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몽룡

 

2015년 4월 4일 출시되었던 풍몽룡 우표
馮夢龍 / 冯梦龙(Féng Mènglóng), 1574년 ~ 1646년
1. 개요
2. 생애
3. 작품
3.1. 책
3.2. 희곡


1. 개요


말의 소설가 겸 희곡 작가로, 장쑤 성 쑤저우(苏州) 출신이다. 자는 유룡(猶龍), 이유(耳猶).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에 따라 향월거고곡산인(香月居顧曲散人), 고소사노(姑蘇詞奴), 전전거사(箋箋居士) 등 많은 호를 필명으로서 사용하였다.

2. 생애


말년에 푸젠 성 수령(壽寧) 현의 지사가 되었으며, 명나라가 멸망하자 황실을 따라 순사(殉死)했다.

3. 작품


풍몽룡은 명나라 말엽의 소설과 희곡의 문학적 권위가 향상하는 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이전까지 중국 문인 사회에는 소설을 문학적 가치가 없는 허구적, 유희적 이야기로만 여기는 풍조가 있었다. 그러나 남송, 원나라를 거쳐, 서사를 통하여 서민들에게 쉽게 사상을 전파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소설의 문학적 지위가 상승하며, 명나라 말엽의 풍몽룡에 의해 비로소 공식적으로 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3.1. 책


  • 고금소설(古今小説)
  • 삼언소설(三言小説) - 단편소설집, 삼언이라고만 부르기도 한다.
    • 유세명언(喩世明言)
    • 경세통언(警世通言)
    • 성세항언(醒世恒言)
  • 신열국지(新列國志)
  • 정사유략(情史類略)
  • 평요전(平妖傳)

3.2. 희곡


풍몽룡 생전에는 곤곡(崑曲)이 성행하였는데, 이는 원대에 성행하였던 북방 지역 음악(타악기 중심)이 중국의 전통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배제되며 새로이 주목받은, 남방 지역 음악(현악기 중심)이다. 풍몽룡을 포함한 당시 문인들 사이에는 곤곡을 삽입한 희곡을 만드는 게 유행이 되어, '''희곡의 스토리보다 OST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다.
풍몽룡은 곡률뿐 아니라 미려한 문장과 완약한 서정을 함께 추구하는 곡풍[1]을 유지하였다. 다만 명나라 말엽의 희곡 OST들은 가사의 기교나 곡률 둘 중 하나만 중시되는 경향이 있어 작품성이 떨어져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수두룩하고, 풍몽룡의 작품도 그러했다.
  • 묵감재전기정본(墨憨齋傳奇定本)

[1] 곤산파(崑山派), 악곡에만 신경을 쓰던 오강파(吳江派)와 비교하여 사용하는 명칭이다.