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초대 북흉노 선우
포노선우
蒲奴單于
'''

''''''
난제(攣鞮)
''''''
포노(蒲奴)
'''아버지'''
오달제후선우(烏達提侯單于) 난제오달제후(攣鞮烏達提侯)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재위 기간'''
기원전 46년 ~ 기원전 ?년
흉노의 선우. 오달제후의 아들.
기원전 46년에 오달제후가 죽자 뒤를 이어 선우가 되었으며, 이 때 흉노의 땅에는 계속 몇 해 동안이나 가뭄과 황충이 나돌아서 붉은 땅이 수 천리나 되고 사람, 가축이 기근, 역질 등으로 반이나 사망했다. 한나라에서 피폐한 틈을 탈까 두려워해서 사자를 파견해 어양까지 와서 화친을 청했으며, 광무제가 이무를 파견해서 회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또한 오환이 흉노가 약해진 틈을 타 공격하면서 북쪽으로 수 천리를 옮겨갔으며, 이로 인해 고비 사막의 남쪽은 텅 비게 되었다. 혜락시축제가 정회에 드물게 참석하자 두 골도후를 파견해 그 부의 병사들을 감시하게 했는데, 47년에 혜락시축제가 서하태수에게 귀부를 청하자 그 속뜻을 알아차린 두 골도후로부터 5월에 용사에서 혜락시축제를 죽이도록 권고받았다.
두 골도후가 혜락시축제가 있는 부로 갔다가 자신들을 죽이려는 음모를 눈치채고 달아나면서 돌아오자 1만 명의 기병을 파견해 공격하려고 했지만 그 무리가 많은 것을 보고 함부로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갔다. 49년에 혜락시축제가 동생인 좌현왕 난제막을 파견하면서 동생인 욱건좌현왕을 붙잡자 놀라고 두려워 해 1천여 리 뒤로 물러났으며, 북부의 욱건골도후, 우골도후가 무리 3만여 명을 인솔하고 혜락시축제에게 귀부하는 타격을 입었다.
50년 겨울에 다섯 골도후의 아들들이 남흉노로 귀부하자 기병을 파견해 추격해서 그들을 붙잡았는데, 이로 인해 남흉노와 전투를 벌여 우세했지만 한나라에서 남흉노를 도와줬다. 이 때문에 두려워해 포로로 잡은 한나라 백성들을 돌려보내면서 호의를 보이고 노략질하는 병사들이 남부로 내려와서 변방 기지를 지날 때마다 번번이 사과하면서 도망친 욱건일축왕을 잡을 뿐으로 함부로 한나라의 백성들을 범하지 않겠다고 했다.
51년에 사자를 파견해 무위까지 와서 화친을 청했다가 남흉노가 두 마음을 품게 될 것이라 여겨 거부되었으며, 51년 이후에는 북흉노에서 남흉노와 싸우거나 서역 국가들에게 개입했지만 그가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어서 그 사이에 우유 선우 이전에 선우가 교체되었는지 그대로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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