들이 박해당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 브라질 정부도 헬리콥터를 띄워서 아마존을 무단개발하는 걸 적발해서 막대한 벌금을 물리게 한다. 그러나 너무 넓어서 일일이 단속하기도 힘들고, 개발업자들이 돈과 권력이 있고, 공무원들도 부패한 사람들이 있어 뇌물을 챙겨서 쉬쉬하니깐 효과는 없었다. 원주민들에게도 원주민 마을에 국어인 포르투갈어를 가르치는 강사를 보내서 수업에 참석하면 경제 지원금과 무상교육을 주는 등의 복지 정책을 펴긴 하였지만 원주민들에게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고 원주민 문화에 대해 우월감을 내포한다고 느낄 수도 있는 전시행정일 뿐이었다. 아무리 룰라가 노동자와 서민층을 우선하는 좌파정권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어차피 브라질 원주민들에겐 룰라는 자기가 원래 살던 영토에 자본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 정책을 펼치는 백인 통치자에 지나지 않았다.
또 그의 아들들은 대통령 당선 전에는 평범한 대학생교사였으나 당선 이후 유명한 통신회사의 CEO가 되어 야당에서 해당 내용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국가 예산을 빈곤층 지원에 많이 할당한 나머지 다른 부분의 예산이 삭감되어[8] 보건소의 약이 떨어지고 의사의 수도 줄어들었으며 병실도 모자라 많은 환자들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언론기관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인해 생긴 빚을 자신의 재임 중에 탕감 또는 체납액 지불을 미뤄 언론을 장악했다는 평가도 있다.
한편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브라질의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지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 지우마 호세프가 경제위기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탄핵당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만들어 냈다는 비판을 받는다. 브라질의 정당제도는 십수여 개의 정당이 일정 수준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거대 정당이라고 해도 전체의석의 20% 안팎을 차지하는 수준인데, 이 때문에 법안 통과를 위해서 정당 하나 하나를 설득해야 되어서 공약과 다르게 브라질의 부패상을 퇴치하지도 못했고, 룰라 자신의 발목까지도 잡게 되었다. 물론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 등이 필요한 사항이지만 연립정권이 붕괴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저했고, 결국 지우마 호세프의 발목까지 잡게 되었다.
한편 룰라에 대한 비판은 그에 대한 언론의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와도 연관되어 있다. 브라질은 몇 개의 우파 언론 그룹이 대부분의 신문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우파 정책을 옹호하고 좌파 정책의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특히 누구의 문제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브라질의 각종 경제 사회 문제까지 사회주의 정부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연결해 보도해 후임 지우마 호세프 정권의 인기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4.1. 경제성장 거품론


큰 업적 중 하나라는 경제 성장 또한 단순히 전 세계적 호황기에 집권한 덕이라는 비판이 있다. 룰라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은 사실상 전임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9] 대통령의 말기에 수립된 정책을 수정없이 그대로 이어간 것이 룰라 정부에 들어서며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뿐이라는 것이다.[10]
자국 내 산업 성장으로 인한 경제성장이 아닌 '''급성장하는 중국으로의 원자재 수출이 늘어나는 덕분에''' 브라질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룬 것이라 자원 수출에 기대는 부실한 경제 구조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2003~2010년간의 브라질 수출 품목을 비교해 보면 전체 수출에서 전자기계(9→7%), 교통장비(14→9%)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하였으며, 광물자원(14→29%)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11][12]
후임자인 지우마 호세프의 인기가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룰라에게 책임을 묻는 의견도 있다. 경제구조 개선을 미루면서까지 월드컵과 올림픽 개최에 심혈을 기울여 사회복지 시스템의 확충이 늦어졌고[13] 결국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고 시위대가 문제를 제기한 사회복지 확충에 드는 비용 마련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지지율은 지지율대로 떨어졌고 거기에다가 공업 발달도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바람에 브라질은 저성장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 전 세계에 중계된 2014 브라질 월드컵 전후의 크고 작은 시위와 소요사태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
결국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자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인 철광석 등 원자재의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고공행진하던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떨어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4.2. 퇴임 이후 부패 스캔들


퇴임 후 룰라 집권 당시 여당에서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의 자금을 부풀려 기재한 뒤, 그 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려 의회내 표를 매수했다는 것이 드러난 멘살랑[14] 사건이 터졌다.[15] 룰라나 노동자당은 룰라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고 부정했지만, 노동자당에서 룰라가 갖는 독보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가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좌측 정당답게 노동자당은 정치 부패에 대한 비판을 앞세워 왔는데, 정작 여당이 된 뒤 국영기업을 통해 정치권을 매수하는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청렴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어 브라질 국민들에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는 점도 악재로 거론되었다. 스캔들이 터지면서 2014년 대선에서, 과거 노동자당 내 룰라 후계자 경쟁에서 지우마 호세프 현 대통령에게 밀렸던 사회당의 마리나 시우바가 대선 경쟁 초기 큰 인기몰이를 하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제3의 후보들이 늘 그렇듯 시우바는 찻잔 속의 태풍이 되었고, 결선투표는 전통 우파[16] 사민당의 네비스 후보가 올라갔고, 이 과정을 거쳐 호세프 대통령이 노동자당 텃밭 북동부 몰표로 재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5년 이후로도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은 부정부패 스캔들로 인해 여당과 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날로 떨어져서 룰라가 다시 대통령 선거에 나간다해도 40%대의 득표율로 탈락할 것이라는 전망까지도 나오고 있는 중. 고급 리조트를 건설회사로부터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었다. 또한 룰라 재단에 대형 건설사들이 기부한 돈이 무려 800만 달러나 된다는 점도 룰라와 대형 건설사의 유착을 의심하게 한다.
때문에 2016년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18년 대선 출마를 가정한 예상 득표율도 22%에 그쳐, 야권의 유력 후보에 10%포인트나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유라시아 그룹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분의 1만이 “룰라가 정직한 정치인”이라고 답한 반면, 응답자의 거의 70%는 “(룰라가) 다른 정치인들처럼 부패했다”고 응답했다. 브라질 헌정 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을 묻는 조사에서 룰라는 한때 71%를 얻었으나 2015년 말 조사에서는 39%로 내려갔고, 2016년 3월에는 다시 37%로 또 내려갔다.
그러던 중, 연방검찰에서 기소하였고, # 법원에서 받아들였다. #
부패혐의로 세 번째 기소 확정되었다.#
총 5건의 기소가 이뤄진 가운데 이 중 첫 판결에서 아파트 수뢰에 대해 9년 6개월 형이 선고되었다. # 항고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당장 수감되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 4건의 기소에 대한 판결이 여전히 남아있어 긍정적인 상황이라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미셰우 테메르는 축산기업과의 부패스캔들 연루로 검찰에게 기소를 당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같이 얻어 걸린 것이 많은 브라질 상하원 의원들의 비호 아래[17]에서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대적 청렴함(?)으로 재평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본인 스스로가 비리혐의가 있다는 사실은 진작에 드러났고, 부패 정치인들과 연정에 참여한 과거가 없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실형 구형에 찬성하는 여론은 꽤 높은 편. 때문에 대선에 출마해도 당선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부패혐의로 네 번째 피고인 신분이 됐다.#

5. 기소와 정계복귀 논란


부패 스캔들로 인해 결국 룰라 전 대통령은 2016년 3월 브라질 법원에 구속되었으며, 이후 돈세탁 혐의 등으로 정식으로 기소되었다.
2016년 3월 16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를 수석장관으로 임명했다. 연방정부의 장관직에 임명되면 연방법원, 연방검찰만이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어 현재 부패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상파울루 주 법원의 구속을 피할 수 있기 때문. 장관직 임명이 이번 기소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연이어 검찰에서 폭로한 감청된 호세프와 룰라의 통화 내용은 장관 임명이 면책특권을 위한 것임이 드러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에게 경제, 정치 분야에서 파격적인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로써 아직 후광이 남아있는 룰라가 지지율이 바닥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대신 사실상 섭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물론 연립정권 탈퇴를 고려 중인 브라질 민주운동당도 도피성 장관직을 강하게 비판하다 3월 29일 연립여당에서 탈퇴해, 룰라의 앞날이 여전히 밝진 않다. 이로써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다시 탄핵 위기에 처했다.
결국 브라질 연방 법원이 수석장관직 임명에 대해 효력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룰라는 비리수사를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브라질과 중남미 국가들의 정치인들은 비리혐의가 드러나더라도 의원직이나 지자체장에 재직하는 경우는 흔하며 설사 정치적으로 몰락하여 구속되더라도 나중에 정치적으로 재기하는 사례는 많다. 그러나 룰라는 퇴임 후에 국회의원으로 재직하지 않아서 불체포특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데다가, 나이가 너무 많기 때문에 대통령 출마는커녕 정계복귀도 쉽지 않다. 형기를 다 마칠 때즈음이면 나이가 80대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자당이 다른 후보를 내본다면 중간에 사면될 가능성은 있겠지만 룰라를 뺀 나머지 좌파 후보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는 후보들 가운데서 룰라만 한 지지율을 얻는 후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룰라 지지층 가운데서 상당수가 기권표를 던진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더더욱.
하지만 옥중출마 가능성이 시사되고 있기도 하다. 옥중출마라도 입후보 자체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고 브라질 대통령은 3연임만 금지할 뿐 한 텀 이상 쉬고 나서 3선 출마는 가능하기 때문. 일단 2018년 대선에서 대권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부패스캔들 수사가 진행되면서 우파 성향의 정치인들도 대거 감옥에 들어가게 생겨버려서(...) 사실상 '''그놈이 그놈'''(...)이 되었다. 상대후보로 예측되는 네비스도 녹취록이 공개된 사건의 여파로 훅가버렸고, 지우마 호세프를 탄핵시키고 대통령직에 오른 미셰우 테메르는 아예 부패인사를 대놓고 내각에 참여시키고 검찰수사를 방해하는 등 부패정치인으로써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인 데다가[18] 개혁정치를 후퇴시키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지지율이 매우 낮다.
당시에는 룰라가 출마한다면 결선투표에서 상대후보로 누가 나와도 10-20% 이상의 격차로 여유있게 당선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해도 형이 취소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재당선된다해도 실질적으로 부통령으로 나오는 인물이 대통령이 될 것이었다. 상대인 시우바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부패스캔들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라서 양자대결 여론조사를 보면 시우바가 룰라를 10% 이상의 차로 앞서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시우바는 2014년 대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가고 토론회에서 밀리는 바람에 뒷심부족으로 3위로 탈락한 경험도 있는 데다가 롤라가 독재정권에 저항하면서 탄압받은 것이나 대선 3수를 한 만큼 관록이 대단한 인물이라 토론회에서 룰라에게 말빨로 뒤쳐질 수도 있었다. 룰라는 2016년 말의 여론조사에서도 변함이 없어서 여전히 1위를 달리고 있으며 결선투표에서도 사회당 소속의 시우바가 아닌 우파 사회민주당이나 민주운동당 소속 후보들에게는 압도적인 격차로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즉, 그나마 룰라를 이길 후보는 시우바 정도라는 것이다. 룰라 본인도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2018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6월 27일 브라질 대법원 판결에서 일단 보석이 허가되면서, 대법원 최종 판결 때까지는 일단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7월 8일 호제리우 파브레토 재판관이 룰라에게 석방 명령을 내리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몇시간후에 주앙 제부란 네토가 석방 명령을 무시하고 재수감 명령을 내리면서 혼란이 빚어졌다. 이러한 상충된 명령이 나온 덕택에 브라질 사법부 내부에서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결국 다시금 재수감 되었다. 그러나 사법방해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그렇지만 항소심에서 유죄가 있다고 판결내린 것도 모자라서 형량도 더 늘어났다. (9년 6개월->12년 1개월) 판결문을 보면 룰라가 저지른 비리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나왔고, 검사들이 다른 증언들을 무시하는 등 여러모로 무리수를 뒀지만[19] 항소심 판결 이후로도 지지율 1위를 쭈욱 달리고 있었으나 결국 2018년 4월 5일 대법원의 수감명령이 내려지고 결국 체포영장이 집행되었다.#
룰라 측은 어떻게든 옥중출마라도 강행하려고 했으나, 9월 1일 선거법원이 룰라의 출마 자격을 최종 박탈하면서 끝내 출마는 물 건너 간 일이 되어버렸다. 룰라 본인도 결국 출마포기를 선언하고 자신의 러닝메이트인 페르난두 아다지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 문제는 지지율이(...) 그리고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다지 후보를 누르고 극우성향의 보우소나루 후보가 당선되며 사면도 물건너 간 것으로 분석된다.
7살 손자 장례식[20] 참석을 위해 일시적으로 석방했다.#
한편 2018년 대선 이후 잠시 소강을 보였던 룰라 석방 운동이 다시 재개될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2019년 4월에 옥중 인터뷰를 가졌다.# 수감 이후 룰라가 수감 중인 쿠리치바 연방 경찰서 앞에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인사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석방운동 홈페이지
상파울루 교도소로 이감하려다가 연방대법원에 의해 중지되었다.# 검찰이 남은 형기를 산업시설 등 일하는 것으로 채운다는 제안을 했지만 거절하였다.#
2019년 11월 8일 연방대법원이 2심 재판의 유죄 판결만으로 피고인을 수감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해 580일 만에 석방되었다.#
석방 후 첫 대중집회에서 20만 명이 참석해 다시 반보우소나루 연대 형성에 들어간 상태이다.# 하지만 2022년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2020년 9월에 2013년 12월부터 2014년 3월 사이 대형 건설업체 오데브레시가 룰라 연구소에 전달한 기부금 400만 헤얼(약 8억 9천만 원)을 돈세탁해 빼돌린 것으로 기소하였다.#

6. 한국 관련


1990년대 룰라의 정당인 노동자당과 룰라의 대통령 출마 이야기는 노동자 정당을 수립하려던 한국 운동권들의 독서목록에 들어와 있었다. 그것이 열매를 맺은 것이 민주노동당이다.
그런데 2005년 룰라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하자, 민노당은 옛 동지에 대한 환영 성명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로는 신자유주의자가 되었다나. 당시 민노당은 룰라보다 좀 더 사회주의 색채가 강해서 중도화한 룰라에 크게 실망했었다. 이후 민노당 내 PD 계열이 만든 정당인 정의당, 노동당 같은 좌파정당들은 기존의 색채를 많이 버렸기 때문에, 민노당 시절 때와는 달리 룰라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노동당은 선거운동 때 브라질 노동자당과 룰라 다 시우바를 언급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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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룰라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2003년에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같은 연령대[21]에다가 살아온 역정이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인권변호사와 노동운동가로 노동자를 대변하였으며 정계 진출 이후에는 여러 번의 낙선 끝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 또한 집권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주 지지층인 진보계열보다는 중도노선의 정책을 폈다는 것도 같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브라질에 국빈 방문하여 룰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룰라가 시가를 한 대 물자 노 대통령이 시가를 한 대 건네 받아 맞담배를 피우면서 회담을 이어간 적이 있다. 자칫 외교적 결례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다행히 노 대통령도 흡연자여서 맞담배 회담이 가능했다고...#

7. 어록


"모든 업적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노동자'''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22]

ㅡ 퇴임식 연설 중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다."


"나도 인간인데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무척 부럽다. 경제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자질'''이 있으니까."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23]


"개인 혹은 정부의 미래는 우리가 꿈꾸는대로 만들어진다. 스스로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위대해지고, 스스로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잘 것 없어진다. 브라질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이 순간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을 보잘 것 없다고 단정 지을 권리는 없다.'''"


'''브라질에선 가난한 사람이 도둑질하면 감옥에 가지만, 부자가 훔치면 장관이 된다. -1988년 야당 의원 시절'''



"그들은 나의 체포를 명령했다. 나는 그들의 체포영장에 따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책임을 그들에게 넘기고 싶다. 그들은 마치 이 나라에 생긴 모든 일이 나 때문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 내 생각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는 부질없다. 왜냐하면 내 생각은 이미 공기중에 퍼져 있고 이것을 체포할 수는 없다. 내 꿈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는 부질없다. 왜냐하면 내가 꿈을 꾸지 않게 되더라도 그 꿈은 여러분의 마음과 꿈 속에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심장마비로 죽게 되면 모든 것이 멈출 것이라는 생각도 부질없다. 나는 한 인간이 아니라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여러분의 생각과 섞여 있다. 토지가 없고 주택이 없는 노동자 운동가들은 이를 알 것이다. 이것이 증거이다. 나는 체포영장을 따를 것이고 여러분은 변화를 겪어야 한다. 여러분의 이름은 더 이상 조이, 조니, 에디 같은 이름이 아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룰라가 될 것이고 매일 매일 여러분이 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이 나라를 걷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한 전사의 죽음이 혁명을 멈출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 -2018년 4월, 체포되기 전 모여 있던 지지자들에게 한 연설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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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세히 보면 왼손 새끼손가락이 없다. 젊은 시절에 공장에서 사고로 손가락을 잃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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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임기 중이었던 2007년에는 콜롬비아의 포기에 따라 무투표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을 따냈다. 이로서 연이어 2회 남반구 월드컵.
  • 2009년에는 일본 도쿄버락 오바마의 버프를 받은 미국 시카고, 스페인마드리드를 꺾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따냈다. 1차 투표에서는 4표 뒤졌지만 미국, 일본 표가 모조리 쏠렸다. 남미 최초의 올림픽이자 남반구 세 번째 올림픽. 이로서 브라질은 강력해진 국력을 월드컵올림픽의 겹경사로 과시...할 예정이었으나, 브라질 월드컵은 브라질에게 미네이랑의 비극이라는, 브라질 축구역사상 최악의 결과를 안겨주고 말았다.(...)
  • 룰라에 대한 이야기는 EBS 지식채널e에서도 다룬 바 있다. 1편 2편
  • 전 세계적으로 제3세계의 대표급 되는 위치도 차지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퇴임 이후 브라질만이 아닌 세계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발언했다. 때문에 유엔 사무총장이나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 재임 후반기 당시에 급진주의 정책을 펼친 우고 차베스와 대립구도를 언론에서 부각시겼지만 정작 룰라는 차베스와는 상당히 절친한 사이였다. 일단 지지기반이 빈민층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나 정책 목표도 비슷했기 때문. 물론 경쟁심 자체가 아예 없지는 않았고, 정책노선에서 사회민주주의 중도좌파 VS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급진좌파라는 차이가 있었기는 했었고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견차이를 보였지만 어쨌든 그랬다는 얘기. 그래서 선거철이 될 때마다 룰라는 차베스에 대해 지지선언을 하곤 했고, 차베스도 룰라에 대해 지지선언을 하곤 했다.[24] 그리고 서로 타 남미국가의 좌파정권 확산에도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나선편 사실 평소에 언사가 과격해서 그렇지 차베스도 페루의 알란 가르시아[25]를 제외하면 다른 좌파집권 국가들과는 의외로 마찰을 크게 빚지 않았다.
  • 2019년 1월, 룰라의 지지자 입장에서 지우마 호세프 탄핵과 룰라의 체포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The Edge of Democracy, Democracia em Vertigem)가 나왔다. 넷플릭스 링크[26]
  • 2019년 10월에 프랑스 파리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1] 별명 '룰라(Lula)'는 오징어란 뜻으로 나중에 법적으로 본래의 이름에 덧붙였다. [2] 현재 브라질의 대통령인 미셰우 테메르나 지우마 호세프를 탄핵으로 몰고간 인물로 손꼽히는 인물인 쿠냐 전 브라질 하원의장도 따지고 보면 룰라 때부터 호세프 정권 중반기까지는 노동자당 정권과 한 배를 탔던 인물이다.[3] 이때 지원금은 월소득 140헤알 이하('''미국 달러 환산 연소득 $672 이하''')의 가족의 경우 백신 접종을 받고 학교에 출석하는 16세 미만 어린이 1명당 32헤알($13), 최대 5명까지에 대해 지급한다. 그리고 16~17세의 학교에 출석하는 청소년 최대 2명에 대해 1명당 38헤알($15)을 지급한다. 만약 월소득 70헤알 이하의 극빈층('''미국 달러 환산 연소득 $336 이하''')이라면 위의 혜택을 포함하여 추가로 월 70헤알($28)을 지급한다.[4] 브라질 대통령은 3연임이 불가능하지만 중간에 쉬고 다시 출마하는 것은 가능하다.[5] 다만 룰라가 재임했을 당시의 브라질의 평균 성장률 자체는 의외로 꽤 낮은편인데(2003-2010 3.4%) 차베스 집권기의 베네수엘라(1999-2012 연 평균 2.7% 성장)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이고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집권기의 아르헨티나(2003-2007 연 평균 8.9% 성장)의 절반도 안 된다.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는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에 진행된 경제위기의 여파가 워낙 심하다보니 그만큼 경제성장률이 높은 측면도 있다.[6] 80년대 외채위기를 겪은 이후 브라질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도는 매우 낮아 국채에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해서 선진국 같으면 아무것도 아닌 50%도 브라질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7] 이렇기에 설사 룰라가 급진적인 좌파노선을 원했다고 하더라도 추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정당들을 모두 끌고 가려고 하다보니 부패가 발생했다. 노동자당의 고위간부들이 비자금을 조성해서 연립정권을 유지하는 대가로 정기적으로 뇌물을 건넨 것이다.[8] 국가예산을 대대적으로 확충할 수 없었던 원인도 있다. 국가예산 확충을 하려면 세금제도를 개편하든지 해야되어야되는데 여러 가지 후폭풍이 밀려올 게 뻔했기 때문에 못 한 것.[9] 종속이론 연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경제학자 출신이다.[10] 사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도 비판을 많이 듣기도 했지만 별 다른 대안이 없는지라 걍 버로우.[11] 다만 이전에도 세계 경제가 호황기였던 적도 여러 번 있었는데도 브라질이 '영원한 미래의 나라(그러니까 잠재력은 큰데 발휘를 못해 늘 미래에 성장할 거라는 말만 듣는다는 소리)'라고 불렸다는 점을 보면, 이런 기회를 잘 잡은 것도 나름의 능력이라 할 수도 있다.[12] 사실 4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기까지 브라질은 나름대로 고도성장을 거두던 국가이기는 했다. 경제적으로 막장포스를 뿜기던 국가는 결코 아니었다. 50년대와 60년대 전반기에는 인플레 문제가 있었고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는 빈부격차가 급속히 확대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때는 나름 공업화에 성공하고 인구도 급증하여 나름 강대국이 될 듯하기는 했다. 그러나 오일쇼크와 80년의 금리인상으로 인해 엄청난 외채를 짊어지는 바람에 브라질은 경제적으로 막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공업화도 그 여파로 지지부진해지며 그 후유증이 2000년대 초반까지 갔다.[13] 사실 2000년대 후반에 유전개발로 (중동 산유국이나 베네수엘라, 노르웨이처럼) 복지비용을 충당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막상 개발을 하려다보니 심해유전이라 채굴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채굴작업이 지지부진했고, 2014년 하반기부터 사우디의 대대적인 증산으로 석유값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채굴해봐야 손해만 보는 구조가 되어버리면서(사실 이는 사우디에서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8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 북해유전을 무기삼아 가격자유화를 선언하자 사우디에서 석유생산량을 대대적으로 늘려서 유가를 폭락시키는 방법으로 영미권의 석유업체를 말끔히 말려죽인 적이 있었기 때문.) 복지확충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얘기가 되어버렸다.[14] Mensalão, 직역하면 큰 월 단위 용돈.[15] 이 사건 덕분에 재선에 실패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고 1차 투표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2차 투표에서 야당후보를 60:39로 개발살내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지역별로 지지율이 크게 달라졌는데 상대적으로 잘사는 남부지역에서 지지율이 낮게 나왔지만 못사는 북부지역에서 지지율이 크게 올라간 것[16] 브라질 사회민주당 소속이지만 브라질 사회민주당 자체는 카르도주 시절에 우경화 되었기에 우파성향의 정당이 되었다. 포르투갈 사회민주당도 비슷하게 창당 초기에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이었지만 우파정당과 연합하는 과정을 거치고 정책도 우경화되면서 우파정당화 되었다.[17] 브라질 국회의원 태반이 비리에 연루되었기 때문에 부패수사를 방해해야 그나마 다음 선거 때 살아남을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지우마 호세프를 탄핵했던 이유가 호세프가 수사를 방해하기는 했어도 중단시킬 정도로 검찰을 압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다.[18] 지우마 호세프 탄핵에 찬성했든 반대했든 간에 부패수사를 방해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인 건 마찬가지다. 그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가 브라질 정치계에서는 그나마 깨끗한 축에 들 정도로 막장이었다.[19] 다만 재판에 걸려있는 혐의와는 별개로 브라질의 건설회사인 오데브레시가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의 주요 정재계 인사들에게 집중적으로 뇌물이나 선거자금을 뿌리며 사업권을 따냈던 시기(그것도 성향 가릴 거 없이 뿌렸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에서 여당과 야당에게 동시에 선거자금을 내주었을 정도'''이니 더이상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수준.)가 전임 카르도수 대통령 후기부터 룰라 집권기때와 맞물리니 알면서도 봐줬다는 것 자체는 기정 사실화된 지 오래되었다. 사실 이렇게 룰라가 다양한 성향의 정당들을 큰 잡음없이 이끌었던 이유 중 하나가 부패사건에 대해서 유하게 봐주었던 것이 컸고, 역으로 지우마 호세프가 탄핵된 이유 중 하나가 부패수사를 막지 못한 것이라는 점이었다.[20] 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21] 노무현 - 1946년생, 룰라 - 1945년생[22] 대통령 당선증서를 받았을 때 초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한 나로선 생전 처음 받아보는 증서라며 눈물을 흘렸다. 룰라는 어려운 생계 때문에 초등학교를 2년만 다니고 중퇴했다. 그 후 12살에 길거리 상인을 시작했다고...[23] 이 말은 KBS 드라마 <어셈블리> 19회에서도 인용되었다.[24] 특히 2006년 대선에서 룰라 대통령이 재선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에도 룰라에게 지지선언을 했고, 룰라도 차베스가 무리한 국민투표를 시행했을 때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25] 알란 가르시아의 경우는 차베스가 우얀타 우말라를 성향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화끈하게 밀어준 데다가 알란 가르시아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차베스를 대놓고 깠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26] 다만 상술했듯 룰라 역시 부패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편향적으로 느껴지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